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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31 지게꾼이 시를 쓰는 세상을 꿈꾼다⋯진은영의 <우리는 매일매일> (2)

내가 배운 인류학의 가장 기본적 학문 탐구방법은 ‘참여관찰’이다. 문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인 만큼, 연구하고자 하는 그곳에 관찰자로 참여해 ‘제3자’의 입장에서 기록하고 생활 하나하나를 연구해 나가는 방법이다.

예컨대 지게꾼의 문화를 탐구한다고 치자. 인류학자는 지게꾼과 함께 오랫동안(6개월이든, 1년이든 그 이상의 기간이든) 생활하면서 그의 일상과 그의 모습 하나하나를 기록한다. 아무런 주관적 판단 없이 객관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기록하게 된다.

이후 기록된 모든 자료를 바탕으로 ‘지게꾼의 문화와 습성’을 연구하고 그 속에서 어떤 규칙을 찾아낸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서로 다른 두 인류학자가 똑같은 지게꾼의 일상을 참여관찰을 통해 연구했지만 그 결과는 전혀 엉뚱하게 나오는 경우가 있다.

A와 B 인류학자가 같은 시기, 같은 지게꾼을 연구하고 난 뒤 이런 연구 논문을 발표한다. 먼저 A 인류학자의 연구논문이다.

“지게꾼은 새벽 일찍 일어났다. 지게꾼은 산으로 간다. 산에서 땔감을 잔뜩 지게에 진 채 집으로 온다. 집에 도착해서 아내, 두 명의 어린 아이들과 함께 아침을 먹는다. 아침을 먹은 지게꾼은 땔감을 도끼로 알맞게 쪼갠 뒤 한 쪽으로 가지런히 쌓아 둔다. 땔감은 1년 내내 그들의 방을 따뜻하게 데워 준다. 지게꾼의 아내는 아침상을 치우고 들로 나간다. 들에서 산나물을 채취해 점심과 저녁에 올릴 반찬을 준비한다. 아이들은 옷을 갈아입고 30여 분을 걸어서 학교에 간다. 이들의 일상은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이 그들에게 주는 만큼 즐기며 사는 자연친화적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반면 B 인류학자의 연구논문을 이렇게 시작된다.

“지게꾼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산에서 나무를 해 왔다. 나무를 하는 동안 지게꾼은 몇 번이나 산비탈에서 넘어져 팔에는 상처투성이였다. 가시에 찔리기도 수차례였다. 겨우겨우 땔감을 해온 나무꾼은 지친 몸을 부리며 아침상에 앉았다. 아침상에는 거친 나물 반찬 몇 가지와 보리, 쌀이 섞인 잡곡밥이 전부였다. 아침마다 땔감을 때는데 매운 연기가 가득해 눈이 아팠다. 아침상을 물린 아내는 들로 나갔다. 반찬거리를 챙기기 위해 아내는 열심히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게꾼의 집에는 냉장고도 없었다. 그들은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불편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매운 연기와 거친 밥, 그리고 몇 가지 되지 않는 빈곤한 반찬이 그들의 삶을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같은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도 분명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어느 것이 맞다 틀리다, 할 수 없다. 모두 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A 인류학자와 B 인류학자의 차이점은 ‘관점’에서 비롯된다.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 그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넘겨 짚어보면 A 인류학자는 생태나 자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각이겠고, B 인류학자의 경우 문명의 편리함에 주안점을 두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또 한편으로는 A 인류학자나 B 인류학자 모두 객관적인 지게꾼의 모습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지게꾼의 모습을 ‘관찰’과 ‘방관자’의 입장에서 바라 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게꾼의 삶과 모습을 가장 객관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 답은 A, B 인류학자도 아닌 바로 지게꾼 자신이 자신의 이야기를 적는 것일 것이다. 분명한 것은 A, B 인류학자에게 있어 ‘지게꾼을 살펴본 모습’은 기록할 수 있겠지만 ‘지게꾼’이 절대 되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나는 녹기 시작하지만 누구의 혀끝에도 닿지 못했다"

서두가 길었지만 이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은 까닭은 진은영 시인의 고민이 여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진은영 시인은 이화여대 철학과를

 나온, 80년대 대학을 다닌 시인이다. 이 시인에게는 늘 따라 다니는 고민이 있다. 진은영 시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이주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며 성명서에 이름을 올리거나 지지 방문을 하고 정치적 이슈를 다루는 논문을 쓸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을 시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사회참여와 참여시 사이에서의 분열, 이것은 창작과정에서 늘 나를 괴롭히던 문제이다.”

진은영 시인은 이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과 웹이 보편화돼 있는 속에서 우리는 인터넷에 혹은 트위터를 통해 사회에 참여하는 글들을 많이 쓸 수 있다. “현 정부의 정책은 정말 잘못됐다” “노동자들이 죽어가는 이 사회가 과연 제대로 된 사회인가” “미국 쇠고기를 왜 수입해야 하는가”라는 글을 누구나 쓸 수 있고 누구나 말할 수 있다.

즉 너무나 쉽게 우리는 사회참여를 할 수 있는 시대에 서 있다. 그런데 정작 시인인 진은영은 “그것을 시로, 창작으로 하기는 너무 어렵다”고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진은영 시인의 시를 하나 읽어보자.

그는 나를 달콤하게 그려놓았다

뜨거운 아스팔트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나는 녹기 시작하지만 아직

누구의 부드러운 혀끝에도 닿지 못했다

그는 늘 나 때문에 슬퍼한다

모래사막에 나를 그려놓고 나서

자신이 그린 것이 물고기였음을 기억한다

사막을 지나는 바람을 불러다

그는 나를 지워준다

그는 정말 낙관주의자다

내가 바다로 갔다고 믿는다(<멜랑콜리아>에서)

이 시를 두고 혹자는 ‘소통의 부재’로 해석했다. 뜨거운 아스팔트와 아이스크림, 나는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녹기 시작하지만 그 누구의 혀끝도 닿지 못한다. 나의 달콤함을 느끼기도 전에 나는 녹아버리니 서로 관계 맺지 못하고 소통이 되지 않는 모습을 그려놓았다.

나아가 ‘아스팔트’와 ‘아이스크림’이 던져주는 묘한 긴장관계도 느낄 수 있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자신의 노동으로, 자신의 근육으로만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과 호흡하지 못하고, 다가갈 수 없는 ‘나’의 존재를 말해주는 시이기도 하다.

지게꾼에게 ‘노래하라, 시를 쓰라’고 우리는 과연 맹랑하게 주문할 수 있을까. 노동자에게 ‘왜 시를 쓰지 않느냐’ ‘시를 써야 한다’고 맹렬하게 우리는 주장할 수 있을까. 아침에 퉁퉁 부은 발을 끌고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야 하는 그들에게 ‘시와 문학’은 사치이자 가까이 할 수 없는 그 무언인지도 모를 일이다.

여기서 다시 진은영 시인의 말을 인용해 보자.

“지게꾼이 자신이 온몸으로 사는 삶을 통해 지게꾼의 시를 만들어내듯이 시인은 그가 온몸으로 사는 것만큼 그의 시를 쓴다. 지게꾼이 아닌 시인이 지게꾼의 고된 삶을 ‘머리’로 사유하거나 ‘심장’으로 애틋해하면서 지게꾼의 목소리를 그저 재현하려고만 한다면, 그는 곤경에 빠질 것이다.”

앞서 이야기 했던 A, B 인류학자는 그러니까 지게꾼의 고된 삶을 ‘머리’와 ‘심장’으로 애뜻해하면서 그저 재현하려고만 했던 것이다. 그러니 A, B 인류학자는 절대 지게꾼이 되지 못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지게꾼이 온몸으로 자신의 삶을 시로 만들어내면 좋겠지만 그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이제 시인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진은영 시인의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보자. 진은영에 따르면 ‘지게꾼이 온몸으로 사는 삶만큼 시인은 그의 온몸으로 사는 것만큼 그의 시를 쓰면’ 된다.

흰 셔츠 윗주머니에

버찌를 가득 넣고

우리는 매일 넘어졌지

높이 던진 푸른 토마토

오후 다섯 시의 공중에서 붉게 익어

흘러내린다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열쇠 잃은 흑단상자 속 어둠을 흔든다

우리의 사계절

시큼하게 잘린 네 조각 오렌지

터지는 향기의 파이프 길게 빨며 우리는 매일매일(<우리는 매일매일>)

‘틀린 것을 말하기’ 위해 우리는 너무 오래 생각했다고 시인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매일매일 넘어지며 어둠 속에 갇혀 있는 우리의 현재도 보여준다. 진은영 시인에게 있어 어쩌면 사회참여를 하는 것과 참여시를 쓰는 것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참여를 하면서 참여시를 쓰는 존재로 자신을 인식할 때 자신은 뭔가 부족하고, 과연 내가 참여시를 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져 버린 셈이다.

아마도 그것은 문학과 정치의 상호 배타적(?)관계 때문일 것이다. 사회참여가 정치적 행위라면 참여시는 문학적 범주에 속한다. 정치적이면서도 문학적이고, 문학적이면서 정치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것! 이것이 진은영 시인이 꿈꾸는 모습이다. 그러나 ‘정치적’과 ‘문학적’이란 것, 이 두 가지가 모두 결합되는 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그의 또 다른 시를 음미하면서 글을 맺는다. 제56회 현대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로 결정된 진은영 시인에게 축하의 말도 전하고 싶다.

가만히 어둠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내가 모르는 일이 흘러와서 내가 아는 일들로 흘러갈 때까지

잠시 떨고 있는 일

나는 잠시 떨고 있을 뿐

물살의 흐름은 바뀌지 않는 일

푸르던 것이 흘러와서 다시 푸르른 것으로 흘러갈 때까지

잠시 투명해져 나를 비출 뿐

물의 색은 바뀌지 않는 일

모르는 일들이 흘러와서 조금씩 젖어드는 일

내 안의 딱딱한 활자들이 젖어가며 점점 부드러워지게

점점 부풀어 오르게

잠이 잠처럼 풀리고

집이 집만큼 커지고 바다가 바다처럼 깊어지는 일

내가 모르는 일들이 흘러와서

내 안의 붉은 물감 풀어놓고 흘러가는 일

그 물빛에 나도 잠시 따스해지는

그런 상상 속에서 물속에 있는 것 잠시 잊어버리는 일(<물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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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