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동순과 백석, 그리고 자야(子夜)의 만남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백석 시인은 모든 시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시인이자 1930년대의 대표적 시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북에 남게 된 백석의 그 이후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백석 시인의 <사슴>은 모든 시인들의 모범 교재로 인정받고 있다. 이동순 시인이 <백석시전집>을 편찬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고 봐야 한다. 이동순 시인은 <개밥풀> <봄의 설법> <꿈에 오신 그대> 등의 시집을 내놓았다.

우선 이동순 시인의 <화로>와 <팔베개>라는 시부터 읽어 본다.

화로

동지섣달 짧은 해는 기울고
서쪽 창문마저 어두워지니
방안 공기가 이마에 차다
화로에 참숯불을 듬뿍 담아
방에 들여놓으니
작은 방안은 삽시에 훈훈하다
그대와 나는 화로를 끼고 앉아
서로 마주 보며 웃는다
우리 둘은 숯불처럼 점점 달아오른다
화로의 영롱한 불빛이
그대 얼굴에 비치어 황홀하다


팔베개

그대의 팔을 베고서야
저는 잠이 들어요
이런 저의 잠버릇을 아시고
그대는 팔이 저린 것도 꾹 참으시고
행여 제가 깰까봐
고요한 숨결로
저의 잠든 얼굴을
그윽하게 바라보시지요
자다가 갑갑해진 제가
차디찬 웃목으로 떨어져나가면
그대는 저를 끌어다
다시 팔베개를 받쳐주셨어요
그리고는 또 그윽한 얼굴로
저의 곤히 잠든 모습을 들여다보시지요

<화로>와 <팔베개>라는 두 시를 읽어보면 다정한 연인의 행복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는데 부족함이 없다. ‘화로에 참숯불을 듬뿍 담아’ 놓으면 금세 ‘작은 방은 훈훈해’지고 ‘그대와 나는 화로를 끼고 앉아’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마주 보며 웃고’ 있다.

숯불의 따뜻함 보다 더 우리 둘은 ‘달아오른다’고 시는 표현하고 있다. 작지만 따뜻한 방안에 마주 앉아 아무 것도 걱정할 것 없고, 아무런 고민과 번뇌도 없는 연인의 뜨거운 사랑과 연인의 ‘무심코 바라보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팔베개>는 제목에서부터 정감어린 연인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그 무엇보다 부드럽고 곤한 잠을 청할 수 있는 곳이 연인의 팔베개가 아닐까. 그 어떤 것보다 편안하고, 그 어떤 것보다 포근할 수 있는 살아있는 베개⋯.

연인의 팔베개에 누워 잠시 잠이 들었다 ‘차디찬 윗목’으로 삐쳐 나갈라 치면 다시 연인은 어느새 잠에서 깨어 ‘저를 끌어다’ 팔베개를 해준다. 그 뿐인가. 다시 팔베개를 해주면서 ‘ 그윽한 얼굴로’ 곤히 잠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연인⋯더 이상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들의 사랑은 시간은 멈추게 하고,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현재의 극락에 있는 것을.

이동순 시인의 <화로>와 <팔베개>는 특정 연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동순 시인이 <백석시전집>을 편찬하고 얼마 뒤 한 통의 연락을 받는다. 한 낯선 연인에게서 였다. 이동순 시인이 여인의 집으로 찾아갔는데 그 여인은 자신을 ‘자야(子夜)’라고 소개하면서 “백석과 3년 동안 함께 살았다.”고 털어놓았다.

몇 번의 만남을 통해 ‘백석과 자야’의 이야기를 이동순 시인은 1988년 <창작과 비평> 봄 호에 <백석, 내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子夜 여사의 회고>라는 글을 게재했다.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본다.

백석의 나이 26, 그리고 자야 씨의 나이 22세 때 둘은 함흥에서 처음 만났다. 젊은 날들에 만난 이들은 금방 친해졌고 자야 씨가 당시(唐詩)선집을 한 권 샀는데 그것을 보고 백석이 ‘자야’라는 호를 그녀에게 이름 붙여 주었다.

자야는 당나라 시인 이백의 <자야오가(子夜吳歌)>에서 연유됐다. 자야오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子夜呉歌

長安一片月(장안의 한 조각 달)/萬戸擣衣聲(집집마다 다듬이질 소리)/秋風吹不盡( 가을바람 불어 그치지 않으니)/總是玉關情(모두 옥관 생각 뿐인가)/何日平胡虜( 어느 날에 오랑캐를 평정하고)/良人罷遠征(우리 낭군 원정에서 돌아올까)

고즈넉한 달밤 오나라 한 여인이 전쟁터에 나가있는 낭군을 기다리는 심정을 가을바람에 비유하며 읊은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시에서 백석이 그녀에게 ‘子夜’라는 호를 붙여주었으니 어딘지 모르게 ‘슬픈 이미지’가 떠오른다.

백석은 자신의 시 <바다>에서 “지중지중 물가를 거닐면/당신이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구려/당신이 이야기를 끊은 것만 같구려...”라고 표현했다. 이 대목을 두고 자야 씨가 “내가 끊긴 무얼 끊어요?”했더니 백석은 “밤낮 날더러 장가들라고 했잖았소! 당신 머릿속에서는 지금도 나를 떠나라 하고 있지? 왜 내 말이 잘못되었소?”라며 연거푸 빠른 말을 했다고 기억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백석은 장가를 가게 된다. 그러나 장가든지 사흘 만에 다시 그녀를 찾아왔다고 자야 씨는 회고한다. 자야 씨는 함흥을 떠나(1937년) 서울 청진동에 집을 하나 마련하는데 그곳으로 백석이 찾아온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울 청진동 집에서 살림을 시작한다.

이동순 시인의 <화로>와 <팔베개>는 당시 청진동의 백석과 자야 씨의 모습을 두고 표현한 연시(戀詩)인 것이다.

자야 씨는 1937년 백석과 함께 살던 때를 두고 “그 시절 우리 둘은 참으로 행복하였다.”라고 회고했다.

자야 씨가 백석에게 넥타이를 하나 선물한 적이 있는데 이 넥타이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든지 백석 시인은 <내가 이렇게 외면하고>라는 시에서 “언제나 꼭같은 넥타이를 매고 고흔 사람을 사랑”한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별은 찾아오는 법, 1939년 백석은 만주로 떠난다. 자야 씨는 “얼마 후에 그는 만주 신경으로 훌쩍 떠나버렸다. 나에게 단 한마디의 그 어떤 기별도 남겨두지 않은 채...”라고 기억을 되살렸다. 이것이 백석과의 영원한 이별이었다. 해방이 되고 백석은 북에 그대로 남겨졌고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눠졌다.

이 부분에서 자야 씨는 백석의 그 유명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떠올렸다. 이 시는 백석이 만주를 떠나던 시절, 자야 씨와 헤어지던 시절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는 것.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이동순 시인에게 백석과의 인연을 털어놓은 자야 씨는 “(1988년 당시) 이제 내 나이 어언 일흔셋, 홍안은 사라지고 머리를 파뿌리가 되었지만, 지난 날 백석과 함께 살던 그 시절의 추억은 아직도 내 생애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되뇌었다.

이동순 시인의 설명에 따르면, 자야 씨는 1916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열일곱 나이에 여창명인 김수정의 안내를 받아 창과 가무를 배웠다고 한다. 백석의 아름다운 시와 그의 이력에 새로운 면을 부각시킨 자야 씨. 그녀를 통해 이동순 시인은 백석의 참모습에 조금은 더 다가갈 수 있었을 것이다. <화로>와 <팔베개>를 통해 그들 둘의 사랑을 표현하기 까지 했으니.

이동순 시인의 <꿈에 오신 그대> 시집에 수록돼 있는 <첫눈>을 감상해 보자.

첫눈

산정에 올라서서
방금 떠나온 세상을 봅니다
세상은 여전히 희뿌연 먼지 속에 덮여 있습니다
산정까지 다소곳이 따라와 안내를 해주고
길은 이윽고 풀숲 사이로 모습을 감추어버렸습니다
그대여
저는 지난 밤 그대가 이곳에 오셨다는 소식을 라디오로 들었지요
그래서 날이 밝자마자
허겁지겁 산정으로 달려왔는데
야속한 그대는 잠시도 기다려주시질 않고
어느 틈에 흔적도 없이
떠나버리셨군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