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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8.31 아비와 어미의 죽음…<성냥의 시대>와 <옥천 가는 길>

“나도 이제 늙었다.”

아비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이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것! 세월이 흘렀으니 늙는 것은 당연한 것. 늙을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아버지의 고향인 J읍을 떠났다. 아니, 탈출했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다시 J읍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나도 이제 늙었다.’는 전화를 받은 한 달 뒤 아버지는 자신이 일하던 공장에서 나무에 엎드려진 채 숨졌다.

조경란의 <성냥의 시대>는 아비와 아들의 이야기이다.

“엄마가 그렇게 옥천에 가고 싶어 했는데 왜 못 갔을까.”

딸 두 명은 차 안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금 그들은 옥천으로 가고 있다. 차들로 꽉 들어찬 강변북로에 접어들었고 길은 현충일 연휴를 맞아 숨 쉴 틈조차 없이 막힌다. 아흔 살이 넘은 어머니는 그러나 조용히 차 안에 누워 있다.

“그렇게 가고 싶어 했는데 이제야 가네. 엄마! 좋아요?”

딸들은 그렇게 엄마에게 묻지만 어머니는 대답이 없다. 조용히 눈을 감고 삼베옷을 입고 있을 뿐. 어머니는 죽어서 마침내 옥천에 가게 된 것이다. 그녀들이 타고 있는 차는 구급차이다. 서울 병원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구급차에 싣고 그들은 지금 어머니의 고향, 옥천으로 가고 있다.

김숨의 <옥천 가는 날>의 풍경이다.

금붕어는 새끼를 왜 잡아먹을까

<옥천 가는 날>은 즐거운 나들이가 아니다. 강변북로부터 막히는 고속도로는 경부선에 들어서고서도 천안까지 뚫리지 않는다. 지금 어머니는 수의를 입고 구급차 뒤에 조용히 누워 있다. 둘째와 셋째 딸인 정숙과 애숙이 구급차에 같이 타고 있다.

애숙은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전 옷을 다 벗기고 병원에서 삼베옷으로 갈아입혔다. 40kg도 나가지 않는 어머니는 그러나 축 늘어진 몸을 가누지 못해 힘겨웠다. 그렇게 옷을 갈아입혔을 때쯤 정숙이 나타났고 이들은 구급차를 타고 지금 예약된 장례식장이 있는 옥천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가보고 싶던 옥천을 이제야 가네.”

두 딸은 눈을 감고 누워있는 어머니를 곁에 두고 이런 말을 한다. 잠시 쉬어가기 위해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 주변의 승용차 중 충북이라는 번호판을 달고 있는 차를 두고 ‘저거 옥천 가는 차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옥천은 그들에게 고향으로의 회귀이자 어머니의 안식처인 셈. 지나가는 승용차 모두가 마치 옥천으로 가는 것처럼 느껴졌으리라. 즐거운 나들이도 아니고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내 주는 의식을 그들은 지금 치르고 있는 중이다.

애숙은 어머니를 챙기느라 정작 자신은 양말도 신지 않은 채 구급차에 올랐다. 정숙이 그것을 확인하고 휴게소에서 양말을 사서 애숙에게 건넨다. 연두색 양말이다. 흰색도 아니고 검은색도 아닌 연두색. 소설 속에는 애숙과 정숙의 정확한 형편이 묘사되지는 않는다. 구급차 안에서 이뤄지는 두 자매의 이야기를 가만가만 들어보면 사는 형편이 짐작될 뿐.

애숙의 지갑 속에는 온갖 영수증과 신분증이 어지럽게 섞여 있고, 어머니가 서울에 올라오셨을 때는 어머니를 ‘치매환자’로 속여 요양급료를 탄다. 살아가기 힘들 때는 큰 언니에게서 돈을 빌린다. 어떤 삶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20년을 서울에서 딸들과 함께 생활해 온 어머니는 서울생활이 즐거웠을까. 20년 동안 줄곧 당신이 살아온 그곳, 옥천만 생각하지 않았을까. 죽어서 회귀하는 그녀의 삶.

“옥천은 왜 옥천일까.”

두 딸은 구급차 안에서 이런 이야기를 나눠 본다. 싱거운 이야기이다. ‘옥천은 왜 옥천일까.’라는 물음에 누워있는 어머니는 어떤 말을 해 줄까. 죽은 사람은 말이 없지만 만약 이 물음에 어머니가 답을 한다면 이런 답이 나오지 않았을까.

“내가 살아온 곳이고, 너희들을 낳았으며, 남편을 떠나보냈고, 긴긴 밤 홀로 밤을 새웠으며, 내 인생의 모든 흔적이 묻혀 있는 곳. 이제 그곳에 내 몸뚱이도 묻히기 위해 간다.”

어머니는 당신이 죽으면 꼭 옥천에서 장례식을 치르도록 원했을 것이다. 죽음이 마침내 당신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리라. 소설 속 한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금붕어가 새끼를 오십 마리 낳았는데 어느 날 자꾸 새끼가 줄어드는 거야. 어미가 새끼를 잡아먹는다고 하더라. 새끼를 격리시켜 줘야 하는데, 그렇게 못했더니 삼십 마리밖에 남지 않았어.”

성냥의 시대는 갔지만

조경란의 <성냥의 시대>는 아비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비는 젊었을 때부터 성냥공장에서 일을 한다. 인정받는 기술자이자 사장의 신임이 두터웠다. 성냥이 지극한 사랑을 받았을 때는 큰 트럭 10대 분량의 나무가 공장에 쌓여 있었다.

일꾼이 100명이 넘어도 일손이 모자랄 지경. 그러나 그것은 한 때였다. 성냥이 사랑받을 때 아비는 마찰면의 다른 면에 시구를 써넣어 특별한 성냥갑을 만들기도 했다. 아비가 만든 성냥은 특히 불어오는 바람에 강해 뱃사람들이 사랑했다고 한다. 아비는 황 비율을 섞는 핵심 파트에서, 사장 밖에 모르는 비밀도 아는 특별한 성냥공장 직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몇 명만이 남아 겨우 일을 하고 있어, 요즈음 시대에 성냥은 갈 곳을 잃어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아비는 쌓아 놓은 나무더미에 엎어져, 한 손에는 성냥을 쥔 채 조용히 숨이 멎어 있다.

아비의 죽음으로 다시 찾아온 J읍. 그러나 반갑고 그립고, 아름다운 기억은 거의 없다. 고작 생각나는 것은 자신이 아주 어렸을 때에 번잡한 공장의 한 공터에서 열심히 놀았던 기억밖에는.

J읍을 탈출한 나는 도시로 가 택배 일을 한다. 다시 돌아왔지만 아비의 진한 흔적만 찾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 성냥의 시대는 갔지만 여전히 나에게 얹혀있는 삶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그래서 아비의 죽음을 맞아 J읍에 발을 들였지만 나는 다시 탈출하고 싶다.

김숨의 <옥천 가는 길>과 조경란의 <성냥의 시대>는 어미와 아비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끝내 이어지고 있는 무거운 대물림도 느껴진다. 두 소설은 창작과 비평 가을 호에 실린 단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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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