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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11.14 명분과 실리의 끝없는 갈등…이정명 <뿌리깊은 나무>

조선은 '명분 사회'였다. 불행하게도 명분은 백성으로부터 오지 않았다. 중화사상의 성리학에서 찾았다. 성리학에 근거하지 않는 그 어떤 명분도 설 자리가 없었다. 아무리 백성을 위한다는 조건이 붙더라도 성리학에 위배된다면 명분이 아니었다.

이정명의 <뿌리깊은 나무>는 조선시대 '명분'과 '실리'의 입체적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소설이다.

실리↔명분의 갈등

<뿌리깊은 나무>의 주제를 흐르는 한 대목을 먼저 짚어보자.

장원서의 김정겸은 집현전 학사이다. 그의 업무는 온실을 돌보는 일이다.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겸사복 채윤이 이곳에 까지 이른다. 김정겸과 채윤이 나누는 대화 속에 소설의 주제가 흐른다.

김정겸이 채윤에게 말한다. <동절양채>(겨울에 채소 키우기)라는 책이 출간됐지만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비서고(금지 서적을 보관하는 곳)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설명하고 있다. 

<img src="../image_joy/201111/1321236884438_1.jpg" align="left" vspace=3 hspace=10>"조선의 백성 열 중 아홉이 농사를 짓고 있다. 한 방울의 땀이라도 아껴주고 한 톨의 소출이라고 늘려 주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김정겸은 <동절양채>가 백성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한 사대부의 생각은 달랐다. 온실에서 키운 영산홍을 대제학 최만리에게 갖다 준 적이 있는데 최만리의 반응은 이렇다.

"동월개화출어인위자(冬月開花出於人爲子)."

이를 해석하면 "천지의 기운을 받는 초목의 꽃과 열매는 그 시기가 있는데 제때에 피지 않은 꽃은 인위적인 것으로서 좋은 일이 아니다."라는 것.

집현전↔성리학의 갈등

태조, 정종, 태종에 이르는 조선 초기는 극도의 혼란한 시기였다. 죽고 죽이는 권력의 쟁탈전이었다. 태종 시대가 가고 세종이 들어섰을 때 조선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간다. 세종은 새로운 세상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집현전을 설립한다.

집현전은 어떤 곳이었을까.

비서고에서 일을 하고 있는 윤후명이 채윤에게 되뇌이는 말 속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성균관 장서고에서 가장 많은 책을 빌린 사람이 충녕대군이셨다. 유가의 경전뿐만 아니라 산술과 천문, 그리고 풍수지리와 악서, 수학과 의학 등 두루두루 읽으셨다."

세종은 성리학 만으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한계가 있음을 스스로 알았다. 그래서 성균관이 아닌 집현전을 통해 유학 뿐만 아니라 각 영역의 다양한 장르의 영역을 아우르는 책을 스스로 읽었고 이를 실천할 집행기구가 필요했다. 집현전은 새로운 시대, 개혁의 최전선에 위치했다.

집현전의 성격이 이렇다 보니 출신 배경 또한 다양했다. 대호군 장영실이 종3품에 임명되는 것은 세종의 철학에서 보면 당연했다. 그러나 성리학을 기본으로 하는 기존 권력자들에게는 인정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뿌리깊은 나무>는 집현전을 중심으로 하는 '실리추구의 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성리학 기본의 '기득권 새력'의 갈등이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민중↔권력의 갈등

소설은 궁궐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살해 대상은 모두 집현전 학사였다. 살해된 학사들은 자세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모종의 비밀스런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집현전 학사의 죽음을 수사하는 책임자가 한갓 겸사복 채윤이라는 사실은 의미가 크다. 민중의 입장에서 이들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겸사복 채윤은 수사관이라기 보다는 조선 초기 깨어있지 않은 민중으로 읽어야 한다.

그런 채윤이 수사를 하면서 스스로 깨우쳐 나가는 과정이 의미심장하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뿌리깊은 나무>의 주된 주제는 실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민중과 조선 초기 명분에 빠져있는 권력자의 갈등이 큰 흐름이다.

채윤이 수사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큰 실마리를 얻는 곳들도 민중들 속이었다. 검안을 하는 가리온과 같은 민중들이다. 가리온은 채윤에게 "맹랑한 친구야. 어둠은 밤에만 있는 것이 아니야."라는 선문답 등을 통해 깨달음을 준다.

또 집현전 학사 이순지를 통해서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정치적 지형과 그 불공형한 현실에 대해 학습한다. 이순지는 채윤에게 "아악은 중국 천자만의 것이며 악기 또한 천자의 허락이 없으면 얻을 수 없었다. 주상전하께서 그 점을 통찰하시고 예조에 악기도감을 설치했다."는 등의 전후 사정에 대해 설명해 준다.

물(水)로 죽은 장성수, 화(火)로 죽은 윤필, 금(金)으로 죽은 허담…조금씩 진실에 접근해 가는 채윤의 눈을 통해 조선 세종때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 갈등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뿌리깊은 나무>는 헤쳐나가고 있다.  

장르: 소설
저자: 이정명
출판사: 밀리언하우스
가격: 7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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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