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31일 당시.

언론사들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故 박지연 씨가 사망하자 ‘삼성전자 백혈병 소녀 숨지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경제지와 종합 일간지에서 이 기사가 삭제되기 시작했다. 기사가 잘못됐거나 오보가 아니었는데도 하나, 둘씩 기사는 사라졌고 마침내 남아있던 기사는 몇몇 매체에 불과했다.

지금도 포털을 통해 검색 기간을 ‘2010년3월31일~2010년4월02일’로 설정해 ‘박지연’으로 검색하면 그 결과를 볼 수 있다. 종합일간지에서는 한겨레가, 시사주간지에서는 시사인, 인터넷매체에서는 아이뉴스24, 오마이뉴스, 민중의 소리, 레디앙, 참세상 등에서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국내 유명(?) 경제일간지인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에도, 국내 영향력이 막강한(?) 종합일간지인 조선, 동아, 중앙일보에서는 해당 기사는 한 줄도 확인할 수 없다. 물론 각 매체마다 기사의 중요성과 지면에 싣는 가치기준이 있겠지만, 당시 박지연 씨의 죽음은 상당한 파급력이 있는 기사 비중이었고 사건사고 가치 기준에서도 의미 있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기사였다.

당시 나는 아이뉴스24 경제시사부장을 맡고 있었다. 소식을 접하자마자 두 개의 기사를 먼저 내보냈다. [백혈병 삼성반도체 ‘소녀’ 끝내 숨져…지금까지 8명]이라는 스트레이트 기사와 [홍희덕 “백혈병 소녀사망, 삼성은 문상도 안오나”]라는 장례식장 모습의 기사였다.

이어 나는 칼럼을 썼다. [한 소녀의 죽음과 이건희]였다. 아래는 당시 내가 쓴 2010년 3월31일자의 칼럼 전문.

3월24일.

‘삼성공화국’의 총수, 이건희 씨가 돌아왔다. 그룹 대표회사인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했다. 이 회장은 징역 3년·집행유예 5년·벌금 1천100억원을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복귀하면서 이건희 회장은 이런 말을 한다.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 기업이 무너진다. 삼성이 어찌 될지 모른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일주일 뒤인 3월 마지막날.

한 소녀(故 박지연)가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 쉬었다. 23세의 꽃다운 나이를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났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삼성에 근무했던 소녀였다. 소녀는 활기넘치고 꿈많던 열아홉 고3 때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들어갔다. 3년 뒤 백혈병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해 왔다. 소녀는 온양공장에 입사해 ‘1일 2교대’ ‘1일 3교대’로 일을 했다. 한달에 100만~130여만원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지 2년7개월 만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 이라는 희귀병을 얻었다. 대전성모병원을 거쳐 도착한 여의도성모병원 의사가 소녀에게 제일 처음 물었던 말은 “화학약품 만지다 왔느냐”였다고 한다. 박지연 씨의 사망으로 ‘또 하나의 가족’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유명을 달리한 직원은 8명으로 늘어났다.

故 황유미, 故 이숙영, 故 황민웅 씨 등…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이들 직원들에 대해 단 한명도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들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공장 근무로 인해 생긴 병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8명의 죽음 앞에 산업재해를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면 삼성은 ‘돈을 목적으로 억지를 부린다’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4월1일.

소녀의 죽음 앞에 ‘이런 기사’로 위로해 본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복귀한 뒤 첫 공식활동으로 故 박지연 씨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박 씨는 삼성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판정을 받고 투병 중 지난달 31일 숨졌다. 이 회장은 박 씨를 조문한 뒤 유족을 위로했다. 이 회장은 박 씨의 가족에게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앞으로 삼성반도체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들의 건강검진을 강화하고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이 일반 직원의 빈소를 찾은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故 박지연 씨의 추모 페이지에 “하늘나라에서는 삼성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길 바란다”는 글이 보인다. 삼성이 있는 현실을 버리고, 삼성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이 현실…삼성은 지금 위기이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또 하나의 가족’이었던 한 소녀의 죽음앞에 책임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앞으로 ‘삼성이 어찌 될 지’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삼성 쪽으로 우리 회사 영업국과 편집국장에게 전화가 왔다. 기사를 삭제해 달라는 요구였다. 다행히 스트레이트와 장례식 현장 기사는 팩트에 의한 것으로 삭제되지 않았고 내가 쓴 칼럼도 삭제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포털 검색을 하면 당시 우리 매체의 기사는 남아 있다. 기사가 세상을 바꾼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박지연 씨의 죽음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삼성과 박지연의 관계에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등에 대해 매체라면 접근하는 것이 당시의 판단 기준이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언론사들은 당시 그런 기본적 개념조차 스스로 버리고 말았다.

물론 이후 다른 매체들도 관심이 줄어들었고 또 다시 ‘삼성이 던지는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었지만. 기사는 시대를 반영하고, 당시의 있는 그대로를 알려주는 역할도 있다. 그것조차 하지 못한다면, 혹은 스스로 다른 배경으로 포기한다면 이제 이 시대, 언론의 역할은 사라진 셈이다. 삼성이 만든 ‘백혈병 망각의 늪’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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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지난 2010년 3월31일 끝내 숨을 거둔 박지연 씨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을 정리해 보면 삼성이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확연하게 드러난다. 적절한 시점에 들불처럼 번져가는 이슈를 잠재우는가 하면, 적당한 시점에 자신들의 입장과 자세를 강조하면서 “삼성은 이 문제에 적극 나서고 있다”는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2

010년 3월31일 박지연 씨가 사망했다. 2007년 백혈병이 발병했고 3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다 목숨을 잃었다. 삼성은 관련 직원들은 박지연 씨 장례식장에 보내 면밀한 동태파악에 나선다.

아래는 2010년 4월 1일자 당시 기사내용.

삼성반도체에 근무하다 백혈병을 얻은 故 박지연 씨가 지난달 31일 끝내 사망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민노당 홍희덕 의원과 유족들은 1일 장례식장인 서울성모병원에서 ‘故 박지연 씨의 죽음은 삼성에 의한 타살이다’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홍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서도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근무하던 못다핀 꽃이 떨어졌는데 삼성 이건희는 문상도 안오는가”라며 질타냈다.

민주노동당은 공식논평을 통해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어 스물셋이라는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박지연 씨의 죽음은 안타까움 자체”라고 밝혔다.

민노당 우위영 대변인은 “방사선 기계로 검사하는 업무를 맡아온 박지연 씨는 오랜 시간 노출된 방사선 때문에 백혈병에 걸린 것으로 추정돼 왔다”면서 “박지연 씨뿐 아니라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는 현재 22명에 달하며 이 중 사망한 노동자는 벌써 8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삼성과 근로복지공단은 적극적 보상과 추가 피해자 발생을 막기 위한 노력은 커녕 외면과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면서 “젊은 노동자들이 급성 백혈병으로 스러져가고 있음에도 연관성 없음을 운운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처사이며 재벌기업에 대한 특혜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우 대변인은 “‘재벌 프렌들리’ 정권에 무소불위의 삼성이라지만 사람의 목숨을 이토록 하찮게 취급하는 것은 또 다른 살인과 다르지 않다”면서 “정부와 삼성은 지금이라도 산업 재해를 인정하고 치료와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연 씨의 죽음으로 ‘삼성과 백혈병’이라는 키워드가 급부상했고 언론사들이 앞다퉈 이 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한다. 트워터 등 SNS를 통해서도 급속히 전파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들불이 돼 번져나갔다.

여론이 들끓고 언론들이 분석, 기획보도 등으로 나서자 삼성은 공식 입장을 내놓기 보다는 우선 ‘우회 돌파법’을 선택한다. 공식 기자회견 등을 통해 대응한 것이 아니라 삼성전자 트위터를 이용해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아래는 2010년 4월 2일자 당시 기사 내용.

삼성전자가 2일 트위터계정(@samsungtomorrow)을 통해 자사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던 중 백혈병으로 숨진 고 박지연씨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트위터 사용자간 박씨의 백혈병 사망 원인을 둘러싸고 반도체 생산환경과의 인과관계에 대한 논란이 일자 해명에 나선 것.

삼성전자는 트위터를 통해 “회사로서도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며 “오늘 많은 삼성전자 임직원들이 오전, 오후로 나누어 직접 문상했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또 반도체 웨이퍼 제조과정의 방사능물질이 영업비밀이라고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서도 “반도체 제조과정의 모든 사용물질은 산업안전공단의 역학조사팀에 전부 제출했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회사는 회복을 위해 치료비 등을 지원해왔고, 회사 동료들도 모금운동으로 훈훈한 동료애를 보여 주었다”며 “언론과 만나지 못하도록 협박했다는 일부 주장은 잘못 알려진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영결식이 치러진 박 씨는 지난 2004년부터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일하던 중 2007년 백혈병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다 2010년 3월31일 숨졌다.

우회 입장 표명을 통해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여론을 막아보고자 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공식입장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두 가지 부분이다.

첫째는, 반도체 웨이퍼 제조과정의 방사능물질이 영업비밀이라고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반도체 제조과정의 모든 사용물질은 산업안전공단의 역학조사팀에 전부 제출했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작업현장 공개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자료를 줬기 때문에 이제 공은 산업안전공단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객관적인 사실을 강조하고자 한 부분이다.

둘째는, “회사는 회복을 위해 치료비 등을 지원해왔고, 회사 동료들도 모금운동으로 훈훈한 동료애를 보여 주었다”고 강조한 부분이다. ‘훈훈한 동료애’를 강조하면서 앞서 객관적 사실을 앞세움과 동시에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구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삼성의 이 같은 트위터 입장발표는 타오르는 여론을 잠재우는데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수백 건의 기사가 계속 쏟아졌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한 삼성은 급기야 4월12일 반도체 공장을 기자들에게 전격 공개하겠다고 밝힌다. 직접 공략법을 들고 나온 것이다. 4월15일 기흥 공장에 마침내 높으신 분(?)들이 기자와 현장견학(?)을 간다.

아래는 2010년 4월 15일자 당시 기사.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직원이 백혈병으로 숨진 사건과 관련 그 원인에 대해 재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메모리담당 조수인 사장은 15일 오전 경기 용인시 기흥 사업장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유가족들이 신뢰하지 않고 있는 근로복지공단 및 산업안전보건공단 대신에 ‘제 3의 컨소시엄’을 구성해 (공장이 백혈병 원인을 제공했는 지에 대해) 역학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조 사장은 특히 “신뢰할 만하다면”이란 전제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유가족들이 원하는 기관도 (조사 주체)로 받아들이겠다”고 덧붙였다.

유가족 및 시민단체의 의혹을 정면으로 맞서 대응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조 사장은 그러나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과 백혈병 간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도체 사업장에는 유독 물질이 없으며, 방사선 노출 장치 등 시설 설비 면에서 백혈병과 관련이 없다”는 설명이다.

지난 3월 말 백혈병으로 사망한 전 삼성 반도체 근로자 고 박지연 씨가 흐흡기 및 피부를 통해 유독물질이 전달됐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배기장치가 모두 돼 있고 안전 수칙에 따라 보호도구를 착용하게 돼 있다”고 피력했다.

관리 감독 소홀 문제에 대한 지적에 관해서는 삼성전자 환경안전팀장 한동훈 상무가 “아무리 감독하더라도 체크가 힘들 수 있다. 작업장이 워낙 넓다 보니 그점 동감한다. 화학물질 만큼은 최대한 교육하고 있다. 발견 못한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아는 한 없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기자를 대상으로 반도체 생산라인 두 곳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모임인 ‘반올림’은 “이번 공개는 지난 2007년 11월부터 피해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줄기차게 주장해왔고, 또한 한결같이 묵살당해온 사안”이라며 “그러나 이번 생산라인 공개는 반올림이 요구해왔던 ‘투명한 정보공개’와는 전혀 다른 것이며, 이를 통해서는 도저히 ‘의혹과 불신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해소’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당시 현장에 갔던 우리 매체 기자는 “30여 분의 짧은 기간동안 5, S라인 두 곳을 봤는데 최첨단 시설로 돼 있어 깨끗하다는 인상만 받았다”고 말했다. 기자들에게 작업 공정을 공개하겠다고 하면서 미리 대비하지 않았을 리는 없고, 현장 기자의 말처럼 ‘최첨단 시설로 깨끗했다’는 말은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이 부분에서 삼성이 무엇을 노렸는지는 명확하다. 기자들에게 현장을 공개해 “현장까지 공개했는데 더 이상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는 강한 메시지를 던져주려 했고 나아가 현장 공개 이후 사장과 상무가 나서 “반도체 사업장에는 유독 물질이 없으며 백혈병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있다”는 등의 메시지를 심어주고자 한 것이다.

현장의 이미지와 함께 “아무 문제 없다” “우리는 떳떳하다”는 이미지를 통한 여론 잠재우기에 나선 셈이다.

그렇게 2010년 3월과 4월이 지나가고 5월에 접어들면서 역시나(?) 언론의 관심과 여론은 잠잠해지기 시작한다. 2010년 5월1일부터 2010년 12월31일 까지 ‘박지연 백혈병’ 이라는 기사는 고작 79건에 불과했다. 3월과 4월에 수백 건에 달했던 관련 기사들은 조금씩 줄어들더니 2010년이 끝나갈 때쯤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2010년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3월에 한 어린 소녀의 죽음으로 불거진 ‘백혈병’ 문제는 여전히 한때의 이슈로만 부상했을 뿐 해결이 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이번에 다시 이슈로 부상했다. 삼성이 말한 것 처럼 “모든 자료를 산업안전연구원에 줬다”고 밝혔고 삼성안전연구원은 “작업공정에서 발암물질인 벤젠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젠 해결할 때이다.

자본주의가 자유로운 계약관계에 의해서 시장에서 노동력을 구입하고 그 댓가로 임금을 지불한다지만, 그래서 노동자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자본가는 임금을 주는 계약관계라고 하지만,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죽음 앞에 조차도 고개 숙이지 않는 이 사회가 너무 쓸쓸하고 비참하기 때문이다.

비단 ‘삼성과 백혈병’ 문제는 특정 기업과 특정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 어떤 자본주의 기업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노동자가 사망하면 ‘돈으로 해결하고’ ‘돈이면 다 된다’는 이 썩어빠진 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존재 자체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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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아래는 오늘 <조선비즈>에 보도된 삼성관련 기사입니다. 검은 색은 기사 원문이고 파란색은 기사 이면을 제 나름대로 분석한 것입니다. 과연 삼성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삼성 “백혈병 문제 털고 가고 싶다”
조선비즈

삼성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근로자들의 잇따른 백혈병 발병 문제를 그룹 차원의 주요 사안으로 고려해 해결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8일 “삼성 사업장에서 제기된 백혈병 문제를 가장 해결하고 싶은 이해 당사자는 회사”라며 “이 문제를 그룹 차원에서 매듭지을 중요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으로서는 백혈병이라는 키워드가 늘 따라붙고 있으니 해결해야 될 ‘난제’로 보고 있겠죠. 나아가 ‘그룹 차원에서 매듭지을 중요한 사안’이라고 본다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입니다. 글로벌기업으로서 이미지 타격이 클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그동안의 삼성의 태도를 보면 ‘매듭지을 중요한 사안’이라는 해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해결 방법은 백혈병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접근하고, 그동안 숨진 직원 8명과 백혈병 의심으로 치료받고 있는 수십 명의 직원들에 대한 실태조사는 물론, 당시의 근무여건 등도 명백히 밝혀져야 합니다. 그러나 삼성의 태도는 유가족을 만나 협상을 하려하고, 위로금을 전달한 뒤 봉합하려는 작태만을 보여 왔습니다. 이제까지 수없이 많은 노동자가 죽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는 이달 6일 삼성전자·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공장에서 발암물질과 백혈병 유발 인자 등이 일부 부산물로 검출됐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은 뒤 나온 발언이어서 주목된다.
이 관계자는 백혈병 문제에 대한 그룹 차원의 해결 의지가 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이 문제는 단순한 산업 안전 문제에서 벗어나 있다. 근무자들의 불안감이 커진다면 가장 큰 이해당사자인 회사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그룹 차원에서도 털고 나가고 싶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세계적인 최고 전문가들을 데려와 조사를 했고 외신까지 들어와 1달 넘게 심층 취재를 했는데도 결국 기사를 쓰지 못했다”며 “사업장을 거쳐 간 사람이 병을 얻을 경우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서 정말 삼성의 언론플레이는 지능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어제 산업안전연구원이 발표한 작업공정에서 발암물질인 벤젠이 검출됐다는 소식에 화들짝 놀랐을 겁니다. 이후 언론에서 어떻게 기사에 접근하는지 , 그 파문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지 분석했을 겁니다. 이를 가라앉히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지 고심에 고심을 했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내놓은 것이 “세계적 최고 전문가, 외신까지” 들먹이면서 “그렇게 했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결론을 얻었다는 것을 퍼트린 것이죠. 벤젠 검출에 대한 보도를 상쇄시키고 있습니다. 삼성의 언론 플레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하지만 백혈병 문제에 대한 회사 측의 대응에 일부 문제가 있던 것은 사실”이라며 “회사 차원에서 문제 해결을 위해 뛰고는 있지만 유족을 만다는데 한계가 있는 등 일부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넌지시 ‘자신들의 잘못도 쬐금(?)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유족을 만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는 현실적 한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천만에요! 유족이 삼성을 만나지 않으려 한다면 그것은 삼성이 객관적 실체에 접근하기 보다는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일방적 태도 때문일 겁니다. 유족들도 직접 이해당사자인 삼성을 만나고자 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아들과 딸이 삼성이라는 공간에서 죽어갔는데, 당사자를 만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아들과 딸이 죽어간 정확한 이유에 접근하기 보다는 “이제 사망했으니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위로금이라도 타시죠?”라고 접근하는 삼성의 비인간적 태도에 대한 분노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의 기사 ‘삼성이 백혈병 문제를 털고 가고 싶다’는 기사는 한마디로 ‘객관적 실체와 정확한 상황을 파악한 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아닌 ‘하루빨리 덮어버려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삼성의 이 같은 태도는 이미 숨진 8명의 영혼에 다시 한 번 고통을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겁니다. 깨닫기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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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어릴 적,
명절이 되면 도시로 나간 누나들은 손에 손에 선물 꾸러미를 들고 고향집을 찾아오던 기억이 난다.

조무래기 시절,
1년에 한두 번씩 찾아오는 누나들은 ‘산타였으며 선물 전달자’였다. 역시 사람은 도시로 나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그때마다 했었다.

어릴 적, 조무래기들은 누나의 손을 자세히 보기 보다는 들고 있는 선물을 쳐다봤다. 누나의 깊고 우울한 눈동자를 보기 보다는 깨끗하게 차려입은 옷차림새를 부러워했다.

그런 누나들이 도시에서 하루에 18시간에 이르는 중노동에 시달리고, 환기도 되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고 ,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는 것을 알지 못했다.

가난한 시골에서 배움을 강제 포기당하고 도시로 떠밀리다시피 간 누나들은 자신의 노동을 팔수밖에 없었다. 대가는 혹독했다. 기술이나 전문 지식이 없었던 누나들은 시다에서부터 시작해 자신의 몫을 사장들에게 빼앗기는 것은 물론 혹독한 도시에 길들여져야 했다. 짙은 먼지 속에서 건강이 나빠지면 사장들은 가차 없이 가지 치듯 누나들을 싹둑 잘라냈다.

1970~1990년대에 흔히 우리나라 시골에서 볼 수 있는 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이 비극적 모습이 2012년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공장의 작업공정을 조사한 결과, 부산물로 벤젠 등 발암물질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반도체 공정에서 벤젠이 부산물로 발생한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더욱이 이번 조사는 “너희 공장에서 실험을 할 것”이라고 미리 통

보해 주고 나타난 결과이다. ‘짜고 치는 고스톱’에서 조차 발암물질이 검출된 것이다.

이번 조사결과가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는 것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원인모를 백혈병이 발병해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 다니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는 인권단체인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약칭 반올림)’에 따르면 최소 22명 이상이고 이중 8명은 이미 사망했다. 특히 유명을 달리한 이들 중에는 ‘꽃다운 나이’의 젊은 누나들이 많아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2010년 3월31일 사망한 박지연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고(故) 박지연씨는 2004년 12월, 19살의 나이로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했다. 3년만인 2007년 9월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투병해 오다 2010년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은 기흥공장에서 가공된 웨이퍼를 절단·조립·검사해 반도체 완제품을 만드는 공장이다. 기흥공장과 온양공장 모두 많은 화학약품과 방사선 기계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검출된 벤젠은 특히 제조공정에서 부산물로 검출된 것이어서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이 발발한 노동자들의 전후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보고서에는 “웨이퍼가공라인에서 부산물로 벤젠이 미미하게 발생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노동부는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에 두고 “미미한 수준으로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애써 강조했다. 아마도 이후 벌어진 상황에 미리 대비한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면서도 “안전에 문제가 없도록 안전담당자를 교육시키고 ‘안전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인체에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건강에는 해롭다”는 이율배반적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반올림의 생각은 다르다. 반올림은 “개별 노동자의 노동 강도와 신체적 조건, 노출경로에 따라 노출기준치 미만의 적은 노출량에도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특히 역학조사에 대비해 완벽한 설비가 갖춰진 상태에서 조사한 결과와 과거 노출수준을 비교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라는 것이다. 이번 보고서를 가장 객관적으로 풀이하면 “완벽한 설비가 갖춰진 곳에서 조차도 벤젠이 검출됐다면 과거 안전장치나 설비가 미흡한 상황에서는 오죽했겠느냐”로 해석해야 된다는 것이다.

박지연 씨가 근무하던 2004년 온양공장에서는 이보다 더 악화된 환경과 그로 인한 발암물질의 생성이 더 컸음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반올림 등에 따르면 현재 법원에서 산재인정 여부를 다투고 있는 노동자들은 1990년대부터 2000년 초까지 일한 노동자들이다. 10년이 넘은 시점에 벌어진 일로, 당시에는 화학물질을 수동으로 취급했고 환기시설도 열악했다.

매일노동뉴스를 통해 이종란 반올림 노무사는 “시설이 완벽한 현재에도 벤젠이 검출된 것은 과거 열악한 환경에서는 더 많은 양의 벤젠에 노출됐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행정소송 중인 피해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여전히 삼성전자는 꿈적도 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공장에 근무하다 백혈병을 얻은 노동자들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근로복지공단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며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법원도 산재를 인정하는 것에 주저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젊은 나이에 입사해 몇 년 뒤 백혈병에 걸렸다면 이들이 직업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조사는 그 인과관계를 더욱 명확히 설명해주고 있다.

눈을 들어 이제 똑바로 봐야 한다.

어릴 적,
한 번만이라도 선물 꾸러미보다는 거칠어진 누나의 손을 잡아봤더라면?
새 옷을 입은 누나의 옷차림새보다는 깊고 우울한 누나의 눈을 쳐다봤더라면?
지금쯤 ‘꽃다운 누나’는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지 않을까.

‘선물꾸러미와 새 옷’을 버리고 이젠 ‘누나의 손과 깊은 눈동자’를 쳐다봐야 한다. 아직도 우리는 삼성에서 던져주는 ‘선물꾸러미와 새 옷’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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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정말 저절로 눈이 스스로, 능동적으로 열렸다.

달콤한 잠 속에서 뭔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일어났다. 이후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리맡에 있는 아이패드로 트위터에 접속해 본다. 4월1일 만우절이라 그런지 여러 가지 재밌는 ‘거짓말’들이 타임라인을 물들이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떤 거짓말로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이내 ‘행복한 거짓말’ ‘재밌는 거짓말’로 세상을 가볍게 웃고 지나가기에는 현실이 너무 버겁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때 타임라인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기사를 접했다.

"내 자식 살려내, 삼성 입사 얼마나 좋아했는데"

기사를 읽는 내내 잠이 오지 않는 새벽만큼 답답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여전히 삼성이라는 공간에서, 삼성이라는 터전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나를 발견한다.

새벽잠을 아침까지 설치고 이른 아침 출근길에 올랐다. 출근길에도 피곤함 보다는 우울함이 먼저 몰려 왔다. 삼성을 둘러싼 유쾌하지 못한 일들과 비극적 경험 들이 하나 둘씩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염무웅 선생의 <문학과 시대현실>이란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책을 펼쳐 들었다. 읽을 차례를 보니 신경림 시인 편이다. 신경림 시인의 시부터 읽어보자.

장에 간 큰아버지는 좀체로 돌아오지 않고

감도 다 떨어진 감나무에는

어둡도록 가마귀가 날아와 운다(<시골 큰집> 부분)


그리하여 산 일번지에 밤이 오면

대밋벌을 거쳐 온 강바람은

뒷산에 와 부딪혀

모든 사람들의 울음이 되어 쏟아진다(<산1번지> 부분)


그리하여 증언하는 자 아무도 없는가.

이 더러운 역사를, 모두 흙 속에서

영원히 원통한 귀신이 되어 우는가.(<1950년의 총살) 부분)


바람은 복대기를 몰아다가 문을 때리고

낙반으로 깔려죽은 내 친구들의 아버지

그 목소리를 흉내내며 울었다,(<폐광> 부분)


저 밤새는 슬프게 운다

상여 뒤에 애처롭게 매달려

그 소년도 슬프게 운다(<밤새> 부분)


메밀꽃이 피어 눈부시던 들길

숨죽인 욕지거리로 술렁대던 강변

절망과 분노에 함께 울던 산바람(<해후> 부분)

위에 언급된 시 모두 우리 현대사의 질곡과 아픔, 학대받는 자들의 울음과 분노,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경림 시인의 시를 엿보면서 삼성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삼성과 관련돼 많은 증언을 했던 사람들은 조금씩 잊혀가고 이젠 ‘증언하는 자 아무도 없는가’라고 신경림 시인의 시가 다르게 읽힌다. 그래서 ‘이 더러운 역사를, 모두 흙 속에서 영원히 원통한 귀신이 되어 우는가’라고 분노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게 ‘더러운 역사’와 ‘흙 속에서 영원히 원통한 귀신이 되어 울 때’ 밤새도 슬프게 울었고 ‘상여 뒤에 애처롭게 매달려 그 소년도 슬프게 운다’고 해석하는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몇 해 전 ‘삼성공화국’과 관련된 책들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권력에 예의 바르고 ‘외롭고 힘없는 자’에게 무뢰(無賴)한 삼성

삼성을 공화국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 권력을 한 손에 움켜쥐고 있는 삼성이 미치는 영향력은 가히 폭발적이면서도 공포스럽다. 정치, 문화, 사회, 학계 등 삼성이 내미는 권력에 주저 없이 손을 잡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삼성과 손을 잡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 늘려 있다.

삼성(Samsung)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 물음은 단순하지 않다. 하나의 기업집단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은 대한민국에서 정치, 사회, 문화 영역에서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 삼성을 기업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왕국’으로 판단하게 된다.

무엇보다 ‘삼성왕국’이 우리 사회에 미치고 있는 가장 큰 테제는 ‘선(善)과 악(惡)조차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헤게모니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선과 악은 보편적인 개념이다. 누구나 ‘저것은 선’ ‘이것은 악’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개념이 있다.

그렇지만 이 개념이 삼성으로 넘어오면 완전히 뒤틀리고 만다. 삼성에게 있어 선(善)의 개념은 “삼성에 유리하면 모든 것이 선”이며 악은 “삼성에게 해를 끼치면 악(惡)”이 된다. 무소불위의 헤게모니를 지니게 된다는 의미이다.

보편적 상식 개념인 ‘선과 악’의 개념과 정의조차 바꿀 수 있는 집단이 삼성이라는 존재이

다. 과연 그 속에는 어떤 시스템이 흐르고 있을까. 그런 삼성에 끌려가는(?) 사람들-판검사, 변호사, 기자, 회계사 등등-은 왜 자처해서 ‘삼성 왕국’으로 걸어 들어가고 그것을 영광으로 삼을까.


삼성반도체 젊은 청춘들의 비극은 아직 진행 중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반올림에서 발간한 <삼성반도체와 백혈병>은 삼성반도체 공장에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했거나 혹은 투병을 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성반도체 공장에 근무한 몇 년 뒤 백혈병에 걸려 죽어간 이들⋯그들은 모두 젊은 청춘들이었다.

황유미, 박지연 씨 등의 죽음⋯꽃다운 나이에 그들은 위대한(?) 삼성에 입사해 처절하게 죽어갔다. <삼성반도체와 백혈병>은 황유미 씨의 죽음이 남긴 것을 시작으로 반도체 공장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짚어본다.

백혈병이 삼성 직원들에게 발병하면서 대책위를 꾸리게 되고 산재 신청에 얽힌 잘못된 점과 역학조사를 둘러싼 공방 등을 탐사 보도 형식으로 담았다. 산재 승인이 되지 않은 현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규명하고 또 다른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다뤘다.

<삼성반도체와 백혈병>은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라고 그들의 운동을 규정하고 계속 ‘싸워나갈 것’을 천명하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변호사에 대해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워낙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당사자이며 삼성과 관련돼 가장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검사 출신으로 삼성 법무팀에 근무하다 양심선언을 하게 되고 몇 년 동안 한국 사회를 이슈와 논쟁으로 이끈 장본인이다. 자신이 직접 겪은 이야기를 통해 ‘삼성의 참 모습’에 접근하고 이다.

차명계좌를 이용한 비자금 조성과 검찰과 법원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삼성의 인맥구조와 조직체계 등을 체험적으로 기록했다. 삼성 구조본의 역할과 그들의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의 활동, 그리고 삼성을 둘러싼 모든 문제점을 해결하는 그들만의 노하우 등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삼성에 맞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함께 맞서 싸워 나갔던 과정을 그렸고 자신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통해 “삼성이 변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프레시안 편집부의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편집부에서 엮은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은 거대한 ‘삼성 공화국’에 맞서 싸우는 이들의 모습을 직접 취재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삼성을 향해 칼을 뽑은 변호사-김용철

삼성에 시선 맞춘 민주화 운동의 산 증인-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경제 민주화 꿈꾸는 금산 분리 파수꾼-김상조 교수

'떡값 검사' 공개한 촌철살인의 비평가-노회찬 국회의원

삼성왕국과 전쟁 선포한 '심삼성' - 심상정 전국회의원

비정한 사회와 자본을 고발한 저널리스트-이상호 기자

무노조 신화에 맞선 다윗의 투쟁 - 김성환 삼성일반노동조합 위원장

이들 7인의 ‘게릴라’들이 삼성 공화국에 맞서 어떤 투쟁과 싸움을 전개했고 그동안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 등을 살폈다.

끝나지 않은 외침과 울음⋯어찌 해야 하는가

신경림 시인의 시들 속에 삼성으로 인해 죽고, 삼성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이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새벽잠에서 일어나 기사를 접하고, 출근길에 읽는 시가 무척이나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5.18 광주민중항쟁의 희생자들에게 바친 <씻김굿> 또한 시대만 달라졌을 뿐 삼성에 대입하면 그대로 읽혀진다.

염무웅 선생은 신경림 시인의 시를 해석하면서 “삶과 문학의 길을 오로지 꼿꼿하게 걸으면서 자신과 같이 외롭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빌려주고 그들의 꿈과 희망을 우리 문학세계의 한복판에 깃발처럼 우뚝 심어놓은”이라고 신경림 시인을 평가했다.

‘외롭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빌려주는 존재⋯그러나 삼성은 위에서 언급된 책을 통해 살펴보고 분석해 보면 ‘외롭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무뢰하고 권력에 예의바른’ 존재로 다가온다.

삼성반도체 공장에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죽어간 꽃다운 그들과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는 故 김주현 씨의 명복을 빈다.

편히 가라네 날더러 편히 가라네

꺽인 목 잘린 팔다리 끌고 안고

밤도 낮도 없는 저승길 천리 만리

편히 가라네 날더러 편히 가라네

잠들라네 날더러 고이 잠들라네

보리밭 풀밭 모래밭에 엎드려

피멍든 두 눈 억겁년 뜨지 말고

잠들라네 날더러 고이 감들라네

잡으라네 갈가리 찢긴 이 손으로

피묻은 저 손 따뜻이 잡으라네

햇빛 밝게 빛나고 새들 지저귀는

바람 다스운 새 날 찾아왔으니

잡으라네 찢긴 이 손으로 잡으라네

꺽인 목 잘린 팔다리로는 나는 못가,

피멍든 두 눈 고이는 못 감아,

못 잡아, 이 찢긴 손으로는 못 잡아,

피묻는 저 손을 나는 못 잡아

되돌아왔네, 피멍든 눈 부릅뜨고 되돌아왔네

꺽인 목 잘린 팔다리 끌고 안고

하늘에 된서리 내리라 부드득 이빨 갈면서

이 갈가리 찢긴 손으로는 못 잡아,

피묻은 저 손 나는 못 잡아,

골목길 장바닥 공장마당 도선장에

줄기찬 먹구름 되어 되돌아왔네

사나운 아우성 되어 되돌아왔네(<씻김굿>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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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1953년 8월3일 평양⋯임화는 재판정에 무표정하게 서 있다. 자포자기의 심정과 극도의 공포감을 그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검사의 질문이 시작되기 전, 임화의 머릿속으로 서울 종로의 네거리가 떠오르지 않았을까.

검사: 일본 제국주의시대에 피고가 해왔던 문학운동은 계급적 문학운동이었던가?

임화: 아닙니다. 그것은 일제의 어용문학이었습니다.

검사: 미군을 환영하는 사업을 조직한 일이 있는가?

임화: 약 300 명의 문화인을 동원시켜 미군환영 시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임화는 민족반역자⋅종파주의자라는 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젊은 시절, 서울 종로의 ‘순이’를 보살피고 ‘순이’의 가난을 자신의 가난으로 생각했던 마음 따뜻했던 그가 분단된 조국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사상의 공간에서 오히려 짧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대학생 시절,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 대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박영희가 카프의 활동을 두고 “얻은 것은 이념이고, 잃은 것은 예술”이라고 말했지만 카프의 성격을 단순히 이 한마디로 매듭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임화는 카프의 핵심 활동 인물로 그의 시에는 따뜻한 정감과 자신보다 민중을 먼저 생각했던 희생정신이 깃들어 있다.

임화의 ‘순이’는 지금 이 시대에도 존재한다

임화는 시인이자 평론가였다. 그의 대표작인 <네거리 순이>를 읽어본다.

눈바람 찬 불상한 도시 종로 복판에 순이야!

너와 나는 지나간 꽃 피는 봄에 사랑하는 한 어머니를

눈물나는 가난 속에서 여의었지!

그리하여 너는 이 믿지 못할 얼굴 하얀 오빠를 염려하고,

오빠는 가냘핀 너를 근심하는,

서글프고 가난한 그날 속에서도,

순이야, 너는 마음을 맡길 믿음성 있는 청년을 가졌었고,

내 사랑하는 동무는

청년의 연인 근로하는 여자 너를 가졌었다.(<네거리 순이> 중 부분)

<네거리 순이> 중 부분이다. 시인은 추운 겨울, 종로 복판에서 순이를 만난다. 순이는 임화의 친 동생일 수도, 당시에 노동하는 모든 여성일 수도 있다. ‘순이’는 일제시대 ‘눈바람’ ‘가난’ ‘근로하는’ 모든 여성의 대명사로 해석된다.

그런 순이를 ‘근심하는’ 나는 다행스럽게 ‘내 사랑하는 동무’를 소개시켜 주고 ‘순이’의 가난하면서도 가냘픈 마음에 한가닥 위로를 던져준다. 임화는 자신의 사상만을 고집하고 이념만을 강조했던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이념을 지탱해 주는 다정다감함과 희생정신, 배려하는 정신이 그를 알게 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임화가 말했던 ‘순이’는 그 당시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순이’는 존재한다. 한 맺힌 농성으로 최근 관심의 대상이었던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아무도 관심가지지 않을 때 그들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서 찬 점심을 먹고 화장실 바닥에 지친 몸을 뉘어야 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꽃다운 나이에 백혈병으로 죽어간 그녀들⋯스물도 채 안된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이 백혈병으로 죽어갔다. 내 노동으로 가족들을 부양하겠노라고 외쳤던 다짐은 어디로 가고, 젊고 잘 생긴 청년을 만나기도 전에 그들은 세상을 달리했다.

아직도 자신의 노동으로 밖에 살 수 없는 이 시대의 여성 노동자들⋯종로 네거리 ‘순이’는 현재에도 존재하고 미래에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임화가 그렸던, 만들고자 했던 세상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 텐데. 임화가 살아있다는 어떤 느낌을 가지고 지금의 상황을 시(詩)로 이야기할까.

임화의 <다시 네거리에서>에서는 ‘순이’가 잘 살기를 바랬건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모든 것이 더욱 참담해지고 암울해지고, 낯선 모습의 종로 네거리를 그린다.

번화하는 거리여! 내 고향의 종로여!

웬일인가? 너는 죽었는가, 모르는 사람에게 팔렸는가?

그렇지 않으면 다 잊었는가?

나를! 일찍이 뛰는 가슴으로 너를 노래하던 사내를,

그리고 네 가슴이 메어지도록 이 길을 흘러간 청년들의 거센 물결을,

그때 내 불쌍한 순이는 이곳에 엎더져 울었었다.

그리운 거리여! 그 뒤로는 누구 하나 네 위에서

청년을 빼앗긴 원한에 울지도 않고,

낯익은 행인은 하나도 지내지 않던가?(<다시 네거리에서> 부분)

‘다시 종로 네거리’에 섰지만 시인은 우울하고 암울하다. 잘 생긴 청년을 만났던 ‘순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옛날 ‘엎더져 울었던’ 모습만 떠오르고 잘 생긴 청년을 빼앗겨 버린 ‘순이’만 그려진다. ‘순이’는 그 옛날 ‘네거리 순이’보다 더 참혹해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순이’는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안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조차 알 길이 없다. 그런 비극에도 불구하고 종로 네거리는 갈수록 번화하고 사람들로 넘쳐난다. 물질적 변화가 급격하게 이뤄지지만 종로 네거리에 선 시인은 참담함을 느낄 뿐이다.

1980년대, 내가 태어났던 고향은 깊은 산골이었다. 설과 추석이 되면 타지로 나갔던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들 중에도 ‘순이’가 많았다. 그들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갓 졸업하고 모두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노동을 팔기 위해’ 도시로 나갔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한 손에는 큰 댓병 ‘정종’을, 한 손에는 다양한 과자가 포장돼 있는 종합선물세트를 들고 고향을 찾아 들었다. 일 년에 두 번, 헤어졌던 가족들이 만나는 날이었다. 나는 그때 조무래기였는데 버스를 타고 선물을 들고 나타나는 그녀들이 부러웠다. 그녀들은 명절 전날 왔다가 명절 당일 저녁에 모두 버스를 타고 먼지를 날리며 도시로 돌아갔다. 짧은 고향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그녀들이 모두 ‘순이’였다. ‘정종’과 ‘과자종합선물세트’만 바라봤던 나는 그녀들이 어떤 극한 상황에서, 어떤 고통 속에서 일을 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녀들에게도 젊은 청년이 나타났을까.

종로 네거리에는 지금도 ‘순이’가 있다. 임화에게는 이 현실이 더욱 그를 아프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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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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