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는 질서가 있다. 미생물은 식물의 먹이가 되고, 식물은 초식동물에게, 초식동물은 육식동물의 먹이가 된다. 그것을 두고 우리는 '먹이 사슬'이라고 말한다. 생태계는 이런 선순환을 통해 계속 유지되고 일정한 질서를 만든다.

먹이 사슬에서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존재도 자신의 재미와 오락을 위해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본능으로 자신의 생존을 위해 곡 필요한 부분만 먹는 것이 먹이 사슬의 기본 질서이다.

그런데 이 '먹이사슬'을 거부하는 종(種)이 있다. 바로 '인간'다. 자신보다 힘 있는 사람에게도 온갖 모략과 치졸한 수법으로 잡아먹는다. 때론 자신보다 힘이 센 한 사람을 정하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연합해 괴롭힌다. 더욱이 존 본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재미와 오락거리로 다른 인간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는 '먹이 사슬'을 인위적으로 거부하는 것이고 인간만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악습' 중의 하나이다.

은이정의 <괴물, 한쪽 눈을 뜨다>는 중학교 아이들의 '집단 괴롭힘'을 다루고 있다. 학부모라면 누구나 자녀들 문제로 한번 쯤 겪어 봤을 이야기를 소설로 묶었다. 

몸집이 가장 큰 기린, 하지만 싸움은 못한다

소설 속 내용의 한 부분부터 먼저 언급해 보자.

"기린은 키가 커서 나무 꼭대기에 있는 이파리는 잘 뜯어 먹지만 싸움은 못한다. 게다가 목이 뻣뻣해서 그냥 서서는 입이 바닥에 닿지 않아 물을 마실 때 다리를 양쪽으로 좍 벌리고 마신다. 그러다 실수하면 넘어질 수도 있고 한번 넘어지면 잘 일어서지 못해서 물을 마실 때마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중학교 2학년인 엄영섭. 키는 180을 훌쩍 넘고 몸집도 크다. 그런데 그는 사바나의 '기린'같은 자신을 느낀다. 엄영섭은 "(기린이) 넘어져 버둥거리고 있을 때 사자나 표범이 달려와 내 목을 물어뜯지 않을까 무섭다. 넘어졌을 때 나를 일으켜 줄 사람이 교실에는 없다."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그를 괴롭히는 이는 같은 반 정진과 하태석. 정진은 하이에나 같은 녀석이라고 말한다. 반면 하태석은 악어에 비유된다. 하이에나 '정진'은 늘 엄영섭을 괴롭히거나 찝쩍대면서 괴롭히지만 하태석은 그런 모습을 조금 떨어져 즐긴다. 직접적으로 엄영섭을 괴롭히지는 않는다. 하이에나가 물고 온 먹이를 조용히 먹어주는 존재가 '악어'이다.

하이에나와 악어는 그렇게 자신들보다 크지만 '멍텅구리' 임영섭을 괴롭히는 맛으로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다. 하이에나와 악어가 '기린' 같은 엄영섭을 귀찮게 하고, 엄영섭의 물건을 집어가거나 혹은 갖은 방법으로 힘들게 하지만 학급 반 친구들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자신의 일이 아닌 이상, 방관자적 입장을 보인다.

학급에서 완전히 고립된 '기린' 엄영섭은 혼자 책상에 앉아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것을 좋아한다. 그가 직접 골라 산 <사바나에 사는 동물들>은 언제나 자신의 현재를 벗어나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하는 좋은 친구이다.

학급의 리더, 담임과 반장…코끼리와 하마의 무관심

담임과 반장은 엄영섭이 학급에서 이른바 '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 엄영섭에게 '코끼리'에 비유되는 반장은 "누가 너 괴롭히면 담임한테 가서 일러."라고 말한다. 고작 엄영섭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다. 그러면서 반장은 스스로 자신의 비겁함을 깨닫는다.

"맞설 힘이 없어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한테 스스로 해결하라고 말하는 내가 비겁했다. 쓴웃음이 났다."

하이에나와 악어의 괴롭힘은 더욱 교묘해 진다. '따'의 단계가 대게 다 그렇듯이 이들은 엄영섭에게 이제 돈까지 갈취하고 나선다. 신체를 괴롭히고, 그 다음 단계는 돈을 갈취하는 것이 그들 생태계의 ‘악순환’인 것일까.

엄영섭이 학급 내에서 집단 따돌림뿐만 아니라 이제 돈까지 갈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담임은 반장을 부른다. 담임은 "엄영섭을 잘 지켜보고 무슨 일이 있으면 즉각 나에게 알려라. 그래야 담임인 내가 사건이 커지기 전에 해결할 거 아니냐."라며 반장에게 주문한다.

그러나 그런 자신의 모습을 두고 담임 또한 "여전히 (나는) 민태준(코끼리 반장)이 아이들 사이에 개입해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상황을 조종해 주었으면 싶었다. 따지면 따질수록 극히 이기적인 교사가 바로 나였다."라고 실토한다.

학급의 리더인 담임과 반장, 스스로 자신을 두고 '비겁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자책하는 동안 엄영섭에 대한 괴롭힘은 계속 되고 있었다.

아빠의 부재시대, 우울한 현실

<괴물, 한쪽 눈을 뜨다>는 중학2학년의 집단 괴롭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소설 속에는 신기하게도 아빠(아버지)의 존재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대부분 엄마(어머니)가 등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고작 소설 속에 나오는 아빠의 모습은 민태준(반장)이 시험공부 중에 컴퓨터로 '야동'을 보다 엄마에게 들켰는데 이때 딱 한줄 아빠가 등장한다. 그것도 민태준 엄마가 '무슨 일이냐.'며 관심을 가지는 아빠를 향해 "당신은 신경 쓸 것 없어! 나가! 태준이 시험공부 해야 해!"라며 철저하게 무시당한존재로.

아빠는 철저하게 아이들 문제에 소외돼 있고 관심 밖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 같아 답답하고 씁쓸했다.

언젠가 기자는 초등학교 6학년 아이의 '공개수업'에 간 적이 있다. 대부분 엄마들이 교실 뒤쪽을 채웠고 아빠가 온 경우는 나 혼자 뿐이었다. 학교와 아이, 학부모(엄마와 아빠)가 교육의 주체일 텐데 한국 교육의 현실에서는 '아빠'는 늘 부재하고 있는 모습이다.

<괴물, 한쪽 눈을 뜨다>는 괴롭힘을 당하는 엄영섭의 입장, 반장인 민태준의 입장, 담임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중학2학년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특히 이들의 위치를 사바나에 살고 있는 동물에 빗대 소설을 풀어가는 과정이 이채롭다.

소설은 아이들의 학급을 두고 "(교실은)정글이 아니라 사바나"라고 말한다. 정글은 온갖 풀과 나무들이 있어 숨을 곳이라도 있지만 사바나는 허허벌판으로 노출돼 그 어디에도 숨을 수 없는 곳! 그곳에 아이들은 약육강식과 비인간적 요소에 노출돼 있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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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