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과 직방으로 살아가기

이렇게 시원한 시를 읽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한 줄기 물줄기가 시원스레 바람을 가르고, 강물을 씻은 바람이 이마에 얹히는 기분이었다. 시를 읽는 맛이 이런 것이구나 할 정도로 마음에 착착 달라붙었다. 아마도 그것은 직접, 직방으로 시는 쓰는 시인을 만났기 때문일 것이다.



유홍준 시인은 직접‧직방으로 사는 사람이다. 얼마나 직접과 직방을 좋아하는지 <저녁의 슬하>의 작가의 말에서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먼저 작가의 말을 직접, 그리고 직방으로 들어보자.

“내 발로 직접 어디를 가고 내 눈으로 직접 무엇을 본다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몰라.”

직접적으로 산 그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유홍준 시인은 ‘직접’이란 말을 계속 강조한다. 더 읽어보자.

“직접은 힘들고 고달픈 거야

간접은 편안하고 안락한 거야

직접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시인이 되고 교사가 돼?

간접은 지루하고 하품이 나

직접이 재밌고

직접이 즐거워

내 피부로 직접 저 햇살 받는 행복!

내 귀로 직접 저 물소리 듣는 기쁨!“

직접으로 살고 직접으로 적은 시

이쯤 되면 유홍준 시인이 과연 어떤 시를 <저녁의 슬하> 시집에 직접으로 펼쳐 놓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일몰 앞에서>란 시부터 읽어보자.

그와 나는 시소 타는 사람 같고
해와 달 같아서
누가 먼저 궁둥이를 털고 일어나면 툭 떨어진다. 하늘 아래로 곤두박질친다.
저 뜨겁고 차가운
해와 달을
‘시소 타는 남녀’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일몰 앞에서>중에서).

해가 지고 달이 뜨고, 달이 지고 해가 뜨는...시소게임! 시인은 해와 달의 움직임이 시소 타는 ‘남녀’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그 해와 달은 ‘뜨겁고 차다’ 시인의 직접 삶이 이 ‘뜨겁고 차가움’에 녹아들어 있다. 삶이란 뜨겁기도 하고 차갑기도 하다. 시인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뜨겁고 차가운 시인의 삶이 시에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공사장 모래더미에
삽 한 자루가
푹,
(중략)
모래밥도 먹어야 할 사람이 먹는다
모래밥도 먹어본 사람만이 먹는다
늙은 인부 홀로 저 모래밥 다 비벼 먹고 저승길 간다(<모래밥>중에서)

한 늙은 인부가 모래를 삽으로 뜨고 있다. 아마도 공사장에서 일하는 늙은이의 모습을 그려놓은 듯 하다. 마치 삽 한 자루가 푹 모래더미에 쑤셔 있는 것처럼 늙은 인부도 이제 삶의 차갑고 뜨거운 맛을 뒤로 하고 저승길 앞에 서 있다.

시인 또한 그렇게 살아왔다. 시인은 경남 산청에서 태어나 안 해 본 것이 없을 정도로 많은 ‘노가다’ 판을 뛰었다. 공사장, 과일장사, 정신병원 관리자, 농사⋯. 시인의 삶이 직접적으로 표현돼 있는 시이다. <모래밥>은 밥 먹기 힘든 시기, 시인이 어느 공사장에서 직접 노동을 하면서 풍겨오는 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시인의 솔직한 감정도 시로 표현돼 있다.

화가 난 아버지가 쇠스랑을 들고 어머니를 쫓아갔다 화가 난 눈썹이 보기 좋았다 1975년이었다 입동(入冬)이었다. 내 그리운 쇠스랑⋯ 마당 저쪽 두엄더미에서는 허연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그리운 쇠스랑> 전문)

아버지와 쇠스랑? 뭔가 어울리는 조합 같다. 1975년 가난한 농촌의 모습. 아비는 패고 어머니는 도망가는 모습. 어머니는 입동의 시절에 집에서 쫓겨나 ‘허연 입김을’ 불면서 어디에선가 숨어 있었을까. 두엄더미의 뜨거운 ‘허연 김’이 어머니의 차가운 ‘허연 김’을 연상시키면서 ‘뜨거움과 차가움’의 해와 달을 느끼게 한다.

우리들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는가

<저녁의 슬하> 시집에서 시인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고인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 고인의 슬하에는
고인이 있나 저녁이 있나
저녁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
저 외로운
지붕의 슬하에는
말더듬이가 있나 절름발이가 있나
저 어미새의 슬하에는
수컷이 있나 암컷이 있나
(중략)
이 차가운 쇠붙이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
이 차가운 이슬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슬하>중에서)

‘슬하’에는 무엇이 있나, 무엇이 있나? 시인은 계속 묻고 있다. 시인 또한 조부모와 부모의 슬하에서 컸을 것인데, 시인은 아직 ‘슬하’에 무엇이 있을 것인지 궁금해 한다. 과연 저녁의 슬하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녁을 짓는 연기? 아궁이게 타닥타닥 소리내며 타는 군불? 볏짚 사이로 웅크리고 잠을 준비하는 새들? 어둠? 이 모든 것이 ‘저녁의 슬하’에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아직 ‘저녁의 슬하’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 한다. 시인의 슬하에는 아직 가지고 싶고, 그리워 하고 싶은 것이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탓일 것이다. 시인이 계속 의문을 갖는 것은.

사람을 쬐다

시대가 변하면서 우리는 사람을 싫어하면서 커오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시대에서 우리는 냉정해지고 차가워지고, 인간성을 잃어가고 있다. 아무리 이렇게 말해도 우리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왜? 이미 우리는 사람을 싫어하고 있으니까.

시인은 이러한 현실을 가만히 시로 읊는다.

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중략)
인기척 없는 독거
노인의 집
(중략)
눈가가 짓물러진 할머니 한 사람 지팡이 내려놓고 않아
지나가는 사람들 바라보도 있다 깊고 먼 눈빛으로 사람을
쬐고 있다(<사람을 쬐다> 중에서)

유홍준 시인의 깊은 맛이 느껴지는 시 중의 하나로 꼽고 싶다. 우리는 사람을 쬐지 않은 지 오래됐다. 우리는 돈을 쬐고, 우리는 권력을 쬐고, 우리는 명예를 쬐고, 사람을 쬐지 않은 지 오래됐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오래된 관습이 돼 버렸다.

유럽의 날씨는 언제나 구름이 많거나 비가 오는 경우가 많다. 햇볕이 드는 날이면 사람들은 집 앞의 잔디밭에서, 혹은 대학 교정에서 그것도 아니면 도심의 휴식터에서 웃옷을 훌러덩 훌러덩 벗어 던지고 햇볕을 쬔다. 왜? 햇볕의 그리움과 햇볕의 소중함을 아니까.

사람이 사람을 쬐지 않은 이 시대, 우리는 무엇을 위해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사람이 사람을 쬐지 않으니 세상은 도대체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한다. 시인의 <들깻잎을 묶으며>라는 시는 이 시대의 자화상을 그대로 그리고 있다.

추석날 오후, 어머니의 밭에서
동생네 식구들이랑 어울려 깻잎을 딴다
이것이 돈이라면 좋겠제 아우야
(중략)
겨울이 오면 아우야
흰 쌀밥 위에 시퍼런 지폐를 척척 얹어 먹자 우리
들깨냄새 짙은 어머니의 밭 위로 흰 구름 몇덩이 지나가는 추석날
동생네 식구들이랑 어울려 푸른 지폐를 따고 돈다발을
묶어보는
아아, 모처럼의 기쁨!(<들깻잎을 묶으며>)

푸른 들깻잎을 따고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이게 ‘돈’이라면 좋겠제 라고 묻는 형의 모습. 들깨밭이 온통 돈밭이라면 더 좋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그런 것이니까. 얼마 전 5만원짜리 지폐 수십만장을 밭에 묻었다는 뉴스가 세상을 흥미롭게 한 기억이 있다.

하지만 가지지 못한 우리는 동생에게 그런 농담을 건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러면서 겨울이 오면 삭힌 들깻잎을 척척 지폐처럼 올려, 들깨냄새 짙은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다정하게 웃자라고 주문한다.

시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직접적 삶을 그리는 짧은 시로 <저녁의 슬하> 시집을 마무리 짓는다.

영월 지나 정선 지나 태백 긴 골짜기 사북사북 간다 사북사북 눈 온다 死北死北 死北死北⋯⋯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하염없이 내 뒤를 따라오고 있다.(<사북> 전문)

자본주의에서 쫓겨나 시인은 사북으로 간다. 그곳에라면 먹고 살 무엇인가 있겠지 하고 사북사북 걸어보지만 그것은 죽음으로 가는 ‘死北死北’이다. 시인 뿐만이 아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하염없이 내 뒤를 따르고 있다. 이놈의 자본주의! 언제쯤 이런 ‘사북사북’을 그칠까.

돈에 환장한 사람과 돈에 미쳐 날뛰는 사람들은 이 시집, 읽지 말기를 권한다. 읽으면 안된다. 충격을 받아 ‘사북사북’거릴 수 있다. 오래간만에 직접적이고 직방적인 시를 읽었다. 유홍준 시인의 삶 자체가 직접적이고 직방적이었던 만큼 <저녁의 슬하>시집의 슬하에는 ‘생동감과 현실감’이 있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아침 출근길이 무척 맑았다. 어제 일요일, 하늘은 잔뜩 누렇게 뜬 얼굴이었다. 먼 하늘을 바라보는 낭만이 사라진 하늘이었다. ‘파랑’은 사라지고 ‘희뿌연 누런’ 색이 기분 나쁘게 앉아 있었다. 봄의 색깔 ‘노랑’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봄이 성큼 다가왔지만 ‘노랑’의 계절, 봄은 아직 멀었다. 4월의 중간에 서 있지만 계절은 색깔을 잊어버린 것일까. 봄의 계절 ‘노랑’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디고, 그럴수록 ‘노랑’은 아직 저만치 우리들을 애타게 하고 있는 듯하다.

월요일 아침, 맑은 하늘이 기분 좋았다. 회사에 도착해 인터넷을 켰다. 인터넷서점에 접속한다. 봄의 계절 ‘노랑’을 만나기 위해 인터넷서점 사이트에서 ‘오봉옥’을 검색한다. 오봉옥 시인은 최근 시집 <노랑>을 펴냈다.

<노랑>을 주문하고 오봉옥 시인에 대해 이것저것 인터넷에 어떤 정보들이 있는지 알아본다. 무엇보다 그의 시집 <붉은 산 검은 피>가 우선이다. ‘붉은 산 검은 피’라는 검색어를 입력하고 엔터키를 눌렀더니 놀라운 검색결과가 나온다.

‘최신뉴스’ 검색어 결과의 맨 위에는 다음과 같은 뉴스가 나왔다.

'붉은 산 검은 피' 저자(著者)에 징역3년 구형
연합뉴스 | 입력 1990.05.24 17:41

(서울=연합(聯合))서울지검 공안1부 李貴男검사는 24일 시집 '붉은 산 검은 피'를 출판해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제작.판매 혐의로 구속기소된 도서출판 실천문학사 前주간 宋基元씨(42)에 대해 징역2년.자격정지 2년을,이 시집의 저자 吳奉玉씨(28)에 대해서는 징역3년.자격정지3년을 각각 구형했다.
이들은 지난해5월 시집 '붉은 산 검은 피' 1,2권을 각 2천권씩 발간,대학가서점 등에 판매한 혐의로 지난 2월 구속기소됐었다.

1990년 기사가 ‘붉은 산 검은 피’에 대한 최신 뉴스였다. 1990년 5월24일 작성된 이 기사는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1990년에 오봉옥 시인은 진보 시인으로, 세상과 호흡하는 시인으로, 운동하는 양심으로 서 있었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음을 기사는 확인시켜 준다.

스물여덟에 자신이 펴낸 시집으로 옥고를 치르는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오 시인에 대해 징역 8월을 선고한다. 집행유예로 풀려나지만 <붉은 산 검은 피>로 송기원 주간과 오 시인 모두, 옥고를 치르는 곤욕을 치렀다.

또 하나 이 기사에서 눈에 띄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단어가 있다.

‘서울지검 공안1부 李貴男 검사는⋯’ 운운되는 부분이다. 이귀남이라고 하면 현재 법무부장관이지 않은가. 혹 동명이인인지, 이귀남 장관의 경력을 검색해 봤더니 ‘1988~1991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나와 있다. 이어 장관에 임명됐을 때 약력을 보면 ‘형사와 공안을 두루 거친’이라는 말이 나오고, 한자 이름도 같은 걸로 봤을 때 1990년대 이귀남 검사는 현재의 이귀남 장관인 것으로 추측된다.

1990년대에서 이젠 2011년을 이야기해 본다.

스물여덟의 시인은 21년이 지난 지금, 마흔아홉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봄의 계절인 <노랑>을 들고 다시 이 세상에 섰다. <붉은 산 검은 피>라는 시를 두고 당시 경찰이 “산이면 푸른 산이지 왜 붉은 산이냐”라고 힐난하면서 ‘대간첩 전시물’에 이 시집을 걸어놓았다는 황당함과 경악의 시대도 지나갔다.

그런 1990년대를 거치 올라 이제 <노랑>의 모습으로 시인은 서 있다. <노랑>이 어떤 시적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지는 얼마 지나지 않으면 내 눈 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오봉옥 시인은 이 <노랑> 시집을 이귀남 장관에게 넌지시 한 부 선물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창작물을 두고 징역 3년을 구형했던, 지금은 장관인 그에게 어떤 울림으로 다가올 지 궁금하다.

오봉옥 시인의 <꽃>이란 시를 인용해 본다.

아프다, 나는 쉬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한때는 자랑이었다
풀섶에서 만난 봉오리들을 불러모아
피어봐, 한번 피어봐 하고
아무런 죄도 없이, 상처도 없이 노래를 불렀으니

이제 내가 부른 꽃들
모두 졌다

아프다, 다시는 쉬이 꽃이 되지 않으련다
꽁꽁 얼어붙은
내 몸의 수만 개 이파리들
누가 와서 불러도
죽다가도 살아나는 내 안의 생기가
무섭게 흔들어도
다시는 쉬이 꽃이 되지 않으련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1953년 8월3일 평양⋯임화는 재판정에 무표정하게 서 있다. 자포자기의 심정과 극도의 공포감을 그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검사의 질문이 시작되기 전, 임화의 머릿속으로 서울 종로의 네거리가 떠오르지 않았을까.

검사: 일본 제국주의시대에 피고가 해왔던 문학운동은 계급적 문학운동이었던가?

임화: 아닙니다. 그것은 일제의 어용문학이었습니다.

검사: 미군을 환영하는 사업을 조직한 일이 있는가?

임화: 약 300 명의 문화인을 동원시켜 미군환영 시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임화는 민족반역자⋅종파주의자라는 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젊은 시절, 서울 종로의 ‘순이’를 보살피고 ‘순이’의 가난을 자신의 가난으로 생각했던 마음 따뜻했던 그가 분단된 조국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사상의 공간에서 오히려 짧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대학생 시절,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 대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박영희가 카프의 활동을 두고 “얻은 것은 이념이고, 잃은 것은 예술”이라고 말했지만 카프의 성격을 단순히 이 한마디로 매듭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임화는 카프의 핵심 활동 인물로 그의 시에는 따뜻한 정감과 자신보다 민중을 먼저 생각했던 희생정신이 깃들어 있다.

임화의 ‘순이’는 지금 이 시대에도 존재한다

임화는 시인이자 평론가였다. 그의 대표작인 <네거리 순이>를 읽어본다.

눈바람 찬 불상한 도시 종로 복판에 순이야!

너와 나는 지나간 꽃 피는 봄에 사랑하는 한 어머니를

눈물나는 가난 속에서 여의었지!

그리하여 너는 이 믿지 못할 얼굴 하얀 오빠를 염려하고,

오빠는 가냘핀 너를 근심하는,

서글프고 가난한 그날 속에서도,

순이야, 너는 마음을 맡길 믿음성 있는 청년을 가졌었고,

내 사랑하는 동무는

청년의 연인 근로하는 여자 너를 가졌었다.(<네거리 순이> 중 부분)

<네거리 순이> 중 부분이다. 시인은 추운 겨울, 종로 복판에서 순이를 만난다. 순이는 임화의 친 동생일 수도, 당시에 노동하는 모든 여성일 수도 있다. ‘순이’는 일제시대 ‘눈바람’ ‘가난’ ‘근로하는’ 모든 여성의 대명사로 해석된다.

그런 순이를 ‘근심하는’ 나는 다행스럽게 ‘내 사랑하는 동무’를 소개시켜 주고 ‘순이’의 가난하면서도 가냘픈 마음에 한가닥 위로를 던져준다. 임화는 자신의 사상만을 고집하고 이념만을 강조했던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이념을 지탱해 주는 다정다감함과 희생정신, 배려하는 정신이 그를 알게 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임화가 말했던 ‘순이’는 그 당시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순이’는 존재한다. 한 맺힌 농성으로 최근 관심의 대상이었던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아무도 관심가지지 않을 때 그들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서 찬 점심을 먹고 화장실 바닥에 지친 몸을 뉘어야 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꽃다운 나이에 백혈병으로 죽어간 그녀들⋯스물도 채 안된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이 백혈병으로 죽어갔다. 내 노동으로 가족들을 부양하겠노라고 외쳤던 다짐은 어디로 가고, 젊고 잘 생긴 청년을 만나기도 전에 그들은 세상을 달리했다.

아직도 자신의 노동으로 밖에 살 수 없는 이 시대의 여성 노동자들⋯종로 네거리 ‘순이’는 현재에도 존재하고 미래에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임화가 그렸던, 만들고자 했던 세상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 텐데. 임화가 살아있다는 어떤 느낌을 가지고 지금의 상황을 시(詩)로 이야기할까.

임화의 <다시 네거리에서>에서는 ‘순이’가 잘 살기를 바랬건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모든 것이 더욱 참담해지고 암울해지고, 낯선 모습의 종로 네거리를 그린다.

번화하는 거리여! 내 고향의 종로여!

웬일인가? 너는 죽었는가, 모르는 사람에게 팔렸는가?

그렇지 않으면 다 잊었는가?

나를! 일찍이 뛰는 가슴으로 너를 노래하던 사내를,

그리고 네 가슴이 메어지도록 이 길을 흘러간 청년들의 거센 물결을,

그때 내 불쌍한 순이는 이곳에 엎더져 울었었다.

그리운 거리여! 그 뒤로는 누구 하나 네 위에서

청년을 빼앗긴 원한에 울지도 않고,

낯익은 행인은 하나도 지내지 않던가?(<다시 네거리에서> 부분)

‘다시 종로 네거리’에 섰지만 시인은 우울하고 암울하다. 잘 생긴 청년을 만났던 ‘순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옛날 ‘엎더져 울었던’ 모습만 떠오르고 잘 생긴 청년을 빼앗겨 버린 ‘순이’만 그려진다. ‘순이’는 그 옛날 ‘네거리 순이’보다 더 참혹해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순이’는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안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조차 알 길이 없다. 그런 비극에도 불구하고 종로 네거리는 갈수록 번화하고 사람들로 넘쳐난다. 물질적 변화가 급격하게 이뤄지지만 종로 네거리에 선 시인은 참담함을 느낄 뿐이다.

1980년대, 내가 태어났던 고향은 깊은 산골이었다. 설과 추석이 되면 타지로 나갔던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들 중에도 ‘순이’가 많았다. 그들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갓 졸업하고 모두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노동을 팔기 위해’ 도시로 나갔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한 손에는 큰 댓병 ‘정종’을, 한 손에는 다양한 과자가 포장돼 있는 종합선물세트를 들고 고향을 찾아 들었다. 일 년에 두 번, 헤어졌던 가족들이 만나는 날이었다. 나는 그때 조무래기였는데 버스를 타고 선물을 들고 나타나는 그녀들이 부러웠다. 그녀들은 명절 전날 왔다가 명절 당일 저녁에 모두 버스를 타고 먼지를 날리며 도시로 돌아갔다. 짧은 고향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그녀들이 모두 ‘순이’였다. ‘정종’과 ‘과자종합선물세트’만 바라봤던 나는 그녀들이 어떤 극한 상황에서, 어떤 고통 속에서 일을 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녀들에게도 젊은 청년이 나타났을까.

종로 네거리에는 지금도 ‘순이’가 있다. 임화에게는 이 현실이 더욱 그를 아프게 하지 않을까.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시(詩)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시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교재(가장 모범적이면서도 가장 풍부하면서도 가장 자유로우면서도 가장 애절하면서 가장 감동을 많이 주는)를 갖고자 한다. 우리나라 시단에서는 교재로 활용되고 있는 시인들이 김소월, 정지용, 한용운 등이다.

그런데 잊혀져 있었던 한국시사에서 1980년대 ‘백석’이란 시인이 등장한다. 이 시인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신경림 시인은 <시인을 찾아서>에서 백석 시인을 자신의 교재였다고 고백했다. 알려져 있지 않았던 시인이기도 했던 백석 시인이 현재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고형진 씨가 묶은 <정본 백석 시집>은 백석의 시를 1935년에서 48년까지 묶은 책이다. 백석의 다양한 시를 정본과 원본으로 엮어 쉽고,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책이다. 백석의 참모습을 느낄 수 있는 시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중 1부는 <사슴>이다. <사슴>은 백석 시인이 1936년 1월 펴낸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총 33편의 시가 실려 있다. 백석 시인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에서 태어났다.

하얀, 흰 밤을 이토록 선명하고 아련하게 담을 수 있을까

<사슴>에 실린 시중 <흰밤>이란 시를 읽어 본다. 짧은 시이지만 시구 속에 한반도, 한민족의 모든 한(恨)과 하얀 색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녯성의 돌담에 달이 올랐다

묵은 초가지붕에 박이

또 하나 달같이 하이얗게 빛난다

언젠가 마을에서 수절과부 하나가 목을 매여 죽은 밤도 이러한 밤이었다.(<흰밤> 전문>

질목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옛날의 성(城). 그 성문의 돌담에 하얀 달이 떠오른다. 고즈넉한 돌담도 그렇고 하얀 달이 떠오르는 모습이 슬프면서도 낭만적이고 향수를 자극한다. 돌담에 하얀 달이 떠오를 때쯤 성 곁에 있는 오래된 초가지붕 위에는 하얀 박이 매달려 있다. 초가지붕에 외롭게 달빛을 받으며 하얀 빛을 발하는 박⋯

무엇보다 백미는 마지막 연에 있지 않을까. 하얀(흰) 밤이 온통 밝히고 있는 그곳에서 수절과부(아마도 수절과부였던 만큼 흰 소복을 입고 있지 않았을까)가 목을 매 죽은 밤도 ‘흰밤’이었다고 시인을 기록한다.

백석 시인의 <사슴>에 실려 있는 시 중 너무나 선명한, 그리고 짧은 4연으로 돼 있는 시구 속에 한민족의 역사와 한(恨)을 그대로 표현해 주는 시이지 않을까 싶다.

봄이 찾아온다. 봄비가 내리는 모습을 후각적으로 표현한 너무나 짧은 시도 <사슴> 편에서 눈길을 끈다.

아카시아들이 언제 흰 두레방석을 깔었나

어데서 물쿤 개비린내가 온다(<비>의 전문)

아카시아 꽃이 만발할 때 봄비가 내린다. 비는 아카시아 잎을 떨구어 길가를 온통 하얗게 물들인다. 마치 흰 방석을 깔아 놓은 것처럼...그런 시각적 모습은 ‘물쿤 개비린내’로 대치되면서 후각적 이미지로 전환된다. 아카시아 꽃이 봄비를 맞아 떨어지고 떨어진 아카시아 꽃들이 흙과 만나면서 전해져 오는 야릇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듯 하다.

<초동일>이란 시는 시각적 이미지가 극대화된 시이다.

흙담벽에 볕이 따사하니

아이들은 물코를 흘리며 무감자를 먹었다

돌덜구에 천상수가 차게

복숭아나무에 시라리타래가 말러갔다(<초동일> 전문)

‘초동(初冬)’이니 겨울이 시작되는 시점인 것이다. 백석 시인이 태어나고 자란 정주는 아무래도 추위가 일찍 올 것이다. 그런 어느 겨울이 시작되는 날, 때마침 따뜻한 햇살이 내리 비친다. 아이들은 물코를 흘리며 ‘후!후!’ 숨을 불어가며 뜨거운 무감자(고구마)를 먹고 있다.

그 모습 한 켠으로는 돌덜구(돌절구)에 천상수(天上水 비)가 내려 가득차 있고 복숭아나무에는 늦가을에 추려 놓은 시래기가 잘 말라가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겨울이 시작되는 한 모습을 이처럼 잘 그려낸 시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밤과 바람을 통해 고즈넉한 정경을 표현한 시도 눈에 띈다. 시각적 요소는 물론 백석 시인의 특징 중 하나이다.

별 많은 밤

하누바람이 불어서

푸른 감이 떨어진다 개가 즞는다(<청시>의 전문)

별이 많은 밤이다. 지금은 도시에서 별을 보는 것은 특별한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 보지도 못한다. 온갖 네온사인등과 먼지에 가려져 별이 떴지만 별은 보이지 않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1930년대 백석 시인의 시절에는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그런 별이 수없이 떠오른 밤, 하늬바람(늦여름과 가을에 부는 서풍)이 불어 아직 익지 않은 푸른 감이 ‘툭’하고 하나 떨어진다. 조용한 잠을 청하고 있던 개가 화들짝 그 소리에 놀라 짖어댄다. 별 많은 밤과 푸른 감이 던져주는 시각적 효과에 개가 짖는 청각까지 합해져 자연의 풍경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백석 시인이 ‘교재’로써 활용되고 있는 이유는 그의 시에는 시각, 후각, 청각 등 모든 오감각이 곳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시는 그런 것에 해당된다. 그 자유로운 오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시인이 백석 시인인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한 사람이 살고 있다.

그는 아주 깊은 산골, 그곳에서 소나무를 키우며 산다. 그가 살고 있는 곳에 닿기 위해서는 인적이 드문 곳을 한참이나 차를 타고 가야 한다. 이런 길에 차가 다닐 수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운 길이다. 길이 아니라 길을 찾아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집에 도착하면 별천지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울창한 숲과 조잘거리며 흘러가는 작은 시냇물, 집 주변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새소리, 무엇보다 그가 꺼내놓은 막걸리와 두부안주는 일품이다.

그의 나이, 이제 60을 넘어 고희에 가까워 오고 있다. 그는 젊은 시절, 학구열에 들떠 있었다. 학문을 통해 세상과 부닥치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갔을 때 그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의 가족 중 한 명이 북한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는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고 방황의 나날을 보냈다. 그리고 선택한 곳이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이다. 아무도 없는 깊은 산 속에 집을 짓고 소나무를 키우며 조경 일을 시작한 것이다. 어느 정도 연좌제는 없어졌다 하지만 그 연좌제가 없어지기 까지 그는 숲 속에 유폐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지금 그가 터 잡고 있는 이곳이 그의 삶이 돼 버렸다.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떠밀려 온 셈이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이 되면서 친일세력에 대한 확실한 ‘짚고 넘어가기’가 없었다는 것이 우리나라 근현대사 비극의 시작점이었다면 6.25 남북전쟁을 통한 ‘가족사의 비극’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큰 비극 중 하나이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도 이 같은 고통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성선 시인의 ‘아버지’, 비무장지대에서 강물이 돼 만나다

염무웅 선생의 <문학과 시대현실>을 탐독하던 중 이성선 시인을 만났다. 그 바로 앞 단락에서 신동문 시인을 만났지만, 나는 신동문 시인의 <내 노동으로>라는 시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성선 시인은 낯선 이름이었다. 포털에 그의 이력을 검색해 본다.

짧은 이성선 시인의 약력을 보자.

그는 1941년 1월 강원도 고성군에서 태어났다. 1970년 ‘문화비평’으로 등단했고 고려대를 나왔다. 그리고 2001년 5월 돌아올 수 없는, 영면에 들어갔다. 여기까지가 공개된 그의 이력이다. 아주 간결하고 짧다. 그런데 염무웅 선생의 <문학과 시대현실>에 기록돼 있는 이성선 시인의 아주 간략한 한 문장이 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6.25때 아버지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연세대와 이회여대 등 교정을 드나들면서 교수나 강사들을 붙잡고 뺨을 때리는 할머니가 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보도됐다. 이 할머니는 다짜고짜 강의하는 교수나 혹은 지나가는 강사를 붙들고 ‘너, 빨갱이지?’라며 폭언은 물론 뺌을 때리고 옷을 찢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너, 빨갱이지?’

2011년, 21세기⋯. 아직도 ‘빨갱이 외침’은 끝나지 않고 있다. 빨간색 콤플렉스는 여전하다. 이 비극은 과연 언제 끝날까. 상황이 이 같은데 이성선 시인이 한창 혈기가 넘쳐 났을 때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박정희,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지는 그 ‘빨간색 히스테리’가 넘실거리던 시대에 시인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조정래 선생의 소설 <한강>의 유일민, 유일표 형제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전해 듣지 않더라도 짐작하고 남는다.

이성선 시인의 <불의 노래> 중 일부를 보자.

지상을 떠나는 바로 그 순간

나는 불이 되리 하늘의 불이 되리

세상의 온갖 밧줄에 묶이어 살아온 나를

‘세상의 온갖 밧줄에 묶이어 살아온’ 나날들, 그에게 시(詩)는 위로이자 독백이었으며 이런 위로를 통해 세상의 밧줄을 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의 무게 앞에 시인은 시간의 의미도 되새긴다.

새는 세상을 날며

그 날개가 세상에 닿지 않는다

나비는 푸른 바다에서 일어나는 해처럼 맑은

얼굴로

아침 정원을 산책하며

작은 날개로 시간을 접었다 폈다 한다

<티벳의 어느 스님을 생각하며>라는 시의 부분이다. ‘작은 날개로 시간을 접었다 폈다 한다’는 표현이 폐부 속으로 스며든다. 작은 날개로 시인도 그 무수한 시간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이 세상을 건너 왔을 것이다. 다행히 ‘푸른 바다에서 일어나는 해처럼 맑은’ 얼굴을 하고 있다는 표현에서 시인의 희망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이제 자신을 옥조이고, 수많은 밧줄에 묶일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어떠했을까.

아홉 살 때 가신 아버지

돌아보고 다시 돌아보며 가신 얼굴

그때부터 비무장지대는

남북을 가르는 띠가 아니다

아버지와 내가 찾아가 꽃으로 떠서

서로를 들여다보는 강물이 되었다

<새와 풀꽃의 면회소>에서 시인은 아버지를 언급하고 있다. 시인의 아버지가 아홉 살 때 ‘가깝고도 먼’ 북으로 갔다는 사실이 나타난다. 아버지는 북으로 가면서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을 터이다. ‘돌아보고 다시 돌아보며 가신 얼굴’이라고 기억했다.

그래서 시인에게 아버지는 분노와 서운함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아늑함, 아련함, 기다림으로 다가온다. 남북분단의 비극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비무장지대는 따라서 시인에게는 아버지를 만나는 공간이자 포근한 느낌을 주는 만남의 장소이다.

물론 이 시는 2000년에 발표된 시이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남북한의 지도자가 서로 만나는 해빙의 시대에 기록된 배경이 이런 분위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70~80년대에 이런 류의 시를 시인이 기록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깊은 산골짝으로 세상에 떠밀려 간 내 주변의 ‘그’⋯

<한강>에서 남북 이념의 고난의 삶을 처절하게 보여주는 유일민‧일표 두 형제⋯

아버지의 존재로 고통 받을 수밖에 없었던 시인 ‘이성선’⋯

그들은 우리 곁에 늘 있었던 누군가의 모습들이다. 아직도 ‘너, 빨갱이지?’라는 소리가 대학가에서 들려올 만큼 남북분단의 비극은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 언제쯤 이런 소리가 사라질까.

이성선 시인이 말했듯 그는 지금 하늘로 날아가 ‘해처럼 맑은 얼굴로 아침 정원을 산책하며

작은 날개로 시간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불이 되어’ 있을까. 그러기를 소원하고 희망하고, 그렇게 돼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나의 시는 비교적 수월케 씌어진다. 그것은 평소에 머릿속에 시 생각이 가득차 있어서, 펜을 들면 수월케 시가 되는 것이다.(중략) 시는 마음이다. 마음을 잘 쓰는 안 되는 일이 없는 것이다.”


배경음악과 함께 읽기를...

천상병 시인이 자신의 시집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책머리에 손수 쓴 글이다. 그의 ‘귀천(歸天)’이야 이제 ‘국민 詩’가 된 지 오래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귀천’ 중에서>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은 크게 총 넉 장으로 이뤄져 있다. 제 1장 ‘이 세상 소풍’에서 시작해 제2장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제3장 ‘사는대로 살다가…’ 제4장 ‘누군가 앉았다 간 자리’로 구성돼 있다.

‘이 세상 소풍’에서는 아내와 장모, 아이들에 대한 시들이 많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고 정겨움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아내가 찻집을 하고, 칠십 팔세의 장모님이 아직도 정정해 살림살이를 거의 모두 하다시피 하니 자신은 너무 행복한 사람이라고 노래한다.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나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행복’ 중에서>

부러울 것 없는 자신을 두고 이 세상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정한다. 집하나 없는 것을 두고도 그는 불평이 없다.

옛날의 예수님도

집이 없었는데

나는 셋방이라고 있으니

그저 영광이다<‘집’ 중에서>

이쯤 되면 시인의 자족(自足)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에서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그리고 죽어 고향에 묻히고 싶다는 애틋한 마음을 담았다.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시인의 내면도 읽힌다.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소릉조’ 중에서>

경남 창원군 진동면이 고향인 시인은 서울 변두리에서 막걸리와 시를 쓰며 살고 있지만 고향을 향한 마음은 간절하다. 그러나 몸이 불편하고, 갈 마음과 달리 발걸음은 움직이지 못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립고 멀리 떨어진 형과 누이를 그리워해 본다. 그러면서 시인은 “나이 사십에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찾아간다.”라고 ‘불혹의 추석’에서 되뇌인다.

시인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풀면서 자신의 지금과 그리고 훗날 자신이 죽어 땅에 묻혔을 때 찾아올 아들, 딸들에게 자신의 비명(碑銘)까지 남겨 놓는다

오늘 아침은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중략)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나의 가난은’ 중에서>

막걸리와 예쁜 아내와 정정한 장모와 행복한 날들을 보낸 시인이 죽어, 나중에 자신의 풀섶을 찾는 이들에게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라고 생각해 줬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

막걸리와 맥주를 좋아했던 시인은 마침내 자신의 간이 이상증세를 보이는 것조차 시로 풀어쓴다.

보지도 못한 내 간이

괘씸하게도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 쪼무래기가 뭘 할까마는

아직도 살고픈 목숨 가까이 다가온다

나는 원래 쿠데타를 좋아하지 않는다<‘간의 반란’ 중에서>

‘간의 쿠데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인은 쿠데타를 싫어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제3장에 ‘사는대로 살다가…’에 이르면 시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소중하다. 특히 이 장에서는 ‘새’와 ‘비’에 대한 시들이 눈에 띈다. 시인의 비극적 체험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도 있어 시인의 아픔을 보여준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새’ 중에서>

비나 내리는 날, 시인은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도 떠올려 본다.

나는 국민학교 때는

비가 오기만 하면

학교엘 가지 아니하였다

이제는 천국에 가신 어머니에게

한사코 콩을 볶아달라고 하여

몸이 아프다고 핑계했었다<‘비’ 중에서>

새와 비를 노래하던 시인의 ‘그날은-새’ 부분에 이르면 시인의 암울했던, 그리고 이해도 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는 비극의 상처를 만난다. 그 비극은 우연과 필연이 종합된 현대사의 비극!

이젠 몇 년이었는가

아이롱 밑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날은…

이젠 몇 년이었는가

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

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진실과 고통은 무엇이었을까. 시인은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간다. 혹독한 전기고문 등을 받고 6개월 간 투옥됐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는 그 경험, ‘이젠 몇 년이었는가.’라며 시인은 진실과 고통의 순간을 기억한다.

마지막 4장인 ‘누군가 앉았다 간 자리’에서는 길과 구름, 하늘에 대한 소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길은 끝이 없구나

(중략)

길은 막힌 데가 없구나

가로막는 벽도 없고

하늘만이 푸르고 벗이고

하늘만이 길을 인도한다

그러니

길은 영원하다<‘길’ 중에서>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의 시집에는 유독 ‘애오라지’라는 부사가 많이 등장한다. 시인이 아마도 평상시 즐겨 썼던 말이지 않나 싶다. 사전적 의미로는 ‘겨우’ ‘오로지’라는 의

미로 읽히는 ‘애오라지’…

‘애오라지’ 가족을 사랑했고, 새와 비와 길을 노래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노래했던 천상병! 그의 시는 알코올 도수가 감춰져 있어서 무심코 읽는 독자들을 취하게 만든다는 해설이 마음에 다가온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시란 무엇일까. 시는 정직한 말이다.

시란 무엇인가. 시란 있는 그대로를 말하되 가슴속 깊은 곳에 가 닿는 말이다.

시란 무엇인가. 시란 '뜨거운 아스팔트 위의 아이스크림' 같은 말이다. 달콤한 맛을 느끼기 전에 녹아 버린다. 하지만 그 맛은 깊고 혀끝에 한없이 감돈다.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는 정직하고 가슴 깊이 푸른 우물을 만들고, 달콤한 맛을 느끼게 해 주는 정감이 느껴진다. 시인이 직접 시인들의 고향을 찾고 시인들의 추억이 녹기 전의 맛을 선물한다. 22명의 시인은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에서 다시 태어나고 다시 느끼게 해 준다. 시인들의 기행과 시인들의 인간적 면을 담고 있어 어린이나 어른에 이르기까지 쉽게 읽히고 큰 감동을 준다. 지금까지 읽은 그 어떤 책보다 소중한 이유이다.



3월이 다가오고 있는 지금 ."삼동네 얼었다 나온 나를/종달새 지리 지리 지리리.../" 정지용의 <종달새>는 노래한다. 올해 우리는 얼어 있었다. 이제 언 땅을 박차고 나와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며"(향수) 뛰어놀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선비의 자질을 갖고 있는 조지훈 시인은 박목월 시인에게 <완화삼>이란 시를 보낸다.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강 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박목월 시인의 '나그네'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만든다.

부안 변산에서 태어난 신석정의 <대춘부>는 짧은 시이지만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무 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한눈에 깨닫는다. 그 러나 한참이나 뒷장을 남기지 못하고 눈을 감고 깊은 사색에 잠기게 한다. "...나무는 나무끼리/짐승은 짐승끼리/우리는 우리끼리/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다/"

' 봄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우리 끼리 살아가고 있을까. 혹시 짐승과 끼리끼 리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곁에 있는 누군가를 존중할 자세가 돼 있는가. 시 인의 시속으로 걸어들어 가면 꼬리에 꼬리 를 무는 질문이 계속 샘솟는다.

시인과 술은 어떤 관계일까. 술은 시인과 밀 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술에 얽힌 시인 들의 기행과 술로 인해 벌어지는 에피소드 는 <시인을 찾아서>의 한 테마를 이룬다. 술 한 잔 걸치고 시를 읽고, 시를 쓰기 전에 술 한 잔을 권해야 할 듯한 의무감까지 든다.

그중 김종삼 시인은 단연 독보적이다. 동아방송국을 다녔던 시인은 귀가 크고 코가 무척 컸다. 베레모를 쓰고 인상적인 얼굴로 친구들에게 술 사는 것을, 권하는 것을 좋아했다. "...가난한 아희에게 온/서양나라에서 온/아름다운 크라스마스카드처럼/..."이라고 시인은 <북치는 소년>에서 노래하고 있다.

술이라고 하면 천상병 시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막걸리 한잔에 이 세상 모든 것을 가졌다며 즐거워하는 시인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막걸리 한 사발에 해장국까지 배부르게 먹고 주머니에 버스 차비가 아직 남았다는 것에 무척이나 행복해하는 시인의 자족(自足)을 과연 이 시대 사람들은 이해할까. 그런 시인이었던지라 <귀천>을 통해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노래하지 않았는가.

서울은 한국의 상징이지만 온갖 비극적 사건과 사고가 일어났던 근현대사의 블랙홀이었다. 서울과 분단을 읊고 있는 시인들의 말 속에서 그 비극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던져진다.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천둥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박봉우의 <휴전선>은 남과 북의 믿음이 없는 얼굴로 극한 갈등과 대치를 하고 있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러니 이제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같은 이야기도 없는가"라고 시인은 한탄한다. 박봉우 시인은 결혼식을 민족적 정기가 서려있는 파고다공원에서 할 만큼 민족과 나라를 사랑했던 시인이었다.

서울은 임화에 이르면 싸늘하면서도 연민을 느끼는 도시로 다가온다. <네거리 순이>에서 시인 임화는 "눈바람 찬 불쌍한 도시 종로 복판에 순이야!/...서글프고 가난한 그날 속에서도/순이야, 너는 마음을 맡긴 믿음성 있는 이곳 청년을 가졌었고/"라고 묘사한다. 서글프고 가난한 서울이지만 희망을 놓지 않았던 우리의 현대사를 보는 듯 하다.

그런 서울이 오장환의 원고지에는 <병든 서울>로 묘사된다. 오장환 시인은 "병든 서울, 아름다운, 그리고 미칠 것 같은 나의 서울아/.../우리네 인민의 공통된 행복을 위하여/우리들은 얼마나 이것을 바라는 것이냐/아, 인민의 힘으로 되는 새 나라/"

새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나섰지만 새 나라는 커녕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병든 서울로 바뀌어 버린 현실 앞에서 시인은 큰 목소리로 미칠 것 같다고 소리친다. 서울은 근현대사를 통틀어 시인들에게 가장 많은 소재와 이야기,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 그 온갖 인간의 감성을 느끼게 해 준 '시인들의 요람과 무덤'이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 가슴이 시원해지고 맑은 기운이 끓어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 자연을 노래하고 자연을 벗 삼은 시인들의 등장도 읽기에 좋다.

김영랑의 <오~매 단풍 들것네>는 누이의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장광에 골붉은 감잎 날아와/누이는 놀란 듯이 치어다보며/..." 감잎이 떨어지는 모습에 누이의 붉은 얼굴과 설레는 감정을 그대로 전해준다. 마치 읽는 내가 그 모습을 지금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다.

<감자꽃>은 권태응 시인의 간단명료한 의미를 전달받는다.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는 동시. "자주꽃 핀 건 자주 감자/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하얀 꽃 피는 건 하얀 감자/파 보나 마다 하얀 감자/"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자주 감자를 굳이 하얀 감자라고 우기는 정치꾼들이 이 시를 보고 좀 배워야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자주 감자를 하얀 감자라고 우기는 것이 정치인들의 특기라고 한다면 이것 또한 견강부회가 되는 것인가.

자신을 되돌아 보거나 독려하는 시인들의 시도 눈을 즐겁게 한다. 그중 가장 추천하고 싶은 시는 신동문의 <내 노동으로>이다.

"내 노동으로/오늘을 살자고/결심을 한 것이 언제인가/.../제 맛도 모르면서/밤새워 마시는/이 술버릇은/다 무엇인가/..." 과연 우리는 내 노동으로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을까. 내 노동의 대가는 정직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신동문 시인은 가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던 시인이다. 그 시인이 내 노동으로 살자 했는데 그것조차 허락치 않는 현실...술 맛도 모르면서 밤새 마시는 짙은 고독이 느껴진다.

윤동주는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오늘도...내일도.../내를 건너서 숲으로/고개를 넘어서 마을로/"라고 <새로운 길>에서 다짐했고 박인환은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의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어/..."라며 아름다웠던 사랑의 기억을 <세월이 가면>에서 끄집어낸다.

한용운과 김수영을 만나면 시대의 아픔을 만난다.

그동안 ‘복종만 할 수 있는 리더(지도자)’를 우리는 만난 적이 있었던가. 한용운운 <복종>에서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라고.

근현대사를 살아온 우리는 조직이든, 사회든, 국가든 정말 복종만 하고 싶은 그 어떤 존재를 만날 수 있었던가. 굴욕적인 복종이 아니라 무한히 존경하고 뒤따를 수 있는 ‘존재’를 만난다는 것은 한 인간에게, 한 시민에게는 축복이다. 아직 그런 존재를 만나지 못했다는 현실이 한용운의 <복종>에서 가슴을 짓누른다.

김수영의 <풀>은 흔들리는 바람에도, 수없이 내리치는 그 어떤 고난에도 끝내 스러지지 않고 우뚝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끈기와 생명력을 선보인다. <풀>같은 민중과 국민이 있었기에 우리나라의 지금이 있는 것은 아닐까.

“.../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도 먼저 일어난다/...”

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는 이 시대 메마른 감정의 대지에 단비를 내리게 하는 시로 가득하다. 감정의 늪에 단비를 맞고 싶은 이들에게 <시인을 찾아서>를 권해본다.

이 밖에도 이육사의 <절정>, 백석의 <나의 나타샤와 흰 당나귀>, 유치환의 <그리움>, 박목월의 <고향에서> 등의 시가 시인의 고향에서 펼쳐진다.

시는 무엇인가.

시(詩)는 시(時)를 만나는 시간이다. 시(時)를 만날 때 시(試)는 내 가슴속으로 들어와 단비가 되고 세상을 호흡하는 신선한 산소가 된다.

P.S>>전자책(epub) 파일을 첨부합니다.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에서 내려받아 ibooks로 볼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