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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28 경영권 25주년에 불거진 삼성가의 재산다툼

땅은 속이지 않는다.


농사꾼들은 이 말을 신념처럼 받들고 산다. 우리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논과 밭에 대한 애정이 넘쳐났다. 아버지는 새벽 4시면 일어나 소죽을 끓이시고, 새벽일을 나가 저녁이면 돌아오셨다. 하루의 대부분을 땅과 시름하며 지냈다.


당신에게 있어 땅은 삶의 전부였으며, 땅이 있기에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찾았다. 그 땅에서 먹거리가 나오고, 그곳에서 4남1녀를 키우는 원천을 발견하셨던 것이다. 땅이 있으니 살아가고, 그 땅으로 자신의 울타리에 있는 자식들이 하나, 둘씩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본 본 것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땅과 한 세월 보내시고, 아주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당신이 떠나시기 전에 이미 유산을 모두 정리해 두셨다. 간단했다.


“저 건너에 있는 논과 저 너머에 있는 밭은 장남. 저 건너 논 옆에 있는 논과 재 너머에 있는 조그마한 밭은 둘째... 그리고 모내기 논은 막내...”



그렇게 우리 형제들에게는 논 한마지기와 밭 등이 유산으로 남겨졌다. 형제들은 아버지의 유산 상속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재산은 땅이 전부였으며, 그 이외의 재산은 있을 리가 없었다. 차명으로 만든 통장도 없었고, 다른 사람 이름으로 된 땅도 없었다.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 재산이었고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자신의 몫을 물려받았으니. 너무나 깨끗한 유산 상속이었다.


아직 어머니가 고향에 생존에 계셔 물려받은 땅은 그대로 있다. 혹여 물려받은 땅을 자식들이 팔아버리면 어머니가 겪게 될 심리적 박탈감 때문이다. 여전히 어머니는 땅을 밟고 계시고, 그 땅을 보면서 아버지와 추억, 그리고 당신이 겪어온 삶을 살아가는 동력으로 삼고 계시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유일한 낙은 동네 마을회관에 출입하면서 아직 시골에 계신 당신의 벗들과 소일하고, 날씨라도 따뜻한 날이면 저 너머 장남과 재 너머 둘째에게 남겨진 땅을 밝으면서 예전의 풍성했던 추억을 더듬는 일이다.


남은 생애, 어머니에게 밟을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판다는 것은 당신에게 깊은 슬픔을 던져주는 일일 것이다.

“다복한 집안의 재산, 투명하지 못했던 유산”


대부호들의 경우, 자신의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세금과 각종 규제를 피하기 위해 차명으로, 제3자 명의로 재산을 위장해 관리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이런 편법이 동원되고 있지만.


삼성가(家)의 재산 소송이 연일 뉴스 면을 장식하고 있다. 고(故)이병철 회장이 남긴 재산을 두고 벌어지는 자녀들의 소송이다.


이병철 회장은 첫 번째 부인 박두을 여사 슬하에 1928년 이인희(장녀), 1931년 이맹희(장남), 1933년 이창희(차남, 작고), 1935년 이숙희(차녀), 193X년 이순희(삼녀), 1940년 이덕희(사녀), 1942년 이건희(삼남), 1943년 이명희(오녀) 씨 등을 두었다. 또 일본인인 두 번째 부인 구라다 씨 슬하에 1947년 이태희(사남), 1962년 이혜자(육녀) 등 두 명의 자녀가 더 있다.


다복한 가정이었던 셈이다. 다복도 다복이지만 이들 자녀들이 물려받은, 혹은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재산을 합치면 대한민국의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이병철 회장의 자녀에서부터 손자에 이르면 대한민국의 굵직굵직한 대기업들의 면면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한솔그룹, CJ그룹,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등등.


1987년 이병철 회장은 폐암으로 유명을 달리했고, 박두을 여사도 2000년에 운명했다. 부모가 모두 돌아가신 상황에서 벌어지는 자식들의 소송이라 부모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삼성의 재산 상속 문제의 시작은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이 차명과 제3자 명의로 비자금은 물론 재산을 관리한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자신도 그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그 실체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내부 직원이었다. 이 폭로로 시작된 삼성문제는 급기야 특검까지 진행돼 수사가 벌어졌으며 그 결과 차명 재산이 있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장남인 이맹희와 차녀인 이숙희 씨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유산 상속은 아직까지는 서열대로 이뤄지는 것이 관례이다. 이건희 회장의 형과 누나는 그동안 숨겨졌던 재산(자신들이 알지 못했던 재산)이 들춰진 만큼 부당한 유산 상속이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것이 요점이다.


올해는 故 이병철 회장이 유명한 달리는 25주년이자, 삼남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삼성이라면 뭔가 다를까. 정치권력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도 권력을 나눠가질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그의 아들 태종 이방원을 보면 ‘정치권력’이란 ‘아비와 아들’에서도 극한 대립을 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대기업도 이와 다르지 않을까. 아니 오히려 더할 것 같다. 지금은 철저한 자본주의 시대이고, 이 시대를 움직이는 것은 ‘재력’이다. 삼성이 ‘정치권력’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 그러니 ‘정치권력’위에 ‘재력’이 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 삼성을 둘러싼 재산 소송은 형제의 다툼이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자식 간의 관계를 벗어나 뭔가 다른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대기업의 형제들은 형제의 돈독한 관계를 벗어난 뭔가 특별한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번 삼성 家의 재산 소송을 보면서 일반 시민들은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은 부모(父母), 부자(父子), 형제(兄弟)의 관계를 떠나 재산을 둘러싼 그들만의 생존 방식과 계산 방식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현실은 씁쓸하다.


오늘은 시골 마을회관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자식들에게 물려준 땅을 밟고 계실 어머니에게 전화 한통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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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