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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01 신경림 시인과 함께 삼성을 읽다∣삼성공화국을 파헤친 책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정말 저절로 눈이 스스로, 능동적으로 열렸다.

달콤한 잠 속에서 뭔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일어났다. 이후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리맡에 있는 아이패드로 트위터에 접속해 본다. 4월1일 만우절이라 그런지 여러 가지 재밌는 ‘거짓말’들이 타임라인을 물들이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떤 거짓말로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이내 ‘행복한 거짓말’ ‘재밌는 거짓말’로 세상을 가볍게 웃고 지나가기에는 현실이 너무 버겁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때 타임라인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기사를 접했다.

"내 자식 살려내, 삼성 입사 얼마나 좋아했는데"

기사를 읽는 내내 잠이 오지 않는 새벽만큼 답답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여전히 삼성이라는 공간에서, 삼성이라는 터전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나를 발견한다.

새벽잠을 아침까지 설치고 이른 아침 출근길에 올랐다. 출근길에도 피곤함 보다는 우울함이 먼저 몰려 왔다. 삼성을 둘러싼 유쾌하지 못한 일들과 비극적 경험 들이 하나 둘씩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염무웅 선생의 <문학과 시대현실>이란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책을 펼쳐 들었다. 읽을 차례를 보니 신경림 시인 편이다. 신경림 시인의 시부터 읽어보자.

장에 간 큰아버지는 좀체로 돌아오지 않고

감도 다 떨어진 감나무에는

어둡도록 가마귀가 날아와 운다(<시골 큰집> 부분)


그리하여 산 일번지에 밤이 오면

대밋벌을 거쳐 온 강바람은

뒷산에 와 부딪혀

모든 사람들의 울음이 되어 쏟아진다(<산1번지> 부분)


그리하여 증언하는 자 아무도 없는가.

이 더러운 역사를, 모두 흙 속에서

영원히 원통한 귀신이 되어 우는가.(<1950년의 총살) 부분)


바람은 복대기를 몰아다가 문을 때리고

낙반으로 깔려죽은 내 친구들의 아버지

그 목소리를 흉내내며 울었다,(<폐광> 부분)


저 밤새는 슬프게 운다

상여 뒤에 애처롭게 매달려

그 소년도 슬프게 운다(<밤새> 부분)


메밀꽃이 피어 눈부시던 들길

숨죽인 욕지거리로 술렁대던 강변

절망과 분노에 함께 울던 산바람(<해후> 부분)

위에 언급된 시 모두 우리 현대사의 질곡과 아픔, 학대받는 자들의 울음과 분노,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경림 시인의 시를 엿보면서 삼성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삼성과 관련돼 많은 증언을 했던 사람들은 조금씩 잊혀가고 이젠 ‘증언하는 자 아무도 없는가’라고 신경림 시인의 시가 다르게 읽힌다. 그래서 ‘이 더러운 역사를, 모두 흙 속에서 영원히 원통한 귀신이 되어 우는가’라고 분노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게 ‘더러운 역사’와 ‘흙 속에서 영원히 원통한 귀신이 되어 울 때’ 밤새도 슬프게 울었고 ‘상여 뒤에 애처롭게 매달려 그 소년도 슬프게 운다’고 해석하는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몇 해 전 ‘삼성공화국’과 관련된 책들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권력에 예의 바르고 ‘외롭고 힘없는 자’에게 무뢰(無賴)한 삼성

삼성을 공화국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 권력을 한 손에 움켜쥐고 있는 삼성이 미치는 영향력은 가히 폭발적이면서도 공포스럽다. 정치, 문화, 사회, 학계 등 삼성이 내미는 권력에 주저 없이 손을 잡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삼성과 손을 잡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 늘려 있다.

삼성(Samsung)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 물음은 단순하지 않다. 하나의 기업집단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은 대한민국에서 정치, 사회, 문화 영역에서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 삼성을 기업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왕국’으로 판단하게 된다.

무엇보다 ‘삼성왕국’이 우리 사회에 미치고 있는 가장 큰 테제는 ‘선(善)과 악(惡)조차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헤게모니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선과 악은 보편적인 개념이다. 누구나 ‘저것은 선’ ‘이것은 악’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개념이 있다.

그렇지만 이 개념이 삼성으로 넘어오면 완전히 뒤틀리고 만다. 삼성에게 있어 선(善)의 개념은 “삼성에 유리하면 모든 것이 선”이며 악은 “삼성에게 해를 끼치면 악(惡)”이 된다. 무소불위의 헤게모니를 지니게 된다는 의미이다.

보편적 상식 개념인 ‘선과 악’의 개념과 정의조차 바꿀 수 있는 집단이 삼성이라는 존재이

다. 과연 그 속에는 어떤 시스템이 흐르고 있을까. 그런 삼성에 끌려가는(?) 사람들-판검사, 변호사, 기자, 회계사 등등-은 왜 자처해서 ‘삼성 왕국’으로 걸어 들어가고 그것을 영광으로 삼을까.


삼성반도체 젊은 청춘들의 비극은 아직 진행 중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반올림에서 발간한 <삼성반도체와 백혈병>은 삼성반도체 공장에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했거나 혹은 투병을 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성반도체 공장에 근무한 몇 년 뒤 백혈병에 걸려 죽어간 이들⋯그들은 모두 젊은 청춘들이었다.

황유미, 박지연 씨 등의 죽음⋯꽃다운 나이에 그들은 위대한(?) 삼성에 입사해 처절하게 죽어갔다. <삼성반도체와 백혈병>은 황유미 씨의 죽음이 남긴 것을 시작으로 반도체 공장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짚어본다.

백혈병이 삼성 직원들에게 발병하면서 대책위를 꾸리게 되고 산재 신청에 얽힌 잘못된 점과 역학조사를 둘러싼 공방 등을 탐사 보도 형식으로 담았다. 산재 승인이 되지 않은 현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규명하고 또 다른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다뤘다.

<삼성반도체와 백혈병>은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라고 그들의 운동을 규정하고 계속 ‘싸워나갈 것’을 천명하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변호사에 대해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워낙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당사자이며 삼성과 관련돼 가장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검사 출신으로 삼성 법무팀에 근무하다 양심선언을 하게 되고 몇 년 동안 한국 사회를 이슈와 논쟁으로 이끈 장본인이다. 자신이 직접 겪은 이야기를 통해 ‘삼성의 참 모습’에 접근하고 이다.

차명계좌를 이용한 비자금 조성과 검찰과 법원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삼성의 인맥구조와 조직체계 등을 체험적으로 기록했다. 삼성 구조본의 역할과 그들의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의 활동, 그리고 삼성을 둘러싼 모든 문제점을 해결하는 그들만의 노하우 등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삼성에 맞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함께 맞서 싸워 나갔던 과정을 그렸고 자신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통해 “삼성이 변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프레시안 편집부의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편집부에서 엮은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은 거대한 ‘삼성 공화국’에 맞서 싸우는 이들의 모습을 직접 취재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삼성을 향해 칼을 뽑은 변호사-김용철

삼성에 시선 맞춘 민주화 운동의 산 증인-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경제 민주화 꿈꾸는 금산 분리 파수꾼-김상조 교수

'떡값 검사' 공개한 촌철살인의 비평가-노회찬 국회의원

삼성왕국과 전쟁 선포한 '심삼성' - 심상정 전국회의원

비정한 사회와 자본을 고발한 저널리스트-이상호 기자

무노조 신화에 맞선 다윗의 투쟁 - 김성환 삼성일반노동조합 위원장

이들 7인의 ‘게릴라’들이 삼성 공화국에 맞서 어떤 투쟁과 싸움을 전개했고 그동안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 등을 살폈다.

끝나지 않은 외침과 울음⋯어찌 해야 하는가

신경림 시인의 시들 속에 삼성으로 인해 죽고, 삼성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이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새벽잠에서 일어나 기사를 접하고, 출근길에 읽는 시가 무척이나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5.18 광주민중항쟁의 희생자들에게 바친 <씻김굿> 또한 시대만 달라졌을 뿐 삼성에 대입하면 그대로 읽혀진다.

염무웅 선생은 신경림 시인의 시를 해석하면서 “삶과 문학의 길을 오로지 꼿꼿하게 걸으면서 자신과 같이 외롭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빌려주고 그들의 꿈과 희망을 우리 문학세계의 한복판에 깃발처럼 우뚝 심어놓은”이라고 신경림 시인을 평가했다.

‘외롭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빌려주는 존재⋯그러나 삼성은 위에서 언급된 책을 통해 살펴보고 분석해 보면 ‘외롭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무뢰하고 권력에 예의바른’ 존재로 다가온다.

삼성반도체 공장에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죽어간 꽃다운 그들과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는 故 김주현 씨의 명복을 빈다.

편히 가라네 날더러 편히 가라네

꺽인 목 잘린 팔다리 끌고 안고

밤도 낮도 없는 저승길 천리 만리

편히 가라네 날더러 편히 가라네

잠들라네 날더러 고이 잠들라네

보리밭 풀밭 모래밭에 엎드려

피멍든 두 눈 억겁년 뜨지 말고

잠들라네 날더러 고이 감들라네

잡으라네 갈가리 찢긴 이 손으로

피묻은 저 손 따뜻이 잡으라네

햇빛 밝게 빛나고 새들 지저귀는

바람 다스운 새 날 찾아왔으니

잡으라네 찢긴 이 손으로 잡으라네

꺽인 목 잘린 팔다리로는 나는 못가,

피멍든 두 눈 고이는 못 감아,

못 잡아, 이 찢긴 손으로는 못 잡아,

피묻는 저 손을 나는 못 잡아

되돌아왔네, 피멍든 눈 부릅뜨고 되돌아왔네

꺽인 목 잘린 팔다리 끌고 안고

하늘에 된서리 내리라 부드득 이빨 갈면서

이 갈가리 찢긴 손으로는 못 잡아,

피묻은 저 손 나는 못 잡아,

골목길 장바닥 공장마당 도선장에

줄기찬 먹구름 되어 되돌아왔네

사나운 아우성 되어 되돌아왔네(<씻김굿>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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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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