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조1천억'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02.17 '아빠와 수학' '옆집 아줌마와 영어' 어때요? (4)

오늘 사교육비에 대한 기사가 있어 관심을 모았다. 기사의 내용은 이렇다.

“지난 2011년 전국 초·중·고 학생의 사교육비 규모는 20조1천억 원으로, 2년째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010년과 같은 24만원으로 제자리걸음을 보였다.”

실제로 이 정도의 금액인지,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가정에서는 얼마만큼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는 지는 각 가정마다 다를 것이다. 평균이 24만원이기 때문에 100만 원 이상인 가정도, 24만 원 이하인 가정도 있을 터.

과연 사교육은 필요한가. 이런 원론적 질문부터 해 보자. 필요하다는 데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왜? 현재의 한국 교육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어 버렸으니. 한국의 현실을 조금만 알더라도 사교육이 왜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우선, 모든 사회가 인맥사회에다, 학력사회이다. 직장을 잡을 때도 서울소재 대학과 지방대학은 차별이 극심하다 못해 인격 모독까지 자행되는 사회이다. 이런 형국이니 내 아이를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은 것은 부모라면 당연한 일.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는 공교육으로는 어림도 없다. 이는 공교육의 직무유기이다. 아이들은 방학만 되면 선행 학습을 하느라 학교 다닐 때보다 더 많은 공부와 과외에 시달린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것.

부모는 어떤가. 방학이 되면 아이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40대~50대 중반 어머니들은 대형마트에 캐시어로 취업하거나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이니 사교육을 어찌 안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여기서 달리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사교육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학원’이다. 과연 ‘학원’에 보내기만 하면 공부를 더 잘 하고,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까. 내가 경험하고 들은 이야기로는 아니라는 것이다.

어제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딸아이와 수학 공부를 했다. 매주 목요일과 일요일 두 차례에 걸쳐 각각 1시간 씩 수학 공부를 나와 같이 한다. 저녁 9시에 집에 도착하면 저녁 먹고 11시까지 함께 공부를 한다. 아이는 중학생이 되면서 나와 함께 수학공부를 했다.

초등학교 때는 자유방임 상태로 길렀다. 학원에 가 본 것은 피아노 학원이 유일하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면서 아이, 스스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빠! 이제 나 공부해야 겠다” “아빠, 우리 지역은 농어촌 특례입학이라는 게 있더라.” “괜찮은 고등학교 가려면 내신 성적이 1등급이 돼야 한 대.”

어디서 들었는지, 아이는 한국 교육의 현실의 적나라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벌써부터 아이는 6년 뒤의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딸아이와 공부였다.

중학교 수학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다닐 때의 중학 수학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교과 과정이 상당히 어려웠다. 그러나 딸아이가 스스로 나선 마당에 아빠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 며칠에 걸쳐 중학교 수학책을 완파했다. 어느 새 내가 중학생이 돼 버린 느낌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 차례씩 꾸준히 아빠와 공부한 딸아이의 성적은 이번 겨울방학 결과에서 나타났다.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는 각 교과목마다 1등에게 우수상을 주는데, 아이는 수학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딸아이와 공부를 하는 것은 단지 지식을 습득하는 공부만이 아니다. 아이와 공부를 하다 보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 자신이 생각하는 지금 상황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무엇보다 아빠와 같이 공부하면서 딸아이는 자신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길렀다.

아이는 요즈음 11시가 넘어 잠을 자고 오전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봄 방학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이 습관을 지키고 있다. 이런 스스로의 약속, 그리고 ‘공부하는 습관’이 가장 좋은 교육인 것 같다. 그것은 ‘학원’에서는 절대 얻어낼 수 없는 성과물이었다.

또 하나 영어 공부는 옆집 아주머니가 담당해 준다. 물론 돈을 주는 것이 아니다. 내 아내가 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에 지난해에는 옆집 아이들이 아내로부터 미술지도를 받았다. 이것을 일종의 상부상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 이웃 간의 정(情)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얼마 전에 아이는 영어 기본문법 편을 옆집 아주머니와 끝마쳤다. 아내는 과정이 끝나던 날, 해물 칼국수를 끓여 이른바 ‘책거리’를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막걸리와 간단한 안주를 곁들여 같이 이야기도 나눴다.

나는 이런 ‘사교육 시스템’을 ‘소공동체 사교육’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보모들이 나서서 각각 한 과목씩 맡아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스템. ‘소공동체 사교육’은 가정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그 효과가 아주 크다. ‘문제를 맞히는 것’ 보다 ‘문제를 푸는 방법’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물론 이 ‘소공동체 사교육’ 시스템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의 특수성과 무관하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시골 마을이라 마땅한 학원도 없고, 목돈을 주고 개인 과외를 시킬 만큼의 여유도 없다.

이런 여러 가지 현실이 부모들로 하여금 아이의 ‘과외 선생’으로 만들게 한 배경일 수 있다. 딸아이는 그렇게 ‘아빠와 수학’ ‘옆집 아주머니와 영어’ ‘엄마와 미술’ 등의 과외를 받으며 자신의 틀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나는 제안하고 싶다. 각박한 도시 생활과 맞벌이 등 특수한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현실을 불가능하게 만들겠지만 이런 ‘소공동체 사교육’ 시스템으로 아이들과 시간도 갖고 아이에게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아빠와 수학’ ‘이웃과 영어’를 실천해 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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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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