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31일 당시.

언론사들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故 박지연 씨가 사망하자 ‘삼성전자 백혈병 소녀 숨지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경제지와 종합 일간지에서 이 기사가 삭제되기 시작했다. 기사가 잘못됐거나 오보가 아니었는데도 하나, 둘씩 기사는 사라졌고 마침내 남아있던 기사는 몇몇 매체에 불과했다.

지금도 포털을 통해 검색 기간을 ‘2010년3월31일~2010년4월02일’로 설정해 ‘박지연’으로 검색하면 그 결과를 볼 수 있다. 종합일간지에서는 한겨레가, 시사주간지에서는 시사인, 인터넷매체에서는 아이뉴스24, 오마이뉴스, 민중의 소리, 레디앙, 참세상 등에서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 

국내 유명(?) 경제일간지인 매일경제, 한국경제 등에도, 국내 영향력이 막강한(?) 종합일간지인 조선, 동아, 중앙일보에서는 해당 기사는 한 줄도 확인할 수 없다. 물론 각 매체마다 기사의 중요성과 지면에 싣는 가치기준이 있겠지만, 당시 박지연 씨의 죽음은 상당한 파급력이 있는 기사 비중이었고 사건사고 가치 기준에서도 의미 있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기사였다.

당시 나는 아이뉴스24 경제시사부장을 맡고 있었다. 소식을 접하자마자 두 개의 기사를 먼저 내보냈다. [백혈병 삼성반도체 ‘소녀’ 끝내 숨져…지금까지 8명]이라는 스트레이트 기사와 [홍희덕 “백혈병 소녀사망, 삼성은 문상도 안오나”]라는 장례식장 모습의 기사였다.

이어 나는 칼럼을 썼다. [한 소녀의 죽음과 이건희]였다. 아래는 당시 내가 쓴 2010년 3월31일자의 칼럼 전문.

3월24일.

‘삼성공화국’의 총수, 이건희 씨가 돌아왔다. 그룹 대표회사인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했다. 이 회장은 징역 3년·집행유예 5년·벌금 1천100억원을 선고받았던 인물이다. 복귀하면서 이건희 회장은 이런 말을 한다.

“지금이 진짜 위기다. 글로벌 일류 기업이 무너진다. 삼성이 어찌 될지 모른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일주일 뒤인 3월 마지막날.

한 소녀(故 박지연)가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 쉬었다. 23세의 꽃다운 나이를 뒤로 하고 세상을 떠났다.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삼성에 근무했던 소녀였다. 소녀는 활기넘치고 꿈많던 열아홉 고3 때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들어갔다. 3년 뒤 백혈병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해 왔다. 소녀는 온양공장에 입사해 ‘1일 2교대’ ‘1일 3교대’로 일을 했다. 한달에 100만~130여만원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한지 2년7개월 만에 ‘급성 골수성 백혈병’ 이라는 희귀병을 얻었다. 대전성모병원을 거쳐 도착한 여의도성모병원 의사가 소녀에게 제일 처음 물었던 말은 “화학약품 만지다 왔느냐”였다고 한다. 박지연 씨의 사망으로 ‘또 하나의 가족’ 삼성반도체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유명을 달리한 직원은 8명으로 늘어났다.

故 황유미, 故 이숙영, 故 황민웅 씨 등…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이들 직원들에 대해 단 한명도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들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공장 근무로 인해 생긴 병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8명의 죽음 앞에 산업재해를 인정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면 삼성은 ‘돈을 목적으로 억지를 부린다’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4월1일.

소녀의 죽음 앞에 ‘이런 기사’로 위로해 본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복귀한 뒤 첫 공식활동으로 故 박지연 씨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박 씨는 삼성 온양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판정을 받고 투병 중 지난달 31일 숨졌다. 이 회장은 박 씨를 조문한 뒤 유족을 위로했다. 이 회장은 박 씨의 가족에게 산업재해뿐만 아니라 앞으로 삼성반도체에 근무하는 모든 직원들의 건강검진을 강화하고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이 일반 직원의 빈소를 찾은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故 박지연 씨의 추모 페이지에 “하늘나라에서는 삼성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게, 건강하게 살길 바란다”는 글이 보인다. 삼성이 있는 현실을 버리고, 삼성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이 현실…삼성은 지금 위기이며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또 하나의 가족’이었던 한 소녀의 죽음앞에 책임조차 느끼지 못한다면 앞으로 ‘삼성이 어찌 될 지’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삼성 쪽으로 우리 회사 영업국과 편집국장에게 전화가 왔다. 기사를 삭제해 달라는 요구였다. 다행히 스트레이트와 장례식 현장 기사는 팩트에 의한 것으로 삭제되지 않았고 내가 쓴 칼럼도 삭제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포털 검색을 하면 당시 우리 매체의 기사는 남아 있다. 기사가 세상을 바꾼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박지연 씨의 죽음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삼성과 박지연의 관계에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 등에 대해 매체라면 접근하는 것이 당시의 판단 기준이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언론사들은 당시 그런 기본적 개념조차 스스로 버리고 말았다.

물론 이후 다른 매체들도 관심이 줄어들었고 또 다시 ‘삼성이 던지는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었지만. 기사는 시대를 반영하고, 당시의 있는 그대로를 알려주는 역할도 있다. 그것조차 하지 못한다면, 혹은 스스로 다른 배경으로 포기한다면 이제 이 시대, 언론의 역할은 사라진 셈이다. 삼성이 만든 ‘백혈병 망각의 늪’에 빠지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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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어릴 적,
명절이 되면 도시로 나간 누나들은 손에 손에 선물 꾸러미를 들고 고향집을 찾아오던 기억이 난다.

조무래기 시절,
1년에 한두 번씩 찾아오는 누나들은 ‘산타였으며 선물 전달자’였다. 역시 사람은 도시로 나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그때마다 했었다.

어릴 적, 조무래기들은 누나의 손을 자세히 보기 보다는 들고 있는 선물을 쳐다봤다. 누나의 깊고 우울한 눈동자를 보기 보다는 깨끗하게 차려입은 옷차림새를 부러워했다.

그런 누나들이 도시에서 하루에 18시간에 이르는 중노동에 시달리고, 환기도 되지 않는 곳에서 일을 하고 ,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는 것을 알지 못했다.

가난한 시골에서 배움을 강제 포기당하고 도시로 떠밀리다시피 간 누나들은 자신의 노동을 팔수밖에 없었다. 대가는 혹독했다. 기술이나 전문 지식이 없었던 누나들은 시다에서부터 시작해 자신의 몫을 사장들에게 빼앗기는 것은 물론 혹독한 도시에 길들여져야 했다. 짙은 먼지 속에서 건강이 나빠지면 사장들은 가차 없이 가지 치듯 누나들을 싹둑 잘라냈다.

1970~1990년대에 흔히 우리나라 시골에서 볼 수 있는 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이 비극적 모습이 2012년 지금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공장의 작업공정을 조사한 결과, 부산물로 벤젠 등 발암물질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반도체 공정에서 벤젠이 부산물로 발생한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더욱이 이번 조사는 “너희 공장에서 실험을 할 것”이라고 미리 통

보해 주고 나타난 결과이다. ‘짜고 치는 고스톱’에서 조차 발암물질이 검출된 것이다.

이번 조사결과가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는 것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원인모를 백혈병이 발병해 유명을 달리한 이들의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 다니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는 인권단체인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약칭 반올림)’에 따르면 최소 22명 이상이고 이중 8명은 이미 사망했다. 특히 유명을 달리한 이들 중에는 ‘꽃다운 나이’의 젊은 누나들이 많아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2010년 3월31일 사망한 박지연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고(故) 박지연씨는 2004년 12월, 19살의 나이로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했다. 3년만인 2007년 9월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투병해 오다 2010년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은 기흥공장에서 가공된 웨이퍼를 절단·조립·검사해 반도체 완제품을 만드는 공장이다. 기흥공장과 온양공장 모두 많은 화학약품과 방사선 기계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에 검출된 벤젠은 특히 제조공정에서 부산물로 검출된 것이어서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이 발발한 노동자들의 전후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보고서에는 “웨이퍼가공라인에서 부산물로 벤젠이 미미하게 발생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노동부는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에 두고 “미미한 수준으로 인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애써 강조했다. 아마도 이후 벌어진 상황에 미리 대비한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그러면서도 “안전에 문제가 없도록 안전담당자를 교육시키고 ‘안전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인체에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건강에는 해롭다”는 이율배반적 해석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반올림의 생각은 다르다. 반올림은 “개별 노동자의 노동 강도와 신체적 조건, 노출경로에 따라 노출기준치 미만의 적은 노출량에도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다르다”고 지적했다.

특히 역학조사에 대비해 완벽한 설비가 갖춰진 상태에서 조사한 결과와 과거 노출수준을 비교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라는 것이다. 이번 보고서를 가장 객관적으로 풀이하면 “완벽한 설비가 갖춰진 곳에서 조차도 벤젠이 검출됐다면 과거 안전장치나 설비가 미흡한 상황에서는 오죽했겠느냐”로 해석해야 된다는 것이다.

박지연 씨가 근무하던 2004년 온양공장에서는 이보다 더 악화된 환경과 그로 인한 발암물질의 생성이 더 컸음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반올림 등에 따르면 현재 법원에서 산재인정 여부를 다투고 있는 노동자들은 1990년대부터 2000년 초까지 일한 노동자들이다. 10년이 넘은 시점에 벌어진 일로, 당시에는 화학물질을 수동으로 취급했고 환기시설도 열악했다.

매일노동뉴스를 통해 이종란 반올림 노무사는 “시설이 완벽한 현재에도 벤젠이 검출된 것은 과거 열악한 환경에서는 더 많은 양의 벤젠에 노출됐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행정소송 중인 피해자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여전히 삼성전자는 꿈적도 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공장에 근무하다 백혈병을 얻은 노동자들에 대해 산업재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근로복지공단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며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법원도 산재를 인정하는 것에 주저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젊은 나이에 입사해 몇 년 뒤 백혈병에 걸렸다면 이들이 직업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조사는 그 인과관계를 더욱 명확히 설명해주고 있다.

눈을 들어 이제 똑바로 봐야 한다.

어릴 적,
한 번만이라도 선물 꾸러미보다는 거칠어진 누나의 손을 잡아봤더라면?
새 옷을 입은 누나의 옷차림새보다는 깊고 우울한 누나의 눈을 쳐다봤더라면?
지금쯤 ‘꽃다운 누나’는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지 않을까.

‘선물꾸러미와 새 옷’을 버리고 이젠 ‘누나의 손과 깊은 눈동자’를 쳐다봐야 한다. 아직도 우리는 삼성에서 던져주는 ‘선물꾸러미와 새 옷’에만 시선을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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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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