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년 세 남자…사도세자·정조 그리고 정약용
<사도세자의 고백>과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임오년 1762년. 249년 전 그날 어떤 남자들의 운명이 있었던 것일까.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태어난다. 죽은 사람은 사도세자였으며 태어난 사람은 삼미자(三眉子) 정약용이었다. 임오년의 죽음과 탄생은 모두 비극을 예고하고 있었다.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이때 태어난 정약용도 그 우연의 비극 때문이었을까?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다.

한 인간의 탄생은 우연과 필연이 반복되는 삶을 살아간다. 역사를 보더라도 혹은 지금의 사회를 보더라도 개인의 능력만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 능력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우연이라는 요소가 필요하다.

이런 인간의 세상사를 이미 많은 역사적 인물들이 직접 체험했기 때문일까. “살아가는데 있어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정말이지, 사람을 잘 만나야 자신의 능력도 발휘하고 꿈도 실현할 수 있다.

사도세자는 사람을 잘못 만나게 되는 비운의 왕자였다. 물론 그의 책임이 아니다. 그가 태어났던 환경 자체가 그렇게 만들었다. 리더에게 중요한 덕목으로 세 가지가 있다. 집안 살림능력과 조직 장악능력, 그리고 역사인식.

이 세 가지를 골고루 갖췄을 때 한 리더는 진정한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다. 사도세자의 역사인식은 리더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권력 장악에서 그는 밀리고 만다. 당시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인간들이 문제였다.

숙종이 승하하고 경종이 왕위를 물려받는다. 이때 이복 동생 연잉군(영조)은 죽음의 두려움에 휩싸인다. 가뜩이나 무수리의 아들이란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던 연잉군은 곧 자신에게 죽음이 닥쳐올 것이라고 스스로 자책한다. 조선시대 왕위를 물려받은 왕자는 권력자가 되고, 그렇지 못한 왕자는 권력의 견제를 받으며 끝내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연잉군에게 구세주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노론세력이었다. 경종은 임금에 오르면서 노론의 집중 견제를 받는 운명이었다. 경종의 어머니인 희빈 장씨는 남인계열이었다. 노론에게 조선시대의 당파는 노론밖에 없었으며 다른 당파는 철저한 제거 대상이었다. 연잉군의 어머니 최씨는 노론 편이었다. 노론의 선택은 현재의 왕을 인정하지 않고 연잉군에게 물려주는 것만이 생존권을 보장받는 일이었다.

노론은 경종에게 후사가 없음을 계속 지적하면서 왕세제로 연잉군을 봉하라고 강요하다시피 한다. 노론의 전술과 전략에 따라 모든 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연잉군은 왕세제로 임명되고 얼마 뒤 경종은 병으로 승하한다. 독살설이 제기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그렇게 왕위에 오른 연잉군, 영조는 노론의 왕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죽음에서 구해주고 왕에 등극하게 한 세력은 노론이었으며 따라서 영조는 당파를 떠나 인재를 골고루 발탁하겠다는 ‘탕평책’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론의 왕’이란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사도세자의 고백>은 사도세자의 주변을 둘러싼 여러 가지 사건들에 대해 사료를 통해 짚어보고 있다. 아버지 영조, 노론, 사도세자의 아내였던 혜경궁 홍씨…이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역사적 자료를 통해 살펴보는 책이다.

과연 사도세자는 광폭한 행동과 이해할 수 없는 정신병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을까. 아니면 그 시대, 여러 가지 사건들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 버렸을까. 아버지인 영조와 노론 세력의 철저한 전략과 전술에 따라 노론과 맞서고자 한 사도세자의 운명은 이미 결정돼 있었던 것은 아닐까.

조선시대의 권력자는 어떤 절차를 통해 정해졌을까.

조선시대 최고 권력자인 임금이 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왕과 신하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왕이 직접 후계자를 지목하는 경우(이것은 당연히 세습이다)와 신하가 임금을 선택하는, 택군의 경우가 있었다.

조선 전기에는 왕권이 강력했기 때문에 왕이 세자를 선택(대부분 장자승계 원칙)했지만 후기 조선사회로 넘어오면서 신권이 강력해 지면서 신하가 왕을 선택하는 택군의 시대로 접어든다. 영조도 자신 스스로 왕이 된 것이 아니라 노론 세력이 그를 왕으로 선택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따라서 당시 노론 세력에 맞선 사도세자가 영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될 확률은 낮았다. 아니 불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제거대상 1호였다.

사도세자는 그렇게 노론 세력에 저항하다 노론 세력에 의해 제거되는 비운을 맞았다. 그것이 임오년, 1762년이었다.

정조와 정약용의 만남 또한 우연이었다. 정약용은 성균관에서 여러 해 동안 공부하면서 반제(泮製. 정기적으로 보는 성균관 시험)에 매번 수석을 차지했다. 반제에 1등을 하게 되면 왕을 직접 접견한다. 여러 번 정조를 만났다. 그러나 유독 과거와는 인연이 없었다. 예컨대 학교 시험은 매번 1등을 하지만 학력고사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였다.

그렇게 정조를 몇 번 만나던 어느 날, 정조가 정약용에게 애처롭게 묻는다.

“몇 년 생인고?”

정조의 이 물음은 나이가 이제 제법 되었을 텐데 아직도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고 있느냐는 질책성 의미도 섞여 있었다.

그것을 모르니 없는 정약용은 맥없이 대답한다.

“임오년생이옵니다.”

정약용의 대답에 정조와 정약용 둘 다 순간 얼어붙고 말았다. 자신이 말을 해놓고도 정약용은 ‘아차’ 싶었다. 정약용도 ‘임오년’이 어떤 해였는지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약용이 그러할 진대 정조는 오죽했을까. 정조와 정약용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임오년! 정조에게 임오년은 잊을 수 없는 해였다.

정조는 정약용의 ‘임오년’이란 대답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렇게 정조와 정약용의 필연과 우연은 ‘임오년’을 계기로 서로의 기억 속에 각인된다. 이후 정약용은 정조의 총애 아래 차근차근 학문의 길을 걷게 된다.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은 정조와 정약용의 만남에서부터 그의 주변 인물들에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약용의 비극은 아마도 천주교와 맥을 같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승훈과 이벽 등 정약용의 주변에는 천주교와 큰 인연이 있다. 그 중에는 황사영도 있다.

18년 동안 유배의 길에 오른 것도 천주교가 시작이었다. 당시 천주교는 서학이란 이름으로 철저한 배격 대상이었다. 노론 세력에게 천주교는 그 이념이 싫었던 것이 아니라 천주교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싫었다. 따라서 천주교가 어떤 학문이든 그것은 탄압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했다.

정약용은 앞서 언급했듯이 ‘임오년’의 인연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게 되고, 물론 그의 능력이 뒤따랐기 때문, 정조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한다. 한 때 잠깐 귀양(정조의 의도적인 견책)을 가던 중 온양을 통과한다.

정약용은 사도세자가 요양을 위해 온양온천에 행궁을 한 적이 있음을 기억하고 당시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촌부에게 묻는다. 당시 사도세자 행차를 직접 목격한 촌부의 일화는 사도세자의 인간성을 엿보기에 충분했다. 촌부의 말을 옮겨보자.

“저하(사도세자)의 행렬이 이곳에 이르고 잠시 쉬는 사이 군마들이 수박밭을 짓밟으면서 수박밭이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그때 저하께서는 수박밭의 주인들을 모두 불러 보상금을 일일이 지급하고 깨진 수박은 거둬 목마른 병사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정약용은 그 말을 듣고 이보다 더 현명한 군주는 없었을 것이라고 감동을 받는다. “피해를 본 주인들에게는 돈으로 보상하고, 또 목마른 병사들에게 수박을 나눠줌으로써 갈증을 해소하고, 아무도 피해를 보지 않고 모두 행복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한 사도세자의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판단한다.

그런 현명한, 현명했을 사도세자는 지금 가고 없는 상황, 정약용의 가슴으로 허허로운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임오년의 세 남자.

사도세자와 정조 그리고 정약용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정조가 마침내 왕위에 올랐을 때, 그는 한마디로 자신의 정체성을 대내외에 공표한다.

“아!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이 보다 저 명확한 자기 정체성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명확히 한 셈이다. 노론의 공포심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자신들이 죽인 사도세자, 이제 그의 아들이 권력자가 되었고, 취임하는 날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공포하는 정조! 노론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다.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천명한 정조는 사도세자의 복위에 온 힘을 바친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사도세자의 묘를 경기도 화성으로 옮기는 일을 꼽았다. 책임자로 정조는 정약용을 임명했다. 임오년의 세 남자가 다시 뭉칠 수밖에 없었다.

정약용은 화성신도시를 만들면서 기중기 등 첨단 기계를 만들어 백성들이 쉽게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중에 가장 돋보이는 것은 한강 배다리이다. 수십 척의 배를 서로 묶어 한강을 건널 수 있는 위대한 작업! 수원 화성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든 배다리!

이 배다리야 말로 임오년 세 남자의 걸작품이 아닐 수 없다.

한을 품고 죽을 수밖에 없었던 남자, 사도세자!

아비 사도세자의 죽음을 바로 앞에서 목격하면서도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못했던 남자, 정조!

사도세자와 정조의 비극을 온 몸으로 체득했던 남자, 정약용!

임오년 세 남자를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이 바로 한강 ‘배다리’였다. 그 배다리는 사도세자와 정조, 정약용을 맺어주는 상징이자 실체였다.

배다리를 만들며 정약용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약용이 만든 배다리를 건너는 정조의 감격은 어떠했을까.

마침내 경기도 화성으로 안식의 터를 잡은 사도세자의 넋은 위로를 받았을까.

<사도세자의 고백>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를 쓴 이덕일 교수의 책을 개인적으로 참 많이 읽었다. <송시열과 그의 나라>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조선선비 살해사건> <성공한 개혁 실패한 개혁> <사화로 보는 조선역사> 등은 읽는 재미와 함께 또 다른 역사적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였다.

이덕일 교수의 책은 읽기에 참 편하다. 아마도 그것은 역사적 자료의 충분한 근거와 다양한 시각을 담은 노력 탓이지 않을까 싶다. 문체도 일반 역사서와는 차별 점을 두고 있다.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수필을 읽는 듯 쉽게 읽을 수 있는 것이 ‘이덕일 역사서’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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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17세는 어떤 나이일까.

17세를 지나쳐 온 사람들에겐 어떤 나이였을까.

이근미의 <17세>는 나이에 주목한다. 17세에 집을 나가버린(가출) 딸에게 엄마가 당신의 17세때 경험을 들려준다. 17세를 지금 살고 있는 딸에게 17세때 '나는 이렇게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다.

'가출했던 엄마(무경)'가 '가출한 딸(다혜)'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엄마의 17세는 1970년대 중반때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야 할 나이. 이른바 '우수반'에 늘 포함됐던 '17세의 엄마'는 자존심이 강했다. 명문여고에 진학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그러나 여의치 않다.

1970년은 아들에게는 공부, 딸에게는 희생을 강요했던 시절 아니던가. 중학교만 졸업하면 공장으로, 도시로 돈 벌이에 나서야했던 여자들의 시대였다. 한번도 빠지지 않고 '우수반'에 항상 포진했다 하더라도 명문여고에 진학하기란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때, '17세의 엄마'는 가출을 한다. 무작정 길을 나섰고 낯선 도시에서 홀로 계단에 아픈 다리를 부리며 멀뚱멀뚱 세상을 쳐다본다. 지금 자신의 딸이 가출한 17세 나이에.

'17세의 엄마'는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 취직한다. 필기시험 1등으로 들어간 공장에서 '17세의 엄마'는 사회인으로서 나선다. 학생이어야 할 '17세의 엄마'가 갑자기 사회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17세의 엄마'는 가출한 '17세의 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e메일로 보낸다. 공장에서 있었던 일이며, 당시에 느꼈던 감정...슬픔, 사랑, 고독 등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 다행히 딸은 '17세의 엄마'가 보내오는 e메일을 읽어보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17세는 통과의례의 한 과정이다.

사람은 태어나게 되면 모두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통과의례'를 겪게 된다. 백일을 맞고, 돌을 지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고...그때마다 주변의 사람들은 축복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통과의례이다. 누구든 형식과 절차만 다를 뿐 이런 통과의례는 거치기 마련이다.

<17세>에서 등장하는 책이 두권 있다.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과 바크의 <갈매기의 꿈>이다. 1970년 '17세의 엄마'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사랑에 대한 갈망...더 높이 날아 더 멀리 보고 싶은 욕망...그러나 현실 앞에서 무너지고, 쓰러지고, 짓밟히는 나약한 존재.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강이 있다고 하자. 이쪽에 선 당신은 저쪽으로 건너가야 한다. 방법은 많이 있다. 배를 타고 가든지, 헤엄쳐 가든지, 며칠이 걸려 에둘러 가든지...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는 순간, 당신의 상황은 달라진다. 시간이 흘러가는 이상, 우리의 통과의례는 멈출 수가 없다. 아니 멈춰지지 않는다. 어떻게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갈 때 잘 넘어가느냐가 관건이다.

우리는 수없이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 서 있는 자신을 혹은 타인을 보게 된다. 무사히 힘들이지 않고 건너는 사람, 헤엄쳐 건너다 급류에 휩쓸리는 사람, 심지어 건너지 못하고 중간에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에둘러 건너다 끝내 시간을 놓쳐 버리는 사람...

17세의 나이는 꿈 많은 시기이다. 그 꿈을 꾸게 하고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17세를 건너온' 사람들의 몫이지 않을까. 17세의 강을 건너왔기에, 이제 건너고자 하는 이들에게 조력자가 돼야 한다.

2011년의 17세에게 '17세를 건너온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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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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