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스포츠에 ‘헝그리(hungry) 정신’은 여전하다.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컬링 국가대표팀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마땅한 연습장도 없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태릉선수촌에 입주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국제 대회에 나가면 ‘좋은 성적’을 내라고 다그치는 형국이니 우리나라 스포츠 현주소를 알 만 하다.

 

이젠 “라면 먹으면서 금메달만 꿈꿨어요” “눈물 젖은 빵 먹으면서 정상에 서는 그날만 손꼽았어요”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모든 스포츠는 과학을 기본으로 한다. 이런 마당에 ‘윽박지르고’ ‘헝그리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스포츠 정신만 내세우다 보니 우리나라 스포츠의 발전은 더디기만 하다.

 

컬링은 4명의 선수가 해크(Hack)에서 스톤을 미끄러트려 호그라인(Hog Line)을 지나 하우스(House)에 안착시키는 게임을 말한다. 양팀이 빨간색과 노란색 공을 순차적으로 던져 하우스의 중심점에 어느 공이 더 가까우냐에 따라 점수를 딴다.

 

◆컬링은 과학이다=컬링은 100% 과학적인 스포츠이다. 외국은 이미 컬링을 과학스포츠라 정의하고 데이터를 통한 각종 논문이 수도 없이 발표됐다. 그러나 국내는 아직 컬링에 관련해 논문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컬링을 다룬 외국의 논문 제목만 보더라도 ‘컬링의 물리학’ ‘컬링의 스포츠과학’ ‘페블(Pebble)에서의 컬링스톤의 메커니즘’ ‘컬링스톤의 역동성’ 등 다양하고 전문적인 논문이 많다.

 

이중 ‘컬링의 스포츠과학(The sports science of curling)’이란 논문을 쓴 아일랜드 코크대학의 존 브래들리(John Bradley) 교수는 “컬링은 과학의 집대성”이라고 단언했다. 브래들리 교수는 “컬링은 스톤이 미끄러지는 앞에서 얼음을 쓸어냄으로써 얼음과 스톤의 마찰력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를 통해 스톤을 더 멀리 나가게 할 수도, 회전을 시킬 수도, 똑바로 나가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얼음 알갱이(pebble)의 과학=컬링의 가장 이색적인 장면은 스킵(스톤을 미끄러지게 하는 선수)이 해크에서 스톤을 놓았을 때 두 명의 스위퍼(브룸이란 솔로 얼음바닥을 닦는 선수)가 빠르게 바닥을 쓸거나 혹은 천천히 닦는 모습이다. 그런데 스킵보다는 스위퍼의 역할이 컬링에서 가장 중요하다. 양재봉 서울컬링경기연맹 전무이사는 “컬링은 경기 시작 전에 물을 뿌려 페블이라는 얼음 알갱이를 만든다”며 “얼음 바닥을 미끄러져 가는 스톤은 수 만개의 얼음 알갱이 위를 지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톤과 페블 사이의 마찰력을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컬링의 핵심 포인트라는 것이다.

 

선수들이 쉴 새 없이 ‘브룸(broom, 닦는 솔)’으로 바닥을 닦으면 페블에 수막이 형성돼 스톤은 잘 미끄러지게 된다. 이는 스톤의 휘어지는 정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스톤의 속도가 빠를수록 곧바로 나아가고 스톤의 속도가 느리면 휘는 정도가 강하다. 스킵이 스톤을 놓는 순간 스위퍼들은 적당한 시간에 브룸의 압력과 횟수를 정해 스톤이 목적했던 곳에 이르도록 열심히 ‘빗질’을 하는 셈이다. 스위퍼가 브룸의 압력과 횟수를 어떻게 정하느냐 따라 스톤의 움직임은 곧았다가 휘어졌다가 속도를 높였다가 줄었다를 반복하게 된다. 한마디로 컬링은 미끄러지는 스톤과 페블 사이의 마찰력을 어떻게 과학적으로 적용시키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얼음과 공기 경계면의 예술=이상철 한국체육과학연구원 박사는 “컬링은 얼음과 공기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이 박사는 현재 컬링에서 브룸의 속도와 압력의 차이에 따라 어떤 변화가 있는지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지난해부터 자동으로 스위핑하는 기계를 만들어 빗질의 속도와 압력의 정도에 따라 마찰계수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올해는 자동으로 스톤을 던지는 장치를 만들어 연구에 나선다.

 

이 박사는 “자동으로 속도조절을 하는 스톤을 던지는 기계와 스위핑 자동장치를 통해 다양한 데이터를 모을 수 있을 것”이라며 “빙상 종목을 얼음위에서만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빙상에서 이뤄지는 모든 스포츠는 얼음과 공기의 경계지점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 지를 판단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컬링의 경우 특히 경지를 할 당시의 얼음 온도와 경기장 온도가 상당히 중요하다. 얼음과 경기장의 온도가 수시로 변하면서 마찰계수에 변화가 생기기 때문이다.

 

◆"뭘 마이 멕여야지“=영화 ‘월컴 투 동막골’을 보면 세상의 이치를 가장 상식적으로 말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인민군 리수화(정재영 분)가 동막골 원주민들과 감자를 캐다 말고 쉬는 시간에 뒷짐을 지고 있는 마을 촌장에게 ”리민(인민)들을 평안하게 다스리는 비결이 뭐냐“고 묻자 마을 촌장은 잠깐 생각을 하더니 ”뭘 마이 멕여야지“라고 짧게 말한다.

우리나라 컬링 대표팀은 태릉선수촌에 입주도 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식사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3승6패를 기록했다. 과학이 만든 게 아니라 ‘근성’이 그녀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세계랭킹 10위의 최하위에 머물러 있는 우리팀이 일본, 미국, 러시아를 차례로 격파했다. 대한민국 컬링 대표선수들 수고 많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근성’ 하나로 선전했으니 그녀들의 노력에 우리가 답할 차례이다. 컬링의 과학을 뒷받침할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일본만 하더라도 30억 규모의 컬링 전용경기장이 4개나 된다. 작은 규모의 컬링장까지 합치면 일본 전역에 40군데가 넘는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태릉선수촌과 경북 의성 2군데 밖에 없다. 그것도 경기 일정 등 다른 환경이 겹치면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양재봉 이사는 “30억 정도면 웬만한 컬링 전용경기장을 만들 수 있다”며 “전국 광역시·도에 하나씩은 있어야 기본적으로 선수들이 연습하고 대중화할 수 있디”고 말했다.

 

소치동계올림픽이 끝나고 4년 뒤, 평창동계올림픽이 시작된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기에 앞서 정부는 컬링에 대해 과학적 접근을 서둘러야 한다. 대한민국 여자대표팀의 컬링 경기를 지켜보면서 선수들이 내지르는 함성이 경기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싶었다. 날카롭고 짧은 그 외침에는 그동안의 어려움과 힘겨움도 함께 묻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톤이 놓이고 하우스로 향하는 순간 쓸고 닦으면서 얼음 위에 ‘얼음 알갱이(pebble)’만 생겼을까. 그녀들의 눈물 알갱이 또한 빙판 위에 놓이지 않았을까. 컬링은 과학을 기초로 다져진다. 정부가 그녀들의 눈물방울을 닦아 줄 때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