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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11 우리에게 ‘왕’은 필요한가∣성석제 <왕을 찾아서>

우리에게 ‘왕’은 필요한가.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이 우선 성석제의 <왕을 찾아서>를 읽는 준비가 될 것 같다. ‘왕’이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 ‘왕’은 권력의 상징이다. 어느 시대든 간에 왕은 존재해 왔다. 다만 그 이름만 바뀌었을 뿐.

‘왕’은 여러 종류가 있다. 권력을 쥐기 전까지는 모두 국민들을 위한다는 말을 한다. 국민들이 최고이며, 국민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돼 있으며, 국민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소리 높여 말한다. 그러나, ‘왕’이 된 이후에는 변한다.

얼마 전 미국의 폭로 전문사이트인 위키리크스(wikileaks)가 한국 대통령에 대한 평가 자료를 내놓았다는 뉴스가 있었다. 주한 미국 대사의 평가 자료를 바탕으로 내놓은 결과인데 그 멘트가 눈길을 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성격이 다혈질이고 보수적인 정치 이념을 갖고 있는데, 대다수 정책 현안에 대해서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국제무대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로 외교 정책 모든 부문에서 능숙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고졸 출신의 대통령으로서 국제무대에서는 신인이지만 주관이 뚜렷하고 신념이 확고하다.”

민주주의에서 ‘왕’은 대통령이다. 아직까지 왕이 있는 나라들이 많다. 영국과 일본이 그렇고 아랍의 여러 나라에서도 왕의 혈통이 보존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의 선거를 통해 ‘왕’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왕’을 모시고(?)사는 꼴이다.

가정에서, 회사에서, 동호회에서, 친목모임에서, 그 이름만 다를 뿐 ‘가장’ ‘사장’ ‘회장’ 등 수많은 ‘왕’을 모시고 살아간다. 그런데 과연 ‘왕같은 왕’을 만나 본 적이 있는가???

어떤 왕을 찾고 있는가

성석제 작가를 직접 만났던 적이 있다. 1996년이었던 것 같다. 서울신문사에 있으면서 그를 인터뷰 한 적이 있다. 당시 촉망받는 30대 작가군이라는 타이틀로 인터뷰를 진행했었는데, 은희경, 차현숙, 박상우, 성석제 이렇게 네 명의 30대 작가들을 만났던 기억이 난다.

그의 소설 <왕을 찾아서>도 성석제 소설가로부터 직접 받았다. 책의 첫 장에 성석제 작가가 직접 사인한 글자도 보인다. 오랫동안 책장에 보관돼 있다 다시 읽게 된 셈이다.

어떤 계기가 <왕을 찾아서>라는 책을 다시 읽게 됐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성석제 작가는 개인적으로 아주 존경해 하는 작가 중 한명이다. 그의 소설은 철저하게 ‘농부형’이다. 누구나, 어떤 이든 한번쯤은 겪어 봤을 만한 평범한 이야기들을 그는 적는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는 그의 글을 통과하고 나면 진부하지 않고 재치 발랄한 언어로 탈바꿈되면서 재밌는,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탈바꿈된다.

<왕을 찾아서>는 한 조그마한 지역 조직의 ‘왕’ 마사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사오는 일본 이름으로 한글로 고치자면 ‘정부(正夫)’이다. 마사오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때 경찰이었는데 아들을 낳자마자 일본 이름을 지었다. 곧이어 해방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한글 이름을 찾았지만 마사오는 그냥 ‘마사오’를 썼다. 그 이유를 두고 많은 궁금증이 일었지만 작가는 다른 엉뚱한 곳에서 이유를 찾는다.

“마사오의 한자어인 ‘정부(正夫)’는 해방이 되면서 대한민국 ‘정부(政府)’의 그것과 발음이 같았고, 남편과 아내가 있으면서도 다른 남자와 여자를 사랑한다는 의미의 ‘정부(情夫, 情婦)’와도 소리가 같아서 마사오는 그냥 마사오를 쓰기로 했다.”

그래서 <왕을 찾아서>에서 ‘왕’인 마사오는 “마사오는 그냥 마사오이다”라는 말로 통칭된다.

<왕을 찾아서>는 작은 지역의 1인자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사오를 정점으로 2인자, 그리고 마사오가 병들어 조직에서 퇴출됐을 때 그 후임을 두고 벌어지는 모략과 폭력, 2인자의 끝없는 갈등과 싸움.

폭력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왕을 찾아서>는 전혀 무겁지도 않고 잔인하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폭력적이지 않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작가의 ‘입담’과 ‘재담’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잔뜩 호기심만 불어 넣는다.

성석제 작가 특유의 이야기꾼 자질과 술술 넘어가는 평이하면서도 입체적인 소설 쓰기는 <왕을 찾아서>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가령 이런 대목이 나온다. 마사오가 병원에 입원했는데 마사오는 병원비를 그동안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더 이상 치료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병원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인다.

그동안 마사오의 은덕(?)을 어떤 방식으로든 입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다. 지역민들이 병원에서 시위를 하지만 병원은 끄덕도 하지 않는다. 그러자 지역민들을 입을 모아 이렇게 외친다.

“우리는 앞으로 이 병원을 절대 이용하지 말 것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절대 아프지 말아서 병원에 오는 일이 없어야 한다. 우리가 병에 걸리지 않으면 이 병원은 마침내 망하고 말 것이다. 앞으로 절대 아프지 말자.”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병원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병원을 망하게 하기 위해” 찾는 방법이 “우리 스스로 건강을 챙기고 절대 병원에 오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한참이나 웃었다. 한참이나 생각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병원은 돈에 환장한 조직인데, 그 조직과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건강 챙기기’라는 결말에 이르는 모습은 읽기도 신나고, 괜히 허허! 허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성석제 소설을 읽는 재미

<왕을 찾아서>에는 성석제 작가의 특유의 재치와 문장 들이 가득하다. 그런 재치와 문장이 띄엄띄엄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거의 매 장마다 나오니, 이 소설은 한번 손에 잡으면 계속 읽지 않을 수 없다.

1996년 내가 성석제 작가를 만나러 갔을 때, 아마 그때 장소가 평촌-산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집으로 찾아갔는데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한 쪽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아 모습으로 나를 맞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는 한 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나: “아니, 어쩌다 이렇게 됐습니까?”

성석제 작가: “좀 다쳤습니다.”

나: “많이 다치셨습니까?”

성석제 작가: “아닙니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데 의사가 깁스를 하라고 하더군요.”

나: “불편하시겠습니다.”

성석제 작가: “조금은 불편하네요.”

뭐, 이런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무의식중에 떠 오른다.

나: “아니, 어쩌다 이렇게 됐습니까?”

성석제 작가: “좀 쉬고 싶어서 몽둥이로 다리를 기절시켰습니다. 하도 찾는 놈들이 많아 깁스를 하고 두문부출하고 있습니다.”

나: “많이 다치셨습니까?”

성석제 작가: “다리 한쪽이 숨을 못 쉬겠다고 시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연필을 집어넣어 가끔 긁어주기도 하는데, 이놈의 다리가 분초를 다퉈 짜증난다고, 숨이 막힌다고 하는군요.”

나: “불편하시겠습니다.”

성석제 작가: “불편은요? 찾는 놈 있으면 이런 꼴이라고 말하면 변명하기 좋지, 어디 가지 않으니 드러누워 잠자기 좋지,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으면 책 읽으면 되지, 다리 한쪽이 계속 시위를 하는 것만 빼고는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천국이 이보다 더 좋을까요?”

성석제 작가의 이야기 ‘꾼 기질’은 그 어느 소설가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그의 소설이 빛이 나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고, 식상하지 않고, 신선하다는 것에 있다.

<왕을 찾아서>는 1인자를 둘러싼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곳엔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인생이 들어 있다. 삶을 통해 한번쯤은 접할 수 있는 슬픔과 기쁨, 사랑과 배신, 분노와 절망 등 오감각이 모두 녹아들어 있다.

우리에게 ‘왕’은 어떤 의미인지.....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내가 정말로 인정하고 스스로 따르고 싶은 ‘왕’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성석제의 <왕을 찾아서>를 읽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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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