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바위가 너럭바위가 되고, 너럭바위가 뾰족 바위로 작아졌다. 뾰족 바위가 징검돌이 되고, 징검돌은 주먹돌로 더 작아졌다. 주먹돌은 조약돌로, 조약돌은 공깃돌로, 공깃돌은 모래가 됐다. 마침내 모래는 검고 보드라운 흙인 명개가 된다." 어마어마하게 컸던 큰 바위는 세월이 흐르면서 작아져만 간다. 이 말을 우리 인생에 들입다 맞춰보자.
 
아기는 어린이가 되고, 어린이는 청소년으로 자란다. 청소년은 자라 청년이 되고, 청년은 나이 먹으며 성인으로 큰다. 성인을 자라 중년이 되고, 중년을 지나 노인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은 커진다.
  
이제 우리의 꿈을 이야기해 보자.

 

 

초등학교 때는 대통령이 꿈이었고, 중학교 때는 과학자나 의사가 미래상이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기술자를 꿈꿨고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좋은 직장에 입사하는 것이 꿈이다. 결혼하고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현실에 변화가 없기를 꿈꾼다. 2세가 자라면 내 꿈은 사라지고 2세가 잘 자라기를 바란다. 노인이 되면 내가 꿈꿨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헷갈리는 지경에 이른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우리의 꿈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다.
 
이순원의 '고래바위'는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인지, 시인지, 동화인지 장르를 구분할 수 없다. 굳이 구분하려 들지 않아도 된다. '꿈은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이순원은 산만큼 큰 고래바위가 바다를 보고 싶다는 꿈을 이루는 과정을 그렸다. 고래바위 상태로는 절대 갈 수 없다. 부서지고 작아져 물결에, 바람에 흩날려 움직이는 명개가 돼야 갈 수 있다는 것.
      
본문의 한 문장을 인용해 본다. 고래바위가 자신을 깨닫는 부분. "한 알의 모래가 된 다음에야 알았어. 작아지지 않고는 올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이순원은 작가의 말을 통해 "처음 가졌던 마음 안의 욕심들을 살아오는 길섶에 하나하나 버리고 비워가며 마침내 더 큰 세상을 만나고, 더 큰 자기를 완성해 가는 것은 아닐까요?"라고 말한다. 우리의 꿈은 욕심 안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욕심이 앞설 때 꿈은 현실적이지 못하고, 남에게 피해를 준다. 길섶에 하나하나 욕심을 버릴 때 내 꿈과 함께 다른 사람의 꿈도 배려할 수 있다. 꿈을 찾아 떠나고 싶은 이들이여! '고래바위'의 꿈을 좇아보자. 이순원 지음/북극곰/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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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상당한 소설이다.

이순원의 <첫눈>은 재밌다, 아득하다, 로맨스가 있다. 있을 건 다 있다, 소설의 모든 것을 담았다.

<첫눈>의 주제는 고래다. 바다를 터전 삼아 유유히 물을 뿜으며 살아가는 고래가 주제이다. 큰 고래일 수도, 돌고래일 수도, 돌고래보다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는 고래일 수도, 아무튼 <첫눈>에는 주구장창 고래 이야기만 나온다.

그렇게 고래로 시작해 고래로 이야기를 끝맺으면서도 정작 소설 속에 살아있는 고래는 등장하지 않는다. 소설 속 시점에서는. 뭔 과거에 자신이 먹었던 고래, 신혼여행 때 마라도에서 봤던 고래, <백경> <그랑블루> <프리윌리> 등 영화에서 본 고래만 나온다. 살아있는 고래는 한 마리도 등장하지 않는다.

고래는 도대체 왜?

그런데 이게 또 <첫눈>의 맛이다. 프리랜서 PD로 일하고 있는 ‘그’가 있다. 성은 최 씨이다. 울산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두 사람이 소설 속 주요 인물을 이루고 있는데, 정치・경제를 가르치는 ‘윤’ 선생과 음악을 담당하는 ‘김, 현, 아’라는 여선생이 등장한다.

최 씨는 서울 문화재단의 정기 행사의 하나로 매년 열리는 문화초청 강연의 강사로 울산을 방문한다. 수능을 끝낸 고3을 대상으로 하는 1시간짜리 강연. 그날 행사를 마치고 곧바로 서울로 돌아오려 했지만 ‘윤’ 선생이 뜻밖의 제안을 하면서 하루를 머물게 된다. ‘윤’ 선생의 제안은?

“오늘 바쁘시지 않으면 고래를 한번 보고 가시죠. 지금 바다에 들어와 있거든요.”

‘윤’ 선생은 7m 짜리 밍크고래 한 마리가 그물이 걸려 죽은 채로 방어진 바닷가로 떠밀려 왔다는 것. 오늘까지 바닷가에 전시한다는 것. 자신이 울산에 몇 년 째 살아봤지만 흔하지 않은 기회라는 것. 그래서 최 씨에게 제안한다. 물론 더 정확한 이유는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렇게 둘은 고래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 중간에 ‘윤’ 선생이 최 씨에게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한다. 카페에서 한 시간을 기다리자 ‘윤’ 선생이 한 여자와 함께 나타났다. ‘윤’ 선생은 학교 음악선생이라고 그녀를 최 씨에게 소개한다.

그렇게 셋은 택시를 타고 방어진으로 향한다. 택시 조수석에는 ‘윤’ 선생이 앉고 뒷자리에는 최 씨와 여선생이 앉았다. 택시가 출발하자마자 여 선생이 최 씨에게 말을 건넨다.

“첫눈에 멀리서 오신 분 표가 나는데요?”

날씨가 싸늘해 서울에서 머플러를 하고 온 최 씨를 두고 여선생은 “여기서는 아직 머플러를 한 하거든요.”라며 첫눈에 멀리서 오신 분에 대한 설명을 곁들인다.

First Sight!

여 선생에게 최 씨의 첫 인상은 ‘멀리서 오신 분’이다. 반면 최 씨에게 여선생의 첫 인상은 ‘인중에 어떤 그늘 같은 것이 언뜻 비쳤다가 사라졌다’로 소설에는 표현돼 있다.

그렇게 세 명은 방어진에 도착한다. 그런데 그곳에 거꾸로 매달려 있어야 할 밍크고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윤’ 선생은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본다. 해체됐다는 것.

오늘 아침까지 전시했다가 더 이상 두면 상할 것 같아 고래를 잘기잘기 먹기 좋게 해체해 지금 한 부분은 부산으로 이미 출발했다는 것. 이렇게 되면 세 사람의 목적은 뜬금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고래를 보기 위해 어렵게 시간을 맞춘 그들의 목적이 사라져 버렸다.

고래가 사라진 곳에 그들의 인생이 물을 뿜는다

고래가 사라져 버렸으니 그들은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뻔 하지 않겠는가. 근처 음식점에 들어가 회와 소주라도 마시는 수밖에. 고래를 해체했다는 사내는 “이 근처 식당에도 해체된 고래 고기가 뿌려졌다”고 말한다. 그 말도 그들이 음식점으로 향하게 하는 한 배경이 된다.

소주잔과 고래 고기, 모듬회 안주가 나오고 그들은 잔을 부딪치며 술을 마신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그런데 이런저런 흘려 지나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중심된 주제는 ‘고래’로 통일됐다는 것. 고래를 보러 왔다가 정작 고래는 보지 못한 이들 세 명이 해체된 고래 고기를 앞에 두고 이제 ‘고래 이야기’를 시작한다.

PD인 최 씨는 자신의 고향이 강릉이며 어릴 적 작은할아버지가 부산에서부터 가마니에 백 근이나 되는 고래 고기를 가지고 와 한 겨울 내내 눈 속에 파묻어 놓고 먹었던 기억을 꺼내놓고, ‘윤’ 선생은 자신의 잘못으로 고래를 보지 못했다는 듯 최 씨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다.

압권은 여선생인 ‘김, 현, 아’의 고래 이야기이다.

여 선생은 마라도로 가는 배 위에서 고래를 보았다는 것, 본 것뿐만 아니라 거리가 너무 가까워 고래의 눈까지 볼 수 있었다는 것. 여 선생의 말을 그대로 옮겨 보자.

“유월이었어요. 초여름, 지금도 저는 고래 하면 그때 배에서 본 고래 모습부터 생각나요. 물 위로 솟아오를 때 고래의 새까만 눈까지 도요. 오늘도 그래서 윤 선생님을 따라온 거예요.”

그런데 여 선생의 말을 듣고 있던 최 씨는 마치 당시 그 현장에 자신도 같이 있었던 기분이 계속 든다. 술기운 탓이었을까. 아니면 음악을 전공한 여 선생이 바로 앞에서 미성의 목소리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최 씨는 이렇게 맞장구친다.

“김 선생, 그때 그 고래 나하고 같이 가다가 본 것 맞지요?"

김현아 선생은 섬뜩 놀란다. 당황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농담 삼아 던진 최 씨의 말이 여 선생을 당황하게 만든 셈이다. 왜 일까. 충분히 술자리에서의 농담으로 받아넘길 수 있었을 터인데 왜 여 선생은 깜짝 놀란 것일까.

First Sight가 First Snow가 되는 순간

김현아 선생이 놀란 것은 당연했다.

유월초 배위에서 고래를 보고 있을 때 그녀 곁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김현아 선생이 대학생 때 만난 미대 조교생으로 둘은 당시 결혼해 신혼여행중이었다. 마라도로 가는 배 위에서 둘은 고래를 보았고, 그때 남편은 김 선생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너, 이거 나하고 같이 가다가 본 거야. 여기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가다가 본 게 아니라 나하고 둘만 같이 가다가 본 거라고.”

고래를 봤던 그때 남편과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들만의 고래’로 정확히 가슴 속에 쟁여 놓았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뜬금없이 최 씨가 “그때 그 고래 나하고 같이 가다가 본 것 맞지요?”라고 말했으니 김현아 선생이 놀라고 당황하는 것은 당연한 일.

술자리는 김현아 선생이 먼저 일어나고, 최 씨와 ‘윤’ 선생 둘만 남아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서 ‘윤’ 선생이 최 씨를 끌고 방어진으로 온 이유가 나온다. 자신은 학생 시절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다는 것, 그러니 지금 PD로 일하고 있는 최 씨와 무작정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는 것.

그렇게 방어진의 밤이 흘러가고 술자리는 아홉시 무렵에 끝이 난다. 최 씨는 ‘윤’ 선생과 헤어지고 호텔에 숙박한다. 그때 한 통의 전화가 최 씨에게 걸려온다. 여선생이 전화를 건 것. 여선생은 당돌하게.

“제가 그쪽으로 가도 되겠습니까?”

낯선 곳에서의 고래 이야기와 낯선 시간대에 여선생이 걸어온 전화.

다시 만난 최 씨와 여선생은 호텔 바에서 진 토닉을 마시며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면서 여선생은 최 씨에게 남편과의 경험을 전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에서 (남편은) 자기하고 둘 만 같이 가다가 본 고래라고 여러 번 말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그래, 그건 우리 고래야. 우리 둘만의 고래니까 다른 사람이 나하고 같이 가다가 봤다고 말하지 않게 잘 지켜, 하고요.”

그러면서 다음 말을 잇는다.

“정말 같이 가다가 본 것처럼 (최 선생님에게) 나눠드리고 싶어요. 그 말씀을 드리고 싶어 다시 온 거예요.”

그러니까 남편과 같이 본 고래를 이제 최 씨와 같이 본 고래로 나눠드리고 싶다는 것. 그렇다면 남편과의 약속은? 소설은 이제 김현아 선생의 남편에 대해 짧게 언급한다.

남편은 결혼한 뒤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는 것. 그리고 유학 간 지 이태 만에 죽어서 발견됐다는 것. 그것도 파리가 아니라 프랑스 남부인 리옹에서. 여기서 그치면 소설은 밋밋해 지는 것. 남편이 숨진 차 안의 조수석에 한 여자가 타고 있었다는 것. 그 여자는 유학생이었다는 것.

이쯤 되면 김현아 선생이 왜 마라도 배위에서 본 고래를 최 씨에게 굳이 나눠드리고 싶다고 했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다시 최 씨가 숙박하고 있는 호텔에 까지 직접 찾아왔는지.

아이러니 한 것은 김현아 선생이 대학시절 남편을 만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리스트의 곡 <탄식>때문이었다는 것. 곡을 받고 자신의 곡으로 만들기 위해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는데 도대체 쳐지지가 않더라는 것. 밤늦게 3층 연습실에서 혼자 피아노를 치고 있다 언뜻 창문을 봤는데 옆 건물 미대 건물의 한 곳에 불이 켜지더라는 것. 그곳에 남편이 있었다는 것.

삶은 인간관계의 축척이다. 그러나 첫눈이다

그렇다면 최 씨는 결혼하지 않았고 도대체 그에 대해서는 왜 아무 것도 없을까. 없지 않다. 있다. 최 씨의 아내는 미국에 아이와 같이 유학(?)가 있다는 것. 그러니까 최 씨는 기러기 아빠라는 것. 아무 의미 없는 통화를 하면서 뉴욕에 있는 아내가 최 씨에게 이렇게 말한다.

“...첫눈이라는 게 그렇잖아. 그냥 봐선 온지도 안 온지도 잘 모르고, 그렇지만 사람 마음 들뜨게 하고, 길은 미끄럽고...”

최 씨에게 김현아 선생은 첫눈이었다.

윤 선생에게 김현아 선생은 첫눈이었다.

김현아 선생의 남편은 김현아 선생에게 첫눈이었다.

최 씨의 아내는 최 씨에게 첫눈이었다.

삶이라는 것이 태어나고 죽는 것이라 한다면 삶은 한 마디로 인간관계의 축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축척하면서 사람들은 조금씩 죽음의 순간으로 걸어간다. 이순원 소설가는 <첫눈>의 마지막을 최 씨의 말을 빌려 이렇게 장식한다.

“그래, 찍으면 발자국 자리도 안 나게 내렸는지 안 내렸는지도 모르게 왔다 가는 것, 혹은 그렇게 왔다 가는 사람, 그 모든 것이 첫눈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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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First Mail.
‘카프카의 여인’이 ‘그’에게 보내는 메일.

“...늦은 밤 인터넷을 통해 내일 아침 신문에 나올 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같은 일을 놓고도 세상 주류들의 생각은 이렇구나. 무엇이 옳고 그름을 떠나 그들은 우리에게 너희들도 이렇게 생각해야지 주류로 들어올 수 있는 거라고 말하고 있구나. 그 앞에 우리들의 생각이나 존재는 참으로 작은 벌레 같구나. 저절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카프카의 여인 도라 디아만트, 혹은 그레테’라고 이름을 붙인 낯선 이로부터 ‘그’는 한 통의 메일을 받는다.

낯선 여인이 보낸 메일 내용을 유추하다보면 우리는 ‘카프카의 여인’과 ‘그’의 관계를 파악하고 ‘그’의 직업이 무엇인지 정도는 가늠하지 어렵지 않다. ‘카프카의 여인’은 다름 아닌 독자이고 ‘그’는 신문사에 다니는 사람쯤으로 보인다. <카프카의 여인>이란 단편 속에서 ‘그’는 신문사 논설위원으로 나온다.

그러니까 위의 메일은 독자가 논설위원의 칼럼을 보고 보낸 일종의 ‘독자의견’ 정도이다. ‘독자의견’ 치고는 아주 문학적이면서도, 도발적인 어투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의견 정도가 아주 의미심장하다. ‘카프카의 여인’이 보낸 메일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인터넷 시대에 살다보니 내일 아침자 신문에 실린 ‘그’의 칼럼을 미리 볼 수 있었다는 것

두 번째, 같은 현상을 두고도 주류들의 생각은 이런 것이구나 라고 ‘카프카의 여인’은 느꼈다는 것. 즉 ‘카프카의 여인’과 ‘그’의 세계관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카프카의 여인’은 ‘그’를 신랄하게 비난하고 있다.

세 번째, ‘카프카의 여인’은 그러면서 주류로 들어가지 못하는 자신의(혹은 그런 사람들의) 생각과 존재는 ‘벌레’에 불과할 수 있다고 스스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

이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카프카의 여인>이란 짧은 단편은 금방 읽힌다. 짧고 간단하게 읽히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다. 신문사 논설위원과 독자의 짧은 의견나누기에서 시작된 소설은 현재 한국사회의 키포인트를 건드리고 있다.

‘카프카의 여인 도라 디아만트와 그레테’라고 적은 독자는 왜 ’도라 디아만트와 그레테‘를 언급했을까. 신문사 논설위원인 ‘그’도 그레테는 알겠는데, 도라 디아만트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카프카의 <변신>이라는 소설을 언급할 때인 것 같다. <변신>은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벌레’로 변신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가 ‘그레테’이다. ‘그레테’는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의 여동생으로 소설속 등장 인물이다.

도라 디아만트는 소설 속 인물이 아니다. 실제 인물이다. 그녀는 그렇다면 누구인가. 논설위원인 ‘그’는 ‘카프카의 여인’에게 메일을 보낸다.

Second Mail.
‘그’가 ‘카프카의 여인’에게 보내는 답신 메일.

“...그레테가 소설 속에 나오는 그레고르 잠자의 동생인 것은 알겠는데, ‘카프카의 여인 도라 디아만트’는 누구이며, 당신은 언제 어떤 계기로 처음 카프카를 읽었는지 궁금하다...”

논설위원인 ‘그’는 궁금증으로 메일을 보낸다. 그러면서 ‘그’는 “서로 세상에 대한 생각은 다르다 할지라도 어쩌면 우리는 카프카에 대해 저마다 특이하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덧붙인다.

‘그’는 중학교 시절 카프카의 <변신>을 읽었다. 계기는 국어선생이 추천했기 때문. 도서관에서 빌리려 했지만 이미 대출중이어서 몇날 며칠을 빌릴 수 없을 만큼 그 책은 인기가 갑자기 많아졌다. 마침내 <변신>이란 책을 손에 넣었을 때 도서카드에 적힌 이름을 보고 ‘그’는 ‘벌레들의 명단’처럼 보이는 이름들을 발견한다.

도서카드에는 <변신>이란 책을 읽은 학생들의 이름이 순서대로 적혀 있었는데 하나같이 성적 순이었다. 국어 선생이 추천했고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이 경쟁하듯이 <변신>이란 책을 빌려 읽었던 것이다.

<변신>이란 소설집에는 <선고> <화부>같은 다른 소설도 함께 게재돼 있었다. ‘그’는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면서 ‘벌레 같은 이름’들이 적혀 있는 도서카드에 이렇게 적는다.

“여기 벌레들 가운데 몇 명이나 이 책을 제대로 읽었을까.”

Third Mail.
‘카프카의 여인’이 다시 ‘그’에게 보내는 메일

카프카의 <변신>에 대한 특별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던 ‘그’에게 메일이 다시 도착한다. ‘카프카의 여인’이 보낸 메일이다.

“...카프카는 죽기 전, 결핵요양원에 실려 가 어느 한 여인의 보살핌을 받는 것이 임종 직전 아주 잠깐 동안의 행복이었습니다. ‘도라 다이만트’가 바로 그 여인이랍니다...

참, 내일 저녁, 그곳으로 나갈 것 같습니다. 제 손에 작은 촛불 하나 들고. 님의 메일까지 받았으니 그곳에서 전과는 조금 다른 기분으로 님이 일하는 신문사를 바라보게 되겠지요. 그곳을 밝히는 많은 촛불 가운데 제 촛불 하나가 있을 겁니다.“

이쯤 되면 소설의 내용은 더욱 명확해 진다. ‘카프카의 여인’이라고 밝힌 독자는 촛불집회에 참석할 만큼 사회 운동에 적극적인 인물로 해석된다. 그리고 그녀가 내일 갈 곳은 다름 아닌 광화문이고, ‘그’가 일하는 신문사는 광화문에 우뚝 서 있는 어느 신문사를 말하는지 머리에 떠올리기에 어렵지 않다.

Forth Mail.
‘그’가 ‘카프카의 여인’에게 보내는 메일.

‘그’는 그녀에게 답신을 보낸다.

“...저도 지금의 삶과는 다른, 서로 짐작 못한 특별한 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녁, 춥지 않게 옷 단단히 입고 나오시길 바랍니다. 밖에 나가 보니 날씨가 여간 춥지 않습니다.”

Ending.
광화문에 선 ‘카프카의 여인’과 ‘벌레’의 진액

서로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나누는 이야기는 이 정도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

5.

저녁이 되자 신문사 앞 광장은 온통 일회용 컵으로 양초를 감싼 촛불들의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지난해 미군 탱크에 목숨을 읽은 두 여중생을 추모하는 시민 시위대의 모임이었다. 몇만 명이 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게 촛불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시간 그는 시위대의 촛불물결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사무실 안에 있었다. 시민 시위대들은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구호를 외치고 물결처럼 촛불을 흔들었다. 발생한 지 일 년이 되어가는 그 사건에 대해 사건 발생 초기부터 대부분의 신문들이 지면에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중에서도 이쪽 신문이 제일 인색했다.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이삼 일이 멀다 하고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서자 뒤늦게야 거기에 대해 이런 식으로 문제 제기를 해서도 안 되며 문제 해결의 옳은 방법도 아니라는 식의 말만 해왔던 것이다.

“저런 벌레 같은 것들. 저것들이 다 저쪽 표라고. 추모시위 좋아하네. 저게 다 불법 선거 운동이지. 반미를 해서 즈들이 어쩌겠다는 거야? 빨갱이 같은 놈들.”

거리가 가장 잘 내다보이는 그의 방으로 온 한 선배 논설위원이 창밖의 촛불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엄청난데요. 숫자가.”

“일주기라잖아, 며칠 후면. 벌레 같은 놈들.”

“이쪽에서 보면 저쪽이 벌레 같고, 그러면 저쪽에서 볼 때 이쪽은 어떨까요?”

“어떻긴 뭘 어때? 불법 시위하고 불법 선거운동 하는 놈들인데.”

그러다 밤은 깊어 해산 직전 신문사 건물을 향해 계란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선배 논설위원의 말대로 창밖 쪽의 벌레들이 이쪽을 향해 뿜어대는 배 속의 진액이거나 똥처럼 창문까지 날아온 달걀들이 유리창에 터져 달라붙고, 또 미끄러지듯 아래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몇 개인지 개수도 셀 수 없는 달걀이 그렇게 신문사 건물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들이 보면 이 건물이 바로 벌레들의 성채처럼 보일 것이다. 또 그래서 저렇게 이쪽을 향해 돌을 던지듯 달걀을 던질 것이다.

그는 문득 저 많은 촛불 가운데 자신에게 메일을 보냈던 카프카의 여인이 들고 있는 촛불은 어느 것일까 생각했다. 왠지 아득한 느낌 속에서도 그는 그녀의 촛불이 그녀의 언 몸 전체를 다 녹일 만큼 밝고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밤, 그렇게 유리창 안과 밖에서 한 벌레가 다른 한 벌레를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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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