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수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

60대 한 젊은이(?)가 아주 오래간만에 지하철을 탔다. 낯선 풍경에 놀랐다고 한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열심히 두드리거나,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는 풍경. 흘러가는 풍경에는 전혀 관심이 없더라는 것.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더라는 것. 그러면서 지하철에 앉아 있는 많은 사람들이 다리를 덜덜 떨고 있더라는 것. 불안한 모습이 느껴지더라는 것.

이런 낯설고 불안한 모습은 지하철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갈수록 빠르게 변했고 그 변화 속에서 ‘어중간한’ 40대는 갈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대한민국 40대의 일기를 훔쳐보는 것은 즐겁지만 않다. 이의수(남성사회문화연구소 소장)의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다>는 한국 40대의 일기를 보여준다.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을 그들! 그들은 지금 이 나라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대리 인생’ 대한민국 40대


간만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 옛 추억에 잠기지만 들려오는 소식은 우울한 이야기뿐이다. 동창회 명부를 들추면 두 가지 이야기뿐이다. 어떤 동창은 ‘행운을 타고 나’ 요즈음 잘 나간다는 소식, 그렇지 않으면 이미 삶의 끈을 놓고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나버린 동창들. 두 가지 이야기 모두 살아있는 40대인 ‘나에게’는 우울한 감정만 던져준다.


대한민국 40대는 ‘나’라는 정체성을 잃어가는 세대라고 이의수 저자는 말하고 있다. 가정에서는 아내와 아이의 보호자나 혹은 방관자로, 직장에서는 애매한 위치의 중간 관리자로, 사회에서는 누구에게도 각인 받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으로. 그래서 40대는 ‘가정과 직장과 사회’에서 ‘나’를 잃어버린 채 누군가의 ‘대리 인생’을 살고 있다는 감정에 휩싸여 있다고 강조한다.


‘나’를 잃어버린 채 ‘대리 인생’을 살고 있다 보니 정작 본인은 아플 수도 없다는 것. 아프게 되면 내가 대리하고 있는 모든 존재가 고통스러워진다는 의무감이 높기 때문. 그래서 40대는 일요일인데도 구두끈을 매고 일터로 나가고, 아이가 집에서 과외 하는 저녁이면 할 일 없이 직장에서 늦게까지 책상을 지킨다. 자신만을 위한 ‘쉼 여행’은 접어둔다.


‘나’라는 정체성 찾자


40대를 짓누르고 있는 대상으로 저자는 크게 세 가지에 주목한다.


첫째 직장과 일로 빚어지는 우울함이다. 빨라진 은퇴와 그에 비례해 길어진 수명, 그리고 정년을 보장받지 못하는 적자생존의 직장문화. 이 때문에 ‘어중간한’ 40대는 극도로 불안감에 젖어들고 있다는 것.


둘째 아내와 자녀 등 가족이다. 가족만을 생각하면서 달려왔지만 정작 가족들은 그런 40대 아버지에 대해 무관심하다. 돈을 벌어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들이지만 정작 ‘내’가 우울하고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가족은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셋째 돈이다. 10년 넘게 일해 조그마한 집을 마련했지만 ‘하우스 푸어’라는 타이틀만 허울 좋게 남아 있다. 대출받아 산 집은 ‘은행에 저당 잡힌 인생’을 말해주고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 자리에 맴돌고, 수명이 길어지는 시대에 미래는 암담하다.


저자는 우울한,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의 일기를 적어 가면서 조언한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 ‘나’를 찾아야 한다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 결코 포기하거나 멈출 수 없다. 반의 인생을 살아버린 것이 아니라 아직도 반 이상이나 남은, 삶의 무궁무진한 가능성과 꿈이 있다. 내가 써 가야 할 인생의 아름다운 스토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장르 : 에세이
저자 : 이의수
출판사 : 한국경제신문 한경BP
가격 :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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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최근 국내 대기업 중 신입연봉이 가장 높은 기업이 어디냐는 기사가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연말이 되면 어김없이 대기업들의 ‘성과급 잔치’ 뉴스가 국민들의 눈과 귀를 붙들어 맨다. 그 성과급이라는 게 웬만한 자영업자들의 연간 소득과 맞먹는다. 이 모든 뉴스 속에는 ‘삶의 잣대가 이제 돈’이 돼 버렸다는 평범한 사실을 일깨워 준다.

아이들에게도 이런 문화는 그대로 교실에서 전해진다. “너네 아버지 뭐 하시니?”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너네 아버지 얼마 벌어?”라는 질문이 나오는 현실이다. 그곳에서 비롯되는 상대적 박탈감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돈’을 위해 자신을 투신하고, ‘스펙’을 쌓기 위해 젊음을 내던지는 현실이다. 자신의 가슴 속에 뭉쳐 있는 꿈과 희망은 ‘돈과 스펙’ 앞에 설 자리가 부족하다. 아름다운 사회를 고민하고, 함께 사는 공동체를 그리기에는 지금의 현실은 너무 척박하고, 모질다.

서울시장이 된 박원순 작가의 <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은 이런 모진 현실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아름다운 가게>와 <희망제작소> 등을 통해 직접 체험하고 깨닫고, 발굴한 그만의 직업관에 대한 시선을 엿볼 수 있다.

“밥만 벌지 말고 희망을 벌어라”

척박하고 모진 현실을 생각한다면 ‘밥만 벌지 말라’는 소리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이미 대한민국은 ‘1%를 위한 나라’가 돼 버렸고, 그것이 고착화되고 있다. 빈부 격차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더욱 커져가고, 대물림되는 가난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일 지경이다.

‘변호사의 아들이 변호사가 되고 노동자의 아들이 노동자가 되는’ 현실에서 “밥만 벌지 마!”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이 몇이나 될까.

그런 상황에서 뜬금없이 “희망을 벌어라”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밥만 벌지 말고 희망을 벌어라’는 박원순 작가의 말 속에는 따라서 세상을 쳐다보는 ‘다른 시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밥만 벌다’는 말 속에는 경쟁 사회에서 누군가를 짓밟고-의도됐든 그렇지 않든-일어설 수밖에 없다. ‘적자생존의 세계’를 말한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 스펙을 쌓고, 남보다 더 좋은 조건을 얻기 위해 자신을 투자하는 셈이다. 공동체나 함께 살고자 하는 시각은 여기에 설 자리가 없다.

‘희망을 벌다’는 그래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를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박원순 작가는 “사람이 좋아! 너와 내가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직업 BEST 10”이라는 말을 할 수가 있다. ‘너와 내가 살맛나는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함께 이 사회를 가꾸고자 하는 마음이며 공동체를 지향하는 새로운 시각이다. ‘함께 공동체를 지향하는 시각’이 사실은 자연스러운 시각인데 척박하고 모진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세상을 바꿀 새로운 전문가의 시대

박원순 작가는 책을 통해 새로운 직업관을 선보이고 있다.

환경을 사랑하는 푸른 청춘이라면 ‘녹색 전문가’를 추천했다. 한국 사회는 ‘부수고 삽질하고 그곳에 건물을 세우는’ 개발 성장이었고 그것이 하나의 공식이 성립됐다. 그러나 그동안 부수고 삽질하는 사이 자연 환경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을 복원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쯤은 상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을 보존하고 지키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성장일 수 있다는 시각을 강조한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시대에 성큼 다가선 지금, 소통의 도구가 바뀌고 있다. 사람과 소통을 가장 우선시하는 사람이라면 ‘네트워크 전문가’를 꿈꾸라고 박원순 작가는 강조한다. 또 ‘일상이 예술이고 놀이가 된 유쾌한 당신이라면-문화예술 전문가’ ‘몸은 인생의 집, 몸 생각하는 당신이라면-건강 전문가’ 등을 추천했다.

박원순 작가는 특히 누구도 생각하지 않고, 누구도 가지 않겠다고 하는 ‘틈새시장’에 대한 도전을 강하게 요구한다. 농촌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그는 “흙처럼 농부처럼 순박하고 자연스러운 당신이라면 농촌‧농업 전문가가 되는 것도 좋다”고 주문했고 , 비영리ㆍ비정부기관의 정직한 힘을 믿는다면 NGO 전문가로 자신을 위치시켜 보는 것도 좋다”고 추천했다.

<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은 지금까지 공식화된 직업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직업을 소개하고 있다. 가슴 벅찬 직업을 갖는 것은 ‘연봉이 세고, 연말이면 성과급 잔치’하는 그곳에 있지 않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로 인해 다른 사람이 웃을 수 있고, 그곳에서 촉매된 웃음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 가슴 벅찬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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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그동안 연재했던 서평들을 보충해 전자책으로 첫 번째 작품이 나왔습니다.
첫 번째 작품은 '아프니까 읽는다-읽기의 행복'입니다.
마음이 아플 때,
상처가 있을 때,
이 장르를 읽으면 스스로 위로를 받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제 블로그에 올렸던 글이지만 전자책 내용은 보충하고 새로 손을 봤습니다.

'아프니까 읽는다-읽기의 행복'은
안드로이드폰의 T스토어와
iOS의 경우 앱스토에서 '빅북'  혹은 '인터파크 비스켓'을 내려 받아

'아프니까 읽는다'로 검색하면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작지만 이제 시작입니다.
앞으로 몇 개의 장르로 엮어 계속 연작으로 나올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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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사뭇 복합적인 폭력에 대한 슬픈 이야기

…박범신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2. 가을 속으로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

…김형경 <사람풍경>

3. 아비와 어미의 죽음

…조경란의 <성냥의 시대>와 김숨의 <옥천 가는 길>

4. BC 1700년 <슬>의 슬픈 사랑

…박민규 <더블>

5. K와 K의 토요일에서 월요일까지

…최인호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6. 타인의 죽음과 삶 바라보기

…조해진 <로기완을 만났다>

7. 죽음의 시간을 안다면, 당신의 선택은

…기욤 뮈소 <그 후에>

8. 지게꾼이 시를 쓰는 세상을 꿈꾼다

…진은영 <우리는 매일매일>

9. “내가 그렇게 만만했니, 니들?”

…권여선의 <분홍리본의 시절>

10. 상처를 내려놓고 ‘풀밭위의 식사’를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전경린 <풀밭위의 식사>

11. 우울한 날에 ‘전화벨’은 울리고

…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12. 많은 존재가 사라지는 겨울

…이시백 <잔설>과 백가흠 <통>

13. 죽음에 대한 플러스와 마이너스 이야기

…김중혁 <좀비들>

14. ‘상처'로 태어나 ‘상처'로 성장하고 ‘상처'로 죽는다

…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

15. 미소 띤 얼굴로 정의 실천에 나서는 청춘

…다자이 오사무 <정의와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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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며칠 전이었다. 깊은 어둠으로 떨어지듯 닿은 국회의사당역은 환한 밝음으로 많은 사람을 맞았다. 9호선은 유독 다른 지하철과 달리 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지하철은 긴 터널을 유유히 달렸다. 몇몇 역을 지나고 안내방송에서 '다음 역은 샛강역입니다.'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샛강?'

매번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오늘따라 '샛강'이란 목소리와 단어가 귀를 자극한다.

'그래, 예전 내가 살던 곳에도 샛강이 흘렀지. 여름이면 멱을 감고, 겨울이면 썰매를 타고, 봄이면 온갖 이름 모를 꽃들이 피었지. 여름방학이면 조무래기들이 소를 끌고 나와 꼴을 먹이곤 했지.'

정지용의 <향수>가 떠오른 것도 내 유년 시절 기억 한 귀퉁이에서부터 나왔다. 정지용 시인은 노래한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 대는/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의 시는 모두 '과거 시재'를 쓰고 있다. '지즐 대는' '그리워' '줍던 곳' 등등. 우리에게 낯익은 풍경이 스쳐 떠오르지만 이제 그런 곳은 없다는, 진한 향수가 코 끝으로 밀려든다.

생산↔소비의 피폭시대

꽃이 피고, 옛 이야기 지즐대는 '그곳'은 과거의 추억이 돼 버렸다. 많은 도시인들은  주말이면 도시를 빠져나간다. 하루 정도 도시를 벗어난 사람들은 다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자신을 버리기에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생산과 소비가 삶을 유지하는 데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생산하지 않고, 소비하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도시화 시대에 우리는 서 있다.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은 도시를 벗어나고 싶지만 끝내 되돌아오는, 도시에서 삶을 마감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담았다.

소설은 쓰레기 처리장인 '꽃섬'이 주무대이다. 그렇고 그런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든다. '꽃섬' 오두막 동네는 버려진 각목과 판자, 깔판으로 집을 뚜딱뚜딱 만든다. 구역별로 나눠 쓰레기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재활용품을 모아, 이를 되판다. 그 돈으로 '꽃섬'의 식구들은 하루를 일하고 하루를 먹고 산다.

열넷(하지만 자신은 열여섯이라 말한다)살 '딱부리'도 시장 통에서 행상을 하던 어머니를 따라 이곳에 왔다. 딱부리의 아버지는 새 사람이 되기 위해 군인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갔다. 이런 내용을 유추해 보면 <낯익은 세상>은 1980년대를 시대 배경으로 하고 있다.

딱부리의 삶은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흘러간다. 그곳에서 아수라 반장(특정 구역을 책임지고 있는 반장)과 어머니가 살림을 합치지만, 딱부리에게 떨어진 것은 '땜통'이라는 ,약간은 부족한 아수라반장의 아들, 동생 한 명 뿐이다.

<낯익은 세상>은 딱부리와 땜통의 성장 소설이자, 생산과 소비의 피폭시대를 담고 있다. 

같은 공간이지만 전혀 다른, 현실↔김서방네  

딱부리와 땜통이 자주 찾아가는 '빼빼 엄마'의 집은 성장하는 소년들의 두 가지 세상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상처 받은, 혹은 세상에서 버려진 개들을 키우는 '빼빼 엄마'는 빙의(영혼이 옮겨 붙는 현상)를 받은 사람이다.

그녀는 언제나 현실과 김 서방네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온갖 쓰레기와 그곳에서 버려진 것을 찾아 재활용하는 현실의 '꽃섬' 사람들과 '꽃섬'이 만들어지기 전에 이곳에서 살다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는 '김 서방네'의 예전 '꽃섬'은 같은 위치에 있지만 완전히 다른 공간을 보여준다.

딱부리와 땜통은 빼빼엄마의 빙의로 예전의 꽃섬을 본다.

현실의 꽃섬은 파리떼가 우글거리고 덤프트럭이 온갖 허접 쓰레기를 버리면 작업반원들이 구역별로 우르르 떼거지로 몰려 깡통과 옷가지와 종이를 집어 올린다. 그게 현실이고 딱부리의 인생이다.

그러나 쓰레기 장이 들어서기 전의 꽃섬은 그렇지 않았다. <낯익은 세상>의 낯익으면서도 낯선 꽃섬과 만나는 것은 그래서 더욱 가슴을 울린다. 

딱부리와 땜통이 찾아간 예전의 꽃섬, 김 서방네의 꽃섬은 어땠을까. 소설은 이렇게 묘사한다.

"한가운데 숲이 우거지고 나직한 산도 있는 이웃 섬이 보였고 돛을 단 조각배가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강변 풀밭에는 송아지를 거느린 어미 소가 풀을 뜯고 있었다. 풀꽃이 가득 피어난 강가에는 오리가 날아 앉거나 물장난을 치는 게 보였다."

내가 살던 그 예전의 '샛강'이 있는 마을과 정지용이 노래한 '향수'의 옥천이나, 딱부리와 땜통이 경험한 예전의 '꽃섬'. 과거의 모습이 됐고, 돌이킬 수 없는 현실 앞에 그리움의 대상으로만 머물러 있다.

낯익음↔낯섦

<낯익은 세상>은 열 넷의 딱부리 눈으로, 딱부리 인생으로 바라본 현실을 그린 소설이다. 황석영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자본주의는 세계의 운명인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자본주의를 인정한 셈이다.

<낯익은 세상>은 이야기 전개가 빠르고 쉽게 다가온다. 아무래도 그 배경으로는 누구나 경험했을, 혹은 누구나 생각했을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황석영 작가의 말을 좀 더 들어보자.

"내가 도시 외곽의 쓰레기장에 주목한 것은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재의 삶이 끝없이 만들어서 쓰고 버리는 욕망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보다 더 많은 생산과 소비는 삶의 목적이 되었고 온 세계가 그것을 위하여 모든 역량과 꿈까지도 탕진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 드러나 있는 풍경은 세계의 여느 도시 외곽에서도 만날 수 있는 매우 낯익은 세상이다."

작가의 말처럼 <낯익은 세상>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지속적으로 '낯익은 세상'과 만난다.   난지도와 같은 거대한 쓰레기 매립지가 없어졌지만 지금도 우리는 쓰고 버리고, 재생하고...쓰고 버리고....또 재생하고. 자본주의의 생산과 소비는 끝없이 이어진다.

황석영 작가의 말처럼 '자본주의는 세계의 운명'이 된 걸까.

최근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 간단한 두 단어를 깊이 생각해 보면 '자본주의는 세계의 운명'이 아닐 수도 있다. 자본주의를 버리고 떠나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발적'이라 함은 자기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선택한다는 의미이다.

'자발적'이란 말에는 자본주의 현실과 싸우겠다는, 혹은 자본주의 현실을 버리겠다는 적극적 의지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자본주의가 과연 세계의 운명'이 돼 버렸는지는 좀 더 생각해 볼 일이다.

'가난'이란 말을 보면 더욱 자본주의에 대항한다는 의미가 크다. 생산과 소비에서 풍족한 소비를 꿈꾸는 현대인들과 달리 이들은 스스로 '가난'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생산과 소비의 쳇바퀴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적극적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자본주의는 자본이 기본이기 때문에 '가난'이라는 말 자체는 정반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 것은 자본주의와 투쟁한다는 의미로 읽혀질 수도 있지 않을까.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라는 소설의 박범신 작가의 말이 언뜻 떠오른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는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묘사하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이 문명에서 그나마 오래 살려면 인간다운 정서를 가급적 버리는 게 좋다."

이 말을 이렇게 해석해 보면 어떨까. "자본주의에서 그나마 오래 살려면 자본주의 습성을 가급적 버리는 게 좋다"라고.

우리에게 '낯익은 세상'은 과연 무엇일까.

끝없이 생산과 소비라는 쳇바퀴에서 숨 쉴 틈 없이 살아가는 현실인가. 아니면 이제는 잃어버린, 가족과 이웃이 있었고 들꽃과 돛단배가 유유히 거닐던 조금은 가난했지만 소박했던 그런 모습인가.   

두 가지 모두 우리에게 '낯익은 세상'이자 혹은 '낯선 모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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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조선은 '명분 사회'였다. 불행하게도 명분은 백성으로부터 오지 않았다. 중화사상의 성리학에서 찾았다. 성리학에 근거하지 않는 그 어떤 명분도 설 자리가 없었다. 아무리 백성을 위한다는 조건이 붙더라도 성리학에 위배된다면 명분이 아니었다.

이정명의 <뿌리깊은 나무>는 조선시대 '명분'과 '실리'의 입체적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소설이다.

실리↔명분의 갈등

<뿌리깊은 나무>의 주제를 흐르는 한 대목을 먼저 짚어보자.

장원서의 김정겸은 집현전 학사이다. 그의 업무는 온실을 돌보는 일이다.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겸사복 채윤이 이곳에 까지 이른다. 김정겸과 채윤이 나누는 대화 속에 소설의 주제가 흐른다.

김정겸이 채윤에게 말한다. <동절양채>(겨울에 채소 키우기)라는 책이 출간됐지만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비서고(금지 서적을 보관하는 곳)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설명하고 있다. 

<img src="../image_joy/201111/1321236884438_1.jpg" align="left" vspace=3 hspace=10>"조선의 백성 열 중 아홉이 농사를 짓고 있다. 한 방울의 땀이라도 아껴주고 한 톨의 소출이라고 늘려 주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김정겸은 <동절양채>가 백성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한 사대부의 생각은 달랐다. 온실에서 키운 영산홍을 대제학 최만리에게 갖다 준 적이 있는데 최만리의 반응은 이렇다.

"동월개화출어인위자(冬月開花出於人爲子)."

이를 해석하면 "천지의 기운을 받는 초목의 꽃과 열매는 그 시기가 있는데 제때에 피지 않은 꽃은 인위적인 것으로서 좋은 일이 아니다."라는 것.

집현전↔성리학의 갈등

태조, 정종, 태종에 이르는 조선 초기는 극도의 혼란한 시기였다. 죽고 죽이는 권력의 쟁탈전이었다. 태종 시대가 가고 세종이 들어섰을 때 조선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간다. 세종은 새로운 세상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집현전을 설립한다.

집현전은 어떤 곳이었을까.

비서고에서 일을 하고 있는 윤후명이 채윤에게 되뇌이는 말 속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성균관 장서고에서 가장 많은 책을 빌린 사람이 충녕대군이셨다. 유가의 경전뿐만 아니라 산술과 천문, 그리고 풍수지리와 악서, 수학과 의학 등 두루두루 읽으셨다."

세종은 성리학 만으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한계가 있음을 스스로 알았다. 그래서 성균관이 아닌 집현전을 통해 유학 뿐만 아니라 각 영역의 다양한 장르의 영역을 아우르는 책을 스스로 읽었고 이를 실천할 집행기구가 필요했다. 집현전은 새로운 시대, 개혁의 최전선에 위치했다.

집현전의 성격이 이렇다 보니 출신 배경 또한 다양했다. 대호군 장영실이 종3품에 임명되는 것은 세종의 철학에서 보면 당연했다. 그러나 성리학을 기본으로 하는 기존 권력자들에게는 인정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뿌리깊은 나무>는 집현전을 중심으로 하는 '실리추구의 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성리학 기본의 '기득권 새력'의 갈등이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민중↔권력의 갈등

소설은 궁궐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살해 대상은 모두 집현전 학사였다. 살해된 학사들은 자세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모종의 비밀스런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집현전 학사의 죽음을 수사하는 책임자가 한갓 겸사복 채윤이라는 사실은 의미가 크다. 민중의 입장에서 이들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겸사복 채윤은 수사관이라기 보다는 조선 초기 깨어있지 않은 민중으로 읽어야 한다.

그런 채윤이 수사를 하면서 스스로 깨우쳐 나가는 과정이 의미심장하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뿌리깊은 나무>의 주된 주제는 실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민중과 조선 초기 명분에 빠져있는 권력자의 갈등이 큰 흐름이다.

채윤이 수사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큰 실마리를 얻는 곳들도 민중들 속이었다. 검안을 하는 가리온과 같은 민중들이다. 가리온은 채윤에게 "맹랑한 친구야. 어둠은 밤에만 있는 것이 아니야."라는 선문답 등을 통해 깨달음을 준다.

또 집현전 학사 이순지를 통해서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정치적 지형과 그 불공형한 현실에 대해 학습한다. 이순지는 채윤에게 "아악은 중국 천자만의 것이며 악기 또한 천자의 허락이 없으면 얻을 수 없었다. 주상전하께서 그 점을 통찰하시고 예조에 악기도감을 설치했다."는 등의 전후 사정에 대해 설명해 준다.

물(水)로 죽은 장성수, 화(火)로 죽은 윤필, 금(金)으로 죽은 허담…조금씩 진실에 접근해 가는 채윤의 눈을 통해 조선 세종때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 갈등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뿌리깊은 나무>는 헤쳐나가고 있다.  

장르: 소설
저자: 이정명
출판사: 밀리언하우스
가격: 7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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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경기도 마재(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능내리)의 정 씨 가문에는 네 형제가 있었다. 정약현,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가까운 곳이었다. 첫째 정약현의 딸, 명련은 황사영을 남편으로 맞는다.

네 명의 정 씨와 한 명의 황 씨는 조선 후기, 소용돌이 역사의 주인공들이었다. 이들은 천주교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정약종과 황사영은 죽음으로 맞서면서 끝까지 천주교를 버리지 않았다. 정약전과 정약용은 순교하고자 스스로 결심한 셋째 정약종으로 인해 목숨을 건졌다.

김훈의 <흑산>은 정 씨 가문과 황 씨의 이야기이다.

마재 정 씨 가문의 네 형제를 역사적으로 이야기할 때 가장 앞서는 사람은 언제나 막내 정약용이었다. 정약용은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현실에 대한 분노와 이상 사회에 대한 희망을 책으로 엮어낸 대학자이다.

역사학자들은 이들 네 명의 정 씨 가문에 대한 책을 낼 때는 언제나 '정약용과 누구누구'를 사용했다. 역사적 비중이 정약용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이었다. 이덕일 교수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김훈의 <흑산>은 정약용이 아닌, 정약전과 황사영에 포커스를 맞췄다. <흑산>은 정약전이 유배 간 '검은 섬'이다. 그곳에서 물고기의 생태를 관찰한 정약전의 <자산어보>가 탄생한다.

아우구스티노에서 알렉시오에 이르는 죽음

김훈의 <흑산>은 아우구스티노의 죽음에서 시작해서 알렉시오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 소설이다. 소설의 시작점은 이렇다.

"정약종, 너의 사호는 무엇이냐."

"아우구스티노다. 사호가 아니라 세례명이다."

정씨 가문의 셋째 정약종의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 둘째 정약전과 막내 정약용과 달리 정약종은 '골수' 천주교인이었다. 역사학자 이덕일 교수의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서 장약종의 체포과정을 보면 스스로 천주교인임을 인정하고 자랑스러워했음을 알 수 있다.

"정약종은 2월11일 체포되었다. 자신을 잡으러 가던 금부도사를 길에서 지나쳤으나 자신을 잡으러 가는 길이냐고 묻고는 스스로 체포된 것이다."

정약종은 천주교로 인한 죽음을 받아들였고 순교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정약종의 죽음으로 시작된 <흑산>의 마지막은 황사영의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제천 베론 토굴에 숨어있던 황사영은 조여 오는 체포 망에 걸려든다. 포졸과 군관들이 토굴을 덮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야! 알렉시오. 너 황사영이지?"

알렉시오는 황사영의 세례명. 황사영은 체포됐고 능지처참을 당한다. 정약종과 황사영의 죽음이 <흑산>의 시작과 끝이라면 그 중간의 이야기는 살아남은 정약전과 당시 천주교를 비밀스럽게 믿고 따르던 민초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끝없이 등장하는 민초들, 이미지에 묶여 입체적 서사는 실패

소설 <흑산>은 조선후기 천주교 박해를 둘러싼 사건들을 그리고 있다. 정약전과 황사영이 중심에 놓여 있지만 당시 민초들이 많이 등장한다.

정주에서 말을 끌고 있는 마부 마노리, 궁궐에서 쫓겨난 늙은 궁녀 길가녀, 마포나루에서 들고나는 배꾼들에게 술을 파는 강사녀, 정 씨 가문의 노비로 있다가 면천된 김개동과 육손이…이들은 모두 천주교 신자들이었다.

민초들이 당시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가슴 속에 아로새겼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훈은 소설 속에서 "주여, 주여 하고 부를 때 노비들은 부를 수 있는 제 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눈물겨웠다."라고 묘사했다.

정조 서거이후 조선후기 사회는 정순왕후의 시대였으며 외척의 시대였다. 사도세자와 정조에 적극 반대했던 노론 벽파가 다시 권력을 잡으면서 남인들은 처절하게 숙청당했다. 남인들을 숙청하기 위해 노론 벽파는 천주교를 끌어들인 것이다.

김훈의 <흑산>에 등장하는 민초들과 정약전, 그리고 황사영의 이야기 구조는 아쉽게도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내면의 이야기에 주목하다 보니 인물 개별적인 묘사는 뛰어나지만 장편을 이끄는 입체적 이야기 구조는 부족하다.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로 발전하지 못했다.

장편과 단편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편은 등장인물이 적는 반면 장편은 등장인물이 많다. 단편은 한 인물의 내면에 주목하는 반면, 장편은 다양한 사건 속에서 여러 인물들의 역할과 입체적 서사구조를 가진다.

김훈의 <흑산>은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단편 소설적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다. 각 인물들이 서로 엮이고 설키면서 갈등과 화해, 거대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인물들의 내면에 집중하다보니 이야기는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동떨어져 여러 이미지로만 남아 버렸다. 소설을 읽어 나가는데 이어지는 느낌 보다는 서로 단절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 , 이제 여기에 사는 사람들

소설은 정약전이 '흑산(黑山)'을 '자산(玆山)'으로 바꾸어 부르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유일하게 흑산에서 글을 읽을 줄 아는 창대에게 정약전은 이렇게 말한다.

"玆는 흐리고 어둡고 깊다는 뜻이다. 黑은 너무 캄캄하다. 玆는 또 지금, 이제, 여기라는 뜻도 있으니 좋지 않으냐, 너와 내가 지금 여기에서 사는 섬이 자산이다"

정약전은 '흑산도'에 유배되면서 절대 다시는 육지로 나가지 못할 것임을 스스로 깨달았다.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살아있는 몸과 무한히 많은 시간 뿐. 흑산에서 정약전이 할 수 있는 일은 바닷가를 거닐고, 물고기와 날아다니는 새를 쳐다보는 일. 그곳에서 <자산어보>가 시작됐다. 한 인간의 숙명이었다.

김훈의 <흑산>은 조선후기 천주교를 둘러싼 민중들의 믿음과 갖은 고초를 겪으며 배교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이 소설에 등장하는 민초들이 입체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이미지에 머물러 버렸다. 그런 요소들이 장편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 한계점으로 노출된다.

<흑산>에 나오는 정약전의 말 처럼 '또 지금, 이제, 여기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 구체적이고 서로 연결되는 점을 찾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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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어제 책장을 정리했다. 대학시절부터 읽었던 책들이, 손때 묻은 도서들이 어떤 것은 먼지를 뽀얗게 덮어쓴 채 놓여 있었다. 서재를 만들기 위해 방 하나를 깨끗이 치우고 그곳에 책장과 책들을 다시 정리했다.

몇 십 년 동안 손에 잡히지 않은 책도 있었고, 어떤 책은 여러 번 읽어 너들너들한 것도 있었다.

아내가 책을 빼면서 한마디 한다.

“좀 버리자! 읽지도 않는 책을 뭐 하러 이렇게 쌓아놓고 있냐? 공간도 비좁고, 쓸데없는 책은 버리는 게 낫잖아?”

대학 때부터 모아온 책이니 그 양이 만만치 않았다. 아내의 이 말을 들으면서 나도 한마디 한다.

“버리자고? 쓸데없다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어떤 책도 한 줄에 의미가 있다면 다 필요한 책이야. 몇 천 페이지 중에서 나에게 감동을 주고, 의미가 있는 한 줄을 발견한다면 그 책은 소중하다는 거지.”

나의 이 말에 아내는 할 말을 잃었고, 혹은 ‘건드려봐야 씨도 안 먹힌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더 이상 반응이 없다. 그렇게 책장을 정리하면서 이 책, 저 책의 제목도 다시 보고 혹은 펼쳐 당시 내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되짚어 볼 수 있었다. 그 중에 한 책이 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의 미로를 걷고 있는 이들에게

책을 넘기자마자 이런 글과 마주쳤다.

“이 책을 모든 여행자에게 바친다. 이국의 거리를 걷거나, 길고 긴 인생을 걷거나, 마음의 미로를 걷고 있는 이들에게.”

김형경의 <사람풍경>의 시작 글이다.

현대 사회를 두고 ‘스트레스 사회’라고 규정짓는 이들이 많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현대인들은 자의든 타의든 스트레스를 안고 산다. 팍팍한 현실에서 나를 찾는 여유의 시간은 없어지고, 끊임없이 누군가에 의해 지시받고 압박받는 사회.

현대인들은 ‘미로’를 걷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계속 앞으로 걷고 있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보면 다시 그 자리에 와 있고. 끝도 없이 맴도는 시간과의 싸움. 진정 ‘내가 존재하는 것인가’ 스스로 묻고 싶은 경험들이 있다.

김형경 작가는 이런 현대인들에게 심리 에세이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인간의 복잡한 감정에서부터 타인과 관계 맺기의 즐거움과 스트레스, 그리고 내면에 숨겨져 있는 무의식의 세계까지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동시대인과 이야기하고 있다.

그 중에 나의 시선을 끈 한 줄의 텍스트가 있었다. 그대로 옮겨본다.

“심리학 용어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의 5단계’라는 것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뒤에 남은 사람이 겪는 감정 상태를 말하는데 ‘분노→부정→타협→우울→수용’의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세상을 뜬 배우자나 떠난 연인에 대해 가장 먼저 느끼는 감정이 ”네가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느냐?“는 분노의 감정이다. 그 다음에는 떠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채 환상 속에서 그를 잡고 있는 부정의 단계, 그 다음에는 그 상실감을 간신히 인정하고 텅 빈 듯한 현실과 타협하는 단계, 그 다음에는 자신의 슬픔을 애도하는 우울의 단계, 마지막으로 그 모든 사실을 수용하고 넘어서는 단계를 말한다.”

이 텍스트를 아내에게 그대로 읽어 줬다. 아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없이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람풍경>에는 이외에도 자기애, 나르시시즘, 우울 등에 대한 심리를 자신의 경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미로를 걷고 있다고 느끼는, 이 가을에 문득 내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가을 풍경 속으로 걷기 전에 <사람풍경>을 읽어보면 어떨까. 그 속에는 다양한 감정의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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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친일 이니, 그의 시각에 대해선 의심할 필요가 없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이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를 만나 직접 건넨 말이라고 한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대사관 외교 문건에 기록된 글이다.

2011년 7월.

KBS는 2회에 걸쳐 백선엽 특집 방송을 내보냈다. 백선엽의 간도특설대(1943년 2월에 만주 간도성 명월구에 있던 항일무장 독립 세력을 탄압하던 특설대) 근무 등 친일 행적은 눈 감은 채 그의 한국전쟁 당시의 활약상 만을 집중 부각시켰다.

대한민국은 친일공화국이다

정운현의 <친일파는 살아있다>는 이렇게 시작된다. 작가는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으로 백선엽의 특집 방송을 그 이유로 들었다. 독립 세력을 탄압하던 자가 버젓이 대한민국의 영웅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분노였다.

현직 대통령을 두고 그의 친형이 ‘뼛속까지 친미와 친일’이라고 말하는 대한민국. 작가는 이러한 현실을 두고 “대한민국은 친일공화국이다.”라고 정의해 버린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66년이 지난 지금도 친일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이유는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것이라고 작가는 단언했다. 작가는 대한민국을 두고 ‘친일 공화국’이라고 정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 내용의 부분을 읽어본다.

“친일파 연구가 임종국의 조사에 따르면, 제1공화국은 각료의 34.5%, 제2공화국은 각료의 60%가 친일 전력자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친일 전력자로서는 박정희‧최규하, 총리 가운데는 장면을 비롯해 백두진, 정일권, 진의종, 김정렬 등이며, 각료급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을 친일공화국’이라고 정의 내려도 지나친 말은 아닌 듯 하다. 책에서는 1,2,3공화국에서 각료로 재직했던 친일 전력자들의 구체적 이름까지 나온다. 행정부 뿐만 아니라 입법부와 사법부는 물론, 언론, 교육, 경제계까지 친일 전력자들이 활보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해방이 되면서 대한민국은 왜 친일에 대한 청산을 ‘뼛속까지’ 하지 못했던 것일까. 다시 책 내용으로 들어가 본다.

“반민특위가 당초 조사 대상자로 삼았던 반민 피의자 수는 대략 7천여 명에 달했다. 입법의원에서 대상자를 최대 20만 명까지 추산했던 수치에 비하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이는 미군정 3년을 거치면서 친일파 청산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다소 줄어든 데다 이승만 정권 출범 후 친일파들이 다시 권력의 전면에 재등장한 탓도 있다.”

우리는 부끄럽고, 그들은 부럽다

작가는 우리의 친일 청산의 부끄러운 행태를 꼬집었다. 나아가 다른 나라의 경우 어떻게 역사의 질곡을 헤쳐 나갔는지를 살피고 있다. 북한과 중국의 친일 청산 방법과 나치 청산의 모범이 된 프랑스의 경우를 짚었다.

결론적으로 작가는 “해방이 되고 친일파에 대한 완벽한 청산을 하지 못한 우리는 부끄럽고, 역사의 잘못과 질곡을 강력하고 정의롭게 청산하고 새 역사를 맞이한 다른 나라들은 부럽다.”고 밝혔다.

책의 제목에서부터 작가의 분노를 느낄 수 있다. <친일파는 살아있다>는 표지 제목에서 시작해 소제목도 작가의 날선 비판적 시각을 표출하고 있다.

제1장 <민족반역의 길로 들어서다> 제2장 <나는 황국신민이로소이다> 제3장 <뼛속까지 친일파로 살다> 제4장 <대한민국은 친일공화국이다> 제5장 <친일파는 살아있다> 제6장 <친일 청산, 역사의 숙명이다> 제7장 <친일 청산, 기록하는 자와 변명하는 자> 제8장 <우리는 부끄럽고, 그들은 부럽다>로 구성돼 있다.

어느 나라든 굴곡과 치욕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민족을 배반하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나라를 버렸다면 그것은 역사적으로 단죄해야 하는 큰 죄이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를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해방이 되면서 다시 권력과 금력을 거머쥘 수 있었던 역사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어떤 후보는 일본의 자위대 창립 행사에 참가하고서도 “그런 행사인 줄 몰랐다.”는 변명을 내놓았다. 이런 변명이 아직도 받아들여지고, 여전히 ‘그럴 수도 있지.’라고 이해되는 한국 사회! 친일의 완벽한 청산이 없었던 우리나라의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역사는 짧은 기간 동안 이데올로기의 극한 대립이 펼쳐졌던 역사였다. 6.25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나면서 큰 상처를 입었다. 1945년 해방이 되면서 미국과 소련의 양강이 남북한을 점령하면서 극심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친일 청산이라는 민족적 숙명은 뒤로 물러나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치달았다. 친일파들이 자본주의에 곧바로 편승해 미군정과 손을 잡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생존 법칙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이데올로기는 성숙된 이념이 아니라 ‘체험적 이데올로기’였다.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척결의 대상이었다. 전쟁을 직접 겪은 ‘경험론자’들 앞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쟁은 “네가 전쟁을 경험해 봤어?”라는 이 말 한마디에 접을 수밖에 없었다.

박완서 작가는 자신의 6.25 전쟁 경험의 아픔을 “사람 나고 이데올로기가 난 게 아니라, 이데올로기 나고 사람 난 세상은 그렇게 끔찍했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역사는 계속 흘러가고 있다. 과연 언제쯤 이 친일 논란이 종지부를 찍을 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어쩌면 영원히 청산되지 못하는 부끄러운 역사가 돼 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역사는 ‘제대로 된 분노’를 표출하는 공간이다. <친일파는 살아있다>는 책은 이 시대 ‘역사에 대한 분노’가 시들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깨우쳐 준다.

장르: 사회/정치/법률
저자: 정운현
출판사: 책으로보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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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미소 띤 얼굴로 정의를 이루자'로 시작해 '미소 띤 얼굴로 정의를 이루자'로 끝나는 다자이 오사무의 <정의와 미소>.

이 책을 관통하는 소설 속 문장은 한 문단으로 정리된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현실과 이상의 질풍노도 시기, 열여섯

다자이 오사무는 일본 작가 중 지금까지 인기를 끌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1909년에 태어나 1948년 생을 마감했다. 서른여덟의 나이에 스스로 삶의 끈을 놓아 버렸다. 다자이 오사무의 <정의와 미소>는 청춘에 주목한다.

주인공 스스무의 열여섯부터 시작된다. 끝없는, 자신만이 생각하는 이상(理想)이 가슴 속에 꿈틀거리는 시기. 그러나 현실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질풍노도의 시기일 수밖에 없다.

다자이 오사무는 '열여섯을 소설 속 주인공 스스무의 말을 빌려 이렇게 묘사한다.

"열여섯 살이 되면서 산도 바다도 꽃과 거리의 사람들, 파란 하늘까지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악의 존재도 조금 알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곤란한 문제가 엄청나게 많이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나마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매일 기분이 별로다. 걸핏하면 화를 내고 있다."  

열여섯 이전까지는 시키는 대로, 세상의 흐름대로 자신을 맡기면 되었지만 열여섯이 되면서 자기만의 가치관과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 세상은 전혀 만족스럽지 않으며 계속 짜증나게 하고, 밋밋하게 하고, 기분이 별로이게 하고, 걸핏하면 화를 내게 하는 곳이다.

스스무는 열여섯이 되면서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학교 생활이며, 친구 관계이며,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미래 계획이며, 일어나는 모든 일과 그때그때의 생각을 편년체(날짜별로 서술하는 형식)로 적어 나간다.

대부분의 일기 내용이 현실의 불합리, 현실의 짜증남, 현실의 소시민성 등에 대한 비판과 자기 고민을 담고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열여섯 스스무의 감정이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모든 생(生)의 통과의례, 넘어야 산다

인생은 통과의례의 연속이다. 어느 시기가 되면 자신이 좋든 싫든 사회 속에서 하나의 의식을 통해 또 다른 단계로 넘어왔음을 인정받는다. 돌 잔치를 하고, 성년식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환갑과 칠순을 치르고…이 모든 것이 통과의례의 단계들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생의 통과의례 중 청춘이 가지는 묘한 긴장감과 부조리에 관심을 가진 작가 중 한 명이다. 다자이 오사무가 살았던 시대는 20세기 초로 이념과 사상이 대격변의 시기에 놓여 있던 시대였다. 전 세계적으로 전쟁이 벌어졌으며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끊임없는 핍박이 거침없이 노출된 시기였다.

소설 속 주인공 스스무는 중학교 4학년 때 대학지원을 했지만 자신이 원하던 동경대는 떨어지고 R대에 합격한다. 스스무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그의 형은 스스무에게 "대학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네가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지를 고민하라."고 주문한다.

스스무는 미련없이 좋은 대학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고 '영화배우'로 살아가기 위한 노력에 매진한다. 저명한 극작가의 소개장을 받기 위한 노력과 그 과정에서의 우울함, 인기있는 극단에 들어가기 위한 노력과 그 과정에서의 음울함. 자신의 이상 세계(영화배우 되기)를 위해 현실(저명한 극작가의 소개장)과 직면할 수밖에 없는 괴리를 경험한다.

우울하고 음울한 현실과 직면한 청춘은 아플 수밖에 없다. 가슴 속에는 답답함, 머리에는 끝없는 이상향이 충돌하면서 아픈 시대를 살아내고 있다.

모든 생은 그렇게 세월의 흐름에 따라 통과의례를 거친다. 그것을 넘어설 때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최종적으로 평이한 죽음에 이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청춘의 시대를 평탄하게 넘어서지 못하고 괴로워 한다. 그냥 세월이 흘러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모든 생의 통과의례, 과연 우리는 어떤 청춘을 살아왔으며 '어떻게' 넘어왔는지...<정의와 미소> 속 스스무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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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바다는 어떤 곳일까.

하얗게 부셔지는 파도, 유유히 날고 있는 갈매기, 갯벌에서 뭔가를 캐고 있는 아낙네, 저기 멀리 수평선에서 집어등을 켜고 고기를 낚고 있는 어부, 방파제에서 옷깃을 날리고 있는 이름 모를 여행객…과연 이 모습이 바다일까.

한창훈 소설가는 이 모습은 바다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에게 있어 바다는 ‘삶의 응어리’가 뱀처럼 똬리를 틀고 있는 고통의 공간이다. 한창훈의 소설 <나는 여기가 좋다>는 바다에 대한, 그리고 바다를 위한 소설이다. 바다에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애잔한 목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선장은 아내와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선다. 아내는 계속 구역질이다. 아내는 내일이면 섬을 떠나 육지로 가겠다고 한다. 선장이 끌고 있는 통통배는 이미 팔렸다. 내일이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고 만다. 육지로 떠나겠다는 아내를 태우고 배는 바다 가운데 멈춰 선다. 선장은 갈치를 잡아 올리고 있다.

“결국 바다가 당신을 망친다는 것을 모르요?”

아내는 계속 구역질을 하면서 남편에게 “생각해 보시오. 이 배 때문에 우리 빚더미에 올라앉기 전에는 당신 이러지 않았소. 사람이 사는 곳은 여기가 아니고 육지란 말이요. 바다 한가운데 이 나무판때기 위에서만 살라고 그러요.”라고.

삶을 이어가기 위해 배를 샀는데, 오히려 이 배 때문에 수협에 빚을 지고, 빚은 늘어가고, 마침내 배를 팔아야 하는 상황. 바다는 거친 파도처럼 선장이자 남편에게 덮친다. 아내의 핀잔도 더해진다.

아내의 멀미가 심해지자 선장은 배를 돌린다. 그러면서 ‘손때가 묻은 운전대를 그는 한번 쓸어본다. 잘 가라. 좋은 주인 만나라.’고. 그에게 빚만 물려준 배이지만 그의 한 평생 인생을 함께 했던 통통배! 그에게는 이것이 전부이고 자신의 손때 묻은 운전대가 삶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가 좋다>의 선장은 그런 삶을 바다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반대상황을 맞는다. 아비는 아들이 섬에서, 바다에서 살지 않기를 원한다. 그러나 도시에 가 있던 아들은 돌연 바다로 다시 돌아와 양식장을 하고 고기를 낚으면서 바다에 살겠노라고 선언해 버린다.

그러면서 아비에게 “인제 혼자서 뭘 할라고 너무 애쓰지 마시오. 아들이 있는디.”라고. 그런 아들의 외침에 아비는 “이놈아. 너도 너무 뎀비지 마라. 이 애비도 처음부터 이렇게 늙은 것은 아니여.”라고.

아비는 아들이 자신처럼 늙을까 봐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둘은 그런 이야기를 바다 한가운데서 주고받으며 낚싯줄을 힘껏 당긴다. ‘푸른 바다 작은 배 한척. 거기서 낚시는 한동안 계속된다.’고 소설은 이어간다.

한창훈의 <나는 여기가 좋다>는 바다에 살고 있는 삶을 모았다. 바다가 자신의 인생을 어렵게 하고 힘들게 하지만 그곳을 떠나지 않는 이들의 삶. 진정한 바다의 의미는 무엇인지, 바다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지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나는 여기가 좋다>를 들고 바다로 가 보는 것도 좋겠다.

장르:소설
저자:한창훈
출판사:문학동네
가격: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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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궁리
가격:8천300원

이 책은 1902년 여름 잭 런던이 직접 경험한 일을 담고 있다. 그는 탐험가가 된 심정으로 런던의 빈곤지역 이스트엔드로 잠입했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참상을 직접 보고 체험하기 위해서였다. 부유하고 번성한 웨스트엔드와는 극히 대조를 이루는 이스트엔드는 런던에서 가장 가난한 곳으로 이민자, 불법체류자, 하급 노동자들이 어쩔 수 없이 밀려들던 곳이다. 잭 런던은 그곳 사람들처럼 옷을 입고 끼니를 때우며 거리의 노동자가 되어 그들이 사는 대로 체험한다.

 

장르:역사/신화/문화
저자:이덕일
출판사:다산북스
가격:1만200원

이덕일은 이 책의 서문에서 “윤휴가 사형당한 후 조선은 침묵의 제국이 되었다. 더 이상 그와 같은 생각은 허용되지 않았다. 윤휴와 같은 생각은, 특히 그런 생각을 표출하는 것은 사문난적으로 가는 초청장이고, 저승으로 가는 초청장이었다.”라고 주장한다. 그만큼 조선 후기 사회는 다른 생각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 아주 경직된 사회였던 것이다.

<인도 그 아름다운 거짓말 >
장르:시/에세이/기행
저자:인도를생각하는예술인모임
출판사:애플북스
가격:6천750원

이 책에서는 열두 명의 작가가 인도를 여행하면서 느낀 열두 가지 스펙트럼이 펼쳐진다. 작가들은 인도문화, 인도신화, 그리고 인도적인 삶을 그들만의 스타일로 풀어낸다. 누군가는 시詩로, 누군가는 소설로, 누군가는 건축 이야기로, 누군가는 기행문으로. 엇박자처럼 보이지만 글들은 인도라는 종착점에 한데 어우러진다.

<고아로 자란 코끼리의 분노 >
장르:시/에세이/기행
저자:박이문
출판사:미다스북스
가격:7천200원

전 4부로 나누어진 시집은 제1부 ‘생명’으로 시작하여, 제2부 일상, 제3부 인생, 제4부 이국 그리고 서정에 이르기까지 그의 관심은 창조와 생명의 출발보다는, 이미 창조된 생명의 보존을 향한다. 이른바 생태계의 움직임이다. 생태계에 대한 관심은 곧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며, 그 안타까움은 문명 비판으로 이어지고, 이는 결국 엄청난 분노로 분출된다.

<소설의 시대 >
장르:인문
저자:김한식
출판사:미다스북스
가격:1만200원

소설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물론 소설 읽기에 왕도는 없다. 많은 작품을 읽고 자기만의 독서 방법을 깨우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소설을 재미있게 잘 읽을 수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는 있다. 인내심만 믿고 무턱대고 달려드는 것도 미련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소설을 보는 여러 가지 관점과 소설을 감상하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
장르:소설
저자:권비영
출판사:다산북스
가격:7천원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의 미덕이다. 정설을 헤치지 않으면서 그 틈새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허구적인 상상력을 가미시켰다. 디테일하지 않은 일화에 색을 덧입히고, 한 줄로 요약된 문장에 희로애락을 입혔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이것이 역사적인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에 눈물 흘리고 또다시 구절구절을 되새기게 하는 이유다. 가장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야기의 기본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이 이 작품의 또 다른 장점일 것이다.

<39계단 >
장르:소설
저자:존 버컨
출판사:바른번역(왓북)
가격:3천원

<39계단>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흥행요소로 자리매김한 ‘쫓고 쫓기는 스릴러’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최초의 작품이다. <39계단>에서 존 버컨은 독자들에게 자기 몸의 안녕보다 조국의 안위를 앞세우는 주인공 리차드 해니를 보통 남자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다. 이 작품은 특히 제 1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던 참호 속 병사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한 병사는 버컨에게 보낸 편지에서’진흙더미, 쏟아지는 빗줄기, 퍼붓는 포탄세례 같은 참호 속의 모든 암울한 상황에서 나를 구해준 <39계단>, 제게는 너무 고마운 소설입니다.”라고 고백할 정도였다.

<화성 오디세이 - 스탠리 와인바움 단편선>
장르:소설
저자:스탠리 와인바움
출판사:바른번역(왓북)
가격:3천원

우리는 외계인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우리와 다르지 않은 외계인, 지금과 다르지 않은 미래를 섬세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고전 SF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천재 작가 스탠리 와인바움의 단편선.

<[100분 고전 011] 땅은 왜 사유재산이 될 수 없는가 -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장르:경제/경영
저자:헨리 조지
출판사:이펍코리아
가격:3천500원

미국의 경제학자이며 사상가인 헨리 조지(Henry George, 1893~1897)의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1879)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들만을 뽑아 번역한 것이다. 헨리 조지 스스로가 극심한 가난과 궁핍 속에서 살면서 집필한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영국과 미국에서 수십만 권이 팔렸으며, 19세기 말에는 영어로 쓰인 책 중에서 <성서>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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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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