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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18 갈망의 늪에 빠진 이들의 이야기…<은교> (1)

새벽에 눈이 내렸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에 내 발자국을 남긴다. 뽀드득 뽀드득 상쾌한 소리를 내며 눈이 아우성을 쳤다. 새벽 달빛은 아직 서쪽 하늘에 남아 있고 어둠은 천천히 물러가고 있었다.

처음은 누구에게나 설렌다. 두렵기도 하다. 처음은 누구도 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청준의 <눈길>이 문득 떠올랐다. 어미가 아들을 새벽길에 배웅하면서 돌아가는 길. 어미는 자신이 밟은 발자국을 그대로 되밟고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멀었겠는가.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자신이 걸어왔던 발자국을 그대로 밟고 갔다면.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박범신의 <은교>는 스승과 제자, 남자와 여자의 관계를 드러내는 작품이다. 스승과 제자는 어떤 관계인지, 남자와 여자는 또 무슨 관계를 맺는 것인 지부터 따져봐야 한다.

스승과 제자.

제자는 스승을 통해 배운다. 스승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과 자질을 제자에게 그대로 물려준다. 이윽고 스승은 때가 되면 “하산하라.”는 말과 함께 제자가 ‘청출어람’이 됐음을 인정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제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스승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은교>의 주인공인 이적요 시인은 제자 서지우를 비서 겸, 집사 겸, 심부름꾼 겸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한다. 서지우도 등단작가로 소설을 써 꽤 호평을 받은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러나 여전히 스승인 이적요 시인을 넘어서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부재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서지우가 쓴 작품이 모두 이적요 시인이 쓴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여기에 이르면 ‘주인과 바지사장’ ‘오너와 대리운전자’ 쯤으로 치부돼 버린다. 서지우는 늘 이적요 시인의 ‘바지사장이자 대리운전자’의 역할에 머물러 있다.

이적요 시인과 서지우가 살고 있는 공간에 열일곱 살의 한은교가 뛰어들면서 죽음과 시기, 갈등이 벌어진다. ‘할아부지(은교는 이적요 시인을 이렇게 부른다)’ 이적요와 제자 서지우는 ‘은교’를 향한 은밀한 시선을 던지고 그 시선이 부닥치는 지점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악화된다.



이적요 시인은 자신이 죽으면서 변호사인 친구에게 유언장을 남긴다. 꼭 1년 뒤에 유언장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1년 뒤 펼쳐 본 이적요 시인의 유언장에는 ‘은교’를 둘러싸고 제자 서지우를 죽였다는 충격적 내용과 서지우의 작품이 모두 자신이 쓴 작품이란 사실을 고백하고 있다.

이적요 시인은 유언장에서 ‘시인의 노트 나의 처녀-은교에게’라고 할 만큼 ‘은교’를 향한 은밀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은교’는 시인에게 영원한 사랑이자, 안고 싶은 욕망이자, 입 맞추고 싶은 갈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런 이적요의 감정과 달리 열일곱 은교에게 ‘할아부지’ 이적요는 다가서지 못한다. 자신의 늙음이 푸른 싱싱함을 감당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 빠진다. ‘시인의 노트 범죄' 부분에 이르면 이적요 시인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드러난다. 서지우와 은교의 섹스(심지어 이 둘은 이적요 시인의 집에서 서로 관계를 갖기도 한다)에 분노를 느낀 나머지 서지우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이 지점에 이르면 ‘스승과 제자’인 이적요와 서지우는 ‘늙은 남자와 싱싱한 남자’로 치환된다. 서지우가 스승을 넘어설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은교를 선택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을 것이란 암시가 곳곳에 묻어있다. 은교를 품음으로써 마침내 스승 이적요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이적요 시인의 그림자에 묻혀 살아왔던 ‘대리인생’을 끝장내는 방법은 이것뿐이라는 판단. 작가의 자질로써 스승을 넘어서기는 불가능했기에.

서지우 역시 자신의 일상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자신이 죽고 나서 그 노트는 ‘은교’에게 전달된다. 서지우는 자신의 노트에서 루소의 <에밀>을 인용한다. 서지우는 “10대는 과자, 20대는 연인, 30대는 쾌락, 40대는 야심에 몰두하는 나이”라고 강조했다. 서지우에게 ‘은교’는 쾌락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이적요 시인에게 ‘은교’는 어떤 존재였을까.

‘할아부지’와 ‘처녀’, ‘시인’과 ‘학생’, ‘늙은이’와 ‘젊은이’…객관적으로 정리될 수 있는 관계이다. 하지만 감정의 깊이로 들어서면 이 관계는 무의미해진다. 이적요 시인은 ‘은교’를 만나면서 알 수 없는 열정이 솟구치고, 늙음이 사라지고, 세상을 정리할 나이가 아니라 세상은 이제 살아갈 나이임을 깨닫는다. 온전히 열일곱 ‘은교’를 통해 느껴지는 감정의 깊이였다.

박범신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은교>는)밤에 썼으니 밤에만 읽기를 권한다.”고 독자에게 주문했다. 그리고 <은교>는 자신이 갈망했던 ‘갈망의 3부작’ 중 하나였음을 고백했다. <촐라체> <고산자> <은교>를 ‘갈망의 3부작’이라고 밝혔다.

‘은교’를 둘러싼 스승과 제자의 내밀한 갈등…문학과 예술을 두고 진정인과 대리인의 갈등…속된 욕망과 내밀한 욕망의 갈등…<은교>는 쉽게 읽힌다. 시대를 살아가는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묘사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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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