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돈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돈이 최고의 가치이다.”

“돈이 이 시대 최고의 선(善)이다.”

“돈으로 태어나, 돈으로 성장하고, 돈으로 축복받는다.”

“돈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준다.”

이 시대 최고의 가치로 까지, 최고의 선으로 까지 치켜세움을 받고 있는 돈! 돈만 있으면 못하는 것이 없는 세상이다 보니, 과연 돈이 그런 평가를 받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 같다. 돈으로 인해 갈등이 생기고 서로 헐뜯고 심지어 한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버리는 비극까지 낳고 있지 않은가.

어제 한 구두 방을 갔었다. 회사 가까운 지하철 한 편에 1평 남짓 웅크리고 있는 곳이었다. 구두를 수선하기 위해 찾은 그곳엔 중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애와 구두 방 주인이 앉아 있었다. 구두 수선을 위해 구두를 건넸더니 주인은 “이거 얼마 주실 거예요?”라고 물었다. 나는 당황했다. 구두를 직접 수선하는 주인이 적당한 가격을 알 것이고, 그 가격에 수선을 하면 될 터인데. 오히려 손님에게 얼마를 줄 것이냐고 먼저 묻고 있으니 황당하기 까지 했다.

내가 얼마를 주면 되겠느냐고 물었고 주인은 한참이나 망설이더니 옆의 여자애를 보더니 가격을 불렀다. 이어 주인은 이런 말을 한다.

“다 값어치가 있는 겝니다. 1만원을 투자하면 딱 1만원 어치 밖에 안 해 줘요. 이게 다 수공인데. 원래 1만5천원 받아야 하는데 1만원으로 가격을 떨어트리면 딱 고만큼만 하는 겝니다. 대충대충.”

수선하는 동안에도 구두 방 주인은 옆에 앉아 있는 여자애 이름을 부르면서, 여자에는 주인의 딸이었다, 그동안 구두 방을 찾아왔던 손님 이야기며 수선비를 깎으려 들 때 자신이 어떻게 대충대충 했는지 등에 대해 구구절절 입을 쉬지 않았다.

1만5천원이라고 주인은 불렀고 나는 수선해 달라고 부탁했다. 주인은 어떤 손님들은 한참이나 ‘뭐가 그렇게 비싸냐?’ ‘그 가격이면 구두 한 켤레 사는 게 더 낫겠다.’는 등의 말을 한다고 경험담을 털어 놓기 바빴다. 사실, 1만5천원의 수선비라면 조금 더 투자해 새 구두를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신었던 정들었던 구두이기에 1만5천원을 주고 수선을 맡겼다.

사실, 우리는 하루를 돈으로 시작하고 돈으로 끝낸다. 버스를 타면서 돈을 내고, 점심을 먹으면서 지불하고, 저녁에 돌아가면서 돈을 내고......하루의 일상이 돈과 돈의 연속 점에서 뱅뱅 돌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과연 그 돈의 값어치, 정확한 값어치를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에서 말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서 적당한 가격이 책정되는 것일까.


석영중 교수의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는 돈에 대한 이야기이다. 러시아의 유명한 두 소설가를 꼽으라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꼽는다. 두 소설가는 대표적 작가일뿐더러 항상 비교 대상이다. 두 작가를 비교할 때 누구나 수긍하는 말이 있다.

“모두 대단한 작가이다. 하지만 톨스토이의 문장은 세련되고 뭔가 정제된 느낌이 드는데 반해 도스토예프스키의 문체는 어쩐지 투박하고 거친 토양을 보는 것처럼 튄다. 톨스토이의 글이 잘 다듬어진 다이아몬드라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이제 막 캐낸 광산의 다이아몬드 같다.”

석영중 교수는 그 원인으로 “톨스토이는 자신이 쓴 초고를 퇴고하고 또 퇴고하면서 문장을 고치고 정제된 것으로 바꾸는 여유가 있었다.”라고 지적한 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는 자신의 원고를 퇴고하기 전에 돈을 받기 위해 원고를 퇴고할 여유도 없이 바로 넘겨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가난하게 태어나진 않았지만 평생 ‘돈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았다는 것이 석 교수의 분석이다. 얼마나 돈이 급했으면 원고를 쓰기도 전에 미리 선금을 받았다. 이 때문에 도스토예프스키는 제대로 된 돈의 값어치를 받을 수 없었다. 돈이 급한 사람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확한 값어치가 중요하지 않다. 노동으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현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급한 당사자의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 <미성년> <도박꾼> <죄와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분석했다. 분석의 초점을 ‘돈’에 집중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그가 처해 있던 현실에 강조점을 두고 분석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평생 돈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돈에 쫓기는 삶을 살았던 것으로 나타난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한 달 만에 이미 선금을 받은 소설을 써대야 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소설이 <도박꾼>이다. <도박꾼>은 영화로도 만들어진 바 있다.

영화 <알렉스와 엠마>.

루크 윌슨, 케이트 허드슨이 출연했던 <알렉스와 엠마>는 도박 빚에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받던 한 작가가 한 달 안에 소설을 써 내야 하는 위기에 처한다. 컴퓨터와 타자기가 없던 아주 옛날에 한 달 만에 장편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 급기야 속기사를 고용한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도스토예프스키도 당시 도박 빚에 처해 있었고 실제로 소설을 시간 안에 작성하기 위해 속기사를 채용했다.

<알렉스와 엠마>에서 작가가 불러주는 내용을 속기하는 여속기사의 애매모호한 관계, 그러면서 불러주는 ‘입’과 쓰는 ‘손’이 소설이 전개되면서 공감되고 둘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그렸다. 도스토예프스키도 고용했던 속기사와 결혼까지 한다.

석영중 교수는 이번 책을 통해 돈이란 실체가 어떤 것인지 한 작가의 상황을 통해 살펴보았던 것 같다. 역사 이래로 돈은 인간 세계에서 떨어질 수 있는 존재였다. 신분사회가 엄격한 조선시대에서 조차 거부가 있었고 그 이전의 역사에서도 돈에 대해 갈망하는 인간들의 군상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돈은 어쩌면 ‘전부인 시대’에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돈이 전부가 됐을 때 잃는 것도 많다. 주변의 사람은 보이지 않으며 모든 것이 돈으로 치환되는 비극을 맛보게 된다. 인간관계의 모든 것들을 돈으로 환원하고 선과 악의 구분도 돈으로 들이대는 비인간적 길을 걷게 마련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에 허덕이고 시달렸지만 그가 처한 현실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생생한 소설을 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당시의 현실을 실체적으로 접근하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을 것이다.

거꾸로 이야기하면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돈이 전부가 아니었던 셈이다. 돈이 자신을 괴롭히고 벗어날 수 없는 나락을 만들었지만 그로 인해 그는 현실을 보았고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 러시아 대문호...나아가 세기의 뛰어난 작가가 된 셈이다. 자아실현을 맘껏 펼쳤던 것이다.

따라서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는 <도스토예프스키, 돈 때문에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다>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돈의 노예가 된 것이 아니라 돈으로 이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이 생긴 것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재미와 감동으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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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