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2.05.08 할머니의 더덕
  2. 2011.06.23 할머니의 양쪽
  3. 2011.05.27 무식한 시인

할머니의 더덕

600 小說 2012.05.08 19:31

앞만 보고 걸어가는 좀비

냄새를 좇아

두 손 뻗은 좀비를 떠올리면 안 된다

한 쪽 얼굴 썩어 문드러진 좀비만 생각해서도 안 된다

도시 좀비는 반듯하다.

말쑥한 향수 뿌렸다

이른 아침,

하얀 속살 냄새 풍겨오면

덜커덩 지하 깊은 관 열리면

시작되는 좀비 행진

앞서가는 좀비 뒤통수만 보며

하얀 냄새 솟아나는 곳으로

지하에서 지상으로

늦은 저녁,

지친 입김 쏟아내고

덜커덩 지하 깊은 관으로

시작되는 좀비 행진

흐느적거리는 좀비 따라

하얀 냄새 기어오르는

지상에서 지하로

냄새를 파는 노파,

노파는

지하에서 지상으로 연결되는

모서리에

푸른 삼베옷 펼쳐놓고

누런 더덕 일기 칼로 긁고 있다

일기 새길 때마다

하얀 살 돋아나고 향기 솟는다

깊은 관 속에서 나온 좀비들

향기를 찾지만

노파의 일기를 보지 못하고

지상으로

지하로

떼 지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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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할머니의 양쪽

600 小說 2011.06.23 10:20

비가 온다. 지하철역은 붐빈다. 비가 철철 새는 우산이 많다. 부딪히는 어깨는 또 얼마나 자준지. 5호선 공덕역에서 6호선 공덕역을 갈아타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야 한다. 방화역 쪽으로 5호선 맨 앞 칸에 타고 지하철이 멈추면 일단 뛴다. 경험상 5호선이 도착할 때쯤 6호선이 플랫폼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계단을 바삐 올라간다. 한 할머니가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허리는 90도로 구부려졌고, 알록달록 몸빼 바지를 입었다. 머리카락은 하얗다. 양쪽 손에 큼지막한 하얀 봉지를 들었다. 하얀 봉지에 무엇이 들었는지 할머니는 계단 위로 끌어올리지도 못한다. 6호선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다는 신호가 울린다.

할머니 곁으로 다가간다. 할머니 곁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앞서 가던 한 남자와 여자가 할머니의 양쪽 봉지를 들어준다. 60대로 보이는 남자와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할머니는 반복적으로 "아이쿠! 고맙구려!"라며 뒤를 따른다. 두 사람의 도움으로 할머니는 6호선 플랫폼에 안전하게 올랐다. 하얀 봉지 안에는 읽다 만 무가지가 수북했다. 빈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그제야 커다란 한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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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시는 아무나 짓는 게 아니야
배운 사람이 시를 써 읊는 거지
가이 갸 뒷다리도 모르는 게
백지장 하나
연필 하나 들고
나서는 게 가소롭다

꽃밭에서도 벌과 나비가
모두 다 꿀을 따지 못하는 것과 같구나
벌들은 꿀을 한보따리 따도
나비는 꿀도 따지 못하고
꽃에 입만 맞추고 허하게 날아갈 뿐

청용도 바다에서 하늘을 오르지
메마른 모래밭에선 오를 수 없듯
배우지 못한 게 죄구나

아무리 따라가려 해도
아무리 열심히 써도
나중엔
배운 사람만 못한
시, 시를 쓴단다

[한충자의 <무식한 시인>...시에 언급된 '뒷다리'는 '받침'을 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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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