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속에 더 이상 아름다운 것은 없었다. 흔들리는 지하철 속에서, 옆 사람의 몸이 부딪혔지만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다. 멍하니 책을 덮고 어둠 속을 달려가는 터널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곳엔 어둠만이 가득했지만 내 가슴에는 ‘멍한’ 느낌만 남아 있었다.

<뜻밖의 재회>는 사랑을 담았다. 짧은 이야기 속에 긴 여운을 주는 모든 감정을 실었다. <타이타닉>, <사랑과 영혼>, <미래를 걷는 소녀(동경소녀)> 등 영화를 통해 전해지는 ‘사랑’이란 감정은 이 짧은 소설에서 더 깊은 맛을 전해준다.

뭐라 말하고, 평가하는 것보다 그저 읽어보는 게 좋겠다. 직접 읽어보고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페터 헤벨’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헤벨의 <뜻밖의 재회> 전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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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팔룬에서 오십 여 년 전에 한 젊은 광부가 곧 아내가 될 어여쁜 예비신부한테 키스를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싼타 루치아 생일에 신부님이 우리의 사랑을 축복해주실 꺼야. 그럼 우리는 어엿한 부부가 되는 거고,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꾸리는 거야.”

그러자 어여쁜 예비신부가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의 보금자리에는 평화와 사랑이 넘칠 거예요. 그리고 당신은 나의 전부가 되는 거예요. 당신이 없는 데서 사느니 차라리 무덤 속이 나을 거예요.”

그런데 신부님이 두 사람을 앞에 세워놓고 신도들을 향해 이 두 사람이 부부의 연을 맺는데 장애사유가 있으면 고지하기 바란다고 두 번째로 외쳤을 때, 죽음이 찾아왔다. 다음날 아침 젊은이는 검은색 작업복이 장례복장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르고 예비신부의 집 앞을 지나가면서 그녀의 방 창문을 두드리며 아침인사를 했으나. 그날 저녁인사는 영영 하지 못했다. 광산에서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날 아침 예비신부는 결혼식 때 신랑한테 선물로 주려고 빨간 리본이 달린 검은 목도리를 손수 만들었으나, 신랑이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되자 목도리를 치워버렸고, 신랑을 생각하며 울었으며, 신랑을 영원히 잊지 못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사이 포르투갈의 도시 리사본이 지진으로 파괴되었고, 7년전쟁이 지나갔고, 프란츠1세 황제가 서거했고, 예수회 교단이 폐쇄되었고, 슈트루엔제가 처형되었고, 미국이 독립했으며,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군이 지브롤터를 공격했으나 점령하지 못했다. 터키군이 헝가리의 베테라니 요새를 지키던 슈타인 장군을 포위 공격했고, 요제프 황제도 서거했다.

스웨덴의 구스타프 왕이 러시아령 핀란드를 점령했고, 프랑스 혁명과 더불어 기나긴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러오폴트 2세 황제도 무덤 속으로 갔다. 나폴레옹이 프로이센을 점령했고, 영국군이 코펜하겐을 포격했으며, 그러는 중에도 농부들은 씨를 뿌리고 양식을 거두었다. 방앗간 주인은 곡식을 빻았고, 대장장이는 쇠를 벼렸으며, 광부들은 광맥을 찾아 지하갱도를 파내려갔다.


그런데 1809년 팔룬의 광부들이 세례 요한 축일 무렵 두 갱도 사이를 뚫으려고 지하 백오십 미터나 되는 깊은 곳에서 굴을 파다가 쇄석과 황산염수가 뒤섞인 흙더미에서 젊은이의 시신 한 구를 발견했는데, 시신은 황산염수에 절어 있긴 했지만 전혀 부패하거나 손상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 마치 겨우 한 시간 전에 죽은 사람처럼, 혹은 작업을 하다가 잠시 잠이 든 사람처럼, 얼굴 윤곽도 또렷했고 나이도 정확히 알아볼 수 있었다.

광부들이 시신을 지상으로 끌어내긴 했으나 그때는 이미 부모 친지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지 한참 뒤여서, 잠을 자는 듯한 이 젊은이를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이 젊은이가 언제 사고를 당했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갱도에 들어갔다가 다시는 나오지 못한 이 광부의 약혼녀가 마침내 나타났다. 그사이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고 얼굴이 쭈글쭈글해진 약혼녀는 지팡이를 짚고 현장에 와서 신랑을 알아보았다. 노인네는 슬퍼하기보다는 오히려 기쁘게 반기면서 사랑하는 남자의 시신 앞에 털썩 주저앉더니 격한 감정을 이기지 못해 한참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다가,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내 약혼자라우. 이 사람을 잃고 오십년 동안이나 슬퍼했는데, 하느님이 보살피사 내가 죽기 전에 이렇게 다시 만나게 해주시는구려. 결혼식을 일주일 앞두고 갱도에 내려갔다가 다신 못 나왔더랬지.”

둘러서 있는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듣고는 모두 안타까워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한때의 약혼녀가 이젠 곧 스러질 듯한 꼬부랑 할머니의 몰골로 여전히 젊음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신랑 앞에 서 있는 걸 보고는 모두들 마음이 짠해졌다. 어언 오십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노인네의 가슴에는 젊은 시절 간직했던 사랑의 불꽃이 다시금 반짝 타올랐다. 하지만 신랑은 입을 열어 미소로 응답하지도 않았고, 눈을 떠서 신부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러고 있다가 마침내 노인네는 광부들을 시켜 시신을 자신이 기거하는 조그만 거처로 옮기게 했다. 시신을 교회묘지에 안장할 때까지 이 시신을 모실 권리가 있는 사람은 한때의 약혼녀인 노인네가 유일했던 것이다. 다음날 광부들이 교회묘지에 무덤을 파고 시신을 옮기는 동안 노인네는 시신에 빨간색 리본이 달린 검은 비단목도리로 둘러주고는, 장례식이 아니라 결혼식이라도 치르듯 화사한 예복 차림으로 따라왔다.

교회묘지에 이르러 사람들이 시신을 무덤에 안치하고 흙을 덮는 동안 노인네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고이 주무시구려. 신방이 선선하겠지만, 한 열흘 정도만 참고 기다리시우. 난 이제 할 일도 없으니 금방 따라가려우. 지금은 캄캄하겠지만, 금방 동이 클 거유.”

그렇게 말하고는 무덤가를 떠나다가 노인네는 다시 한 번 뒤를 돌아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지신(地神)께서 일단 돌려주셨으니, 두 번 다시 거두어가진 않으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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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페터 헤벨(Johann Peter Hebel)

신학자

짧은 형식의 소설쓰기, 이야기꾼

<달력이야기>

헤세는 “헤벨은 독일 문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이야기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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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