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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02 춤추는 허수아비와 아바타의 시간…<허수아비춤>과 <강남몽> (1)

서울 강남. 이곳의 사회적 의미는 무엇일까. 그 물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강남은 자신을 버리는 곳이다. 실제의 ‘나’는 사라지고 나를 자처하는 ‘아바타’만 살아 움직인다. 그 ‘아바타’를 ‘허수아비’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유일지는 모르겠지만.

강남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기업이 수십 층의 높이의 건물로 우뚝 서 있다. 그 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는 사라진다. 다만 그 회사가 추구하는, 그 회사가 원하는 ‘아바타’가 돼 움직일 뿐이다. 이메일도 자유롭게 보내고 받지 못하며 특정 인터넷 사이트에 대해서는 차단된다. 회사의 주인이 아니라 회사의 한 부속품으로 전락한다.

회사의 중심축을 이루는 부품 또한 최고의 부품들이다. 판사를 지낸, 검사를 지낸, 교수를 지낸, 기자를 지낸 우리 사회에서 ‘국민을 생각하고 국민 편에 서서 일하겠다고 스스로 선서한’ 나름대로 인기 있고 촉망받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모두 그곳으로 불려 들어간다. 불려 들어가는 것을 영광으로 안다. 모두 기꺼이 ‘자신’을 버릴 자세가 돼 있다.

‘자신’을 버리고 ‘아바타’로 살아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으로 들어가려는 이유, 그리고 그 이끌림의 배경은 무엇일까.

강남에서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유기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알고 있는 한 사람도 강남에서 ‘자신 그 자체’는 없다. 그가 강남에 사는 이유는 단 하나. ‘아이들’ 때문.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고학력자인 그는 ‘아이의 아바타’가 돼 움직인다. 하루에 몇 군데 학원에 아이들을 직접 실어 나르는 운전하는 ‘아바타’가 되고 수시로 달라지는 교육정책을 대신 공부해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정보의 아바타’로 변신한다. 그곳에서 그는 사라지고 ‘아이들을 위한 아바타’만 존재할 뿐이다.

이 강남이 있기까지 우리나라 근현대사는 어떤 변화를 겪어 왔을까.

황석영의 <강남몽>은 해방이후부터 지금까지 강남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그 역사를 토대로 한 편의 이야기를 엮었다. 이야기의 중심 테마는 부동산이다. 서울의 땅이 몇 만원에서 몇 천만원까지 왜 변해 왔으며 그중에서도 강남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살피고 있다.


10대의 젊은 나이에 화류계에 뛰어들어 성공의 성공을 거듭하는 박선녀. 화류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조직폭력배. <강남몽>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강남이 부동산 측면에서 거친 역사적 수레바퀴를 탄다.

상품백화점이 붕괴되고 그 붕괴의 현장에 박선녀 자신이 파묻히게 된다는 소설속 설정은 의미하는 바가 작지 않다. 한평생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일궈온 부동산이 단 한 번에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설정은 ‘강남’의 현재성을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몽>은 이런 박선녀의 성장을 통해 강남 부동산의 이면과 그 실체를 파헤치고 있다. 소설 중간쯤부터 <강남몽>은 조직 폭력배의 역사에 주목한다. 전국 조직폭력배가 어떻게 서울에 입성했으며 그 계보는 어떤 과정을 거쳐 왔는지를 들춘다. 그러나 너무 지나친 역사적 접근과 긴 나열로 소설의 주목도가 떨어진다.

월간시사잡지 <신동아>가 <강남몽>의 조직폭력배 묘사 부분이 자신들의 기사를 표절했다고 일침을 가하면서 이 문제는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졌다. 황석영 작가가 “인용 부분의 출처를 밝히지 않은 부분은 유감”이라고 밝혀 해당 기사를 참조했음을 시인했다.

<강남몽>이 강남의 역사를 부동산과 조직 폭력배 차원에서 접근했다면 조정래 작가의 <허수아비춤>은 자본에 주목한다. <허수아비춤>의 주제는 명확하다. 책 본문에 나와 있는 한 부분이 이 책의 주제이다. 2천 년 전 사마천이 돈에 대해 언급한 말을 조정래 작가는 그대로 인용한다.

자기보다 열 배 부자면 그를 헐뜯는다.

자기보다 백 배 부자면 그를 두려워한다.

자기보다 천 배 부자면 그에게 고용 당한다.

자기보다 만 배 부자면 그의 노예가 된다.

'일광그룹'의 '문화개척센터'라는 명함을 들고 다니는 윤성훈과 박재우, 강기준이 <허수아비춤>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일광그룹의 ‘개’가 돼 모든 더럽고,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없애는 비밀특공대 역할이다. 자본주의가 만든 ‘아바타’였다.

그들의 임무는 제품의 생산과 품질 개발이라는 자본주의 본연의 임무에 있지 않다. 그들의 주된 임무는 ‘돈 놓고 돈 먹기’. 각종 로비는 물론 비자금을 조성하고 정계, 학계, 언론계를 장악하는 것이 업무이다.

‘일광그룹’이 지금 우리나라 현실에서 어느 기업을 지칭하는지는 읽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간다. 이들 3인방은 일광그룹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다. 회장의 ‘아바타’로 활약하며 일광그룹의 가장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는다.

국세청 직원을 만나고, 검사를 접대하고...그렇게 그들은 판사든, 검사든, 교사든, 기자든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스카우트한다. 이들 ‘3인방’에 의해 스카우트 당하는 사람들은 ‘마이 플레저(My Pleasure)'를 외치며 두 손들어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세상을 다 가진 듯 받아들인다.

‘국민을 섬기겠습니다.’라고 선서하던 판사와 검사.

‘학문을 통해 이 세상 사람들이 보다 더 나은 미래를 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를 외쳤던 교사.

‘펜은 칼보다 강합니다. 이 펜으로 정론직필하겠습니다.’던 기자.

‘자본’과 ‘돈’ 앞에서 이들의 초심(初心)은 찢어진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천문학적인 액수를 안겨주면 판사와 검사·기자 출신 ‘아바타’들은 윤성훈과 박재우·강기준보다 더 추악하게 변한다. 일광그룹의 ‘개’가 돼 걸림돌이 되는 모든 요소를 물어뜯고 제거하는 역할에 사력을 다 바친다.

황석영의 <강남몽>과 조정래의 <허수아비춤>은 201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당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부동산, 조폭, 자본을 통해 일그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괴상하고 비뚤어진 얼굴 모습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자 하는 목적은 또렷해 보인다.

그러나 읽는 내내 조정래 작가에게서는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서 느꼈던 생생한 인물 이미지, 당대의 모습이 눈으로 그려지는 세심한 묘사 등을 느낄 수 없었다. 지나친 말과 말들이 뒤섞여 조정래 작가 특유의 맛을 안타깝게도 볼 수 없었다.

<강남몽>도 마찬가지. 앞서 언급했듯이 지나친 조직폭력배의 역사적 계보 등이 군더더기로 다가왔다. 소설인지, 신문기사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개밥바라기별>에서 시원스럽게 뻗어가던 황석영 문체는 <강남몽>에서 멈춘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소설은 자본주의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조정래 작가를 비롯한 문인들이 2010년 12월20일 삼성전자에서 발생한 백혈병 문제를 두고 시국선언을 한 적이 있다. 삼성전자 공장에서 근무한 직원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백혈병에 걸려 죽거나 지금도 투병중인 상황이다.

그 자리에서 박노해 시인은 ‘삼성블루’라는 시를 발표했다. 이 시가 의미하는 것, 그리고 <허수아비춤>과 <강남몽>의 주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자본주의의 많은 문제는 진행중이다.

삼성 블루-박노해

오늘은 역사적인 날

글로벌 삼성 회장님이

대한민국 사법부를 접수한 날

법과 정의와 민주주의를 돈으로 사버린 날

자본권력의 힘을 온 세계에 보여준 날

이제 대한민국은 삼성 공화국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회장님으로부터 나온다

이제 삼성 로고 앞에서는

가슴에 손을 얹고 바라보라

국기에 대한 의례처럼

글로벌 삼성에 대해 경례하라

차갑고 푸르게 일그러진 원

그 안에 하얗게 들어박힌

삼성 앞에서는

하얘져

새하얘져

검은 뇌물도

검은 범죄도

법도 언론도 국가도

하얘져

쌔하얘져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글로벌 삼성 앞에서는

휴대폰도 컴퓨터도 TV도

얇아져 더 얇아져

진실도 정의도 인간성도

그들은 유령처럼 드나들어

법원도 검찰도 청와대도

언론사도 정당도 대학도

마음대로 들어가 바꿔버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버려

삼성전자의 처녀들은 하얀 우주복을 입고

독한 납용액과 1급 발암물질 벤젠과

날카로운 전자파와 방사선을

복숭아빛 발그란 몸으로 빨아들여

모든 것이 하얘져

핏속까지 하얘져

붉은 피톨도 푸른 눈물도

우리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황유미처럼 박지연처럼

하얘져

새하얘져

저 차가운 삼성 블루

일그러진 돈의 원 안에 들어가면

생명도 양심도 영혼도

우리들 살아 있는 미래도

하얘져쌔

하얘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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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