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살고 있다.

그는 아주 깊은 산골, 그곳에서 소나무를 키우며 산다. 그가 살고 있는 곳에 닿기 위해서는 인적이 드문 곳을 한참이나 차를 타고 가야 한다. 이런 길에 차가 다닐 수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길이다. 길이 아니라 길을 찾아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집에 도착하면 별천지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울창한 숲과 조잘거리며 흘러가는 작은 시냇물, 집 주변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새소리, 무엇보다 그가 꺼내놓은 막걸리와 두부안주는 일품이다.

그의 나이, 이제 60을 넘어 고희에 가까워 오고 있다. 그는 젊은 시절, 학구열에 들떠 있었다. 학문을 통해 세상과 부닥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갔을 때 그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의 가족 중 한 명이 북한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고 방황의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선택한 곳이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이다. 아무도 없는 깊은 산 속에 집을 짓고 소나무를 키우며 조경 일을 시작한 것이다. 어느 정도 연좌제는 없어졌다 하지만 그 연좌제가 없어지기 까지 그는 숲 속에 유폐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지금 그가 터 잡고 있는 이곳이 그의 삶이 돼 버렸다.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떠밀려 온 셈이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이 되면서 친일세력에 대한 확실한 ‘짚고 넘어가기’가 없었다는 것이 우리나라 근현대사 비극의 시작점이었다면 6.25 남북전쟁을 통한 ‘가족사의 비극’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큰 비극 중 하나이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도 이 같은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성선 시인의 ‘아버지’, 비무장지대에서 강물이 돼 만나다

염무웅 선생의 <문학과 시대현실>을 탐독하던 중 이성선 시인을 만났다. 그 바로 앞 단락에서 신동문 시인을 만났지만, 나는 신동문 시인의 <내 노동으로>라는 시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성선 시인은 낯선 이름이었다. 포털에 그의 이력을 검색해 본다.

짧은 이성선 시인의 약력을 보자.

그는 1941년 1월 강원도 고성군에서 태어났다. 1970년 ‘문화비평’으로 등단했고 고려대를 나왔다. 그리고 2001년 5월 돌아올 수 없는, 영면에 들어갔다. 여기까지가 공개된 그의 이력이다. 아주 간결하고 짧다. 그런데 염무웅 선생의 <문학과 시대현실>에 기록돼 있는 이성선 시인의 아주 간략한 한 문장이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6.25때 아버지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연세대와 이회여대 등 교정을 드나들면서 교수나 강사들을 붙잡고 뺨을 때리는 할머니가 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보도됐다. 이 할머니는 다짜고짜 강의하는 교수나 혹은 지나가는 강사를 붙들고 ‘너, 빨갱이지?’라며 폭언은 물론 뺌을 때리고 옷을 찢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너, 빨갱이지?’

2011년, 21세기⋯. 아직도 ‘빨갱이 외침’은 끝나지 않고 있다. 빨간색 콤플렉스는 여전하다. 이 비극은 과연 언제 끝날까. 상황이 이 같은데 이성선 시인이 한창 혈기가 넘쳐 났을 때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박정희,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지는 그 ‘빨간색 히스테리’가 넘실거리던 시대에 시인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조정래 선생의 소설 <한강>의 유일민, 유일표 형제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전해 듣지 않더라도 짐작하고 남는다.

이성선 시인의 <불의 노래> 중 일부를 보자.

지상을 떠나는 바로 그 순간

나는 불이 되리 하늘의 불이 되리

세상의 온갖 밧줄에 묶이어 살아온 나를

‘세상의 온갖 밧줄에 묶이어 살아온’ 나날들, 그에게 시(詩)는 위로이자 독백이었으며 이런 위로를 통해 세상의 밧줄을 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무게 앞에 시인은 시간의 의미도 되새긴다.

새는 세상을 날며

그 날개가 세상에 닿지 않는다

나비는 푸른 바다에서 일어나는 해처럼 맑은

얼굴로

아침 정원을 산책하며

작은 날개로 시간을 접었다 폈다 한다

<티벳의 어느 스님을 생각하며>라는 시의 부분이다. ‘작은 날개로 시간을 접었다 폈다 한다’는 표현이 폐부 속으로 스며든다. 작은 날개로 시인도 그 무수한 시간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이 세상을 건너 왔을 것이다. 다행히 ‘푸른 바다에서 일어나는 해처럼 맑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표현에서 시인의 희망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이제 자신을 옥조이고, 수많은 밧줄에 묶일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어떠했을까.

아홉 살 때 가신 아버지

돌아보고 다시 돌아보며 가신 얼굴

그때부터 비무장지대는

남북을 가르는 띠가 아니다

아버지와 내가 찾아가 꽃으로 떠서

서로를 들여다보는 강물이 되었다

<새와 풀꽃의 면회소>에서 시인은 아버지를 언급하고 있다. 시인의 아버지가 아홉 살 때 ‘가깝고도 먼’ 북으로 갔다는 사실이 나타난다. 아버지는 북으로 가면서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을 터이다. ‘돌아보고 다시 돌아보며 가신 얼굴’이라고 기억했다.

그래서 시인에게 아버지는 분노와 서운함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아늑함, 아련함, 기다림으로 다가온다. 남북분단의 비극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비무장지대는 따라서 시인에게는 아버지를 만나는 공간이자 포근한 느낌을 주는 만남의 장소이다.

물론 이 시는 2000년에 발표된 시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남북한의 지도자가 서로 만나는 해빙의 시대에 기록된 배경이 이런 분위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70~80년대에 이런 류의 시를 시인이 기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깊은 산골짝으로 세상에 떠밀려 간 내 주변의 ‘그’⋯

<한강>에서 남북 이념의 고난의 삶을 처절하게 보여주는 유일민‧일표 두 형제⋯

아버지의 존재로 고통 받을 수밖에 없었던 시인 ‘이성선’⋯

그들은 우리 곁에 늘 있었던 누군가의 모습들이다. 아직도 ‘너, 빨갱이지?’라는 소리가 대학가에서 들려올 만큼 남북분단의 비극은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 언제쯤 이런 소리가 사라질까.

이성선 시인이 말했듯 그는 지금 하늘로 날아가 ‘해처럼 맑은 얼굴로 아침 정원을 산책하며

작은 날개로 시간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불이 되어’ 있을까. 그러기를 소원하고 희망하고, 그렇게 돼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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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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