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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2.24 정 직원-파견근로자…함께 걷는 길

체 게바라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마치 고통 속에 자신을 던지는 것을 태어난 숙명으로 생각한 사람처럼. 쿠바 혁명이 성공한 뒤 볼리비아로 떠나는 그에게 친구가 “고생해서 일군 열매를 따먹지 못하는 당신은 바보”라는 힐난을 들었다.

한창 정부군과 게릴라전이 전개되고, 산 속에서 변변치 않은 저녁을 먹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취사병이 고기를 마련해 저녁을 마련했다. 모든 대원들에게 고기 한 덩이를 줬는데, 내 밥그릇에는 두 덩이가 놓여 있었다. 나는 곧바로 취사병을 불러 혼을 냈다. 똑같이 배식하지 않고 나에게 아부하는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일주일 동안 징벌을 받았다.”

프랑스 철학자인 샤르트르는 체 게바라의 삶을 두고 “100년에 1명 정도 태어날까 말까한 완벽한 인간”이었다고 평가했다. 체 게바라의 삶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 가슴 속에 향수처럼 강하게 남아있는 배경이다.

자유, 평등, 박애. 근대사회를 상징하는 단어이다.


평등!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고, 기회에 있어서 균등하다는 것을 말한다. 과연 지금 우리 시대는 평등한 사회일까.

5천만 원을 가진 자본가가 있다. 그는 이 돈으로 공장을 만들었다. 직원이 필요했다. 직원 두 명을 고용했다. 근로계약서를 체결한다. 자본주의에서 계약은 갑과 을의 계약으로 평등하다. 계약 조건이 싫으면 계약하지 않으면 되기 때문이다.

평등한 계약을 통하지만 계약 이후는 불평등한 구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직원들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자신의 노동을 판다. 노동이 투여되면 상품이 나온다. 상품은 시장을 통해 판매되고 그 대가로 월급이 지급된다 그곳에서 나온 돈으로 직원 두 명은 임금을 지급받아 먹고 살아간다. 이 공장은 무척 잘 돼 공장을 확대하고 직원을 더 고용해야 했다.

초기에 채용된 두 명의 직원은 한 달에 400만 원 정도의 임금을 받았다. 공장이 증축되고 10여 명의 직원을 더 채용해야 했다. 이 때 자본가의 꼼수가 시작된다. 10여명의 정 직원을 채용하게 되면 10X300=3000(최소 1인당 300만원)을 준다고 하면 3천만 원의 비용(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이 때 자본가에게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이른바 A인력파견업체이다. 이 업체 사장은 10명의 근로자를 증축된 공장에 파견할 테니 1인당 200만원만 받겠다고 제안한다. 10X200=2000, 자본가는 망설일 이유가 없다. 2천만 원을 인력파견업체 사장에게 송금만 하면 더 이상 신경 쓸 일도 없고,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1천만 원의 비용절감까지 발생하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렇게 증축된 공장에서 두 명의 정 직원과 10 여명의 인력파견 업체 직원들이 일을 한다. 두 명의 정직원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보너스, 직원 식당 무료 이용, 자녀 양육비 등의 각종 혜택을 제공받는다. 인력 파견업체 직원들은 월급을 인력파견업체 회사에서 받는다. 식당 이용은 물론, 각종 혜택은 전혀 없다. 이러한 불평등한 관계를 자본가에게 지적하자 자본가는 이렇게 지적한다.

“나는 당신들의 노동을 구매했을 뿐, 모든 문제는 당신들의 회사인 A사에 문의해라. 나는 A사에 당신들의 임금을 일괄 입금시키고 있고,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여기 계약서에도 명확히 돼 있지 않느냐. 내 회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당신들은 여기서 일만 할 뿐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다.”

파견업체 직원들은 이러한 자본가의 말에 마땅한 대처방법을 찾을 수 없다. 모든 계약 관계상 자본가의 말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인력파견업체 직원들은 A사 사장에게 자신들의 임금이 턱없이 낮다며 항의한다. A사 사장은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뭐라고? 지금 임금이 적다고 불평하는 건가? 일하기 싫다고? 그럼 그만둬. 너희들이 그만둬도 여기서 일하려는 노동자들이 줄을 서 있으니까.”

자본가 vs 인력파견업체 직원, 정 직원 vs 인력파견업체 직원, 인력파견업체 사장 vs 직원…이들 관계가 평등할까. 계약서상으로는 평등하지만 실제 불평등한 여러 가지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자본주의가 계약서를 중요시하는 배경이다. 평등한 계약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은 불평등해 지는 시스템. 그게 자본주의이다.

박애!

널리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사랑한다는 의미다.

위 공장의 사례에서 박애라는 기본 개념을 찾아볼 수 있을까. 만약 박애를 실천한다면 자본가는 애초 직원 모두를 정 직원으로 채용하는 게 맞을 것이다. 자본가는 자신의 비용을 줄이고, 쓸데없는 직원 관리비용을 줄이기 위해, 즉 자신의 자본증식과 이익만을 계산해 인력파견업체를 선택했고, 그 기준은 철저하게 ‘상품 가치’에 있었다. 적은 비용을 투자해 큰 이익을 내는 것! 그곳에 박애는 없었다.

처음에 채용된 두 명의 정 직원과 10명의 인력파견업체 노동자들 사이에 박애가 있었을까.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정 직원과 10명의 파견업체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는 컸다. 물론 초기 멤버와 이후 들어온 관계로 임금 격차는 있을 수밖에 없었겠지만 무엇보다 정 직원에게만 돌아가는 각종 복지혜택을 두고 인간적으로 큰 괴리감이 들었을 것이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 아니 오히려 우리보다 일을 적게 하면서 더 많이 가지고 가고,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게 말이 되나?’

인력파견업체 직원들은 이런 감정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을 것이고, 정 직원들도 인력파견업체 노동자의 박탈감은 어느 정도 수긍했을 것이다. ‘노(勞)-노(勞)의 감정 대립’이 생길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정 직원들은 인력파견업체 노동자와 같이 일은 하고 있지만 엄연히 계약 관계상 서로 다른 회사 직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 직원과 인력파견업체 노동자간 ‘박애’라는 키워드를 끄집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인력파견업체 사장과 직원들 사이에 ‘박애’가 있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력파견업체 사장은 “뭐라고? 그럼 그만둬!”라고 잘라 말하면서 대체 인력이 수두룩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직원들은 사람으로 본 게 아니라 ‘상품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상품은 언제든지 폐기될 수 있고 다른 상품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줌으로써, 직원들을 오히려 협박하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사람은 이제 사라져 가고 있다. 사람들이 떼거지로 걸어 다니고, 움직이고 있지만 모든 것은 ‘상품’으로 대치돼 평등, 박애 같은 인간적 감정은 없어지고 있다. 이쯤 되면 앞으로 ‘사람’들도 자판기 상품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고, 값을 매겨 버튼을 눌러 구매하는 자본가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대법원이 현대자동차에 대해 파견 근로기간이 2년이 넘는 근로자는 회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파견근로자보호법이 명시하고 있는 “파견 기간이 2년이 넘은 근로자는 회사가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규정한 근거를 들었다.

자동차, 제조분야의 많은 파견근로 노동자가 구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대법원의 판결을 피해갈 꼼수-파견이 아니라 도급으로 바꾼다거나, 2년이 되기 전에 해고한다거나, 등등-를 자본가들은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사회는 평등과 박애를 실천할 때라고 하는데, 자본가들은 이런 ‘평등과 박애’를 실천하게 되면 자신들에게 돌아올 몫이 적어진다. 분명 지금 이 순간에도 자본가들은 이번 판결을 수긍하는 척하면서 ‘꼼수’를 연구하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

열매만을 따 먹고자 하는 자본가와 씨를 뿌리고 밭을 일구는 노동자, 그들의 평등과 박애는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다는 데 슬픔과 자본주의 비애가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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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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