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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02 봄비는 오는데 봄은 오지 않고|신경림 <봄비를 맞으며>

나는 봄비를 맞는다. 봄비는 조용히 내린다. 예전에 있었던 구멍가게에도, 힘들게 엉금엉금 비탈길을 올랐던 그 길에도, 퉁탕퉁탕 온갖 소리가 들려오던 움막집이 있던 그곳에도 봄비는 내린다.

그러나 지금은 구멍가게도, 비탈길도, 움막집도 모두 사라졌다. 대신 대형 마트가, 잘 깔린 아스팔트길이, 아파트가 그곳에 들어서 있다. 공중전화 부스에서 줄을 길게 늘어서 차례를 기다리던 풍경은 이미 추억의 사진이 된 지 오래다.

그곳에서 한 여자를 만난다. 그 여자는 휴대폰이 분주하고 전철이 쌩쌩 달리는 달라진 세상에서도 여전히 같은 옷매무새와 머리 모양을 하고 소리 친다.

“내 아들을 살려내라! 내 아들을 살려내라!”

여자의 목소리는 언제가 똑같다. 달라진 것은 주변의 풍경과 사람들이다.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최신의 휴대폰을 들고 전철 속으로 들어간다. 봄비를 맞으며. 그러나 여자는 달라진 세상과 호흡하지 못한다.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때가 되면 나타나 “내 아들을 살려내라.”고 소리친다.

그렇게 소리치다 지쳐 갈 때쯤엔 악에 받친 목소리를 내뱉는다.

“용서하지 않을 테다. 용서하지 않을 테다.”

아들을 죽인 이들을 용서하지 않겠다는 예전 그 모습 그대로의 여자! 여자도 봄비를 맞고 있다. 여자는 달라진 세상을 향해 소리친다. “용서하지 않을 테다.”라고. 세상은 대형 마트와 아파트가 들어서고 달라졌는데, 여자의 목소리는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그대로 지켜본다. 여자에게 다가가 “할머니 세상이 변했어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나는 그러지 못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머니가 대신 해 주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나는 달라진 세상의 한 일원이 돼 있다.

달라진 세상에 순종하면서, 자본주의의 맹렬한 유혹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나는 할머니의 그런 모습을 지켜만 볼 뿐, 그녀를 부축하거나 그녀와 손을 잡고 같이 “내 아들을 살려내라.”고 소리치지도 못하고, “용서하지 않을 테다.”라고 악을 쓰지도 못한다.

모든 것이 변한 그곳에서 오직 변하지 않은 것은 할머니의 모습과 그 소리만이다. 할머니의 아들은 살아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봄비를 맞으며 할머니의 모습에서 달라진 서러운 옛길을 느낄 뿐이다.

신경림의 <봄비를 맞으며>가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실렸다. 신경림 시인이야 말해 뭤하겠는가. <농무>라는 시로 잘 알려진 시인이지 않는가. 그 스스로 힘겨웠던 현대사를 살아왔던 시인 중의 한 명이다. 그의 <시인을 찾아서>라는 책을 무척이나 재밌고 감명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봄비는 오는데 정작 봄은 오지 않고, 죽어간 아들을 살려내라는 찢어지는 고통, 가슴 속에 피맺힌 절규가 쏟아져 나오는 지금의 대한민국! 과연 우리는 달라진 이곳에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 여자가 하는 소리는 늘 같다.
내 아들을 살려내라 내 아들을 살려내라.
움막집이 헐리고 아파트가 들어서고
구멍가게들 대신 대형 마트가 들어섰는데도
그 여자는 옷매무새도 머리 모양도 같다.
공중전화 부스 앞에 줄을 서는 대신
모두들 제 휴대폰에 분주하고
힘들게 비탈길을 엉금엉금 기는 대신
전철로 땅속을 달리는데도,
장바닥을 누비는 걸음걸이도 목소리도 늘 같다
용서하지 않을 테다 결코 용서하지 않을 테다.

세상이 달라졌어요 할머니 세상이,
이렇게 하려던 내 말은 그러나 늘 목에서 걸린다.
어쩌면 지금 저 소리는 바로
내가 하고 있는 소리가 아닐까, 두려워서,
두려워서 속으로만 하고 있는 소리가 아닐까.
시적시적 내리는 봄비를 맞으면서
아무도 듣지 않는, 아무도 들으려 하지 않는,

올해도 죽지 않고 또 온 그 여자의
각설이타령을 들으며 걷는
달라진 옛날의 그 길이 오늘따라 서럽다.(<봄비를 맞으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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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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