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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23 타인의 죽음과 삶 바라보기|조해진 <로기완을 만났다>

“처음에 그는 단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

조해진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는 이렇게 시작된다.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깊숙이 개입하고 싶을 때가 있다. 내 삶과 같다거나 혹은 내 삶과 완전히 다른 것이라든가, 혹은 그 무엇이 내 관심을 끈다든가. 시사주간지의 한 토막 문장이 그런 역할을 할 때도 있다.

처음에는 그 관심 대상이 단지 사물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대상을 계속 관찰하다 보면 그 관찰 대상이 나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나인지 그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로기완을 만났다>의 시작이 “단지 이니셜 L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 관심의 시작이 관찰의 대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나 소설은 ‘이니셜 L’을 알기 위해 벨기에 브뤼셀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주인공에게 있어 ‘이니셜 L’로 머무르지 않는다. 필연적으로 자신의 삶 깊숙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 그 먼 유럽 까지 날아갈 정도로 ‘이니셜 L'은 주인공의 삶에 큰 관계를 맺게 된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

소설속 이야기를 전개하는 주인공은 방송작가이다. 그녀가 만드는 프로그램은 아픈 이들,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취재해 방영하고, 방영되는 순간 ARS 모금을 통해 아픈 이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내용이다.

수많은 아픈 이들을 만났지만 그 중에 ‘윤주’라는 열여덟 살의 소녀가 그녀에게 큰 울림으로 남는다. 오른쪽 뺨에 종양이 발견된 윤주는 처음에는 양성인 줄 알았지만 후에 정밀검사를 통해 악성(암덩어리)이란 결과가 나온다.

끝내 수술을 하고 난 윤주였지만 윤주는 수술 결과, 오른쪽 귀를 잃어버린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주인공과 윤주의 아픔에 대한 공유가 조금씩 나타난다. 죽음을 앞둔 한 소녀와 주인공의 바라보기가 끝없이 펼쳐진다.

고통에 처해 있는 ‘윤주’지만 주인공은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다. 윤주가 필요할 때 주인공은 그곳에 있고 싶지만 그것 또한 여의치 않다. 윤주와 주인공의 묘한 관계는 계속 어긋나는 곳으로 가고 있다.

주인공과 윤주의 죽음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삽입된다. 유럽 벨기에로 날아간 주인공이 ‘이니셜 L’을 만나기 위해 도움을 받는 ‘박’에게서 시작된다.

‘박’은 예순을 넘긴, 이제는 은퇴한 의사였다. 그는 자신의 반려자이자 평생 사랑했던 아내를 ‘안락사’라는 방법을 통해 고통 없이 죽음을 선물한(?) 장본인이었다. 간암 말기에 있던 아내는 그 고통이 극에 달한다. 살아 있는 것만 못한 모습과 고통⋯ 의사였던 ‘박’은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약물과 술을 섞은 기묘한 방법으로 아내를 편안하게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다.

주인공은 ‘박’과의 대화를 통해 ‘박’의 아내가 안락 사했음을 알게 되고, 또 그 배후에 ‘박’이 있었던 것을 깨닫는다. ‘안락사’를 두고 어떤 철학을 두 사람은 가지고 있을까. 먼저 ‘박’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평생을 고생했지만 자신에게는 한없이 엄격했고 가족들에게조차 허점을 보이기 싫어했던 한 여자가 있었소. 그토록 정갈했던 사람이 그렇게 무참하게 무너지는 광경을 지켜볼 자격이, 우리에게 있다는 거요?”

‘박’은 아내의 복수가 차오르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초췌하고 초라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 병이 완치될 확률은 ‘제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정작 본인은 오죽할까. ‘박’이 자신의 아내에게 아무도 모르게 안락사를 선택했던 것은 과연 정당했을까.

‘박’과 주인공의 다음 대화는 죽음에 대한 입장을 보여준다.

박: “약물과 술을 섞은 컵을 갖다놓은 방법을 택했습니다. 컵을 들어 그 약물을 마시느냐 안 마시느냐 하는 결정에 의사로서의 나는 개입할 수도 없을뿐더러 개입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개입하지 않았소.”

주인공: “하지만 그 컵을 갖다 주었기 때문에 그 환자는 자신의 선택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거겠죠.”

박: “죽음 앞에서 당사자의 의지보다 더 결정적인 건 없어요.”

주인공: “기적이라는 것도 있지 않나요? 타인의 개입이 그 기적의 가능성을 박탈 한 건 아닌가요?”

박: “김작가는 내가 그 환자를 죽인 거라고 생각하고 있군.”

주인공: “존엄성과 생명을 교환한 거라고 표현해야겠죠.”

박: “내가 무슨 말을 해주길 바라는 거요?”

주인공: “묻고 싶은 것 뿐이에요. 살아남은 자들, 건강한 자들, 그들은 뭘 해야 하는 건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변명을 찾아내는 것 말고 죽거나 죽을 만큼 불행해진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건지, 그걸 묻고 싶은 거라고요! 아시겠어요?”

주인공이 ‘박’에게 버럭 화를 내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자신이 ‘윤주’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 ‘죽거나 죽을 만큼 불행해진 사람들에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자신! ‘윤주’는 지금 죽어가고 있는데 자신은 ‘이니셜 L'을 만나기 위해 먼 유럽 벨기에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것!

이제 여기서 ‘이니셜 L'에 대해 이야기를 끌고 갈 시점이다.

‘이니셜 L’은 ‘로기완’이다. 이십대 로기완은 함경도에서 태어나 북한을 이탈했으며, 중국 연변에서 숨어 지내다가 브로커를 통해 베를린으로 간다. 베를린에서 다시 유로버스를 타고 브뤼셀에 도착한다. 브뤼셀에 도착한 ‘로기완’은 ‘삶의 진공상태’에 놓인다.

아는 사람 하나 없고, 말도 통하지 않는 브뤼셀에서 로기완은 죽음에 직면해 있고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로기완’은 어렵게 근처 모텔에 숙박하고 주머니에 든 약 600 유로를 가지고 브뤼셀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베를린에서 브로커와 헤어지면서 “한국대사관을 찾아가라”는 말을 하루 이틀 미루면서 ‘로기완’은 점점 절망 속으로 빠져든다.

어렵게 한국대사관을 찾아가지만 ‘로기완’은 퇴짜를 맞는다. 중국 조선족 동포들이 자신들을 ‘탈북인’이라고 속여 난민지위를 얻으려는 행태가 많았기 때문에 로기완도 조선족으로 오해받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로기완에게는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그 어떤 증명서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벨기에서 난민지위를 얻는 것은 안정된 신분을 얻는 것과 같다. 난민지위가 확정되면 매달 지원금과 정착지를 제공받기 때문이다.

‘로기완’은 급기야 돈이 바닥나면서 모텔에서 나오게 되고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게 된다. 노숙을 하다 경찰에 발견되고 쉼터로 옮겨지고 ‘박’을 만나게 된다. ‘박’은 로기완과 만남을 통해 그가 북한 출신이고 특히 그의 어머니 이야기 부분에서 깊은 유감을 느낀다. 그렇게 ‘박’의 도움으로 ‘로기완’은 벨기에 정부로부터 난민 지위를 얻게 된다.

‘로기완’은 북한을 이탈하면서부터 벨기에 정부의 난민지위를 얻게 되기까지 일기를 남긴다. 그 일기는 사본을 통해 ‘박’에게서 주인공에 전달된다.

주인공은 일기를 통해 ‘로기완’의 행적을 일일이 쫒아간다. 그의 내면을 읽는다. ‘로기완’이 머물렀던 모텔에 투숙하고, ‘로기완’이 걸었던 브뤼셀의 길거리를 따라가고, 한국대사관에 들렀다 실망한 나머지 되돌아오던, 주저앉았던 골목길에서 주저앉아 보기도 하고...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렇게 ‘로기완’의 행적을 직접 체험하면서 느끼는 순간, 더 이상 ‘이니셜 L'은 이니셜에 머물지 않는다.

‘로기완’에게도 처절한 죽음이 있었다. ‘로기완’은 연변에 있을 돈벌이를 하지 못한다. 중국 공안당국의 서슬 퍼런 단속 때문에 바깥에 나가지 조차 못한다. 구석에 꼼짝없이 처박혀 있어야 했다. 대신 돈을 벌어오는 것은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낮에는 공장에서, 밤에는 노래방에서 일을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현장에서 즉사하고 만다. 중국에서는 시신조차 매매가 가능했는지, 어머니의 시신은 몇 천 달러에 팔려 나가고, 그 돈으로 로기완은 브로커를 통해 브뤼셀에 올 수 있었다.

어머니의 ‘시신 값’이 그를 브뤼셀에 이르게 한 것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희망을 노래하다

소설의 전반부는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일들을 소설은 그려나가고 있다. ‘윤주’, ‘박의 아내’, ‘로기완의 어머니’⋯

하지만 소설 후반부로 가면 소설은 이런 죽음에서 벗어나 삶의 희망을 찾는다. 윤주는 무사히 수술을 마쳤고 주인공은 ‘로기완’을 만나기 위해 런던으로 떠나기에 앞서 윤주와 통화를 한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이렇게 되뇌인다.

“나는 런던에서 그 사람을 만나고 나면 곧바로 서울로 돌아가겠다고, 이번에는 늦지 않겠다고,(윤주와 약속했다) 너무 늦어버려서 네가 나를 가장 필요로 할 때 또 그렇게 외면하며 지나가버리는 일은 없도록 하겠노라고 빠르게 (윤주에게) 말한다.”

주인공은 윤주가 고통에 있을 때 정작 자신은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로기완’의 삶의 행적을 좇으면서 이제는 ‘윤주가 필요할 때 늦지 않게 그곳에 있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런던으로 출발하기 위해 공항에 ‘박’과 함께 주인공은 향한다. ‘박’은 브뤼셀에서 자신의 아파트를 제공하고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받은 인물이다. ‘로기완’이 난민 지위를 얻을 수 있도록 적극 힘써 준 사람도 ‘박’이었다.

그런 ‘박’과도 아름다운 화해를 한다. 주인공은 ‘박’의 아내와 많이 닮았다. ‘박’은 그런 주인공을 보면서 죽은 아내를 생각한다. 공항에서 헤어지기에 앞서 주인공에게 ‘박’은 한가지 부탁을 한다.

박: “부탁을 하나......들어주겠소?

주인공: “말씀하세요.”

박: “생각보다 괜찮았다고,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다고 한번, 말해주겠소?”

주인공: “......”

아내와 무척이나 닮은 주인공에게서 ‘박’은 자신의 아내 목소리를 듣고 싶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괜찮았다.’라고 말하고 ‘박’과 따스한 포옹으로 이별한다. ‘박’에게 있어 이보다 더 따뜻한 포옹은 삶에 있어 없었을 것이다.

런던 히스로 공항에 도착한 주인공은 마침내 ‘이니셜L'의 ’로기완‘을 직접 만난다. ’로기완‘은 ’박‘의 도움으로 벨기에 정부로부터 난민지위를 얻고 브뤼셀에서 정착 지원금과 거주지를 제공받고 열심히 일을 한다. 그 중간에 불법 이민자였던 필리핀 여자를 만나게 되고 서로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필리핀 여자가 이민국에 적발되고 그곳에서 어렵게 탈출하자 ‘로기완’은 그녀를 영국으로 먼저 떠나 보낸다. 그리고 자신도 조만간 뒤따라 갈 것이라고 약속한다. ‘로기완’은 벨기에 정부에서 제공해 준 ‘난민 지위’를 포기하고 영국으로 건너간다. ‘난민지위’를 포기하는 대신 ‘불법 이민자’의 신분이 됨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로기완’은 주저하지 않는다. ‘다시는, 절대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지켜만 보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하면서.

주인공은 마침내 ‘로기완’을 만난다. 로기완은 영국의 어느 작은 도시의 중국 음식점에서 그의 여자친구 ‘라이카’와 일을 하고 있다. 행복한 모습으로. 체온이 있는, 진짜 손으로 덥석 주인공의 손을 잡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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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