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된 역사는 승자의 역사일 수 있다. 수많은 민중을 죽인 사람이 아직도 버젓이 공권력의 보호아래 한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기록된 역사’는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아니, 기록된 문자의 역사가 어쩌면 허구일 수도 있다는 곳까지 생각이 미친다.

 

김별아의 <채홍>은 왜곡됐을 수도 있는 ‘기록된 역사’에서 벗어나 ‘기억되는 사랑’의 편에 서서 소설을 썼다. <채홍>의 소재는 세종의 아들 향(이후 문종이 되는)의 비(아내)인 ‘봉빈’이다. ‘난’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그녀가 두 번째 향의 아내가 돼 궁궐로 들어가면서 빚어지는 ‘기억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가 아닌 왕과 여자의 기억

 

 

순빈 봉 씨(봉빈)는 쾌활한 여자였다. 인자한 아버지와 동생을 아끼는 오빠 들 속에서 자란 귀염을 독차지한 막내딸이었다. 그런 그녀가 전국에 금혼령을 내린 상황에서 세자(문종)의 두 번째 부인으로 낙점된다.

 

세자의 첫 번째 부인 김 씨는 세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주술(신발을 잘라 보관하거나 교미하는 뱀의 정액을 구하는 등)을 하는 것이 발각돼 폐비돼 사가로 쫓겨나고 만다. 김 씨는 얼굴도 시쳇말로 못생겼다. 그래서일까 이번 두 번째 부인을 간택하는데 있어 세자의 아버지인 세종은 “아름다움도 선택의 주요가치로 두라.”는 하명을 한다.

 

그렇게 뽑힌 봉빈은 아름다웠다. 붉은 봉숭아 빛 얼굴과 금방이라도 녹아들듯 부드러운 입술 등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었고 궁궐의 수많은 궁녀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 모양새와 몸매가 궁녀들 보다 한참이나 나았다.

 

가례를 올린 첫날 밤, 남자와 여자의 상식적인 첫날밤을 기대했던 봉빈에게 세자는 남자가 아니었다. 세자는 신방에 들어가기 전 “아름답고 미색을 갖춘 여인이로다. 심하게 아름다운 사람은 반드시 심한 악을 갖고 있다지 않던가!”는 고사를 먼저 떠올린다.

 

마침내 신방으로 들어선 세자. <채홍>에는 이렇게 묘사돼 있다.

 

“첫날밤은 끔찍했다. 봉빈은 난생처음 인간으로서, 한 여자로서 지독한 수치심을 맛보았다. 보름으로부터 사흘이 지나 하늘에는 얼마간 이지러졌으나마 달이 휘영청 밝은데, 오늘 혼례를 치른 신혼부부의 방은 일찍부터 어둡고 괴괴했다. 신랑인 세자가 동뢰연에서 마신 몇 잔, 아니 몇 모금의 술을 핑계 삼아 드러눕더니 이내 쌕쌕 콧소리를 내며 잠들어버린 것이었다.”

 

남자와 여자를 기대했던 봉빈과 달리, 세자는 왕과 여자로 봉빈을 대했던 것. 세자는 ‘기록될 역사’를 생각했기에 왕으로서 조심과 절도, 자제와 후덕을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세자와 첫날밤을 보낸 봉빈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보이는 공간과 보이지 않는 공간의 기억

 

세자와 봉빈은 남들로부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심각한 갈등에 휩싸인다. 손끝 하나 뻗어오지 않는 세자, 세자를 향해 끝없이 뻗어가고자 하는 봉빈.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이들의 관계는 첫날밤부터 삐걱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보이는 곳에서 이들은 ‘아름다운 부부’의 전형이었다. 첫날밤을 치르고 양전(세종과 중전)에 문안인사를 갈 때, 세자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격식과 예법에 따라 문안인사를 한다. 세종은 그런 세자 부부에게 이런 말까지 한다.

 

“양궁이 이리 함께 하니 의좋은 원앙오리를 보는 듯 흡족하구나. 간밤에 좋은 꿈은 꾸었느냐?”

 

보이는 곳에서 세자는 훌륭한 왕재요, 격식과 예법의 달인이요, 준수한 생김새의 소유자요, 학식과 인품의 절정이요...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단 둘만이 있는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들어서면 세자는 봉빈에게 있어 ‘한 가지도 이해되지 않는 졸렬한 남자’로 다가온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기억을 <채홍>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첫날밤에 이어 봉빈은 다시 당황했다. 기가 막혔고 이내 화가 치밀었다. 왜 혼인해 맞아들인 아내를 없는 사람처럼 무시하는지, 의례를 행할 때는 정중하고 극진하기 이를 데 없는 태도가 어찌하여 단둘의 자리에서는 돌변하는지 도무지 까닭을 알 수 없었기에 당황스럽고 기막히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외롭고 쓸쓸한 한 여자의 기억

 

세자의 비인 순빈 이기 이전에 외롭고 쓸쓸한 한 여자는 이제 비가 오면 쓸쓸하고, 눈이 와도 쓸쓸하고, 날이 맑아도 쓸쓸하고, 술을 마셔도 쓸쓸하다. <채홍>의 한 장면을 인용해 보자.

“너무 외로워서였을 것이다. 너무 춥고 쓸쓸해서였을 것이다. 아니, 그만큼 뜨겁고 진실한 관계를 갈망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실 그 아이가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되었다.”

 

마침내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고 봉빈의 최후를 맞게 하는 한 여인이 등장한다. 동궁의 나인이었던 ‘소쌍’이다. 소쌍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다. 찾아오는 남자 막지 않고, 떠나는 남자 잡지 않는 자유로운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무엇보다 소쌍은 어릴 적 계집애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말수가 적었던 소쌍은 이러쿵저러쿵 재잘재잘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은 계집애들의 말을 모두 받아주었고, 허투루 내뱉지 않았다. 그래서 가슴에 비밀이나 누군가에게 위로를 찾고자 하는 계집애들은 모두 손에 떡을 들고, 혹은 먹을 것을 잔뜩 훔켜쥐고 소쌍을 찾았다.

 

외롭고 쓸쓸했던 봉빈에게 소쌍의 그런 이미지가 가슴에 꽂힌 것이다. 그저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그대로 전달하면 스펀지처럼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이. 봉빈에게는 그런 존재가 필요했다.

엄격한 유교의 나라 조선에 태어난 봉빈에게 소쌍을 알게 된 것부터가 비극은 시작되고 있었다. 봉빈을 알기 전 소쌍은 ‘단지’라는 이름의 나인과 동성애 관계였다. 소쌍과 봉빈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단지는 충격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급기야 세자의 후궁 권승휘에게 봉빈과 소쌍의 관계를 고변하게 된다.

 

사태는 커져갔다. 이른바 ‘대식(對食, 여자와 여자가 남자와 여자의 관계처럼 행하는 것) 사건’은 마침내 공론화되고 봉빈은 ‘순빈’에서 다시 ‘난’이라는 이름의 한 여자로 폐서인 돼 궁궐에서 퇴출된다.

 

김별아는 작가의 말에서 “소설의 제목이 채홍인 까닭은 무지개가 태양의 반대편에 뜨는 이치에서 비롯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양한 색을 가진 무지개는 성적 소수자의 국제적 상징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봉빈, 아니 ‘난’이라는 이름의 여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역사는 사랑을 기록하지 않지요. 아니, 애초에 못하지요. 그래서 사랑은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는 것입니다.”

 

기록된 역사가 아닌 기억된 사랑의 공간으로, 이제까지 배우고 알았던 ‘조선조 세종 때의 봉빈 사건’이 아닌 ‘난’이라는 이름의 한 여자의 기억된 사랑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채홍>은 색다른 기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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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조선은 '명분 사회'였다. 불행하게도 명분은 백성으로부터 오지 않았다. 중화사상의 성리학에서 찾았다. 성리학에 근거하지 않는 그 어떤 명분도 설 자리가 없었다. 아무리 백성을 위한다는 조건이 붙더라도 성리학에 위배된다면 명분이 아니었다.

이정명의 <뿌리깊은 나무>는 조선시대 '명분'과 '실리'의 입체적 갈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소설이다.

실리↔명분의 갈등

<뿌리깊은 나무>의 주제를 흐르는 한 대목을 먼저 짚어보자.

장원서의 김정겸은 집현전 학사이다. 그의 업무는 온실을 돌보는 일이다. 살인사건의 실마리를 찾아 겸사복 채윤이 이곳에 까지 이른다. 김정겸과 채윤이 나누는 대화 속에 소설의 주제가 흐른다.

김정겸이 채윤에게 말한다. <동절양채>(겨울에 채소 키우기)라는 책이 출간됐지만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비서고(금지 서적을 보관하는 곳)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설명하고 있다. 

<img src="../image_joy/201111/1321236884438_1.jpg" align="left" vspace=3 hspace=10>"조선의 백성 열 중 아홉이 농사를 짓고 있다. 한 방울의 땀이라도 아껴주고 한 톨의 소출이라고 늘려 주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김정겸은 <동절양채>가 백성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 책에 대한 사대부의 생각은 달랐다. 온실에서 키운 영산홍을 대제학 최만리에게 갖다 준 적이 있는데 최만리의 반응은 이렇다.

"동월개화출어인위자(冬月開花出於人爲子)."

이를 해석하면 "천지의 기운을 받는 초목의 꽃과 열매는 그 시기가 있는데 제때에 피지 않은 꽃은 인위적인 것으로서 좋은 일이 아니다."라는 것.

집현전↔성리학의 갈등

태조, 정종, 태종에 이르는 조선 초기는 극도의 혼란한 시기였다. 죽고 죽이는 권력의 쟁탈전이었다. 태종 시대가 가고 세종이 들어섰을 때 조선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간다. 세종은 새로운 세상의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집현전을 설립한다.

집현전은 어떤 곳이었을까.

비서고에서 일을 하고 있는 윤후명이 채윤에게 되뇌이는 말 속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성균관 장서고에서 가장 많은 책을 빌린 사람이 충녕대군이셨다. 유가의 경전뿐만 아니라 산술과 천문, 그리고 풍수지리와 악서, 수학과 의학 등 두루두루 읽으셨다."

세종은 성리학 만으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데 한계가 있음을 스스로 알았다. 그래서 성균관이 아닌 집현전을 통해 유학 뿐만 아니라 각 영역의 다양한 장르의 영역을 아우르는 책을 스스로 읽었고 이를 실천할 집행기구가 필요했다. 집현전은 새로운 시대, 개혁의 최전선에 위치했다.

집현전의 성격이 이렇다 보니 출신 배경 또한 다양했다. 대호군 장영실이 종3품에 임명되는 것은 세종의 철학에서 보면 당연했다. 그러나 성리학을 기본으로 하는 기존 권력자들에게는 인정될 수 없는 현실이었다. <뿌리깊은 나무>는 집현전을 중심으로 하는 '실리추구의 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성리학 기본의 '기득권 새력'의 갈등이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민중↔권력의 갈등

소설은 궁궐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살해 대상은 모두 집현전 학사였다. 살해된 학사들은 자세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모종의 비밀스런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들이었다.

집현전 학사의 죽음을 수사하는 책임자가 한갓 겸사복 채윤이라는 사실은 의미가 크다. 민중의 입장에서 이들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겸사복 채윤은 수사관이라기 보다는 조선 초기 깨어있지 않은 민중으로 읽어야 한다.

그런 채윤이 수사를 하면서 스스로 깨우쳐 나가는 과정이 의미심장하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뿌리깊은 나무>의 주된 주제는 실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민중과 조선 초기 명분에 빠져있는 권력자의 갈등이 큰 흐름이다.

채윤이 수사를 해 나가는 과정에서 큰 실마리를 얻는 곳들도 민중들 속이었다. 검안을 하는 가리온과 같은 민중들이다. 가리온은 채윤에게 "맹랑한 친구야. 어둠은 밤에만 있는 것이 아니야."라는 선문답 등을 통해 깨달음을 준다.

또 집현전 학사 이순지를 통해서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정치적 지형과 그 불공형한 현실에 대해 학습한다. 이순지는 채윤에게 "아악은 중국 천자만의 것이며 악기 또한 천자의 허락이 없으면 얻을 수 없었다. 주상전하께서 그 점을 통찰하시고 예조에 악기도감을 설치했다."는 등의 전후 사정에 대해 설명해 준다.

물(水)로 죽은 장성수, 화(火)로 죽은 윤필, 금(金)으로 죽은 허담…조금씩 진실에 접근해 가는 채윤의 눈을 통해 조선 세종때 무슨 일이 일어났고 그 갈등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뿌리깊은 나무>는 헤쳐나가고 있다.  

장르: 소설
저자: 이정명
출판사: 밀리언하우스
가격: 7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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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