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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7.08 층간 소음으로 지친 당신을 위한 이야기 <위풍당당> (1)

최근 아파트 층간 소음문제로 이웃들 갈등이 심각하다. 석양이 내리쬐는 저녁에 다정히 맥주 한 잔 해야 할 이웃들이 주먹질과 싸움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은 아프다. 위층과 아래층의 입씨름이 드잡이로 발전하고, 드잡이를 넘어 심지어 살인까지 일어나는 비극적 마당이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여기서 뭔가 이상하다.

 

층간 소음문제가 생기게 된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위층에서 밤마다 뛰어 다니는 개념 없는, 철없는 조무래기 때문일까. 또 이상스럽고 괴기스럽게도 새벽마다 세탁기를 돌리고 책상을 질질 끌고 다니는 구제불능의 위층 어른들 때문일까.

 

그들에게 털끝만큼의 잘못도 있다고 치자. 그래도 그것은 근본적 원인은 아니다. 애초부터 이 건물이 잘못 지어진 탓이다. 새 아파트에, 처음 가져보는 내 집으로 이사 온 바로 그날, 위층에서 들려오는 심상치 않는 소리. 이럴 때 위층의 비신사적 행동을 떠올리기 전에 위층의 자유를 돈으로 속박해 버린 건설 회사를 먼저 떠올려야 한다.

 

자본주의 건축주의 농간에 애꿎은 두 가족만이 비극을 만나는 지점에 우리는 지금 서 있는 것이다. 돈 다 내고, 아늑한 공간에서 가족과 안락한 휴식을 맞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적은 돈을 들여 큰 이익을 내는 것이 자본주의 속성. 아파트를 대충 만들어 놓고 눈속임으로 높은 가격으로 건물을 판다. 그 상황에서 층간 소음을 차단하는, 제대로 된 자제가 들어갔을 리 없다.

 

어쩌다 우연히 같은 건물의 위층과 아래층에 살고 있을 뿐인데, 처절하게 층간 소음을 두고 싸워야 한다.

 

이렇게 해보자. 먼저 층간 소음문제로 위층과 아래층이 심각한 갈등관계에 있다면, 먼저 아래층 사람이 위층의 초인종을 눌러보자.

 

(딩동 딩동)

아래층: “아래층 사람입니다. 잠시 우리 생맥주나 한잔 할까요?”

(뜬금없는 아래층 출연에 긴장. 하지만 생맥주라는 말에 솔깃.)

위층: “생맥주요? 좋지요.”

(아래층 부부와 위층 부부가 나란히 나란히 치킨 집으로 간다)

아래층:(호기롭게 생맥주 네 잔을 큰 소리로 시킨다. 그리곤) “위층 애들이 참 쾌활하고 운동신경도 좋은 것 같아요.”

위층:(이거 칭찬이야? 라는 의문을 갖으면서도) “아, 예. 예...”

아래층: “애들이 뛸 때마다 쿵쿵 소리가 너무 커요. 층간 소음 문제가 심각하단 이 말입니다. 이 아파트, 작은 돈 내고 산겁니까? 아니잖아요. 엄청 비싸게 우리 집이라고 샀는데, 건설회사가 속여 먹었단 이 말입니다. 아이들이 실컷 뛰어놀지도 못하고 말이죠.”

위층: (뭔 수작이지?라는 반응.) “아, 예. 예....”

아래층:(더욱 큰 목소리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이 말씀입니다.”

(그때 주문한 생맥주 네 잔이 나온다.)

아래층:(이어서) “위층 아이들이 무슨 죄입니까. 아이들이 뛸 정도의 진동도 흡수해 주지 못하는 이 현실이 문제지 않겠습니까. 우리 뭉칩시다. 이 아파트를 건설한 회사를 상대로 한 번 제대로 맛을 보여주자 이 말씀입니다. 어때요?”

위층: “아, 예. 예...”

아래층: “좋습니다. 그럼, 우리 뭉친 것으로 알고 건배!!”

 

두 가족이 뭉쳐 아파트를 지은 건설 회사를 상대로 싸움을 전개한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까. 아니, 그렇게 하는 게 정상이지 않은가.

 

성석제의 위풍 당당 가족

 

강을 사이에 둔 두 가족이 있다.

 

여기 A 가족이 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정자와 난자의 필연적 만남으로 탄생한 가족이 아니다. 드라마 촬영지로 만들어졌다가 지금은 폐허가 된 곳에 ‘아픈 사연’을 가진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이들의 만남이다.

 

이들은 버려진 ‘상업적 터전’(드라마 터전이었고 관광지로 조성됐지만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폐허의 공간)에 하나 둘씩 우연히 모여든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 인생의 허무에 빠진 남자 등등.

 

이들은 이 폐허의 공간에 모여 ‘또 다른 가족’을 만든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는 엄마가 되고, 인생의 허무에 빠진 남자는 아빠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는 또 다른 ‘아이’로. 그렇게 우연히 결성된 가족은 폐쇄된 공간에서 그들만의 터전을 만들고 있다.

 

여기 B 가족이 있다.

 

이 가족 역시 남녀의 결합이라는 관계로 묶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A 가족과 다르다면 B 가족에는 ‘여성’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B 가족은 ‘주먹’으로 맺어진 가족이다. 조직폭력배들이다. 이들은 주먹으로 뭉치고, 형님과 동생만 있을 뿐 아버지와 어머니, 부모와 아들이라는 존재 자체가 없다.

 

A와 B 가족의 혈투

 

B 가족의 대장이 탄 외제차가 한적한 시골길을 가고 있다. 그때 A 가족에 포함돼 있던 성숙한 한 여자아이가 동네슈퍼에서 물건을 산 뒤 걸어가고 있다. 여자 아이 뒤를 천천히 외제차가 쫓고 있다. 여자아이는 무섭다. 차 안에서는 저 여자아이를 납치하느냐를 두고 말들이 많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 아이가 사라졌다. 풀숲으로 숨어든 것이다. 이 여자아이를 찾기 위해 B 가족의 똘마니가 차에서 내려 수색한다. 마침내 찾았지만 B 가족의 똘마니는 A 가족의 덩치 큰 또 다른, 잠복해 있던 아이로부터 뒷덜미에 무시무시한 몽둥이 공격을 당해 힘없이 쓰러지고 만다.

 

이를 계기로 B 가족은 A 가족의 근거지를 수색하게 되고 급기야 A 가족과 B 가족의 혈투가 진행된다.

 

A 가족에게서 폭행을 당한 B 가족의 보복 폭행으로 치닫는 싸움이다. 소설 내용은 진지하지 않다. 성석제 특유의 입담으로 이게 싸움인지, 개그콘서트의 연출된 주먹질을 보고 있는지 헷갈린다. 전혀 심각하고 대립적이지 않은, 그냥 A가족과 B가족의 피터지고, 가끔씩은 지저분한 대결이 벌어진다.

 

그 사이에 강 저 편에서 포클레인과 중장비로 무장한 공사가 점점 이 쪽으로 다가온다. 그제야 A 가족과 B 가족은 이렇게 피터지게 싸워봤자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픔 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강이 파헤쳐지고, 무너지고 있는 현실에 공감대를 형성한다.

 

성석제의 <위풍당당>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생물학적이고 유전적인 가족 개념이 아니다. 아픈 사람들이 뭉쳐 있는 가족과 주먹으로 맺어진 가족의 웃지 못 할 해프닝을 담고 있다. 그 사이에 그들의 터전이 되고 있는 강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층간 소음문제로 갈등 관계에 있는 아래층과 위층도 생물학적으로, 혹은 유전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같은 공간에 들어서게 됐고, 위층과 아래층이라는 특별한 관계가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층간 소음문제로 서로 아프고, 상처만 되는 싸움을 전개할 것인가. 아니면 서로 힘을 합쳐 지금은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울 것인가. 그것은 선택의 몫이다. 층간 소음문제로 다툼의 상황에 있다면 아래층이든 위층이든 먼저 성석제의 <위풍당당>을 권해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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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