기자: “전화한 사실이 있습니까?”

나경원: “기소 청탁을 한 사실이 없습니다.”


기자: “그게 아니라, 김재호 판사가 검사에게 전화를 한 사실이 있느냐, 없느냐를 묻고 있는 겁니다.”


나경원: “다시 한 번 말씀 드리지만, 기소 청탁을 한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질문과 답변이 어긋날 때 기자들은 답답하다. 이런 모습은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가 검찰 청사에 들어올 때 포토라인에 대기하고 있는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그런 사실이 있습니까?” “혐의를 인정하십니까?”


쏟아지는 질문에 피의자들은 “국민이 더 잘 알 겁니다.” “역사가 말해줄 겁니다.”


질문과 답변이 어긋나는 시대는 우리나라 현대 범죄사를 말해주는 ‘대표 아이콘’이 돼 버렸다. 초등학생이면 이해하고도 남을 질문에 ‘국민과 역사’로 답하는 이들을 두고 기자들은 행간을 읽으면서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


질문과 답변이 어긋나는 사이…또 한 명의 검사가 자리를 떠났다. 그는 ‘전화를 받은 검사’였다. 질문과 답변이 어긋나는 사이…조용히 짐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았을 것이다. 그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갈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질문과 답변이 어긋나는 사이…그가 떠났다는 사실만큼은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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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지난 주 토요일 아내가 운영하는 미술학원에서 도자기 바자회를 했다. 아내는 핸드페인팅 도자기를 직접 구워 판매하는 일을 겸하고 있다. 초등학교 2~4학년 여섯 명이 '도우미'를 자청했다. 그들 중에는 초등학교 3학년 우리 아들도 포함돼 있었다. 미리 전단지를 배포하고, 학원생 부모들에게 메시지를 준 상태였지만 많은 사람이 올 지, 의문이었다.

다행히 적지 않은 학부모들이 바자회에 다녀갔고 아내는 도자기를 판매해 일정정도의 수익을 남길 수 있었다. 수익 전액은 근처 사회봉사단체에 기부했다. 아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4시까지 귀여움을 떨면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즐겁게 했다. 그리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일기를 썼다. 일기는 아직까지 엄마에게 확인(?)을 받는다. 확인받는다는 것을 염두에 둔 아들의 일기는 간곡했다. 절절한 마음이 확인받는 이(아내)에게 충분히 전달될 만큼.



"제목: 도자기 바자회

오늘 도자기 바자회를 했다.
우리 엄마 학원에서 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구경도 하고 사기도 했다.
엄마가 돈을 많이 벌었다.
엄마는 많은 돈이 있으면서 
아직 용돈을 않좄다(안줬다.)
그래도
난 엄마가 용돈을 준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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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잃어버린 분노

600 小說 2011.07.18 09:22

대학생 시절, 그는 분노의 덩어리였다. 대리출석을 부탁해 놓고 그가 한 일이라고는 막걸리 마시는 일이었다. 대학 교정을 가로막는 철조망 밑이 그의 통로였다. 개구멍은 그의 해방구,고개 숙이고, 허리 구부리고, 두 손바닥 땅 짚고 쑤욱 몸 들이밀면 개구멍은 개구멍이 아니었다. 그 구멍은 세상을 향한 분노의 덩어리, 이글거리는 분노의 철조망. 그의 뒤를 따라 개구멍에서 친구 두 명이 푸른 피를 내뿜으며 출산된다. 경계를 넘는다. 막걸리와 파전, 할아버지와 할머니, 낯선 사람과 사람, 푸른 산을 향해 고개 숙인다. 이미 취해있는 할아버지. 그를 보고 가만 두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말만이 살아 숨쉬는 재료였다.
“젊은 것들이 대낮부터 술이나 처먹고......나라 꼴 잘돼 간다!”
맑은 하늘 사이로, 솔잎가지 쏟아지고, 햇살에 눈을 뜨지 못한다. 시리다 할아버지의 ‘나라꼴’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분노의 무리들. 막걸리 잔 부딪치며 ‘나라꼴’ 걱정한다. 분노가 전부였고, 분노의 시대였고, 분노가 술이었으며, 분노가 안주였다. 다시 분노의 강 건너 개구멍으로 교내에 들어서면 벌건 얼굴 서로 보며 분노한다. 지는 석양이 얼굴 가득 스며든다. 수업은 이미 끝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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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할머니의 양쪽

600 小說 2011.06.23 10:20

비가 온다. 지하철역은 붐빈다. 비가 철철 새는 우산이 많다. 부딪히는 어깨는 또 얼마나 자준지. 5호선 공덕역에서 6호선 공덕역을 갈아타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야 한다. 방화역 쪽으로 5호선 맨 앞 칸에 타고 지하철이 멈추면 일단 뛴다. 경험상 5호선이 도착할 때쯤 6호선이 플랫폼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계단을 바삐 올라간다. 한 할머니가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허리는 90도로 구부려졌고, 알록달록 몸빼 바지를 입었다. 머리카락은 하얗다. 양쪽 손에 큼지막한 하얀 봉지를 들었다. 하얀 봉지에 무엇이 들었는지 할머니는 계단 위로 끌어올리지도 못한다. 6호선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다는 신호가 울린다.

할머니 곁으로 다가간다. 할머니 곁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앞서 가던 한 남자와 여자가 할머니의 양쪽 봉지를 들어준다. 60대로 보이는 남자와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할머니는 반복적으로 "아이쿠! 고맙구려!"라며 뒤를 따른다. 두 사람의 도움으로 할머니는 6호선 플랫폼에 안전하게 올랐다. 하얀 봉지 안에는 읽다 만 무가지가 수북했다. 빈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그제야 커다란 한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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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미미한 양'은 하늘을 쳐다본다. 봄은 미미한 양으로 왔다. 미미한 비가 내리고, 미미한 꽃잎이 피고, 미미한 새싹이 돋았다. '미미한 양'은 오늘도 뉴스에 귀를 기울인다. 봄이 미미한 양으로 찾아오고 있지만 미미한 양의 방사능이 바다를 건너 이 봄 하늘 위에 떠 있다는 뉴스가 쏟아진다.

‘미미한 양’은 그것이 미미한 것이기에 별 걱정은 하지 않는다. 다만 미미한 비로, 미미한 꽃잎으로, 미미한 새싹으로 봄이 활짝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미한 양의 방사능도 어느 순간 활들짝 퍼질 지 모를 일이다. 버스에 오르는 '미미한 양'은 여전히 뉴스를 통해 "미미한 양이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고 있다.

모든 것은 미미한 양으로 시작된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갑자기 펼쳐지지 않는다. 미미한 것으로 시작돼 봄이 미미하게 찾아온다. 그 미미한 것을 미미하게 생각하는 이 시대의 분위기가 영 미미하다고 '미미한 양'은 생각한다. 그렇게 미미하게 퍼지는 양이 언젠가는 화들짝 놀라는 양으로 바뀔 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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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두 여자가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한 조각 아이스크림이 툭 떨어진다. 아이스크림은 누구의 혀에도 닿지 못하고 녹아 버린다. 달콤함을 전달해 주기에는 아이스크림의 운명이 너무 짧다.

두 여자는 지금 막 <엄마의 집>에서 나오는 참이었다. 멜랑꼴리(melancholy)한 모습으로 그들은 지금 어딘가로 가고 있다. <풀밭위의 식사>라도 할 참인가. 멜랑꼴리한 표정과 달리 발걸음은 가볍다. 소풍이라도 가는 것일까. 찬 발걸음으로 어디를 가는 것일까. <우리는 매일매일>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가.

제56회 현대문학상을 받게 되는 두 여자, 진은영과 전경린이다. 지나온 거리만큼 그녀들의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이젠 어찌할 것인가. 무거운 숙제를 떠 안은 그녀들이 앞으로 어떤 문학을 선보일지. 이 땅의 여자들의 일생이란 꼭 무엇이어야만 할까. 그녀들은 지금 어디를 가는 걸까. 소풍이라고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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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시간 속으로

600 小說 2011.03.28 14:02

꿈은 달콤했다. 하얗게 부셔지는 햇살, 푸른 파도가 그에게로 쏟아졌다. 푸른 파도가 그를 감싸 안을 때 그는 깨어났다. 아침 6시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6시30분 알람은 꿈의 파도에 부셔져 흔적 없이 사라졌다. 버스 시간은 7시. 헐레벌떡 일어나 옷을 걸치고 뛰쳐나갔다. 버스는 그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다음 버스는 30분 뒤, 지각은 뻔했다.

행복한 꿈으로 버스를 놓친 그가 정류장에서 다음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놓친 7시 버스는 언덕을 넘어서고 있었다. 버스 기사는 간밤의 꿈이 영 거슬렸다. 푸른 파도가 버스를 덮쳐 흔적도 없이 휩쓸려 가는 꿈이었다. 언덕을 넘어 내리막길을 달리던 버스가 기우뚱거렸다. 버스 기사는 브레이크를 밟았다. 브레이크는 말을 듣지 않았다. 내리막길을 질주했다. 내리막길이 끝나는 지점은 급 커버. 핸들을 최대한 돌렸지만 버스는 속도를 이기지 못했다. 하필 그 시간 지나가던 반대편 자동차와 충돌했다. 그 시각, 맞은편을 달려오는 차는 거의 없었다. 버스는 충격으로 길가로 튕겨졌고 뒤집히고 말았다.

버스가 뒤집히던 시각, 정류장에서 7시30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그는 ‘7시 버스가 조금만 늦게 왔으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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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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