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봄비를 맞는다. 봄비는 조용히 내린다. 예전에 있었던 구멍가게에도, 힘들게 엉금엉금 비탈길을 올랐던 그 길에도, 퉁탕퉁탕 온갖 소리가 들려오던 움막집이 있던 그곳에도 봄비는 내린다.

그러나 지금은 구멍가게도, 비탈길도, 움막집도 모두 사라졌다. 대신 대형 마트가, 잘 깔린 아스팔트길이, 아파트가 그곳에 들어서 있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줄을 길게 늘어서 차례를 기다리던 풍경은 이미 추억의 사진이 된 지 오래다.

그곳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는 휴대폰이 분주하고 전철이 쌩쌩 달리는 달라진 세상에서도 여전히 같은 옷매무새와 머리 모양을 하고 소리 친다.

“내 아들을 살려내라! 내 아들을 살려내라!”

여자의 목소리는 언제가 똑같다. 달라진 것은 주변의 풍경과 사람들이다.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최신의 휴대폰을 들고 전철 속으로 들어간다. 봄비를 맞으며. 그러나 여자는 달라진 세상과 호흡하지 못한다.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때가 되면 나타나 “내 아들을 살려내라.”고 소리친다.

그렇게 소리치다 지쳐 갈 때쯤엔 악에 받친 목소리를 내뱉는다.

“용서하지 않을 테다. 용서하지 않을 테다.”

아들을 죽인 이들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예전 그 모습 그대로의 여자! 여자도 봄비를 맞고 있다. 여자는 달라진 세상을 향해 소리친다. “용서하지 않을 테다.”라고. 세상은 대형 마트와 아파트가 들어서고 달라졌는데, 여자의 목소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그대로 지켜본다. 여자에게 다가가 “할머니 세상이 변했어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머니가 대신 해 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나는 달라진 세상의 한 일원이 돼 있다.

달라진 세상에 순종하면서, 자본주의의 맹렬한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나는 할머니의 그런 모습을 지켜만 볼 뿐, 그녀를 부축하거나 그녀와 손을 잡고 같이 “내 아들을 살려내라.”고 소리치지도 못하고, “용서하지 않을 테다.”라고 악을 쓰지도 못한다.

모든 것이 변한 그곳에서 오직 변하지 않은 것은 할머니의 모습과 그 소리만이다. 할머니의 아들은 살아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봄비를 맞으며 할머니의 모습에서 달라진 서러운 옛길을 느낄 뿐이다.

신경림의 <봄비를 맞으며>가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실렸다. 신경림 시인이야 말해 뭤하겠는가. <농무>라는 시로 잘 알려진 시인이지 않는가. 그 스스로 힘겨웠던 현대사를 살아왔던 시인 중의 한 명이다. 그의 <시인을 찾아서>라는 책을 무척이나 재밌고 감명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봄비는 오는데 정작 봄은 오지 않고, 죽어간 아들을 살려내라는 찢어지는 고통, 가슴 속에 피맺힌 절규가 쏟아져 나오는 지금의 대한민국! 과연 우리는 달라진 이곳에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 여자가 하는 소리는 늘 같다.
내 아들을 살려내라 내 아들을 살려내라.
움막집이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구멍가게들 대신 대형 마트가 들어섰는데도
그 여자는 옷매무새도 머리 모양도 같다.
공중전화 부스 앞에 줄을 서는 대신
모두들 제 휴대폰에 분주하고
힘들게 비탈길을 엉금엉금 기는 대신
전철로 땅속을 달리는데도,
장바닥을 누비는 걸음걸이도 목소리도 늘 같다
용서하지 않을 테다 결코 용서하지 않을 테다.

세상이 달라졌어요 할머니 세상이,
이렇게 하려던 내 말은 그러나 늘 목에서 걸린다.
어쩌면 지금 저 소리는 바로
내가 하고 있는 소리가 아닐까, 두려워서,
두려워서 속으로만 하고 있는 소리가 아닐까.
시적시적 내리는 봄비를 맞으면서
아무도 듣지 않는,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올해도 죽지 않고 또 온 그 여자의
각설이타령을 들으며 걷는
달라진 옛날의 그 길이 오늘따라 서럽다.(<봄비를 맞으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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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2011년 봄 <창작과비평>이 어제 도착했다. 소설을 좋아하다 보니 단편소설부터 읽는 습관은 꽤 오래됐다. 신문이 손에 들어오면 사회면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회면부터, 경제를 즐기는 이는 경제면부터 벗겨 제치듯이.

두 편의 단편을 출근길 버스에 올라타면서 읽기 시작했다. 짧은 두 개의 소설을 보면서 “올 겨울에 많은 존재들이 사라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와 돼지는 구제역에 신음하며 땅속으로 묻혔고 차디찬 17도의 영하 기온 속에서도 4대강은 자글자글 파헤쳐져 죽어가고 있다.

월남전에 참전해 “오렌지 온다(고엽제)”며 미군 비행기가 뿌려대던 안개를 맞았던 원덕 씨(백가흠의 <통>에 등장하는 인물)는 올 겨울을 버텨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4대강은 한 동네를 휩쓸었다. “글씨, 멀쩡한 강을 뭐 하러 파헤치구 저 야단인지 알다 모를 일여.”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 즈이 돈 내래는 것두 아니구 나라서 다 생각이 있어 허는 일에 왜 저런단 말이여.”라며 한 동네 인심을 둘로 갈라 놓았다. 이 과정에서 동네 인심이었던 정(情)은 사라져 버렸다.

올 겨울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이시백의 <잔설>…시퍼런 잔설은 언제 사라질까

이시백의 <잔설>은 오랫동안 씨족부락을 이뤄 오며 살아왔던 한 동네의 겨울 풍경을 담았다. 연평도 포격 사건, 4대강, 지리산에 숨어들었던 빨치산과 토벌대의 이야기도 나온다. 김영감은 50살이 접어든 아들 ‘진철’이 영 못마땅하다. 계속 나대는 아들이 언젠가는 부러질 것 같고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몰려든다.

이장 선거가 시작되면서 유기농 작목반을 이끌고 있는 진철과 자율방범대 ‘옥근’이가 호각을 보인다. ‘유기농’과 ‘자율방범대’라는 것은 상징을 나타낸다. 진보와 보수, 친환경과 개발 등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진철과 옥근은 이미 4대강을 두고 대판 싸운 적이 있다.

강에서 퍼낸 흙들을 논에다 객토를 하기 위해 옥근이 수십 대의 트럭을 끌고 동네로 들어오고 있을 때 진철은 결사적으로 막아선다. 진철은 “강바닥에 가라앉았던 썩은 흙들을 논에다 퍼 담는 바람에 재 너머 동네는 벼는 커녕 콩 한 졸가리 길러먹지 못하게 됐다.”고 소리친다. 진철과 옥근은 멱살잡이를 하고 만다.



김 영감은 아들 진철이 계속 입바른 소리를 하고 곧게만 뻗어가는 것이 영 마땅찮다. 김 영감은 “곧은 나무는 쉬 베어지고, 가지 넓게 벌린 나무는 눈바람에 부러지는 법이다. 그저 휘어질 때 휘고, 적당히 허리 펼 때 펴는 척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게 세상 이치였다.”고 되뇌인다. 아들 진철은 ‘곧은 나무’로 곧 베어질 것만 같은 위기감을 느낀다.


김 영감은 지금도 계에서건 동네에서건 단풍이며 사꾸라 구경을 간다 해도 지리산 자락이라면 얼씬도 않는다. 그 이유가 있다. 잔설이 내리고 긴 겨울 밤 눈을 감으면 문득 많은 얼굴들이 참혹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 중 ‘자반장수’도 그랬다. 자반장수는 몸집이 컸고 시골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자반’을 팔았다. 그런 ‘자반장수’가 빨치산 토벌대에 의해 “장사꾼으로 변장해 보급에 나선 산사람”으로 몰려 죽창에 찔려 죽는다. 자반장수는 죽음의 계곡으로 끌려가면서 김 영감에게 “나, 알잖유? 강경 장에서도 멫번 봤잖유.”라며 연신 고개를 돌려 말하지만 김 영감은 모른 척 해 버린다. 그때 왜 그랬는지, 왜 아는 이라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라고 김 영감은 되뇌인다.

모두 세상 탓이라고, 빨갱이 탓이라고 말들 하지만 김 영감은 아직도 그때 그 얼굴들이 떠올라 지리산과는 담을 쌓고 산다. 달빛이 내려앉은 산모롱이에는 아직 녹지 않은 ‘잔설’이 서슬처럼 시퍼렇게 웅크리고 있다. 이 ‘잔설’은 봄이 오면 과연 녹을 것인가. 글쎄, 김 영감의 가슴에 쌓인 ‘잔설’은 자신이 사라질 때까지 늘 서퍼렇게 웅크리고 있지나 않을까.

백가흠의 <통(痛)>…끝나지 않는, 끝나지 않을 영원한 ‘痛’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통(痛)’은 언제 사라질까. 죽음 이후에나 사라질 수밖에 없을까. 백가흠의 <통>은 사라질 때만이 견딜 수없는 통증에서 벗어난다는 ‘아픈 기억’이자 ‘비극적 기억’을 상기시킨다. 원덕은 ‘도심의 수은주가 영하 17도까지 내려가 온 세상이 바짝 얼어붙은” 그런 날에 죽음을 맞이한다.

어린 시절, 교사였던 아버지·어머니와 함께 앉았던 풋고추와 상추쌈에 된장찌개를 먹던 아름다웠던 추억은 전쟁이 일어나면서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고 그의 집 앞에는 ‘빨갱이 집’이란 팻말이 서 있다. 그렇게 세상은 흘러갔고 원덕은 월남전에 참전한다.

월남전에서 고엽제로 불리는 ‘오렌지 가스’를 맘껏 맞는다. 당시 ‘오렌지 가스’는 만병 통(痛)치약이었다. 모기를 쫓고...심지어 몸에 바르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그런 존재. 귀국한 이후 ‘오렌지 가스’를 가슴으로 맞았던 그는 온몸이 벌겋게 부풀어 오르고 수포가 생겨 심한 가려움증에 시달린다. 얼마나 가려우면 시멘트 바닥위에 홀라당 벗고 긁고 싶다고 했을까.

그의 비극은 ‘아버지의 월북’ ‘월남전 참전’ ‘두 아이들의 기형(두 아이는 세 살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죽었다)’ ‘아내의 가출’로 이어지는 연속극이었다. 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을 때 부대 상사로 있었던 김 중사가 찾아오고, 김 중사의 팔에 이끌려 알지도 못하는 시위현장에 원덕은 참가한다. 철저하게 이용당한다.

정부에서 나오는 지원금은 김 중사에게 고스란히 상납되고, 원덕은 하루하루 약에 의지해 버텨나갈 수밖에 없다. 일주일치 분량의 약을 한꺼번에 털어 넣은 뒤 원덕은 간만에 편안한 잠을 잔다. 아니, 그것은 잠이 아니었다. 환각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편안했다. 눈을 떴을 때 밀려드는 ‘통’과 부질없음은 그를 더 큰 나락으로 이끈다. 한 달 치 약을 한꺼번에 털어 넣고 그는 먼 고향을 다녀오고, 월남전의 현장을 본다. 그렇게 원덕은 수은주 17도의 차디찬 겨울에 ‘입은 벌리고 눈은 반쯤 감은 채’ 사라진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은, 기억되고 싶지도 않은 이 현실에서.

원덕을 발견한 사람은 김 중사였다. 김 중사는 퇴역 대령에게 원덕의 죽음을 알리지만 이제 관심이 없다. 원덕이 군복을 입고 자신의 온 몸에 난 상처를 훌러덩 벗어젖히고 군중들에게 보여줄 값어치가 사라진 것이다. 김 중사는 조용히 방문을 닫고 원덕의 죽음을 두고 떠나 버린다.

죽음 이후 원덕에게 ‘통’도 사라진다.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은 원덕은 어릴 적, 어머니와 교사였던 아버지…함께 했던 그 풋고추와 상추쌈, 된장찌개의 맛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렇게 원덕은 올 겨울 사라졌다.

이시백의 <잔설>과 백가흠의 <통>은 우리 주변의 이야기이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겠지만 우리 주변에는 ‘잔설’을 보고 고통스런 과거에 빠지고, 근현대사가 만들어버린 과거를 읽을 수밖에 없다.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해지는 현실이자 기억하고 싶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재이다.

◆이시백

seeback@paran.com

◆백가흠

gahui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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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