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처음 들자마자 ‘아!’하는 탄성이자, 안타까움이자, 부끄러움이자, 부러움이자, 연민인 소리가 터져 나왔다. 조정인의 <장미의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옭죄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원죄에 대한 그의 탐구는 끝없이 펼쳐졌고 그 여정을 따라가기에는 내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집을 읽었다 덮었다, 몇 번인가를 반복했다. 시는 머리와 가슴으로 쏙쏙 파고들지 못했고 계속 그 겉에서 맴돌았다. <장미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고 가슴으로, 혹은 머리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몇 번인가를 더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한마디로 어렵다.

고독의 하느님 곁으로 간 할머니의 삶

그중 내가 이해할 만한 몇 개의 시를 먼저 인용해 보는 것이 좋겠다. 먼저 <문신>이란 시를 보자.

고양이와 할머니가 살았다

고양이를 먼저 보내고 할머니는 5년을
더 살았다

나무식탁 다리 하나에
고양이는 셀 수 없는 발톱자국을 두고 갔다
발톱이 그린 무늬의 중심부는 거칠게 패였다

말해질 수 없는 비문으로
할머니는 그 자리를 오래, 쓰다듬고 또 쓰다듬고는 했다

하느님은 묵묵히 할머니의 남은 5년을 위해
그곳에 당신의 형상을 새겼던 거다

고독의 다른 이름은 하느님이기에

고양이를 보내고 할머니는 하느님과 살았던 거다

독거, 아니었다

식탁은 제 몸에 새겨진 문신을
늘 고마워했다

식탁은 침묵의 다른 이름이었다(<문신> 전문)

<문신>은 한 할머니의 일상을 담았다. 혼자 살고 있는 독거노인이다. 할머니 곁에는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가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혼자 산 것은 아닐 터인데 할머니의 가족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시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할머니는 지금 혼자라는 것이 중요하다.

할머니는 고양이와 오랬동안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5년 전에 고양이는 그만 하느님 곁으로 가버렸다. 그녀의 유일했던 살아 움직이는, 꼬물 꼬물 꼬리를 흔들고, “야옹! 야옹!” 소리를 지르며 할머니를 ‘인간이게 한’ 고양이가 죽은 것이다.

고양이가 떠난 뒤 5년 동안 할머니는 혼자서 살았다. 그러나 할머니에게는 고양이의 흔적이 남았다.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식탁에 발톱으로 긁은 상처를 남겨 놓았다. 그 긁힌 상처는 할머니에게는 ‘글’이었다. 물론 알아보지 못하는 ‘비문’이었지만 그것조차 할머니에게는 위로받을 수 있는 소중한 것이었다.

할머니는 5년 동안 식탁의 ‘비문’을 최고의 찬사이자, 할머니를 위해 남겨놓은 위로라 생각하고 쓰다듬었다. 5년 동안 할머니는 그 ‘비문’을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고독과 함께 생활했다. 그 바람에 무생물이었던 식탁도 생명의 기운을 얻는다.

식탁은 할머니가 그 비문을 쓰다듬을 때마다 늘 고마워한다. 그렇게 할머니는 5년 뒤 역시 고독의 하느님 곁으로 떠난다. 아마도 그 하느님 곁에는 먼저 떠났던 고양이도 만났으리라. 고양이와 할머니가 모두 떠나 버린 그곳에서 식탁은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조정인의 <장미의 내용>은 인간의 원죄에 대한 탐구가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에덴동산에서 사과(선악과)를 따 먹는 순간, 인간은 태어남과 죽음을 맞이하는 고통의 순간으로 떨어진다. 남자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뼈빠지게 일해야 하는 고통을, 여자는 생명을 잉태하는 고통을 부여받는다.

<문신>에도 인간의 원죄가 녹아들어 있다. 노년에 혼자가 된 할머니, 고독에 휩싸여 있는 할머니, 누구하나 할머니 곁에 살아있는 생명이라고는 없고, 남겨놓은 흔적만 가득한 텅 빈 집. 그렇게 인간은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 원죄를 용서받기 위해 ‘고독의 하느님’ 곁으로 떠나는 것이다.

따뜻한 묘지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

가볍고 아름다운 생명체들이 묘지 안으로 들어가는 인간의 죄에 대해서도 조정인은 주목한다. 인간만큼 무자비하고, 인간만큼 혹독하고, 인간만큼 악랄한 생명체도 없다. 지금 인터넷 앞에 있다면 화면을 열고 뉴스 사이트에 접속해 보자. ‘죽이고, 동물을 학대하고, 때리고, 부시고, 멱살잡이하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인간의 잔인함을 직접 볼 수 있으리라.

<장미의 내용>을 보자.

12월의 장미를 뒤돌아보다가, 그 싸늘한 불꽃에 곁불이
라도
쬘까 하다가

제 무덤을 지키는 적막한 묘지기를 본다 저 얼굴은 죽음
의 안쪽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이므로 겹겹 봉인된 그의 안채는 얼마나
따뜻하겠니

죽음의 내용들이 발끝을 들고 장미를 건너간다 일테면,
골목에서 사라진
영아(嬰兒)와 참새와 비둘기와 새끼고양이와 늙은 개⋯⋯
가볍고 아름다운 그것들은 홀연히 몸을 띄워 대기권 바깥
제 투명한 묘지를 찾아들었다 좀 있으면 흙의 일이 궁금
해진
첫눈이 오고 아이들은 눈이다! 외칠 테지
사슴이다, 하는 것처럼

그런데 나는 왜 심장이 사라지나 흰 늑대가 되어 눈보라
처럼 하늘 복판을 펄럭이나
심장을 쏟았으니 가슴이 다 패어 허공이 된 늑대, 바람이
된 울음을
암청색 밤하늘에 풀어놓나

                       와우우, 운석의 꼬리같은

                         창자처럼 긴 울음을

돌연 천공을 찢고 내려와, 폭설에 푹푹 발이 빠지며 내 하
얀 늑대가 다가오던
기척, 귓가에 붐비던 숨, 더운 혀에 관한 기억들이여 안녕
시절이여 안녕(<장미의 내용> 전문, 원문형태 그대로 인용)

이 시에서는 인간의 원죄에 대한 언급이 직접으로 나온다. 장미의 붉은 기운을 ‘쬘까’하다가 나(시적 화자)는 묘지를 본다. 생명의 기운을 느끼려다가 죽음을 보는 셈이다. 인간의 삶 자체가 생명의 기운과 죽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니, 이는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죽음의 공간조차 나는 ‘얼마나 따뜻하겠니’라며 묘지의 따뜻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죽어간 이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전한다.

영아와 참새와......생명체들이 죽어 투명한 묘지공간으로 건너갔고 이제 내가 생각해야 할 일은 흙의 일이 궁금해지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무 뜻 없이 ‘눈이다!’라고 외치지만 나는 눈보라를 본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눈보라, 인간이 짊어질 수밖에 없는 고통이자 원죄이다. 그런데 그 원죄속에서 나는 심장이 없는 흰 늑대가 되어 있다. 흰 눈보라 속에서 흰 늑대, 그 존재는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 절망의 순간에서 심장까지 없으니 나는 이제 허공이 될 수밖에 없다.

나는 생명의 순간 느꼈던 모든 감정을 내려 놓는다.

기척-누군가 죽어가는 순간을 지켜보는 이들의 기척.

귓가에 붐비던 숨-죽어가는 이의 마지막 말을 듣기 위해 귀를 갖다대는 마지막 의식.

더운 혀-마지막 임종을 하며 살아있는 자들에게 남기는 더운 혀.

이런 모든 감정을 내려놓고 나는 “시절이여 안녕”이라고 말한다.

<장미의 내용>은 붉은, 하얀-더운, 차가운-생명, 죽음-의 대비효과를 뚜렷이 보여준다. <장미의 내용>은 이번 시집에서 대표적인 시라고 할 수 있겠다. 조정인의 <장미의 내용>은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원죄에 대한 깊은 내면적 무질서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고 있다. 그러니 <장미의 내용>을 이해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의 원죄란 자신이 죽을 때까지 모르는 불가사의한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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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반(半)의 뮤지컬
40-2010-1월

뮤지컬을 보러갔다
반(半)의 뮤지컬
무대 위
마라톤을 뛰는 사람들이 보인다
'탕!'
긴장감이 감돈다
출발하는 무리들의 비장한
얼굴이 하나, 둘
나타난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작은 키에서 큰 키까지
나는 무대 위 그곳에 없다
'탕!'
사람들이 뛰쳐
나간다


반(半)을 향해
달려간다
반환점이 목표다
우선은 반이 목표다
무대 아래에서
반(半)을 생각한다
반(半)을 향해
뛰는 사람
반(半)을 생각하는

'탕!'
아이들은 질주한다
달려간다
반(半)은 한참을
남겨두고 있는데
뮤지컬을 보러갔다

반(半)의 뮤지컬
이제 사십(四十)이다
아니다
이제 사십(死十)이다
나의 무대는 아직 펼쳐지지 않았다
나는 관객이다
나는 방관자다
반환점을 돈 그들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출발점으로 돌아오기 까지
또 다시
반(半)의 뮤지컬
나의 뮤지컬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나는 관객이다
나는 그들을 쫓아가지 못한다
나는
반환점을 돌아 무대로 뛰어온다

무대 위에 섰을 때
나는 사십(四十)이다
아니다
이제 사십(死十)이다
나의 뮤지컬이 시작되기 까지
나는 꼼짝없이
‘탕!’
소리 나는 그곳을 쳐다보고 있다



P.S>><반의 뮤지컬>이 안드로이드마켓에 등록됐습니다. <반의 뮤지컬>은 1장에서 부터 10장까지 총 10개의 시(詩,時)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 시는 마지막 10장의 시입니다. 1장~9장까지 <반의 뮤지컬>을 읽고 싶으신 분은 안드로이드폰 이용자만 마켓에서 <반의 뮤지컬>로 검색하시면 됩니다. 무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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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세 번이나 이혼한 마거릿 미드에게
기자들이 왜 또 이혼했느냐고 물었다
그때 그녀가 되물었다
“당신들은 그것만 기억하나
내가 세 번이나 뜨겁게 사랑했다는 것은
묻지 않고“(<물음> 중에서)

천양희 시인은 <물음>이란 시에서 ‘이혼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시각의 차이를 확연하게 볼 수 있는 시구다. 우리는 주관과 시각을 가지고 살아간다. 주관과 시각이 종합적으로 체득될 때 그것은 가치관을 형성하는 기본이 된다.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시각’이다.

마거릿 미드의 여러 번 결혼을 두고 기자들의 관심은 “왜 또 이혼했느냐”는 질문이 먼저일 것이다. 마거릿 미드의 입장이 아니라 ‘이혼한 여자’라는 곳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마거릿 미드는 되받아쳐 “왜 당신들은 그것만 묻나? 내가 세 번이나 뜨겁게 사랑했다는 것은 왜, 왜, 왜 묻지 않나”라고 소리친다.

마거릿 미드는 ‘인류학의 어머니’로 불리는 인물이다. 나도 인류학을 전공했으니 마거릿 미드에 대해 몇 가지 언급하고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는 시를 읽어보자.

마거릿 미드는 서사모아와 뉴기니 등지를 발로 뛰면서 참여관찰을 통해 연구한 학자이다.

서사모아에는 빵나무라는 것이 있다. 이곳 원시 부족들에게 빵나무는 주된 먹거리이다. 배고프면 나무에 올라 빵나무에서 열매를 따서 먹는다. 피곤하면 누워 잠을 잔다. 이 원시 부족에게는 통제와 간섭이 거의 없다.

예컨대 이런 경우이다. A라는 가정에 부모와 ‘지니’라는 이름의 딸이 하나 있다. 딸은 열다섯이다. 어느 저녁, 지니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21세기 한국에서는 난리가 난다. 납치에서부터 온갖 극한 상황까지 염두에 둔다). 부모는 딸의 귀가를 기다리지 않고 저녁을 먹고 편안하게 잠자리에 든다. 그날 지니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침이 지나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지니는 그제서야 집에 들어온다.

지니가 외박을 하고 들어 왔지만 부모는 아무 것도 묻지 않고 꾸짖지도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웃집의 “어디에선가 잤겠지.”라는 생각. 다른 집안의 딸이 지니의 집에서 자고 간다하더라도 지니의 부모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이곳 원시 부족들은 자신의 가족이 어느 집에서 자든, 며칠을 나가 있든, 어디에선가 자고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이 원시 부족의 독특한 문화 때문이다. 누가 자기 집에 와서 자든, 내 가족의 누가 다른 집에 가서 자든 서로에 대한 믿음과 배려를 먼저 생각한다. 통제와 간섭보다는 자유와 배려를 우선시 하는 문화적 전통 때문이다. 문화는 이처럼 한 사회를 이루는 기본 골격을 갖추게 한다.

마거릿 미드는 “왜 태어나면서부터 남성은 공격적이고 적극적이며, 여성은 다소곳하고 수동적일까”라는 의문이 휩싸였다. 서사모아와 뉴기니 등지를 연구한 마거릿 미드는 어떤 한 부족의 경우 여성이 사냥을 하고, 남성이 가정 일을 하는 문화를 보게 된다. 그런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마거릿 미드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구분하는 것은 태어나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의 문화구조가 그렇게 만든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 연구 결과는 이후 여성주의(페미니즘) 운동의 출발이 되는 이론으로 정립된다.

‘귀가 순해지는’⋯가벼우면서도 텅 빔을 꿈꾼다

잎인 줄 알았는데 새네
저런 곳에도 앉을 수 있다니
새는 가벼우니까
바람 속에 쉴 수 있으니까(<새가 있던 자리>중에서)

천양희 시인은 ‘가벼운 새’에 주목한다. 도대체 앉을 수 없는 곳에서도 ‘가벼운 새’는 앉는다. 심지어 바람 속에서도 쉴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어떠한가. 시인은 “얼마를 더 많이 걸어야 인간이 되나”라고 읊조린다. 가볍게, 바람 속에서도 쉴 수 있는 새를 꿈꾸는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942년생인 시인의 나이 올해 만 69세. 한국 나이로는 칠순이다. ‘귀가 순해지고’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다.

아버지 가고
나는 벌써
귀가 순해졌다(<오래된 나무> 중에서)

가벼운 새를 꿈꾸면서도 ‘아직 인간이 되려면 얼마를 더 걸어야 할 지 모르는’ 시인이지만 이제 “바람 몰아쳐도 크게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어느덧 이순의 나이에 다다르고 있다.

이순을 지나 칠순에 다가간 나이에는 무엇보다 받아들이기 보다는 ‘나를 비워가는 것’이 이치에 맞는 삶일까. 시인은 ‘공(空), 텅 빔’에 관심을 가진다.

모르는 소리 마오 속이 비었으니 얼마나 가벼운지 모른다오 속이 비었다고 참으로 가벼운 존재는 아니오 속없이 사는 내가 나는 대견하오 속없이 사는 건 마음 비우고 사는 것과 다르지 않소 나는 평생 속없는 자로서 간단없이 갈 길 가려 하오(<공어(空魚)이야기>중에서>

가벼운 새처럼, 그리고 속없이 마음을 비우고 사는 것처럼 시인은 갈 길을 가려하고 있다. 하지만 여자로 태어난 시인에게 여성이란 비애는 늘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다.

하룻밤 사이에 겨울이 오고
소낙비 같은 슬픔이 쳐들어와선
이 땅에 여자로 태어나
누구의 아내로 사는 누구라도
허난설헌을 읽는 밤
너무 늦게 마르는 눈물자국이여(<허난설헌을 읽는 밤>중에서)

조선의 혁명아였던 허균의 누이였던 허난설헌. 그녀는 조선의 가장 위대한 여성시인이자 작가였다. 그러나 여성으로 태어난 그녀는 “나에게 세 가지 한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하필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이라고 한탄한다. 그녀의 시는 중국으로 건너가 찬사를 받는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태어난 조선에서는 “아녀자가 시는 무슨 시” “이 시는 베꼈음에 틀림없다”는 등의 비난만 받는다. 작가의 진정한 가치보다 ‘여자’라는 몰상식의 가치가 팽배했던 조선이었다.

천양희 시인은 그런 ‘허난설헌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 또한 ‘너무 늦게 마르는 눈물’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마들에 ‘우두커니’ 선 시인

시인은 마침내 ‘마들’에 선다. 마들이라면 넓은 들, 혹은 말들이 뛰어노는 들이라고 받아들여진다.

생각해보니 수직이 없는 들에는 그늘이 빠져 있다
말의 발자국 거기서 끊겨 있다
끊어진 것은 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들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오늘은 내가 번개라도
돌을 쪼개듯 들을 쪼갤 수는 없다(<나의 처소>중에서)

마들에 나가
들판 끝 본다
눈 끝의 새 본다
들풀에도 새가 앉네
새는 가벼우니까(<겨울 들>중에서)

들판은 이제 들의 판을 바꾸어버렸다
마들은 이제 말의 들이 아니다
나는 다시 적는다
이제 마들은 말의 들이 아니다(<마들시편>중에서)

마침내 시인은 마들에 서서 저 깊은 수평선을 보고 있다. 끝없는 그곳에는 수직이 없고 그늘도 없다. 들판의 끝을 보고, 그곳에서 눈 끝으로 새를 본다. 여전히 새는 ‘가벼우니’ 들풀에도 앉아 있다.

오래된 농담과 시적 씨앗을 찾는 시인

시인은 이제 인생의 절정기를 맞이하고 있다. 시인은 거쳐 지나온 자신의 삶과 같은 오래된 농담에 귀 기울인다. 늘 곁에 있고, 늘 함께 있지만 왠지 외로운 부부. 현대의 부부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서로 외로움을 진하게 풍기는 존재가 아닐까. 늙은 부부가 한 쪽을 업고 길을 지나가는 시 한편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나, 생각보다 무겁지? 한다
그럼, 무겁지.
머리는 돌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지
그러니 무거울 수밖에
굵은 주름이 나이테보다 더 깊어 보였다

나, 생각보다 가볍지? 한다
그럼, 가볍지
머리는 비었지 허파엔 바람 들어갔지 양심은 없지
그러니 가벼울 수밖에
두 눈이 바람 잘 날 없는 가지처럼 더 흔들려 보였다(<오래된 농담>중에서)

갑자기 이 시편에서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이 떠 오른 것은 왜일까. <오래된 정원>에 나오는 한 문장 때문이었을까. 수배중인 남자가 자신을 숨겨준 여자의 집을 떠날 때 여자가 떠나는 남자의 뒤에다 대고 가만히 독백한다.

“먹여줬지. 재워줬지. 입혀줬지. 몸줬지⋯.뭐가 아쉬워서 네가 가냐?"

<오래된 농담>과 <오래된 정원>의 시와 소설이 겹쳐지면서 묘한 긴장감과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천양희 시인은 자신의 시에 대한 의미도 스스로 털어놓고 있다. 천양희 시인에게 시는 과연 무엇일까. 다음 시를 보면 들춰진다.

시를 쓰니 세상에 빚 갚는 것이고
의지할 시를 자식처럼 키우니 저축 아닌가
그래서 나는 절로 웃음이 난다네
시시시(時視詩) 가득한 통장에
마이너스는 없다네(<시(詩)통장>중에서)

‘시 통장’에 마이너스가 없다는 표현이 가슴 속으로 다가온다. 물가는 오르고, 먹고 살기 힘든 요즈음 마이너스 통장이 아닌 것만으로도 잘 살고 있는 축에 속하지 않을까. 시인은 시를 통해 세상에 빚을 갚고 그러면서 넉넉지는 않지만 마이너스는 아니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시 통장’에는 시(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담을 수 있는 ‘시(時) 통장’도 있고, 모든 것을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을 꼬박꼬박 저장할 수 있는 ‘시(視) 통장’도 함께 있다. 넉넉한 ‘시 통장’일 수밖에 없겠다.

천양희 시인의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는 시인의 칠순 인생에서 여러 가지 관조적인 생각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넓은 들판에서 시인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아쉬움과 넉넉함, 때론 슬픔과 비애, 나아가 기쁨과 행복까지 노래한다.

‘시인의 말’에서 천양희 시인은 “세상에서 가장 죄 없는 일이 시쓰는 일이라고 아직도 믿으면서”라고 적었다. 천양희 시인에게 시는 ‘세상에 빚을 갚는 일이자 가장 죄없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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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아침 출근길이 무척 맑았다. 어제 일요일, 하늘은 잔뜩 누렇게 뜬 얼굴이었다. 먼 하늘을 바라보는 낭만이 사라진 하늘이었다. ‘파랑’은 사라지고 ‘희뿌연 누런’ 색이 기분 나쁘게 앉아 있었다. 봄의 색깔 ‘노랑’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봄이 성큼 다가왔지만 ‘노랑’의 계절, 봄은 아직 멀었다. 4월의 중간에 서 있지만 계절은 색깔을 잊어버린 것일까. 봄의 계절 ‘노랑’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디고, 그럴수록 ‘노랑’은 아직 저만치 우리들을 애타게 하고 있는 듯하다.

월요일 아침, 맑은 하늘이 기분 좋았다. 회사에 도착해 인터넷을 켰다. 인터넷서점에 접속한다. 봄의 계절 ‘노랑’을 만나기 위해 인터넷서점 사이트에서 ‘오봉옥’을 검색한다. 오봉옥 시인은 최근 시집 <노랑>을 펴냈다.

<노랑>을 주문하고 오봉옥 시인에 대해 이것저것 인터넷에 어떤 정보들이 있는지 알아본다. 무엇보다 그의 시집 <붉은 산 검은 피>가 우선이다. ‘붉은 산 검은 피’라는 검색어를 입력하고 엔터키를 눌렀더니 놀라운 검색결과가 나온다.

‘최신뉴스’ 검색어 결과의 맨 위에는 다음과 같은 뉴스가 나왔다.

'붉은 산 검은 피' 저자(著者)에 징역3년 구형
연합뉴스 | 입력 1990.05.24 17:41

(서울=연합(聯合))서울지검 공안1부 李貴男검사는 24일 시집 '붉은 산 검은 피'를 출판해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제작.판매 혐의로 구속기소된 도서출판 실천문학사 前주간 宋基元씨(42)에 대해 징역2년.자격정지 2년을,이 시집의 저자 吳奉玉씨(28)에 대해서는 징역3년.자격정지3년을 각각 구형했다.
이들은 지난해5월 시집 '붉은 산 검은 피' 1,2권을 각 2천권씩 발간,대학가서점 등에 판매한 혐의로 지난 2월 구속기소됐었다.

1990년 기사가 ‘붉은 산 검은 피’에 대한 최신 뉴스였다. 1990년 5월24일 작성된 이 기사는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1990년에 오봉옥 시인은 진보 시인으로, 세상과 호흡하는 시인으로, 운동하는 양심으로 서 있었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음을 기사는 확인시켜 준다.

스물여덟에 자신이 펴낸 시집으로 옥고를 치르는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검찰이 징역 3년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오 시인에 대해 징역 8월을 선고한다. 집행유예로 풀려나지만 <붉은 산 검은 피>로 송기원 주간과 오 시인 모두, 옥고를 치르는 곤욕을 치렀다.

또 하나 이 기사에서 눈에 띄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단어가 있다.

‘서울지검 공안1부 李貴男 검사는⋯’ 운운되는 부분이다. 이귀남이라고 하면 현재 법무부장관이지 않은가. 혹 동명이인인지, 이귀남 장관의 경력을 검색해 봤더니 ‘1988~1991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나와 있다. 이어 장관에 임명됐을 때 약력을 보면 ‘형사와 공안을 두루 거친’이라는 말이 나오고, 한자 이름도 같은 걸로 봤을 때 1990년대 이귀남 검사는 현재의 이귀남 장관인 것으로 추측된다.

1990년대에서 이젠 2011년을 이야기해 본다.

스물여덟의 시인은 21년이 지난 지금, 마흔아홉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봄의 계절인 <노랑>을 들고 다시 이 세상에 섰다. <붉은 산 검은 피>라는 시를 두고 당시 경찰이 “산이면 푸른 산이지 왜 붉은 산이냐”라고 힐난하면서 ‘대간첩 전시물’에 이 시집을 걸어놓았다는 황당함과 경악의 시대도 지나갔다.

그런 1990년대를 거치 올라 이제 <노랑>의 모습으로 시인은 서 있다. <노랑>이 어떤 시적 세계를 표현하고 있는지는 얼마 지나지 않으면 내 눈 속으로 들어올 것이다. 오봉옥 시인은 이 <노랑> 시집을 이귀남 장관에게 넌지시 한 부 선물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자신의 창작물을 두고 징역 3년을 구형했던, 지금은 장관인 그에게 어떤 울림으로 다가올 지 궁금하다.

오봉옥 시인의 <꽃>이란 시를 인용해 본다.

아프다, 나는 쉬이 꽃망울을 터뜨렸다
한때는 자랑이었다
풀섶에서 만난 봉오리들을 불러모아
피어봐, 한번 피어봐 하고
아무런 죄도 없이, 상처도 없이 노래를 불렀으니

이제 내가 부른 꽃들
모두 졌다

아프다, 다시는 쉬이 꽃이 되지 않으련다
꽁꽁 얼어붙은
내 몸의 수만 개 이파리들
누가 와서 불러도
죽다가도 살아나는 내 안의 생기가
무섭게 흔들어도
다시는 쉬이 꽃이 되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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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링반데룽’의 쳇바퀴 삶, 길을 찾아서⋯이승하의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

똑같은 길이지만 어제 걸었던 길과 오늘 걷는 길은 다르다. 똑같은 음악이지만 마음이 우울할 때와 마음이 즐거울 때 듣는 음악은 다르게 다가온다. 길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들길, 산길, 골목길, 꼬부랑 길, 곧게 뻗은 길, 가는 길, 되돌아오는 길⋯길은 도처에 널려 있다. 인간은 엄마의 자궁에서 벗어나는 순간, 헤아릴 수 없는 이 수많은 길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운명이다.

비오는 아침, 많은 사람들이 방사능비라고 불안해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차도 막힌다. 조금 늦게 회사에 도착한다. 회사 맞은 편, 2층에는 조그마한 카페가 있다. 수제 햄버거를 파는 가게인데,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연다.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음악이 솔솔 새 나온다.

가랑비가 오는 아침, ‘Ghost(사랑과 영혼)’의 주제가였던 ‘Unchanged Melody'가 흘러나온다. 길거리에서 비오는 날 아침, 언뜻 들려오는 노래가 고즈넉하다. 회사 입구로 올라서지 않고 이 길이 끝나는 곳까지 무작정 걸어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자본의 무게가 눌린 나는 무작정 길을 떠나지 못하고 회사 입구로 쏘옥 들어갈 수밖에 없다.

길 위에서 혜초를 만나다

이승하 시인의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은 ‘혜초의 길’을 시로 담았다. <왕오천축국전>이란 대작을 남긴 혜초가 비단길을 거쳐 인도까지 이르는 여정을 시인이 직접 발길을 옮기면서 시로 표현했다. 이 시집의 부제는 <혜초의 길>이다.

세상은 바다

돛 올리면 집 밖은 전부 길

닻 내리면 바로 거기가 내 집인 것을(<고원에 바람 불다>중에서)

시집의 첫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세상은 모두 바다이고 돛을 올리면 떠나야 하고 우리는 길에 나설 수밖에 없다. 모든 길속으로 인간들은 걸어가고, 걸어가다 지치면 닻을 내린다. 그곳에 안락과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내 집’이라고 시인은 읊고 있다.
 

시인은 혜초가 걸었던 길속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혜초의 내면을 읽는다. 길 위에서 먹고, 길 위에서 자고, 길 위에서 하늘을 바라보던 혜초의 모습을 그려낸다.

많이 걷게 될 것이다 후세 사람들아

걷다 보면 성년 되고

걷다 보면 노년 되고

네가 걸음 멈추면

밤하늘의 별들도 운행 멈출 것이다

우리 어차피 길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마음의 집 한 채 여기서 또다시 허물로(<길의 아들>중에서)

모든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마련이다. ‘내가’ 보는 별과, ‘네가’ 보는 별은 다를 수밖에 없다. 수 억 만개의 DNA가 모두 같지 않은데 어떻게 같은 마음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 ‘네가 걸음 멈추면 밤하늘의 별들도 운행을 멈추게’ 된다. ‘네가 눈을 감으면 이 세상의 집 한 채 허물어지고’ 또다시 다른 인간이 태어나고, 세상은 그렇게 걷다 걷다 변하게 된다.

혜초는 혼자서 인도로 가지 않았다. 80여명의 일행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높은 고개와 넉넉지 않은 먹거리, 초라한 행색으로 길을 떠난 많은 이들이 중간 중간 질병에 죽고, 고통스러워 삶을 마감한다. 시인은 <고행>이란 시편에서 “오늘도 한 구의 시체를 묻었다”고 혜초의 내면을 이야기한다.

링반데룽의 현대인들이여, 길을 찾아라

혜초가 거쳤을 그 수많은 길 위에서 시인은 삶의 지난함과 삶의 참의미를 깨닫는다.

길 가다가 문득 뒤돌아본다

길 뒤에 무엇이 있나

길 뒤에는 또 길

길 앞에는 또 다른 험난한 길?(<대륙에서 대륙으로 가다>중에서)

현대는 ‘질주의 시대’라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일찍 질주하고, 나이에 맞지 않게 초고속으로 달려야 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우리 후세들은 키워지고 있으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철저하게 ‘초고속’으로 우리 후세들은 인위적으로 자라고 있다. 스스로 크고, 스스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목적에 의해 키워지고 인위적으로 자라고 있는 현대인들!

현대는 ‘질주의 시대’이며 그 ‘질주’를 모두들 두려워하고 안타까워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길속으로 함께 묻어간다. 시인은 이 현대의 삶을 두고 “길 가다가 문득 뒤돌아본다”고 했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아직도 먼데 과연 ‘뒤돌아볼’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가끔씩 자신의 길을 뒤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볼 때 내가 거쳐 온 길을 가늠해 보고 앞으로 가야할 길을 알게 되는 법이다.

‘길 앞에 또 다른 험난한 길’이 있을지라도 가끔씩은 자신의 그림자를 보며 걷는 여유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혜초의 길’은 굳이 설명하지만 고행의 길이었으며 깨달음의 길이었다. 인도로 가는 그 험난한 여정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 만나고 수많은 나라를 거쳐 지나갔다. 혜초는 그 길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부처는 스물아홉에 집을 떠났네

집 떠나야 길이 열리고

사람 만나야 사람 만들 수 있고

길 떠나야 사람 사귈 수 있는 것

사람과 사람이 모여 마을 이루고

집과 집이 모여 도시 이루는 것을

물과 물이 모여 강이 되듯이

별과 별이 모여 밤하늘이 되듯이(<떠나는 자, 머무는 자>중에서)

혜초의 ‘길 떠남’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시인은 이야기하고 있다. 사람을 만나고,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별과 별이 모이는 ‘밤하늘’의 이치를 알기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혜초의 길이 어떤 의미였는지도 다음 시를 읽으면 더욱 명확해 진다.

오천축국 가보고 알았겠지

부처는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깨닫고

길에서 죽었다는 것을

부처에게 길은 집이고 도량이고

병원 영안실이었다는 것을(<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죽는다>중에서)

길에서 모든 것을 경험하고 길에서 태어남과 죽음까지 고스란히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혜초의 길이었음을 시인은 해석하고 있다.

혜초의 ‘머나먼 길’을 시인을 따라가면서 현대 문명의 이기심과 물질 만능주의에 대한 개탄도 숨기지 않는다.

집값 오르니 오년 번 돈보다 더 많은 수익

집값 떨어지니 오년 번 돈보다 더한 손실

나 이 좁은 땅에서

아파트 평수 넓히고자 안달복달인데

혜초, 그대는

그 많은 길의 주인이었구나

그대가 걸어 길을 길들였구나(<땅과 집과 길>중에서)

좁은 땅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땅값 때문에 집을 옮기고, 땅값 때문에 집을 버리는 사람들⋯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곳엔 ‘땅’만 있고 사실 ‘길’은 없어진지, 혹은 잃어버린 지 오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길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터이다.

혜초는 그렇게 수많은 길과 길 위에서 깨달음을 얻었지만 시인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으로 맴도는 인생을 한탄한다.

나의 길이 언제까지나 앞으로 나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걷고 또 걸었는데 제자리로 돌아오는

링반데룽 같은 인생(<월아천에서>중에서)

링반데룽? 산속에서 짙은 안개 등으로 계속 걷지만 여전히 제자리로 돌아오는 현상을 말한다. 길을 잃어버린 것, 분명 앞으로 앞으로 걸어 나가지만 한참 만에 돌아오면 다시 그 자리⋯현대인의 삶을 시인은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은 길에 대한 시인의 내면을 담았다. <혜초의 길>이란 부제를 달았지만 사실, 그 길은 우리가 갈 길이고, 우리가 가야할 길인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인들은 길 위에서 삶을 깨닫고, 길 위에서 인생을 노래하기 보다는 길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쏜살같이 질주한다. ‘링반데룽’같은 쳇바퀴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승하 시인은 ‘길’을 찾으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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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1953년 8월3일 평양⋯임화는 재판정에 무표정하게 서 있다. 자포자기의 심정과 극도의 공포감을 그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검사의 질문이 시작되기 전, 임화의 머릿속으로 서울 종로의 네거리가 떠오르지 않았을까.

검사: 일본 제국주의시대에 피고가 해왔던 문학운동은 계급적 문학운동이었던가?

임화: 아닙니다. 그것은 일제의 어용문학이었습니다.

검사: 미군을 환영하는 사업을 조직한 일이 있는가?

임화: 약 300 명의 문화인을 동원시켜 미군환영 시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임화는 민족반역자⋅종파주의자라는 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젊은 시절, 서울 종로의 ‘순이’를 보살피고 ‘순이’의 가난을 자신의 가난으로 생각했던 마음 따뜻했던 그가 분단된 조국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사상의 공간에서 오히려 짧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대학생 시절,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 대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박영희가 카프의 활동을 두고 “얻은 것은 이념이고, 잃은 것은 예술”이라고 말했지만 카프의 성격을 단순히 이 한마디로 매듭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임화는 카프의 핵심 활동 인물로 그의 시에는 따뜻한 정감과 자신보다 민중을 먼저 생각했던 희생정신이 깃들어 있다.

임화의 ‘순이’는 지금 이 시대에도 존재한다

임화는 시인이자 평론가였다. 그의 대표작인 <네거리 순이>를 읽어본다.

눈바람 찬 불상한 도시 종로 복판에 순이야!

너와 나는 지나간 꽃 피는 봄에 사랑하는 한 어머니를

눈물나는 가난 속에서 여의었지!

그리하여 너는 이 믿지 못할 얼굴 하얀 오빠를 염려하고,

오빠는 가냘핀 너를 근심하는,

서글프고 가난한 그날 속에서도,

순이야, 너는 마음을 맡길 믿음성 있는 청년을 가졌었고,

내 사랑하는 동무는

청년의 연인 근로하는 여자 너를 가졌었다.(<네거리 순이> 중 부분)

<네거리 순이> 중 부분이다. 시인은 추운 겨울, 종로 복판에서 순이를 만난다. 순이는 임화의 친 동생일 수도, 당시에 노동하는 모든 여성일 수도 있다. ‘순이’는 일제시대 ‘눈바람’ ‘가난’ ‘근로하는’ 모든 여성의 대명사로 해석된다.

그런 순이를 ‘근심하는’ 나는 다행스럽게 ‘내 사랑하는 동무’를 소개시켜 주고 ‘순이’의 가난하면서도 가냘픈 마음에 한가닥 위로를 던져준다. 임화는 자신의 사상만을 고집하고 이념만을 강조했던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이념을 지탱해 주는 다정다감함과 희생정신, 배려하는 정신이 그를 알게 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임화가 말했던 ‘순이’는 그 당시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순이’는 존재한다. 한 맺힌 농성으로 최근 관심의 대상이었던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아무도 관심가지지 않을 때 그들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서 찬 점심을 먹고 화장실 바닥에 지친 몸을 뉘어야 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꽃다운 나이에 백혈병으로 죽어간 그녀들⋯스물도 채 안된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이 백혈병으로 죽어갔다. 내 노동으로 가족들을 부양하겠노라고 외쳤던 다짐은 어디로 가고, 젊고 잘 생긴 청년을 만나기도 전에 그들은 세상을 달리했다.

아직도 자신의 노동으로 밖에 살 수 없는 이 시대의 여성 노동자들⋯종로 네거리 ‘순이’는 현재에도 존재하고 미래에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임화가 그렸던, 만들고자 했던 세상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 텐데. 임화가 살아있다는 어떤 느낌을 가지고 지금의 상황을 시(詩)로 이야기할까.

임화의 <다시 네거리에서>에서는 ‘순이’가 잘 살기를 바랬건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모든 것이 더욱 참담해지고 암울해지고, 낯선 모습의 종로 네거리를 그린다.

번화하는 거리여! 내 고향의 종로여!

웬일인가? 너는 죽었는가, 모르는 사람에게 팔렸는가?

그렇지 않으면 다 잊었는가?

나를! 일찍이 뛰는 가슴으로 너를 노래하던 사내를,

그리고 네 가슴이 메어지도록 이 길을 흘러간 청년들의 거센 물결을,

그때 내 불쌍한 순이는 이곳에 엎더져 울었었다.

그리운 거리여! 그 뒤로는 누구 하나 네 위에서

청년을 빼앗긴 원한에 울지도 않고,

낯익은 행인은 하나도 지내지 않던가?(<다시 네거리에서> 부분)

‘다시 종로 네거리’에 섰지만 시인은 우울하고 암울하다. 잘 생긴 청년을 만났던 ‘순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옛날 ‘엎더져 울었던’ 모습만 떠오르고 잘 생긴 청년을 빼앗겨 버린 ‘순이’만 그려진다. ‘순이’는 그 옛날 ‘네거리 순이’보다 더 참혹해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순이’는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안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조차 알 길이 없다. 그런 비극에도 불구하고 종로 네거리는 갈수록 번화하고 사람들로 넘쳐난다. 물질적 변화가 급격하게 이뤄지지만 종로 네거리에 선 시인은 참담함을 느낄 뿐이다.

1980년대, 내가 태어났던 고향은 깊은 산골이었다. 설과 추석이 되면 타지로 나갔던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들 중에도 ‘순이’가 많았다. 그들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갓 졸업하고 모두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노동을 팔기 위해’ 도시로 나갔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한 손에는 큰 댓병 ‘정종’을, 한 손에는 다양한 과자가 포장돼 있는 종합선물세트를 들고 고향을 찾아 들었다. 일 년에 두 번, 헤어졌던 가족들이 만나는 날이었다. 나는 그때 조무래기였는데 버스를 타고 선물을 들고 나타나는 그녀들이 부러웠다. 그녀들은 명절 전날 왔다가 명절 당일 저녁에 모두 버스를 타고 먼지를 날리며 도시로 돌아갔다. 짧은 고향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그녀들이 모두 ‘순이’였다. ‘정종’과 ‘과자종합선물세트’만 바라봤던 나는 그녀들이 어떤 극한 상황에서, 어떤 고통 속에서 일을 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녀들에게도 젊은 청년이 나타났을까.

종로 네거리에는 지금도 ‘순이’가 있다. 임화에게는 이 현실이 더욱 그를 아프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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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나의 시는 비교적 수월케 씌어진다. 그것은 평소에 머릿속에 시 생각이 가득차 있어서, 펜을 들면 수월케 시가 되는 것이다.(중략) 시는 마음이다. 마음을 잘 쓰는 안 되는 일이 없는 것이다.”


배경음악과 함께 읽기를...

천상병 시인이 자신의 시집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책머리에 손수 쓴 글이다. 그의 ‘귀천(歸天)’이야 이제 ‘국민 詩’가 된 지 오래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귀천’ 중에서>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은 크게 총 넉 장으로 이뤄져 있다. 제 1장 ‘이 세상 소풍’에서 시작해 제2장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제3장 ‘사는대로 살다가…’ 제4장 ‘누군가 앉았다 간 자리’로 구성돼 있다.

‘이 세상 소풍’에서는 아내와 장모, 아이들에 대한 시들이 많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고 정겨움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아내가 찻집을 하고, 칠십 팔세의 장모님이 아직도 정정해 살림살이를 거의 모두 하다시피 하니 자신은 너무 행복한 사람이라고 노래한다.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나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행복’ 중에서>

부러울 것 없는 자신을 두고 이 세상에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정한다. 집하나 없는 것을 두고도 그는 불평이 없다.

옛날의 예수님도

집이 없었는데

나는 셋방이라고 있으니

그저 영광이다<‘집’ 중에서>

이쯤 되면 시인의 자족(自足)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에서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향수와 그리고 죽어 고향에 묻히고 싶다는 애틋한 마음을 담았다.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시인의 내면도 읽힌다.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

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

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

가지도 못하나?<‘소릉조’ 중에서>

경남 창원군 진동면이 고향인 시인은 서울 변두리에서 막걸리와 시를 쓰며 살고 있지만 고향을 향한 마음은 간절하다. 그러나 몸이 불편하고, 갈 마음과 달리 발걸음은 움직이지 못한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립고 멀리 떨어진 형과 누이를 그리워해 본다. 그러면서 시인은 “나이 사십에 나는 비로소 나의 길을 찾아간다.”라고 ‘불혹의 추석’에서 되뇌인다.

시인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풀면서 자신의 지금과 그리고 훗날 자신이 죽어 땅에 묻혔을 때 찾아올 아들, 딸들에게 자신의 비명(碑銘)까지 남겨 놓는다

오늘 아침은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 값이 남았다는 것

(중략)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나의 가난은’ 중에서>

막걸리와 예쁜 아내와 정정한 장모와 행복한 날들을 보낸 시인이 죽어, 나중에 자신의 풀섶을 찾는 이들에게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라고 생각해 줬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

막걸리와 맥주를 좋아했던 시인은 마침내 자신의 간이 이상증세를 보이는 것조차 시로 풀어쓴다.

보지도 못한 내 간이

괘씸하게도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 쪼무래기가 뭘 할까마는

아직도 살고픈 목숨 가까이 다가온다

나는 원래 쿠데타를 좋아하지 않는다<‘간의 반란’ 중에서>

‘간의 쿠데타’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인은 쿠데타를 싫어하지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제3장에 ‘사는대로 살다가…’에 이르면 시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소중하다. 특히 이 장에서는 ‘새’와 ‘비’에 대한 시들이 눈에 띈다. 시인의 비극적 체험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도 있어 시인의 아픔을 보여준다.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새’ 중에서>

비나 내리는 날, 시인은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도 떠올려 본다.

나는 국민학교 때는

비가 오기만 하면

학교엘 가지 아니하였다

이제는 천국에 가신 어머니에게

한사코 콩을 볶아달라고 하여

몸이 아프다고 핑계했었다<‘비’ 중에서>

새와 비를 노래하던 시인의 ‘그날은-새’ 부분에 이르면 시인의 암울했던, 그리고 이해도 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없는 비극의 상처를 만난다. 그 비극은 우연과 필연이 종합된 현대사의 비극!

이젠 몇 년이었는가

아이롱 밑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날은…

이젠 몇 년이었는가

무서운 집 뒷창가에 여름 곤충 한 마리

땀 흘리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그날은…

내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진실과 고통은 무엇이었을까. 시인은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간다. 혹독한 전기고문 등을 받고 6개월 간 투옥됐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는 그 경험, ‘이젠 몇 년이었는가.’라며 시인은 진실과 고통의 순간을 기억한다.

마지막 4장인 ‘누군가 앉았다 간 자리’에서는 길과 구름, 하늘에 대한 소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길은 끝이 없구나

(중략)

길은 막힌 데가 없구나

가로막는 벽도 없고

하늘만이 푸르고 벗이고

하늘만이 길을 인도한다

그러니

길은 영원하다<‘길’ 중에서>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의 시집에는 유독 ‘애오라지’라는 부사가 많이 등장한다. 시인이 아마도 평상시 즐겨 썼던 말이지 않나 싶다. 사전적 의미로는 ‘겨우’ ‘오로지’라는 의

미로 읽히는 ‘애오라지’…

‘애오라지’ 가족을 사랑했고, 새와 비와 길을 노래하며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고 노래했던 천상병! 그의 시는 알코올 도수가 감춰져 있어서 무심코 읽는 독자들을 취하게 만든다는 해설이 마음에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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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