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김근태님을 추모합니다. 명복을 빕니다.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이제 목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경찰로 있던 그 시대, 그의 고문은 한 시대를 아프게 하고, 슬프게 한 자화상이었다. 이는 그가 지금 목사가 되었다고 해서 잊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아픈 역사 그 자체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천운영의 <생강>은 여러 가지 맛을 담고 있다. 생강이란 식재료에 여러 인물들의 표상을 소설을 통해 입히고 있어 눈길을 끈다.

생강은 묘한 맛이다. 쓰면서도 혀를 아리는 맛, 생강만을 먹었을 때는 그저 그런 맛이지만 다른 음식과 섞였을 때는 그 무엇보다 없어서는 안 되는 맛, 생강이 지니는 여러 가지 맛은 사람에 따라, 그 쓰임에 따라 달라진다.

<생강>은 고통과 억압의 현대사의 한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 시대의 고문 기술자로 불리는 ‘이근안’에 관한 이야기이다. 10년 동안 도망 다녔던 이근안! 그의 고문기술은 익히 그 당시 신문에도 여러 차례 보도됐지만 ‘신의 기술’로 불렸다. 그의 고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갔고, 없던 죄도 팔을 꺾고 물을 붓고, 칠성판에 맨 몸뚱이로 눕히면 죄가 만들어졌다. 그는 시대가 만든 인물이었으며 그래서 역사적으로 꼭 기록돼야 할 전형이었다.

칠성판에 몸이 묶이는 순간, “나는 죄인이오. 그러니 제발 그만두시오. 제발 살려주시오!”라고 목구멍이 찢어지고 울음이 되고 더 이상 절박할 수 없는 처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때마다 소설 속 고문기술자 ‘안’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소설은 남영동에서 시작된다.

그 이름도 찬란해(?) 듣기만 해도 아연 실색하는 남영동에서 고문이 자행되고 있던 그 어느 날, 대형 사고가 터진다. 한 사람이 지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잃고 만 것. 이 때문에 고문 기술자 ‘안(소설 속 주인공)’은 조직의 비호를 받으며 도망자 신세가 된다. 고문으로 사람이 죽었는데, 조직(한국의 권력)은 그를 벌하기 보다는 비호한다. 사실은 사실이 아니었으며 사실은 언제나 조작되고 권력의 입맛에 맞게 재단되던 시절이었다.

처음에는 갱생원 등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오래있지 못하고 주변의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그리고 폐가에서 지낸다. 그러다 마침내 ‘안’은 자신의 집 안으로 숨어든다. 숨어든 곳이 다름 아닌 ‘다락방’.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생각난다. 대담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안’은 그 다락방에서 공소시효가 매번 연장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무려 10년 동안 숨어 지낸다(실제로 이근안은 10년 동안 다락방에 숨어 있었다). 그 다락방에는 ‘안’의 딸 ‘선’의 온갖 비밀이 숨겨져 있는 곳이다. 이렇게 자신의 아버지이자 희대의 ‘고문 기술자’인 ‘안’과 딸의 비밀스러운 동거가 시작된다.

다락방은 은밀한 곳이다.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온갖 비밀스러운 자신의 공간에 침투해 들어온 아버지, 아니 예전에는 아버지였지만 ‘고문 기술자’로 온 세상이 모두 알아버리고 그의 딸이란 사실까지 드러난 마당에 아버지는 딸에게 더 이상 아버지가 아니었다. ‘악마’였다.

딸의 비밀스러운 공간에 침투해 들어온 ‘아비’

‘선’은 대학에서도 쫓겨난다. 스스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가 매일 자신의 집 앞 레코드 가게 앞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고문 피해자인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매일 ‘안’의 집으로 와 ‘안’의 행방을 묻고 집을 기웃거린다. 그의 눈은 초점이 없고 그저 매일 아무 생각 없이 ‘안’의 집으로 발걸음이 옮겨지는 남자. 남자는 언제나 레코드 가게 앞에서 ‘안’의 집을 보고만 있다.

어느 정도 친해졌을 때(?) 서로 독백하듯이 내뱉는 ‘선’과 ‘남자’의 대화는 이 소설의 압권이다.

선: “나는 만두는 안 먹어요. 사람들은 왜 김치를 먹다가 생강을 씹으면 싫어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나를 김치 속에 든 생강 조각처럼 골라내고 싶어 해요. 말을 안했으면 죽을 수도 있었잖아요. 무슨 말이든 하게 만드는 게 더 나빠요.”

남자: “황 씨네 할머니가 끓여주신 생강물이 생각나. 생강 도라지 배 꿀. 그냥 먹어도 맛있는 걸 많이도 넣어 달였지. 그걸 먹으면 겨우내 감기 적정은 안했어. 예뻐서 그래. 시샘해서 그러는 거야. 김치에는 생강이 꼭 들어가야 해. 생강이라면 다 좋아. 생강절임, 생강차, 생강과자.”

선: “그런 얘기 처음 들어요. 내가 예쁘다고 우쭐해하면 꼭 무슨 일이 생겨요. 난 생강과자 싫어요. 설탕을 잔뜩 입혀서 달기만 할 거 같은데 먹어보면 쓰거든요. 이 흉터는 뭐예요? 초승달 같아요.”

‘선’에게 이 세상은 닫혀있는 곳에 다름 아니다. 자신은 늘 존재하지만 모든 이들로부터 소외받고, 소외를 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 김치를 먹다가 생강을 씹으면 골라내는 것처럼, 자신은 소외받고, 골라내 지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고문 기술자’의 딸이기 때문에. 그녀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 자신의 다락방에는 ‘악마’가 숨을 쉬고 있기 때문에.

‘생강’의 맛은 여러 가지 있을 터인데, ‘선’의 맛과 ‘고문 피해자’의 맛이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천운영의 <생강>은 빠르게 읽힌다. 소설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어떤 소설은 손에 잡았다 하면 후다닥 읽어야 하고 어떤 소설은 생각과 잠시 쉬어가면서 읽는 그런 소설이 있다. 천운영의 <생강>은 전자에 해당된다. 빠르게 전개되는 소설 속 이야기와 각 인물들의 내면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흡인력이 뛰어난 소설이다.

이근안은 고문 기술자로 명성을(?)을 날렸고 지금은 목사가 됐다. 희대의 고문 기술자가 목사가 되다니? 세상 일이란......천운영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전에 이근안 목사와 통화를 했다고 한다. CBS와 인터뷰를 한 것을 보면 이근안 목사는 천운영 작가에게 “조용히 살고 싶다”는 말만 전했다고 한다. 소설과는 달리 이근안 씨에게 실제로 딸은 없었다.

천운영의 <생강>은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소설이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있었기에 가능한 소설이다. <생강>의 쓴 맛과 혀를 아리는 맛, 그리고 그 속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사람들......한국 현대사의 비극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현대사의 한 비극을 <생강>이란 소설에 담은 것이다.

책 표지에 있는 가수 이은미 씨의 소개 글이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

이은미 가수는 “그녀는 우연히 ‘생강’을 씹다가 이 소설의 모든 인물과 내용이 순식간에 만들어졌을 것이고 그 맛을 음미하며 멍하니 앉았거나 복받쳤거나 분노했을 것”이라고 쓰고 있다.

소설 속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마무리 해야 겠다. 마지막에는 매일 ‘안’의 집을 말없이 찾아오는 고문 피해자 ‘남자’와 ‘선’이 만나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같이 먹는 모습을 그렸다. 그리고 이런 대화가 이어진다. ‘안’과 ‘남자’의 관계, 그리고 ‘남자’와 ‘선’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

남자: “받아. 생일선물이야. 꼭 한번은 주고 싶었다.”

선: “생일인지도 몰랐어요.”

남자: “네 생일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니?”

선: “아직 남은 게 있어요?”

남자: “그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아무 일도.”

선: “그런데 내 생일은 어떻게 알았어요?”

남자: “들어버렸어. 그가 내게 들키고 싶지 않아하는 어떤 비밀을.”

선: “얘기해 줘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의 일.”

남자: “그가 왜 내게 손을 대지 않는지, 왜 가만히 앉아 모형자동차나 조립하고 있는지, 그게 더 무섭더라. 뭔가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 전의 고요 같아서.”

선: “그래서요?”

남자: “옷을 홀딱 벗겨진 채로 의자에 앉아 졸다 깨다 하고 있었는데, 그가 전화기를 들고 복도로 나갔어. 전화선 때문에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아서 전화 목소리가 들렸어. 선이 생일인데 가야지. 당신이 좀 사다놓으면 안되나? 누군가 복도를 지나가며 묻는 소리가 들렸어. 오늘은 왜 공장 돌아가는 소리가 안 들려? 기계가 고장이라도 났나? 그가 대답했어. 야, 이 새꺄, 내일이 딸내미 생일인데, 저 빨갱이 새끼 불알 쥔 손으로 가야겠냐? 오늘은 좀 쉬자, 응?”

선: “그런데 왜 하루예요? 내 생일이었으면 적어도 이틀은 쉬었을 텐데. 내 생일, 한 번도 거른 적 없었어요.”

남자: “내가 그 비밀을 알고 있다는 걸 발설해 버렸거든. 우쭐해져서. 따님 선물은 뭘로 하실 건데요?라고 물어버렸어. 새벽녘에. 매를 벌었지. 누구 이름을 입에다 올리느냐고. 네가 함부로 입에 담을 이름이 아니라고, 뭘 아는 척하느냐고. 방을 나서기 바로 전까지 미친 듯이 날뛰더라. 그날 이후 며칠 동안 피똥이 멈추질 않았어.”

선: “그거 그때 그렇게 된 거예요?”

남자: “책상 위에 소형 용접기가 있었거든.”

선: “팔뚝에 남은 그 구멍 자국도요?”

남자: “여기서 살아나가면, 놈이 보호하고 싶었던 걸 꼭 찾아내 짓밟아 주리라, 맞으면서 그 생각만 했어. 그래도 그 하루, 참 달콤했었다. 하루 쉬었다고 버틸 힘이 좀 있더라. 네가 미치도록 밉고, 고마웠다. 네가 태어난 걸 나만큼 고마워했던 사람은 없을 거야.”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소설 속 이름은 '안'으로 나온다. '이근안'의 '안'자를 썼을 수도 있지만 왠지 '안'이 '惡'의 다른 말로 읽힌다. 반면에 '안'의 딸로 나오는 '선'은 말 그대로 '善'이지 않을까. 선과 악! 생강을 씹으면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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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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