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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10 헬로! 오바마(3)-작은 공동체
  2. 2009.01.08 헬로! 오바마!(1)

Small Community! Obama

제 44대 미국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버락 오바마에 대해 적극 지지를 보낸 이들 중에는 유색인종들이 많았다고 해. 라틴계 어메리칸, 아시안 어메리칸, 흑인, 히피족 등등등…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그동안 억눌려 왔던, 혹은 차별받았던 그들의 역사가 흑인인 오바마로 향했던

것은 아닐까.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여러 가지 문화가 공존하는 다인종 다문화 사회지만 높은 곳에 있는 분들은 대부분 백인들이었지.
샌프란시스코 15번가에 위치한 유명한 커피숍, 이름은 잊어버렸구나. 카페모카를 시켰는데 은근한 맛이 일품이었어. 그곳에서 조이스 김을 만날 수 있었어. 30대 초반의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아시아 연예문화와 관련된 콘텐츠를 미국 아시안 어메리칸들에게 서비스하는 숨피닷컴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이었지. 얼마전까지만 해도 변호사였는데, 변호사를 일을 접고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이야기하더군. 그녀는 한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했어. 그녀의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기로 하자.
“LA(로스엔젤레스)의 한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리얼 프로그램이 하나 있어요. 몇 명의 남성들이 후보자로 나와서 가장 훌륭한 남편감에 도전하는 리얼(실제) 프로그램인데, 최근 한국계 남자가 최종 후보자로 뽑혔어요. 대단한 일이죠?”
그녀는 나에게 반문했어.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지. 그녀가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이른바 ‘왕따’가 아주 심했다고 하더군. 그녀의 다른 피부색과 어정쩡한 말투 모두 백인들에게는 훌륭한 놀림감이 됐다는 거야. 하지만 2008년 연말, 미국 방송국에서까지 한국계 미국인이 최종 선택을 받을 만큼 미국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고 그녀는 강조했어. 그녀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볼까.
“미국 전체 인구에서 아시안 어메리칸은 약 3%도 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 비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미국에서는 아시안 어메리칸들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고, 비중있는 일을 많이들 하고 있죠. 이것 또한 미국 변화의 한 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조이스 김은 아주 명랑한 여성이었어. 이야기하는 순간순간에도 웃음이 떠나지 않더군.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고, 혼자서 숨피닷컴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시안 어메리칸들이 미국 중심무대로의 진출이 곳곳에서 가시화되고 있어 상쾌하다는 반응이었어.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 수정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등 그동안 전세계를 휩쓸었던 하나의 이즘(~ism)이지. 나는 이러한 ‘~ism’속에서 최근 몇 년동안 우리사회의 가장 주 관심사는 금융이었다고 봐. 돈이라는 것이지. 찬찬히 최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고 충격을 줬던 사건들을 떠 올려보자. 모두가 그 배경과 계층들은 달랐지만 하나로 귀결되는데 그 원인은 ‘돈’이었어. 돈이 최고의 선(善)이 돼 버린 것이지. 땀흘리는 노동을 읽어버렸다고나 할까. 돈이 돈을 벌고, 돈이 돈을 부르고, 1개의 돈이 2개의 돈이 되고...금융 자본주의에서 땀 흘리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 시작된 거야.
누군가 그랬다고 하지. 아마 솔 알린스키라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알린스키는 그의 책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에서 자본주의에 존재하는 계층을 세부류로 나눴지. 하나는 가진자(haves), 가지지 못한자(have-nots), 조금 가졌지만 더 가지고 싶어하는 자(little have-more wants)가 있다는 거야.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 계층은 ‘조금 가졌지만 더 가지고 싶어하는 자’의 의식에 달렸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대단히 조심스럽게 변화에 반응한다는 것이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변화에 적응한다는 것이야. 나에게 이익이 되면 그것은 변화에 있어 선(善)이요,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그것은 변화에 있어 악(惡)이라는 것이지. 이런 사람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뜨뜻미지근한 소시민의 모습만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사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알린스키는 소통에 대해서도 한마디했어.
“다른 사람들과 소통은 당신이 그들에게 애써서 전달하려는 것을 그들이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일어난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만 사물을 이해한다. 이는 당신이 그들의 경험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통은 참 중요한 단어인 것 같아.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소통이 없으면 갈등과 배척만 있을 뿐이지. 알린스키의 말은 쉽지만 이 또한 얼마나 힘든 작업일까. ‘당신이 그들의 경험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소통이라면 정말 어려운 일일꺼야. 그러나 이러한 소통을 이룰 때 정말 우리는 살만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버락 오바마를 두고 노무현 전대통령과 비교하는 기사가 많이 나왔지. 물론 나도 관련 기사를 쓴 적이 있어. 시민들의 참여를 적극 이끌었고 참여의 정치철학을 통해 권력자가 됐다는 사실, 인권변호사 등 자라온 과정이 비슷하다는 것, 인터넷을 참여의 수단으로 적극 이용했다는 점 등 많은 부분이 비슷했어.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영국의 가디언지는 ‘인터넷 대통령, 로그온하다’는 기사를 내놓았고, 버락 오바마가 당선되자 미국의 주요언론들은 ‘인터넷 대통령, 오바마’라는 기사를 쏟아냈어. 루스벨트가 라디오대통령이었고 캐네디가 TV대통령이었다면 버락 오바마는 인터넷 대통령이라고들 불렀지.
인터넷 대통령, 노무현과 오바마...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어. 난 이렇게 평가하고 싶어. ‘변화를 위한 혼돈기’였다고. 혼돈이란 뒤섞여 뒤죽박죽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 그러나 혼란속에는  정돈을 향해 끝없이 나아가는 기운도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노무현 정부를 나는 그런 혼돈의 시기였다고 평가하고 싶어.
금융이 사회를 지배하고 뜨뜻미지근한 변화만이 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변화에 적응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전체 사회를 뒤집어 엎을 만큼 우리에게 동력이란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혁명이라는 말은 점점 수정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앞에서 퇴색돼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소공동체에 대한 꿈을 그리고 싶어.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형용준 사장, 아! 이 사람은 미니홈피로 지금은 많이 알려져 있는 싸이월드의 창업자였어.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더군. 그와 인터뷰 도중에 한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더군.
“샌프란시스코에는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많이 살아요. 재팬타운, 차이나타운 등이 있지요. 이들은 매년 정기적으로 축제를 벌여요. 그들의 독특한 문화를 미국인들에게 알리고 참여를 권유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문화를 미국인들에게 전달하는 거죠. 그런데 샌프란시스코에는 코리안타운이 없어요. 한국문화를 알릴 수 있는 축제도 없고...”
그들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그들만의 공간이라고 해서 폐쇄적이거나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문화와 공간으로 다른 이들을 끌어들이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문화의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 그들의 공간을 존중하고 우리의 공간을 공유하는 것, 이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봐. 이념과 사상이 다르더라도 소공동체는 존재할 수 있다고 봐.
오바마에 기대를 걸고 있는 미국인들도 이런 소공동체를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히피족의 문화, 인디언의 문화, 아시안의 문화, 흑인들의 문화, 백인들의 문화…너무나 다양하고 천차만별인 그런 문화를 인정하고 그들만의 문화가 공유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지. 백인의 문화와 흑인의 문화가 공유되고 흑인의 문화가 아시안 문화와 공유되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게 자극제가 될 수 있는 변화 말이야. 그것을 두고 혁명을 위한 진화라고 표현하면 좀 서투른 말일까.
아직 미국은 그런 소공동체 문화가 뿌리 내리지는 못한 듯 했어. 미국을 취재하면서 취재원들은 거의 모두 백인들이었는데, 취재와 관계없이 나와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은 유색인종들이었어. 샌프란시스코의 주요 도시를 관통하는 칼트레인(CalTrain)의 차표를 검사하는 사람들은 거의 흑인이었고 택시 운전사는 대부분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출신들이었지. 호텔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하우스키퍼 역시 인도사람이었고 슈퍼마켓의 점원은 대부분 흑인들이 차지하고 있었지.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왜 그런 직업군에는 백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까...소공동체가 서로 공유되면서 서로 존중되는 모습은 아니었어.
며칠간의 미국 취재를 마치고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다시 싱가폴항공에 올라 한국으로 돌아왔어. 비행기가 미국 땅을 이륙하는 순간, 처음 도착해 몽고메리역에서 만난 홈리스들의 외침이 들리더군.
“Hey! Give me a money!"
그들은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를 꺼야. 어쩌면 지금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어. 한국으로 솟아오르는 비행기안에서 이런 말을 하고 싶더군.
“Hello! Obama, You focus on grassroots. You are looking around your grassroots continuosly. Pay attention to grassroost' yell…"
풀뿌리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어. 비행기는 샌프란시스코 땅을 뒤로 하고 태평양을 향해 날아올랐지.
-끝(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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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Hello! Obama


미국에 도착한 시간은 2008년 12월10일 오전 11시였어. 샌프란시스코공항에 싱가폴 항공이 사뿐히 내려앉았지. 비행기의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샌프란시스코는 서울의 한 곳에 온 듯한 낯설지 않은 모습이었어. 약 10시간을 허공에 떠 있다 내려앉았더니 시간이 거꾸로 가 있더군. 비행기가 활주로에 도착하자마자 휴대폰을 켰지. 한국과 미국 현지 시간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시간 표시 모드를 설정했지. 휴대폰은 따로 설정하지 않았는데도 자동으로 로밍이 설정되더군. 3G(세대)의 편리함을 느낄 수 있었지. 인천국제공항에서 날아 오를 땐 안개가 사방으로 짙게 깔려 있었어. 긴장이 되더군.

‘이륙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은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솟구치는 순간 사라져 버렸지. 어두운 밤하늘로 솟아올라 1만여m 고도에 이를 때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어. 안개는 사라지고 밤하늘이 펼쳐졌지. 약 10시간의 비행시간이 지루할 것 같아 인천국제공항에서 두권의 책을 샀지. 이번이 여섯 번째 미국 취재인데 늘 비행기안에서의 지루함에 시달렸던 기억이 되살아 났거든. 스튜어디스에게 미안하기도 했어. 입이 심심하고 잠도 오지 않아 계속 스튜어디스에게 뭔가를 요구했거든. 그런 악순환을 끊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 거지.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과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두권이 눈에 들어오더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창비에 연재될 때부터 읽어 본 것이었는데 단행본은 또 다른 느낌이더군.

인천국제공항의 짙은 안개로 별은 보이지 않았어. 저녁때쯤이면 서쪽 하늘에 금성이 떠 있었을 거야. 황석영은 금성을 '개밥 바라기 별'이라고 했더군.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이야기했는데 비행기 안에서 읽는 그의 소설은 젊음의 방황과 고민, 그들의 과거를 보여줬지. 태평양 상공을 시속 960KM로 비행하고 있을 때 그의 이야기는 달콤한 꿈속처럼 느껴졌지. 비행기가 난기류를 만나 흔들릴 때는 공포감에 젖는 느낌으로 다가왔지. 안전벨트 표시등에 불이 들어오면 늘 긴장되기 마련이야.

‘지금 우리 비행기는 급작스런 난기류를 만나 심하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안전벨트를 착용해 주시고 화장실 출입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젊음은 그렇게 쓰러지고, 꿈꾸고, 넘어지고, 일어서고, 짓밟히고, 포기하고, 절망하고, 그래도 삶이었기에 자신을 버티며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까. 이번 취재는 ‘버락 오바마 시대, 실리콘밸리를 가다’는 르포기사였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거창한 구호를 떠 올리지 않더라도 버락 오바마는 변화속으로 미국을 이끌었어. 그의 선거운동 모토가 ‘Change For America'였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젊은이들의 참여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타올랐고, 그러한 열정들이 선거를 축제로 만들었다는 것이지. 인터넷과 모바일 등 새로운 선거 문화가 깊이 뿌리 내리면서 그들의 선거에 뭔가 새로운 변화가 불기 시작했거든.

성장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은밀한 내부를 보듯 조심스러우면서도 고요하고 때론 무척이나 부담스러워. 내가 자라온 과정을 되새기게 되기도 하지만 때론 그것 때문에 내 과거의 아픈 기억과 부끄러운  부분이 들춰지기 때문이지. 낯뜨거웠던 과거가 기억나면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 것 있지. 미국 샌프란시스코까지의 항로는 대부분 바다 위에 떠 있는 시간이야. 태평양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일본열도를 지나고 나면 넓고 깊은 바다위에 떠 있는 것이지. 지구가 자전을 하기 때문에 가만히 떠 있어도 아마 미국이라는 곳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비행기 안에서 깊은 잠을 자지 못해. 붕 떠 있는 듯한 아찔한 기분과 정기적으로 흔들리는 난기류속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지. 잠깐 잠이 들었다 깨어나 지금 현 위치가 어딘지 보여주는 모니터를 보고, 태평양임을 확인한 뒤, 이 비행기가 저 넓고 깊은 태평양으로 곤두박질 친다면 어떻게 될까하는 두려운 상상을 해 보기도 하지.

참, 미국으로 가는 길에 내 좌석은 38H였는데, 비행기 날개부분에 위치했고 내 곁에 두 개의 좌석이 나란히 놓여있었어. 그러니까 세명이 함께 타고 가는 좌석이야. 내 자리가 통로편이고 나머지 두자리는 비행기 창가였지. 헌데 나와 함께 여행하는 두 사람은 연인으로 보였어. 똑같은 옷을 입고 중국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나를 무척이나 부담스럽게 생각하더군. 그 이유는 내가 통로쪽이다 보니 그들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는 내 자리를 넘어서야 했고 내가 앉아 있으면 'excuse me'를 꼭 말해야 했거든. 물론 그들은 10여시간 동안 세 번 정도 밖에 화장실을 가지 않았어. 서로 모니터를 통해 뭔가를 보기도 하고 때론 책을 함께 읽기도 하면서 즐거운 모습으로 하늘을 날고 있었지.

미국 취재를 갈 때마다 늘 느끼는 불편함이 있어. 내게 기분을 어지럽게 하는 것은 입국할 때의 심사대에서 시작돼. 입국 심사대에 표정없이 앉아 있는 이민국 직원들은 하나같이 웃음이 없는 얼굴들이지. 절대 웃어서는 안되는 사람들 처럼. 여권과 입국 기록카드를 내밀면 그들은 천천히 컴퓨터를 통해 여러 가지 자료를 체크하고 여기저기 여권을 넘겨보지. 입국 심사를 진행하게 되거든. 그리고 질문이 이어지는데.

“Business? or Trip?"

사업차, 아니면 관광차 미국을 방문했는지를 묻곤 해. 내 비자는 B1/B2, 즉 비즈니스와 관광비자인데, 늘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나는

“비즈니스 and 트립!”

라고 대답하지. 그러면 이민국 직원은 ‘얼마동안 머무느냐, 어디에 머무느냐’ 등의 몇가지 질문을 던지고 난 그 질문에 간단히 대답하고 말지. 이것까지는 괜찮아. 그런데 그 다음이 나의 기분을 영 나쁘게 한단 말이야. 여섯 번째 방문이고 늘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방문할 때마다 얼굴사진을 찍고 열 손가락 지문을 모두 날인해야 하거든. 휴우~ 그럴 때마다 마치 내가 그들 앞에서 큰 죄를 지은 듯한 움츠러듦에 빠져들지. 나를 우울하게 하지. 이번에는 그래도 아주 짧은 시간안에 심사대를 통과했어. 지난 2006년 12월에 피츠버그를 갈 때는 중간 기착지인 애틀란타에서 심사대를 통과하는데 1시간 30분이나 걸렸거든. 그 당시를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가 없고, 웃겨.

당시 애틀란타 이민국 직원은 나에게 “당신은 한달전에 미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또 방문하는 이유가 뭐냐?”라고 다그쳐 묻더군. 아마 컴퓨터에 내 방문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가 봐. 그래서 내가 “(피츠버그에) 관광차 간다”라고 했더니 그의 말이 아주 걸작이었어.

“관광이라구? 피츠버그는 관광할 곳이 별루 없다!”

헉! 관광할 것이 별루 없는 곳에 그것도 한달만에 다시 입국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따져 묻더군. 미국의 이민국 직원은 마치 내가 작정하고 미국을 방문했다는 듯, 즉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미국에 들어온 것 아니냐는 눈초리를 줬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기분이 찜찜해.

어쨌든 무사히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어. 비행기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됐지. 오후 3시에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의 2번가에서 마이스페이스 리 브래너(정치 컨설턴트)와 인터뷰가 예정돼 있었지. 출발하기 전에 구글맵을 통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마이스페이스가 있는 2번가까지 어떻게 가는지를 확인해 뒀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었어. 공항에서 바트(BART 지하철)를 타고 몽고메리역에서 내리라고 했어. 그리고 몽고메리역에서 20여분을 걸으면 마이스페이스 사무실이 있는 2번가 주소지에 도착한다고 구글맵은 안내해 주더군. 

공항에서 바트는 바로 연결돼 있었어. 몽고메리역까지 5달러65센트였지. 무서운 가격이었어. 여느 때같으면 별 의미없이 넘길 수 있겠지만 환율이 1천420원이었거든. 달러로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되면서 달러화가 무섭다는 생각이 든 거지. 환율이 1천원할때의 5달러65센트는 5천650원이지만, 지금은 8천23원이었거든. 같은 양의 달러였지만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기가 막힐 지경이었지.

바트는 샌프란시스코의 주요 대중교통 수단중의 하나인데 샌프란시스코의 구석구석을 다닐 수 있는 지하철이었어.바트에 8천원의 돈을 내고 탔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더군. 인종도 다양했고 쓰는 말도 서로 달랐지. 미국 사회의 다양성을 볼 수 있는 한 장면이었어.

공항에서 30여분을 달려 몽고메리역에 내렸을 때 나를 가장 먼저 반겨준(?) 이는 귀를 찢는 듯한 고함소리였어. 느닷없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홈리스(homeless)가 나를 향해 손짓을 하며 소리치고 있더군. 깜짝 놀랄 정도의 큰 목소리였어. 공항에서 곧바로 오는 길이었기 때문에 나는 큰 여행가방과 노트북이 든 가방 두개를 들고 낑낑대면서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지. 흑인이었던 홈리스는 나를 향해 "돈 좀 줘!(Hey! Give me a Money!!"라며 소리쳤어. 하마터면 여행가방이 내 손에서 미끄러져 넘어질 뻔 했지. 소리치는 사람은 한명이 아니었어. 지하철 출입구 마다 그들은 주저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더군. 씁쓸한 모습이었어.

황석영은 소설에서 무전여행에 대한 기록을 남겼지. 친구와 떠난 무전여행에서 표없이 기차에 오르지. 달리는 기차안에서 금산에 산다는 한 아주머니를 만나는 거야. 그녀는 약초장사를 하며 서울에서 물건을 조달하러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지. 열차안에서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도중에 아주머니는 "언제 금산에 오거든 우리 집으로 오라"고 말하지. 아주머니와 헤어진 둘은 곳곳을 돌아돌아 금산의 약초 아주머니 가게로 찾아가지. 둘의 초췌한 모습을 본 아주머니는 "음메, 진짜 와부렀네"라며 무전여행의 젊은이 두명을 무척이나 반갑게 맞이하지. 젊은이 두명도 정말 금산의 아주머니를 찾아가면 우리를 반겨줄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반갑게 맞아주는 아주머니를 보고 가슴 뭉클했다고 하지. 정(情)이었지 않을까. 없던 시절, 뭔가 그리웠던 시절에 우리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따뜻한 마음들이 있었단 말이지.

“헬로! 오바마! 당신에게도 정이 있었으면 좋겠어.”

홈리스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만 가질 뿐이었지. 오바마가 1월20일 취임하게 되면 지하철 입구마다 빽빽이 들어서 있는 홈리스들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기를 바랄 뿐이었지. 몽고메리역에 흩어져 있는 홈리스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누기에는 여의치 않았어. 소리를 지르며 위협적인 그들의 모습에서 짙은 어둠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었지. 스쳐 지나가는 그들의 목소리가 미국에서만 울려 퍼지는 소리일까. 서울역과 을지로역에 웅크리고 있는 한국의 노숙자 모습이 겹쳐 떠올랐지. 

홈리스들의 우울한 모습을 뒤로 하고 마이스페이스까지 걸어가야 했어. 구글맵은 어느 지점에서 우회전하고 어느 지점에서 곧바로 가야하고 지시하면서 약 20분의 시간이 걸릴 거라고 하더군. 물론 지금 나는 큰 가방과 여행가방을 든 상태이기 때문에 걸음걸이가 빠르지 않아. 때문에 더 걸릴 수도 있겠지. 택시를 탈 수도 있지만 미국의 엘로우캡(Yellow Cab)은 살인적 가격으로 유명하지. 몇분 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에도 불구하고 10달러는 기본. 캡을 타고 올라가는 미터기의 요금을 보면서 뒷자리에 앉아 있으면 놀라 나자빠질 정도니까. 처음으로 걸어서 길을 찾는 나에게, 그것도 샌프란시스코의 다운타운에서 목적지는 쉽게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어.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인간 내비게이션'이지. 어느정도 지나가다 사람들에게 주소를 들이대면서 물었어. 흑인에게도, 백인에게도, 경비원에게도, 학생에게도...많은 사람들의 ‘인간 내비게이션’을 통해 조금씩 마이스페이스에 다가가고 있었지. 한참을 헤매다 겨우겨우 마이스페이스 사무실을 도착했지. 2번가는 IT(정보통신)업체들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라고 하는군.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도 있고. 오피스 현관에는 안내원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지. 우선 그녀에게 어느 업체의 누구를 만나러 왔다고 말하고 기다려야 했어. 늦가을같은 날씨였는데 내 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어. 

오피스 현관을 지키고 있는 이는 30대 후반의 흑인 여성이었어. 검정색 제복을 입고 있었지. 내 발음이 영 시원치 않았는지 그녀는 쉽게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어.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말이란 수단에 불과하지. 어색한 발음이 서로 오가면서 충분히 서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지. 마이스페이스 스테파니 양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에게 대뜸 물었어.

“What do you think about President elect Obama?(오바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녀는 거침없이 말을 하더군. 미국인들은 말을 할 때 추임새로 ‘you know(당신도 알다시피)’라는 말을 참 많이 사용해.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어, you know, you know하면서 오바마에 대해 이야기했지.

“아주 스마트하고 미국에 변화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다. 나도 오바마를 선택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말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더군. 그래서 내가 ‘그리고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기도 하죠?’라고 물으니 ‘물론 그렇다’라고 대답하더군. 그러는 사이에 스테파니 양이 내려왔고 먼 이국땅에서 취재는 시작됐지. 스테파니 양은 샌프란시스코 마이스페이스 PR(Public Relation)팀에 근무하고 있었지.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그녀는 한국계라는 사실을 알고 떠났어. 스테파니 양이 리 브래너와 인터뷰에서 통역을 맡기로 했거든. 그녀는 전형적인 동양인의 모습이었어. 반가웠지. 미국의 중심지에서 이제 한국어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리라, 가슴속에서 뭉클한 기쁨이 샘솟았어. 희열감으로 가득찼지.

"안녕하세요!"

반가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자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거 있지. 그런데 그녀가 "I can't speak Korean"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겠어. 순간 난감했어. 갑자기 내 말문이 막히면서 서툰 영어조차 입언저리에서 맴맴거리고 있었지. 그녀는 중국계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태어나 영어 밖에는 할 줄 모른다고 하더군. 겉모습은 한국인과 다를 바 없는데 그녀의 입에서 미국인의 영어 발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니 약간은 어색한 느낌이었지. 그나저나 ‘그렇다면 리 브래너와 인터뷰는 어떻게 하지? 통역은 어떻게 되는거지’라는 두려움이 몰려 들더군. 리 브래너와 오후 3시에 약속이 돼 있었지만 내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이전이었어. 인터뷰 시간까지는 1시간이나 남아 있었지. 스테파니 양은 4층의 마이스페이스 사무실로 나를 인도했지. 그리고 그녀는 영어로 "3시에 리 브래너가 오기로 했다. 그때까지 사무실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더군. 난 잠시 쉬고 싶었어. 낑낑거리며 30여분을 걸어 왔기 때문이었지. 두꺼운 옷을 입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내 온 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어. 시원한 물을 건네주는 스테파니 양이 고맙기 그지 없더군.

인터뷰는 2시30분쯤에, 예정했던 것보다 조금 일찍 시작됐어. 리 브래너가 일찍 도착해 곧바로 인터뷰가 시작된 거지. 통역은 어떻게 됐냐구? 미리 질문지를 보내준 상태였고 리 브래너가 충실하게 사전 질문지에 답을 적어 왔기 때문에 내 어쭙잖은 영어와 리 브래너의 훌륭한 영어가 교차되면서 통역없이 진행하기로 했지. 나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리 브래너에게 이런 부탁을 했지.

“Please speak slowly!!"

리 브래너는 스마트한 사람이더군. 취재를 끝내고 한국에 돌아온 뒤에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는 친구가 됐는데, 그의 페이스북에 들어가보니 그는 오바마와 악수도 나누고 미국 정치 분석에 대해 누구보다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 리 브래너와 인터뷰는 아주 즐거운 분위기에서 이뤄졌어. 지루하지가 않더군. 그는 전형적인 미국인으로 청바지를 입고 아주 편안한 차림으로 인터뷰에 응했어. 오바마에 대해 상당히 좋은 평가를 내놓았지.

“선거기간동안 오바마 진영의 경우 특정 계층과 그룹을 타깃으로 하는 총 50개의 마이스페이스 공식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 전략은 ‘50개주 전략’으로 이름 붙였는데 일관된 브랜딩, 통일된 메시지, 지역 자치를 통해 마이스페이스 이용자와 상호작용하면서 균형잡힌 전략을 보여줬다. 오바마 당선인이 앞으로 그의 재임기간 동안 미국 국민들과 의사소통하기 위해 마이스페이스를 어떻게 이용할지 큰 기대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대선기간 내내 최대한 많은 마이스페이스 이용자들이 온라인을 통한 정치를 직접 경험하는데 참여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군.

‘헬로! 오바마! 국민의 권력을 위임받은 당신이 재임기간동안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을 만나고 또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할 것인가? 미국인들이 당신을 권력자로 만들어줬고 당신은 권력을 가지게 됐는데 그 권력을 어떻게 쓸 것인가?’

참, 이상하지. 민주주의는 어떻게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어. 민주주의의 주인은 주권자에게 있단 말이지. 즉 주권자인 국민이 주인이라는 뜻이지. 그것은 다름 아닌 선거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선거를 통해 국민들은 누군가에게 표를 던지고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권력자가 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선거기간동안 국민들에게 수없이 머리를 조아리던 사람들도, 선거가 끝나고 권력을 거머쥐게 되면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거든.

‘헬로! 오바마! 당신도 그런 전철을 밟고 싶은가?’

마이스페이스 인터뷰를 끝마치고 난 숙소인 마운틴뷰(Mountainview)까지 이동해야 했어. 샌프란시스코 2번가에서 마운틴뷰까지는 꽤 거리가 먼 곳이었지. 갈 길이 막막하더군. 그곳에서 캡을 타면 아마 200달러는 나올 듯 했어. 200달러? 오 마이 갓!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28만4천원! 환율에 따른 이 우울한 기분...미국에 직접 와보니 알겠더군.

그런데 스테파니 양이 굉장한 친절을 배풀었어. 아직도 그 친절 앞에 몸둘 바를 모르겠어. 그녀는 나의 다음 목적지를 확인한 다음, 회사 차량을 이용해 마운틴뷰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줬어. 공항에 내리자마자 인터뷰를 시작했고 낑낑거리며 걸었던 2번가 모습에서 현기증이 날 참이었는데 그녀의 친절은 아주 달콤한 선물이었지. 2번가에서 마운틴뷰까지는 약 50분이 걸렸어.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중간중간에 스쳐 지나가는 샌프란시스코의 모습이 시원하게 느껴지더군. 그렇게 무사히 일을 끝마치고 마운틴뷰에 있는 라마다호텔에 도착했지. 호텔에 도착하고 체크인을 한 뒤 난 뻗어 버렸어.


(계속됨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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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