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는 비교적 수월케 씌어진다. 그것은 평소에 머릿속에 시 생각이 가득차 있어서, 펜을 들면 수월케 시가 되는 것이다.(중략) 시는 마음이다. 마음을 잘 쓰는 안 되는 일이 없는 것이다.”


배경음악과 함께 읽기를...

천상병 시인이 자신의 시집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책머리에 손수 쓴 글이다. 그의 ‘귀천(歸天)’이야 이제 ‘국민 詩’가 된 지 오래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귀천’ 중에서>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은 크게 총 넉 장으로 이뤄져 있다. 제 1장 ‘이 세상 소풍’에서 시작해 제2장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제3장 ‘사는대로 살다가…’ 제4장 ‘누군가 앉았다 간 자리’로 구성돼 있다.

‘이 세상 소풍’에서는 아내와 장모, 아이들에 대한 시들이 많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고 정겨움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아내가 찻집을 하고, 칠십 팔세의 장모님이 아직도 정정해 살림살이를 거의 모두 하다시피 하니 자신은 너무 행복한 사람이라고 노래한다.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나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행복’ 중에서>

부러울 것 없는 자신을 두고 이 세상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정한다. 집하나 없는 것을 두고도 그는 불평이 없다.

옛날의 예수님도

집이 없었는데

나는 셋방이라고 있으니

그저 영광이다<‘집’ 중에서>

이쯤 되면 시인의 자족(自足)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에서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그리고 죽어 고향에 묻히고 싶다는 애틋한 마음을 담았다.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시인의 내면도 읽힌다.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소릉조’ 중에서>

경남 창원군 진동면이 고향인 시인은 서울 변두리에서 막걸리와 시를 쓰며 살고 있지만 고향을 향한 마음은 간절하다. 그러나 몸이 불편하고, 갈 마음과 달리 발걸음은 움직이지 못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립고 멀리 떨어진 형과 누이를 그리워해 본다. 그러면서 시인은 “나이 사십에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찾아간다.”라고 ‘불혹의 추석’에서 되뇌인다.

시인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풀면서 자신의 지금과 그리고 훗날 자신이 죽어 땅에 묻혔을 때 찾아올 아들, 딸들에게 자신의 비명(碑銘)까지 남겨 놓는다

오늘 아침은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중략)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나의 가난은’ 중에서>

막걸리와 예쁜 아내와 정정한 장모와 행복한 날들을 보낸 시인이 죽어, 나중에 자신의 풀섶을 찾는 이들에게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라고 생각해 줬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

막걸리와 맥주를 좋아했던 시인은 마침내 자신의 간이 이상증세를 보이는 것조차 시로 풀어쓴다.

보지도 못한 내 간이

괘씸하게도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 쪼무래기가 뭘 할까마는

아직도 살고픈 목숨 가까이 다가온다

나는 원래 쿠데타를 좋아하지 않는다<‘간의 반란’ 중에서>

‘간의 쿠데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인은 쿠데타를 싫어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제3장에 ‘사는대로 살다가…’에 이르면 시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소중하다. 특히 이 장에서는 ‘새’와 ‘비’에 대한 시들이 눈에 띈다. 시인의 비극적 체험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도 있어 시인의 아픔을 보여준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새’ 중에서>

비나 내리는 날, 시인은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도 떠올려 본다.

나는 국민학교 때는

비가 오기만 하면

학교엘 가지 아니하였다

이제는 천국에 가신 어머니에게

한사코 콩을 볶아달라고 하여

몸이 아프다고 핑계했었다<‘비’ 중에서>

새와 비를 노래하던 시인의 ‘그날은-새’ 부분에 이르면 시인의 암울했던, 그리고 이해도 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는 비극의 상처를 만난다. 그 비극은 우연과 필연이 종합된 현대사의 비극!

이젠 몇 년이었는가

아이롱 밑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날은…

이젠 몇 년이었는가

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

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진실과 고통은 무엇이었을까. 시인은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간다. 혹독한 전기고문 등을 받고 6개월 간 투옥됐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는 그 경험, ‘이젠 몇 년이었는가.’라며 시인은 진실과 고통의 순간을 기억한다.

마지막 4장인 ‘누군가 앉았다 간 자리’에서는 길과 구름, 하늘에 대한 소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길은 끝이 없구나

(중략)

길은 막힌 데가 없구나

가로막는 벽도 없고

하늘만이 푸르고 벗이고

하늘만이 길을 인도한다

그러니

길은 영원하다<‘길’ 중에서>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의 시집에는 유독 ‘애오라지’라는 부사가 많이 등장한다. 시인이 아마도 평상시 즐겨 썼던 말이지 않나 싶다. 사전적 의미로는 ‘겨우’ ‘오로지’라는 의

미로 읽히는 ‘애오라지’…

‘애오라지’ 가족을 사랑했고, 새와 비와 길을 노래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노래했던 천상병! 그의 시는 알코올 도수가 감춰져 있어서 무심코 읽는 독자들을 취하게 만든다는 해설이 마음에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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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