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2.07.13 북극성 빛의 날들을 기억한다
  2. 2012.06.27 바람부는 기차
  3. 2012.05.27 실종된 善과 惡
  4. 2012.05.14 지하철에서의 크리스마스카드
  5. 2012.05.10 누나의 무덤 (1)
  6. 2012.05.08 할머니의 더덕
  7. 2012.05.07 색의 추억
  8. 2011.06.23 할머니의 양쪽

 

800년 전 빛이 있으라
빛이 있었다
지금 달리는 기차 안에서
그 빛을 본다
지금 빛이 있으라
빛이 생겼다
800년 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빛을 볼 것이다
800년 전 북극성 빛을 본 사람은
지금 여기 없다
지난 날들의 기억을 남긴 채
지금 빛나는 빛을
우리는 볼 수 없다
현재의 날들을 새길 뿐
북극성 빛은 있으라
계속 만들어질 것이고
나는 북극성의 지난 날과 현재와 미래를
기억한다
빛이여
영원히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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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바람부는 기차

600 小說 2012.06.27 18:27

기차가 들어오는 플랫폼에 바람이 인다.

문이 열리고 바람이 탄다. 

떠나는 기차 뒤로 타지 못한 바람이 출렁인다.

바람은 늘 불고 지친 영혼의 쉼터가 플랫폼을 적신다.

이 기차는 영혼을 실은 바람을 태우고 또는 남겨두고 떠나는 도시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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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실종된 善과 惡

600 小說 2012.05.27 09:23

善이 외친다

“믿으십시오.”

惡이 외친다

“구원받습니다.”

善이 惡을 쓴다

“조용히 하십시오.”

惡이 善에게 말한다.

“시끄럽습니다.”

너는 나에게 이익에 되는 사람이다

너는 善이다

너는 나에게 손해가 되는 사람이다

너는 惡이다

善이 惡에게 속삭인다

너는 나에게 필요하다

너는 善이다

惡이 善에게 분노한다

너는 나에게 의미 없는 존재이다

너는 惡이다

지하철에서

善과 惡이 실종된 날

하늘엔 검은 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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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절뚝이며 그는 크리스마스카드를 건넸다. 일일이, 하나하나. 모든 사람에게 정성스럽게 내려놓았다. 지하철은 원을 그리며 계속 돌았다. 그의 등에 달팽이가 붙어 있다. 달팽이는 집을 등에 지고 끝없이 기어오른다. 문이 열리고, 사람과 사람이 타고 내리는 사이, 빈자리에, 덩그렇게, 남겨진 크리스마스카드. 지하철은 거꾸로 다시 돌았다. 그의 가슴에 연어가 헤엄친다. 연어는 집을 찾아 떠난다. 둥근 원을 그리는, 거꾸로 도는 지하철. 크리스마스카드를 되돌려 주는 사람들.

“행복하세요. 저도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달팽이와 연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어둠의 터널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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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누나의 무덤

600 小說 2012.05.10 08:17

어릴 적, 명절

도시로 나간 누나는

손에 선물 꾸러미 들고 고향집 찾았다

조무래기 시절, 1년에 한두 번

찾아오는 누나는

선물 전달자였다

사람은 도시로 가야 한다

그때,

누나의 손

보지 못했다

그때,

깊고 우울한 눈동자

보이지 않았다

사람은 도시로 나가야 한다

한강을 가로 지르는 지하철

깊고 우울한 눈동자

거칠어진 손

푸른 물결 위로 비친다

사람은 도시로 나갔다

깊은 늪 속에

빠져 있는 누나

누런 잔디 아래

숨을 멈춘 누나

도시로 간 나는

누나의 무덤을 기억한다

누나 옆자리

내 무덤 만들어진다

 

-삼성반도체 노동자 고(故) 이윤정씨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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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할머니의 더덕

600 小說 2012.05.08 19:31

앞만 보고 걸어가는 좀비

냄새를 좇아

두 손 뻗은 좀비를 떠올리면 안 된다

한 쪽 얼굴 썩어 문드러진 좀비만 생각해서도 안 된다

도시 좀비는 반듯하다.

말쑥한 향수 뿌렸다

이른 아침,

하얀 속살 냄새 풍겨오면

덜커덩 지하 깊은 관 열리면

시작되는 좀비 행진

앞서가는 좀비 뒤통수만 보며

하얀 냄새 솟아나는 곳으로

지하에서 지상으로

늦은 저녁,

지친 입김 쏟아내고

덜커덩 지하 깊은 관으로

시작되는 좀비 행진

흐느적거리는 좀비 따라

하얀 냄새 기어오르는

지상에서 지하로

냄새를 파는 노파,

노파는

지하에서 지상으로 연결되는

모서리에

푸른 삼베옷 펼쳐놓고

누런 더덕 일기 칼로 긁고 있다

일기 새길 때마다

하얀 살 돋아나고 향기 솟는다

깊은 관 속에서 나온 좀비들

향기를 찾지만

노파의 일기를 보지 못하고

지상으로

지하로

떼 지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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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색의 추억

600 小說 2012.05.07 16:31

색의 추억

 

분홍 옷을 입은 그녀에게서

진달래를 본다

고조곤히 앉아

불어오는 바람에

오른쪽, 왼쪽으로

가벼운 몸짓으로 흔들린다

 

노랑 옷으로 물들인 아이에게서

개나리를 키운다

싱그럽게 서서

바라보는 시선에

일어섰다, 앉았다

신나는 손짓을 보낸다

 

하얀 옷 백발의 노인에게서

목련이 움텄다

따스한 춘곤증에

쏟아지는 햇살로

감았다 떴다, 살짝 살짝

부드러운 고갯짓을 살랑인다

 

진달래는 계절에 피어나지 않았다

개나리는 봄에 피어나지 않았다

목련이 태어난 곳은 나무가 아니다

 

분홍은 노랑을 안았다

목련은 일찍 피었다

목련이 지고

분홍과 노랑이 저물면

초록이 물든다

 

그녀와 아이와 노인이

살아가는 곳은 봄이 아니다

꽃이 된 도시, 지하철에서

그들의 고향

색의 추억 속으로 달려간다

진달래와 개나리와 목련은

추억 속에서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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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할머니의 양쪽

600 小說 2011.06.23 10:20

비가 온다. 지하철역은 붐빈다. 비가 철철 새는 우산이 많다. 부딪히는 어깨는 또 얼마나 자준지. 5호선 공덕역에서 6호선 공덕역을 갈아타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야 한다. 방화역 쪽으로 5호선 맨 앞 칸에 타고 지하철이 멈추면 일단 뛴다. 경험상 5호선이 도착할 때쯤 6호선이 플랫폼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계단을 바삐 올라간다. 한 할머니가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다. 허리는 90도로 구부려졌고, 알록달록 몸빼 바지를 입었다. 머리카락은 하얗다. 양쪽 손에 큼지막한 하얀 봉지를 들었다. 하얀 봉지에 무엇이 들었는지 할머니는 계단 위로 끌어올리지도 못한다. 6호선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다는 신호가 울린다.

할머니 곁으로 다가간다. 할머니 곁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 앞서 가던 한 남자와 여자가 할머니의 양쪽 봉지를 들어준다. 60대로 보이는 남자와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할머니는 반복적으로 "아이쿠! 고맙구려!"라며 뒤를 따른다. 두 사람의 도움으로 할머니는 6호선 플랫폼에 안전하게 올랐다. 하얀 봉지 안에는 읽다 만 무가지가 수북했다. 빈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그제야 커다란 한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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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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