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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26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바다에는 악어가 살지>

열살 짜리 아프가니스탄 한 소년의 목숨을 건 탈출기

파비오 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에나이아트: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무슨 일'과 '아주 많은 일'이란 질문과 답변 속에 한권의 책 내용이 함축돼 있다.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는 아프가니스탄의 열 살짜리 꼬마 '에나이아트'의 탈출기를 다룬 실화 보고서이다. 


어느 날, 에나이아트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파키스탄의 사마바트(공동 숙박시설)로 향한다. 그곳에서 사흘을 머문 마지막 날 밤. 엄마는 아들을 가만히 끌어안고 이렇게 속삭인다.


"세상은 험하고 힘들지만 이것만은 꼭 지켜야 한다. 첫째, 남을 속이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면 안 된다. 둘째, 무기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마약은 절대 안 된단다. 약속할 수 있겠니?"  엄마의 주문은 '십계명'처럼 소년의 머릿속에 기억된다. 에나이아트는 "앞으로 이 세 가지는 절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작은 가슴에 맹세한다. 그렇게 엄마의 품속에서 잠이 든다. 밤은 깊어가고 졸린 눈을 견디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깨어난 아침. 손을 뻗어 엄마를 찾아보지만 엄마를 만질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에나이아트는 홀로 남겨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엄마가 자신을 파키스탄까지 데리고 온 이유도 금방 찾는다.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자신을 피난시켰다는 것'을. 에나이아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탈레반이 선생님을 운동장으로 끌어냈어요. 사람들은 빙 둘러 서 있었죠. 선생님은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를 했어요. 탈레반은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선생님을 향해 총을 쐈어요. 트럭을 몰던 아버지가 사고로 사망하자 아버지에게 일을 시켰던 사람들은 트럭 값 대신 저와 동생을 데려가려 했어요."


환한 대낮에 총으로 선생님을 죽이고, 자신과 동생이 낯선 사람들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는 현실. 아프가니스탄에서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아들을 살리고자 엄마는 탈출시킨 것이다.


이때부터 에나이아트의 탈출기가 시작된다. 파키스탄에서 이란을 거쳐 터키로, 그리스를 경유해 마지막 이탈리아에 이르는 7년 동안의 탈출기가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의 내용이다. 파키스탄에서는 허드렛일로, 이란에서는 건설현장의 막노동 일꾼으로 닥치는 대로 일을 한다. 열 살짜리 꼬마가. 


열 살짜리 아이는 '생존을 위해' 어른이 돼 버렸다. 열 살이면 우리나라로 치자면 초등학교 3학년 정도. 홀로 남겨진 에나이아트는 열 살에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 혼자서 일을 해야 하고, 먹고 살아야 하고, 이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야 했다.


이란에서 터키로 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죽음의 탈출'. 많은 사람들과 함께 산을 넘어 터키로 가는 과정! 고작 사흘만 걸으면 된다는 브로커의 말에 힘을 얻지만, 십여 일을 넘기고, 이십여 일을 넘어서고. 매서운 바람과 굶주림은 견디기 힘들다. 칼바람을 맞으며. 삼일이 지났을 때, 십일이 지났을 때마다 묻는다.


에나이아트: "아직 멀었어요?"
브로커: "거의 다 왔다."


사흘의 여정은 27일을 걷고 또 걷고서야 터키에 도착한다. 그들이 걸어온 길 위에는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 수많은 시체가 남겨졌다. 터키에서는 파키스탄과 이란에서와 달리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없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그리스로 갈 것을 결심한다.


터키의 브로커가 그들에게 준 것은 낡은 고무보트와 구명조끼 뿐. 에나이아트를 포함한 다섯 명의 아이들은 낡은 고무보트를 타고 그리스로 향한다. 바다에 보트를 띄우기 전에 들소들의 공격으로 구명조끼는 갈기갈기 찢어져 쓸모가 없게 된다.


낡은 고무보트가 바다를 향해 갈 때 아이들은 "바다에서 악어가 나타나 우리를 집어삼킬지 몰라"라는 두려움에 떤다. 실제로 그들이 그리스 해변에 구사일생으로 도착했을 때 한 아이는 바다로 사라졌고 '악어'가 물어뜯은 것처럼 옷은 온통 찢겨져 팬티만 달랑 남아 있다.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그리스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배를 타는 과정에서 에나이아트는 한 할머니와 청년의 도움을 받는다. 몰래 숨어든 그리스의 한 주택에서 옷을 훔치다 할머니에게 발각되지만 할머니는 에나이아트를 집으로 데려가 따뜻한 음식과 옷을 준다. 에나이아트가 떠날 때는 '50 유로'의 돈을 건네기도 했다.


"세상에는 그렇게 따뜻한 사람도 있었어요."


마침내 이탈리아에 도착한 에나이아트.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정착하게 되고, 세상에는 '악어'만 있는 게 아니라 따뜻한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경험한다. 토리노에 도착한 에나이아트는 어머니와 연락을 시도하고, 우여곡절 끝에 엄마와 통화에 성공한다.


"엄마!"
"......"


전화 속에서 엄마는 말이 없다. 무사히 안전한 곳에 도착한 아들의 목소리에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탈출에 성공한 에나이아트…이젠 엄마와 자신의 가족이 탈출할 때라는 것을 깨닫는다.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는 아프가니스탄 하자라족(에나이아트 출신족), 이슬람권의 시아파와 수니파의 종교 전쟁, 에나이아트가 거쳤던 여러 나라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국경의 부조리와 아동노동 착취 등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묻어 있다.


또 한 가지, 이번 책의 번역자 이현경 씨의 수고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책을 읽어 나가는 속도감과 긴장감을 더해 주는 것은 오롯이 번역자의 역할이었다. 열 살 소년의 탈출기를 그의 눈과 마음으로 전달해 준다.

저자| 파비오 제다
옮긴이|  이현경
출판사|  마시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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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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