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마 알프나'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4.05 ‘겁나 먼’ 사막의 광장에 서다-정미경의 <아프리카의 별>

소설을 읽을 때는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생소한 단어와 지명,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을 먼저 알고 읽어야 하는 선원형(Sailor) 소설이 있고, 두 번째는 생소하지는 않지만 깊게 그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농부형(Farmer) 소설이다.

정미경의 <아프리카의 별>은 전자에 속한다. 전형적인 선원형 소설로, 소설 속에 나오는 지명과 그 의미하는 바를 미리 알아놓지 않고 읽으면 맛이 떨어진다. 소설이란 때론 이렇게 독자에게 공부를 시키는 경우도 있다.

<아프리카의 별>을 읽기 전에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낯선 단어와 의미하는 것을 나열해 본다.

자마 알프나: 죽은 자들의 광장

술탄: 이슬람교국의 군주

모스크: 이슬람교의 사원. 모스크는 특유의 둥근 지붕과 건물을 둘러싼 미나렛이라 불리는 첨탑이 특징.

미나렛: 첨탑

메디나: 사우디아라비아 서부 헤자즈 지방에 있는 이슬람교 제2의 성지. 미로처럼 연결돼 있는 도시. 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한 아프리카인들 특유의 장치.

카스바: 아랍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술탄이 있는 성 또는 건물

인샬라: '알라가 뜻하는 대로'

사하라: ‘아무 것도 없는’

메르주가: 사하라 사막의 끝에 위치. 이곳에는 아무 것도 없고 밤이 되면 쏟아지는 별빛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테너리: 가죽 염색장. 양가죽을 주로 염색하는 곳으로 냄새가 지독하다.

헤나: 식물성 헤나를 가루내 피부에 그리는 것. 문신과 비교된다. 일주일 정도 지속됨.

파티마: ‘페르시아에서 온 파티마’라고 하면 창녀의 대명사. 모하메트의 딸의 의미도 있으며 이 경우 성녀(聖女)로 불림.

그리고...

탕헤르: 아프리카 북서쪽 끝 지브롤터 해협에 면하여 있는 모로코의 항구 도시. 상업 물자의 집산지이고, 자본의 도피장으로 유명하며, 관광·피한지로도 알려져 있다.

링반데룽: 등산에서, 짙은 안개나 폭풍우를 만났을 때나 밤중에 방향 감각을 잃고 같은 지점을 맴도는 일.

이 정도의 낯선 낱말을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프리카의 별>이 어떤 소설인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뭔가 음울하고⋯ 뭔가 불안하고⋯ 왠지 외롭고⋯ 왠지 자신을 유기할 것 같고⋯심지어 방향감각을 잃고 계속 같은 곳을 맴도는 이미지로 다가온다. ‘아무 것도 없는’ ‘죽은 자들의 광장’ ‘냄새가 지독한 양가죽 염색’ ‘창녀’⋯.

왜 아프리카인가

소설은 승과 보라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보라는 승의 딸이다. 소설의 첫 머리는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과 모래, 미로로 얽혀 있는 메디나, 그곳에서 삶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큐멘터리처럼 펼쳐진다. 왜 그들이 아프리카로 올 수밖에 없었는지는 한참을 읽어야 나온다.

“배와 K와 아내는 사라졌다. 흔적 없이.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그 셋은 동시에, 같이 사라졌다.”

승은 아프리카에 생필품을 파는 사업에 투자했다. 모든 법인명의는 승의 이름으로. 그렇게 세 번째 배가 떠나고 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배 뿐만이 아니었다. 아내도, 친구였던 K도 함께 사라졌다. 아니,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해야 한다. 채권자들이 몰려들고 승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그렇게 승은 딸 보라의 손을 잡고 아프리카로 무작정 날아든다. K와 아내를 찾기 위해. 도착한 아프리카는 그들에게 다큐멘터리로 펼쳐진다. 아주 고통스러운 ‘삶의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될까.

“요란한 원색의 모자를 쓴 물장수들이 물통을 지고⋯열에 들뜬 사람들에게 달콤한 물을 파는 곳⋯생의 열기로 가득 찬 이 장소에 왜 그런 이름을 붙여주었을까? ‘자마 알프나’라고⋯.”

승이 아프리카에 도착해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K와 아내를 찾는 일. 그런데 먹고 살아야 한다. 이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은 ‘가이드’가 최고이다. 승은 곳곳에 관광객들의 가이드 노릇을 하면서 K와 아내의 사진을 보여 주며 “이들을 보게 되면 연락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속절없는 아프리카 생활은 시작되고 ‘어떤 한 물건’으로 현지인(무스타파, 로랑)과 승, 보라와 현지인(바바)의 관계가 형성된다. 승은 ‘어떤 그 물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게으른 장인이 마지못해 눈과 코를 새기고 맨 마지막에 귀찮아하며 귀를 하나 붙여놓은 듯한 기이한 얼굴. 아무리 봐도 즉각적인 미감은 없지만 설명할 수 없는 매혹을 품은 형상.”

승은 이 물건을 메디나에서 골동품 가게를 하는 단골주인 무스타파에게 맡겨둔다. ‘역사적 무게가 대단한 물건’이었다. 그런데 무스타파는 이 ‘역사적 무게가 대단한 물건’을 골동품 수집가인 로랑에게 되팔아 버리고, 로랑은 다시 이 ‘역사적 무게가 대단한 물건’을 과일을 파는 어린 아이인 바바에게 잠시 보관해 둔다. 바바는 무스타파의 아들이다.

‘아무 것도 없는’ 사하라 사막에서 ‘역사적 무게가 대단한 물건’이 승에서부터 시작해 무스타파, 로랑, 바바로 이어지는 미로를 형성한다. 이들은 이 미로 속에서 길을 찾아 나올 수 있을까.

보라의 사막은?

승은 가이드 일을 맡게 되면서 몇날 며칠이고 집을 비운다. 딸 보라가 혼자 집을 지킬 수밖에 없다. 승은 자신이 없는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말하고 집에 콕 박혀 있으라고 보라에게 이야기하지만 보라는 시장통에 나가 헤라를 칠해 주며 돈을 번다. 왜? 돈을 벌어야지만 다시 떡볶이와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 그 시장통에서 과일을 팔며 매일 아버지 무스타파에게 매를 맞는 바바를 만난다.

바바는 보라가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궁금해하지만 보라는 “나는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곳 아프리카에 왜 왔는지 바바가 보라에게 묻는다. 보라와 바바의 인생관을 보여주는 한 마디.

보라: “아빠 따라 온 거야. 아빠는 누군가를 찾으러 온 거고,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니야.”

바바: “왜 오고 싶지 않았는데?”

보라: “바보야. 저녁마다 모래를 한 삽씩 쓸어내야 하는 곳에 누가 오고 싶어 하겠어.”

바바: “모래를 왜 쓸어내는데? 어차피 또 쌓이는걸.”

열여섯, 풋풋한 사랑이 느껴진다. 매일매일 모래바람이 불어 창문을 비 오듯이 쓸어내리는 모래를 매일매일 쓸어내야 하는 보라, 그것을 두고 ‘어차피 또 쌓이는 걸 무엇하러 쓸어내?’라고 반문하는 바바⋯‘한국 소녀’와 ‘아프리카 소년’의 풋풋한 사랑의 시작이다.

소설 곳곳에서 아프리카 특유의 모습이 잘 묘사돼 있다.

관광객들과 함께 승은 메르주가에 도착한다. 메르주가는 어떤 곳일까. 승은 이 장면은 두고 이렇게 묘사한다.

“승이 무서워하는 밤이다. 메르주가에 오면 사람들은 별빛 아래서 약간은 이상해진다. 완전히 어두워지면 이곳은 별들의 우주이다. 살아서 꿈틀거리는 별들은 강한 인력으로 사람을 허공으로 둥실 들어올린다. 가차없이 쏟아져내리는 별빛의 폭포 아래서 누구는 살짝 미치기도 하고 간혹 울기도 한다.”

‘아무 것도 없는’ 사막의 한 가운데, 끝없이 펼쳐지는 깊은 밤, 지평선도 보이지 않고, 텐트 몇 개만 덩그렇게 놓여있는, 하늘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그것을 보고 미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그것을 보고 울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하지 않을까.

며칠을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둔 보라, 매를 맞으며 과일을 팔고 쇠구슬 마술을 하며 돈을 벌어야 하는 바바, 젊은 ‘한국 소녀’와 ‘아프리카 소년’은 아프리카 곳곳을 쏘다닌다. 양가죽 염색장도 돌아다니고, 로랑의 집에까지 초대받고 그곳에 전시돼 있는 갖가지 골동품들을 구경한다.

‘역사적 무게가 대단한 물건’으로 벌어지는 일

‘역사적 무게가 대단한 물건’으로 인해 마침내 일은 벌어지고 만다. 그것을 무스타파로부터 구입한 로랑이 의문의 죽음으로 발견된 것. 정체불명의 사람이 보라를 찾아와 “아빠에게 그 물건을 가지고 오라고 해라. 그렇지 않으면 너가 사라질거야.”라고 협박하고⋯.

무스타파와 승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알지 못하는 세력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만 깨달을 뿐. 심지어 무스타파는 “친구, 메디나엔 비밀이 깃들일 구석이 없다네.”라며 승이 로랑을 죽인 것으로 의심까지 한다. 승은 이해되지 않는 사건들 속에서 자신이 지금 왜 여기 있는지 의심스럽다.

“승은 이제 주저앉을 것만 같다. 자신은 누군가를 좇는 사람이었지, 쫓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역사적 무게가 대단한 물건’을 들고 사라진 바바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에게 발각되고, 사막 한 가운데서 찬란한 빛에 자신의 목숨이 위태위태지는 상황에 처한다. 승과 무스타파, 보라는 바바를 찾아 나서지만, 흔적도 없다.

바바를 찾아 나서는 중간에 먼 곳에서 리조트를 하는 사람으로부터 승에게 연락이 온다.

“찾았어.”

마침내 K를 찾았다는 소식. 사막 한가운데에서 승은 차를 몰기 시작한다. 그러나 모래바람이 덮치고 차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지만 계속 같은 곳을 맴도는 ‘링반데룽’에 빠지고 만다. 그리고 앞에서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뭔가를 발견하지만 때는 늦었다. 승의 차와 그것은 굉장히 강하게 충돌한다. 무언가가 갈비뼈를 짓누르는 고통 속에서 승은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살아남기 위해 K를 찾아다녔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를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너무도 두려워지는 것 보니. 갑자기 눈을 감은 것처럼 아주 캄캄해지네.”

아프리카는 어떤 곳일까. 정미경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검은 황홀의 땅.

일정과 기후와 낯선 음식. 그 모두가 나의 육체적 한계를 요구하는 시간이었다. 막바지에는 말을 잃었다.

아름다움에 매혹된 자들. 우리 모두는 자신의 주관 속에서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는 자들이 아닌가.“

‘겁나 먼’ 아프리카 사막을 고통스럽게 우리는 왜 굳이 찾아가려고 할까. 스스로에게 던져 볼만한 질문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