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규의 2005년 소설집 <카스테라>가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우울한 젊은이들의 현실을 재치 발랄한 상상력에 독특한 문체로 표현한 박민규 식 소설이 어떻게 연극으로 소화될 지 관심을 모은다.

이번 연극은 소설집에 수록된 <카스테라>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등 세 편의 단편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었다. 2005년 소설이 2011년 8월에 연극이란 형식으로 재현되는 셈이다.

세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학 자취생, 인턴사원, 가난한 고등학생 등 모두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다.

절망 속에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 전달

2005년 <카스테라>가 2011년에도 읽힐 수밖에 없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출근하면서 뉴스면을 살펴본다.

2011년 8월12일 사회면 주요뉴스는 ①구미서 집단자살 추정 20대 남녀 4명 발견 ②'한 달 이자 90만원' 대학생의 고금리 분투기 등이다. 여전히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희망을 찾지 못하고 절망 속으로 떨어지고 있다. 극단적 선택의 상황까지 치달았다.

2005년 젊은이들의 우울과 절망에 깊이 사색하던 박민규는 <카스테라>를 통해 그나마 희망을 찾아보자 했다.

이번 연극에 포함되는 <카스테라>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는 박민규 소설집의 첫 머리를 장식하는 단편들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 청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절망과 현실의 팍팍함 속에서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번 연극을 기획한 MODO 측은 연극 <카스테라>의 중심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원룸에 사는 외로운 자취생에게는 카스테라 한 조각으로, 꿈을 버리고 주류에 편입하고자 애쓰는 인턴사원에게는 너구리의 비누칠로, 푸시맨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난한 고교생에게는 기린의 등장으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목숨을 끊고, 고금리 이자에 허덕이는 2011년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던져주자는 것이 이번 연극의 주된 목적이라는 설명이다. 우울한 자화상에 빠져있는 젊은이들에게 얼마만큼의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연극이라는 설명이다.

MODO 측은 “연극 <카스테라>를 통해 때론 엉뚱한 방식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다”고 말했다.

공연은 8월17일부터 28일까지 계속되며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4시・7시 ▲일요일 3시・6시에 막을 올린다. 월요일은 공연이 없다. 공연 장소는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이다. 문의=http://blog.naver.com/aptory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최근 아내가 분당 구미동에 작은 갤러리를 열었다. 대학원생들의 미술 작품과 자신이 직접 그린 작품, 자신이 손수 만든 핸드페인팅 도자기 등 조그마한 예술품을 팔고, 가끔씩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가벼운 차 한 잔 대접하는 그런 갤러리이다.

그 중에 내가 가장 제일 좋아하는 것은 ‘턴테이블’이다. CD와 MP3, 실시간 음악 등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 ‘턴테이블’은 낯선 용어이자, 어떻게 생겼는지 조차도 모르는 그런 물건이지 않을까. <아름다운가게>에서 4만원(스피커까지 포함해)에 구입한 턴테이블과 몇 십 장의 LP판. 그 모습 자체만으로 나를 흥분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승철의 LP판에서 치치직~~ 순간 순간~~ 잡음을 내며 “아이가 눈이 오길 바라듯이…”라는 소리가 나오면 왠지 가슴이 벅차 온다. LP판이 회전하면서 내는 소리는 ‘낭만’ ‘추억’ ‘아련함’ ‘아픔’ ‘기쁨’ ‘슬픔’ ‘절망’ 등이 소복이 묻어 있다. 모든 감정이 온 몸에 흘러 전율을 느낀다.

sideA가 끝이 나면 판을 뒤집어 sideB를 듣는 재미 또한 남다르다. 판을 뒤집는 그 맛! 정말이지 직접 해 보지 않고서는 모르리. 물론 sideA와 sideB의 모든 노래들이 나를 울리거나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다. 추억과 낭만을 던져주는 노래도 있지만 그냥 바늘을 훌쩍 들어 다음 노래로 건너뛰게 하는 노래도 분명 있다.

박민규 글앨범 <더블-side A, B>

작가가 앨범을 냈다? 글쟁이가 노래를 불러 앨범을 냈다는 말인가? 물론 글 쓰는 사람이 음악에 재능이 있을 수 있고, 앨범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앨범은 그 장르가 앨범이 아니라 ‘글앨범’이다

그만큼 자신만의 앨범을 갖고 싶은 욕구였으리라. 어쨌든 박민규 작가는 그 꿈을 이뤘다. 음악이 아닌 글로 만든 앨범이지만. 고스란히 sideA와 sideB의 앨범 형식을 차용했다. 각각 9곡(작품)씩. 턴테이블에 걸고 듣고 싶지만, 글로 된 앨범이라 눈으로 돌려가며 읽을 수밖에. 낭만과 아픔, 기쁨을 주는 곡(작품)도 있었지만 영 내 취향에 맞지 않는 것들도 있었다. 그런 때는 나중을 기약하고 우선 좋은 곡들로 옮겨갔다.

소설은 계(界)가 있다. 상상계, 현실계, 그리고 상징계. 소설 장르는 사실 상징계에 머물러 있는 장치라 할 수 있다. 현실을 반영하되 현실이지 않는, 그런 장르! 박민규 작가는 상상계에 속해 있는 작가라 할 수 있다. <카스테라>의 대부분 소설, 기타 작품들. 그가 아마도 현실계로 발을 뻗어 보려는 장편소설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아닐까 싶다.

<더블>에 실린 18 편의 작품 역시 그의 세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가 상상계에서 현실계와 상징계로 내려오면서 <아침의 문>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상문학상인 <아침의 문>에 작가추천작으로 <딜도가 우리가정을 지켰어요>라는 글이 실려 역시 상상계에 머물러 있는 작가를 만날 수밖에 없었지만.

<더블>은 상상계의 무한히 뻗어 나가는 작가의 허무맹랑한 이야기에서부터 짙게 드리워진 삶의 그늘 아래로 지쳐 스러지는 이들도 만날 수 있다. LP판에 있는 모든 노래가 ‘낭만’ ‘추억’ ‘기쁨’ ‘슬픔’을 전달해주지 못하는 것처럼 그의 <더블>도 개인적으로 맘에 드는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상상계에서 현실계로 조금씩 걸음을 옮긴 그의 작품으로 들어가 보자. 여기서 코멘트 하나, 앨범까지 내놓은 박민규 작가는 조만간 직접 마이크를 잡고 노래 부르는 행동까지 저지르지 않을까.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BC 1700년에 만난 ‘우’…나의 다리를 너에게 주마

sideB의 <슬>은 슬픈 노래다. ‘아이가 눈이 오길 바라듯이’ <슬>에서도 눈이 온다. BC 1700년. 도대체 어떤 세상이었을까. 이런 궁금증에 작가는 첫 시작부터 정확한 답을 던져준다. 주인공 우(남자)가 돌을 갈고 있다. 그렇다. 선사시대에 인간들은 돌을 갈았다. 멋 내고, 장식하기 위한 돌이 아니다. 먹고 살기 위한, 사냥에 필요한 돌… 뾰족하고 날카로운, 그래서 두툼한 짐승의 가죽을 한 번에 뚫을 수 있는 돌!

누가 강력한 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권력자가 됐다. 사냥꾼이 된다는 것은 BC 1700년에 대단한 권력이자 경쟁력이었다.

다른 모든 종족이 사냥을 위해 터전을 옮겼지만 우는 남을 수밖에 없다. 그의 여자 ‘누’가 이제 막 새끼를 낳았기 때문이다. 때는 한 겨울. 희디, 희디, 흰 눈이 오는 날. 우는 사냥을 나서게 된다. 갓 낳은 새끼들이 엄마 젖을 물지만 먹은 것이 먹는 어미젖에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무엇이든 먹어야 한다. 자신을 위해서도, 아내인 누를 위해서도, 이제 막 태어난 새끼를 위해서라도. 그러니 우가 희디, 희디, 흰 눈을 맞으며 사냥을 나설 수밖에. 그러나 짐승의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는다. 하루 종일 걷고, 또 걷고, 또또 걷고… 짐승의 냄새를 맡으려 해 보지만 냄새가 없다. 차가운 입김만 나오고,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그러다, 코끼리 보다 덩치가 큰 놈을 만난다. 이 짐승도 추운 날에 지쳤는지 움직임이 더디고 우가 창을 깊게 찔러 보지만 죽기는커녕 오히려 우를 절체절명의 순간으로 몰아간다. 그러나 우는 죽을 수가 없다. 자신의 여자와 새끼가 동굴에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짐승의 공격에 도망치다 우는 바위틈에 발이 끼이고 만다. 꼼짝없이 끼여 버렸다. 발을 빼내 보려 하지만 그럴수록 바위는 더욱 발을 짓누른다. 그렇게 밤을 보낸 우는 이제 죽는구나 생각한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여전히 우는 살아있다. 자신의 돌도끼-자신이 직접 갈고 다듬은 날카로운 돌-로 자신의 다리를 내리치기 시작한다. 비명을 지른다. 자신의 다리를 잘라 빠져 나오려는 계획이다. 피가 튀고 자신의 다리뼈가 보이고… 그렇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은 죽을 수 없다. 지금 죽으면 동굴에 있는 내 여자와 새끼들은?

마침내 발목이 절단되고 바위에서 빠져 나온다. 그리고 주워 담는다. 뭘? 창으로 잃어버린 다리 한쪽을 대신하며 자신의 신체 부위에서 떨어져 나간 고깃덩어리(자신의 몸의 일부)를 들고 동굴로 돌아간다. 그것이 우의 마지막 선택이었고 제목은 <슬(膝)>이다. BC 1700년의 ‘우~우~’ 짐승과 다를 바 없었던 아비를 등장시킨 <슬>이 2011년, 지금 읽어도 가슴이 저미고 아파오는 것은 왜일까.

오십대 초반에 회사에서 쫓겨나 퇴직금을 타면 자식들이 우르르 집으로 몰려와 “아버지, 우리 끼리 의논했는데 재산은 미리 나눠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라고 말하는 2011년 자식들…“요즈음 노인요양원이 얼마나 좋은데, 그곳에 가면 친구도 있고, 호텔 뺨친다니까요”라고 쫑알대는 자식들…슬하에 자식이 있다는 게 슬픔이 되고 있는 현실 때문일까.

<근처>에서 <낮잠>을 자고 <아치>에서 자살하고 싶은 사람들

sideA에 실려 있는 <근처>와 sideB에 수록돼 있는 <낮잠> <별> <아치>는 누구나 자신의 주변에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다.

<근처>를 둘러보라. 친구가 보이는지. <근처>의 나는 직장인이다. 덜컥 말기 암에 걸렸다. 인생을 정리해야 한다. 인생을 정리할 때 인간은 자신의 추억을 찾기 마련. 나는 사직서를 내고 초등학교 시절 몇몇 친구들과 20년 뒤에 열어보자며 학교 교정에 묻어두었던 ‘타임캡슐’을 생각해 낸다. 이 보다 더 아름다운 추억이 있을까.

타임캡슐에 자신의 흔적을 묻은 옛 친구들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중 여자도 하나 있었다. 지금은 이혼하고, 어렵게 사는 여자친구. 나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 그녀가 나에게 은근슬쩍 접근한다. 아플 때 직접 간호까지 하고 내 집에서 자고 간다. 그렇게 서로 부둥켜안고 사랑을 한다. 섹스를 하면서 “20년 전 타임캡슐에 나...너 좋아한다고 썼는데”라고 여자 친구는 말한다.

며칠 뒤, 여자 친구는 “이런 말하기 그런데...돈 좀 빌려줄 수 있니?” 선뜻 몇 천만 원을 빌려준다. 아니다 그냥 준 것이다. 나는 얼마 있지 않아 죽는데. 누구에게 물려줄 것도, 아무도 없다. 인생을 접기 전, 예전 타임캡슐을 꺼내보고 옛 친구도 만나고, 여자 친구와 섹스도 하고, 이 보다 더 즐거운 추억이 있을까.

고개를 들고 올려다봐야만 <별>은 보일까. <별>의 이야기는 복수극이다. 나는 대리운전기사. 이전에는 조그마한 회사의 회계 담당이었다. 잘 나지는 못했지만 성실한 회계 담당 직원이었다. 어느 날, 사무실 입구에 서 있는 한 여자를 본다. 세상에! 저렇게 예쁘고 화사한 여자는 평생 처음 본다. 그 여자는 회사 여사원의 친구. 당근! 소개해 달라고 부탁한다. 선뜻 소개팅에 응한 그 여자. 나는 즐거운 시대로 걸어간다.

백화점의 수입코너에서, 산과 바다가 있는 싱그러운 콘도에서, 맛있는 음식이 줄을 잇는 고급 레스토랑에서…그녀와 즐기는 데이트는 상쾌하고 발랄하다. 월급이 바닥나고, 카드 한도가 차고, 돌려막기를 하고, 그것마저 여의치 않아 회사 공금까지 횡령하지만, 그녀와 만남은 늘 즐겁고 쾌락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가 내게 말한다. “오빠! 나 결혼하는데...이제 그만...그동안 즐거웠어...”

그녀는 결혼했고 나는 횡령혐의로 교도소로 간다. 출소 이후 대리운전기사가 됐다. 작가는 이런 여자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던 걸까. 한 클럽에서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 달라는 콜이 오고 나는 달려간다. 그런데 이런 우연이! 술이 떡이 돼 뒷자리에 꼬꾸라져 있는 년! 그년이다!

어떻게 해줄까. 차를 몰고 가면서 예전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년아! 잘 살았니? 어떻게 해줄까. 일산 쪽으로 차를 몰다 중간에 차를 세운다. 그리고 뒷자리에 널브러져 있는 그녀! 나는 그녀의 스타킹과 팬티를 벗기고... 횡령까지 하면서 돈을 바쳤지만 한 번도 그녀와 섹스를 하지 않았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때마다 그녀는 “우리 집이 보수적이고 고지식해서...”라는 핑계를 댔다.

어떻게 해줄까. 이년아! 차에 시동을 걸고 강물에 처박아 줄까. 아니면 같이 동반 자살을 할까. 온갖 생각이 차오르지만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 새벽이 오고,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대로 그녀의 집 언저리에 까지 도착한다. <별>은 올려다봐야 보이는 것일까.

주변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 왜 죽어 가는지, 인생이란 태어나 죽는 것이라는 상식적 명제가 있지만, 그런 것들과 관계없이 <더블>에는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의 이야기가 많다.

노인들의 요양원 이야기를 담은 <낮잠>, 한강 아치위에 올라가 자살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경찰 이야기를 담은 <아치>도 그렇다.

상상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sideA를, 현실계와 상징계를 좋아하는 취미라면 sideB가 더 마음에 들 것 같다. 앨범까지 내놓은 박민규 작가가 마이크를 들고 ‘전인권’ 스타일로 노래까지 부르겠다고 하면 어쩌나? 그의 노래를 들어줘야 되나? 그건 그때가서 결정해도 될 일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어제 우리 어머니가 분노하셨다. 퇴근해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TV를 보고 계시던 어머니가 안방에서 갑자기 나오셨다. 그러더니 “세상에! 세상에!”를 연달아 내놓으신다. 우리 어머니는 자주 분노하신다. TV에 나오는 세상 소식에 특히 분노의 진동파이 크다.

가락시장에서 폐식자재가 고스란히 다시 유통되고 있다는 소식이 방송을 통해 보도됐다. 폐기처분해야 할 음식물 쓰레기와 유통기한이 지난 식자재가 대형 음식점과 대중식당에 팔려나가고 있다는 뉴스.

당근! 어머니는 분노하셨다. “세상에! 세상에!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바깥에서 뭐 하나 사 먹을 수나 있겠나?” 어머니의 분노는 고스란히 내 시선 안으로 들어왔다. 직장 생활하다보니 당연히 바깥에서 음식을 사 먹는 사람은 나뿐이었으니.

‘추한’ 것으로 치자면 인간만큼 더 ‘추한’ 생명체도 없을 것이다. 어둑어둑한 숲길을 혼자 걷고 있을 때 가장 무서운 존재는 호랑이도 아니며 그렇다고 사자, 곰도 아니고…저 멀리 뚜벅뚜벅 그림자만 보이며 다가오는 인간의 발자국 소리라고 하지 않았든가.

먹이사슬의 영역에서도 인간은 무척이나 이기적 생명체이다. 최후 포식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편의를 위해 다른 생명체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쯤은 대수롭지도 않게 여긴다. 여기에 더해 인간을 포악스럽고 ‘추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있다. 다른 생명체에게는 전혀 없는 그 무엇이 인간을 추하게 만든다. ‘돈’이다.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추한 일과 악한 행동…모든 추악한 것에 그 원인을 파고들어가 보면 궁극적으로 ‘돈’에 맞닿는다. 최후 포식자인 인간을 옴짝달싹 못하게 옥죄여 오는 것이 바로 ‘돈’이다. ‘돈’으로 아름다움을 사고, ‘돈’으로 명예를 구입하고, ‘돈’으로 사랑까지 살 수 있다니…무서운 세상 아닌가.

여기 ‘못생긴’ 여자와 ‘그저 그런’ 한 남자가 있다. 세상 사람들은 ‘못생긴 여자’를 두고 ‘추녀’라고 말한다. ‘추녀’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공포이다.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생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추녀’.

그 ‘추녀’를 사랑하게 되는 남자가 있다. 바로 나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백화점 주차 아르바이트를 통해 만나게 되는 ‘나와 추녀’의 이야기를 장편에 담았다. 뻔 한 주제를 이렇게 많은 글자 속에 녹여낼 수 있는 박민규의 글쓰기에 감탄했다. ‘나와 추녀’ 사이에서 매개체 역할을 하는 요한의 인물 또한 입체적으로 그려놓았다.

‘못 생긴’ 추녀와 ‘그저 그런’ 나, 그리고 ‘자유롭게 삶을 사는’ 요한의 젊은 시절. 지하 주차장에서 주차하는 청춘들이지만 ‘그들만의 공간’이 있어 행복하다. 그들을 자연스럽게 묶이게 하는 것은 틀린 영어 단어가 가득한 맥주 집.

허름한 맥주 집에 자주 드나드는 그들에게 입구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Bear’와 ‘Hope’는 틀린 영어로 다가오지 않는다. ‘Bear’와 ‘Hope’는 분명 영어 단어에 있다. ‘Beer’와 ‘Hop’가 어울리지 않는 그곳에서 그들은 큰 곰을 이야기하고 희망에 대한 토론도 이어간다.

그러나 ‘추녀’의 자격지심은 어쩔 수 없었다. ‘나’의 관심 자체가 ‘추녀’에게는 동정심으로 다가오고 끝내 ‘추녀’는 ‘나’를 떠난다. ‘나’는 ‘추녀’를 찾기 위해 그녀의 주소록을 입수하고…떠난 추녀는 어디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다행히 그녀는 포장지 회사의 경리사원으로 입사해 잘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추녀’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장이 왜 날 채용했는지 알았어요. 전에 근무하던 경리사원은 얼굴이 아주 예뻤대요. 그 사원은 회사 공금을 가지고 한 남자와 도망치고 말았죠. 사장이 어느 날, 전화 통화하는 것을 들었어요. 사장은 ‘못 생긴 애들도 다 제 몫을 한다니까. 누가 건드리겠어? 누가 쳐다나 보겠어? 경리사원은 아주 못생긴 애로 뽑아야 해!’”

‘추녀’에게 이 세상의 모든 눈빛과 모든 말들은 고스란히 상처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말에 그녀는 놀랄 수밖에 없고, “왜 나를 사랑하시죠? 동정인가요?”라는 말만이 그녀의 머릿속에 감돌뿐이다. 그 깊은 상처를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그녀는 철저히 자신만의 세상에 존재하고 다른 사람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생존 방법이다.




그렇게 그녀는 한국을 버리고 독일로 떠난다. 뒤늦게 작가로 성공한 ‘나’는 독일에 가는 길에 그녀를 만난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눈(雪)으로 시작해 눈(雪)으로 끝난다. 그녀를 안았을 때도 눈이 왔고 독일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도 눈이 왔다.

박민규의 소설은 이제 완전히 상징계로 넘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통속 문학인가 본격 문학인가에 대한 논의는 비평가들의 몫으로 남겨두자. 이상문학상까지 수상했으니 본격 문학이라고 평해도 되지 않을까.

통속과 본격을 두고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부분이다.

“통속과 본격 문학을 두고 나는 구분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나름대로의 영역에서 나름대로의 독자를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입니다. 나도 통속소설이든, 만화든, 본격 문학이든 구분을 두지 않고 읽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통속 문학에 속하면서도 자신은 본격 문학을 하고 있다고 나대는, 잘난 체 하는 작가들입니다.”

문학 평론가 가와타니 고진의 말이다.

박민규는 분명 최근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옮아 왔다고 생각한다.

그는 <카스테라>를 통해 냉장고로 들어갔고, <대왕오징어>를 통해 바다속 깊은 심연을 휘젓고 다녔으며,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켰어요>에서는 아예 화성까지 갔다 오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의 상상력은 그가 쓰고 있는 큰 안경만큼이나 다양하고 컸다. 온갖 상상의 세계에서 외로움을 느꼈던 것일까.

2010년 이상문학수상작인 <아침의 문>을 통해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진다. 동반 자살을 결심한 나는 실패로 돌아가 눈을 뜰 수밖에 없었고, 저 건너편 옥상에서 아이를 낳고 있는 미혼모와 눈이 마주친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위에서 따뜻한 온기를 품은 아이가 태어났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 <아침의 문>은 현실에 바탕을 둔 상징계의 소설적 목적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물론 소설 자체가 현실에 기반을 둘 수밖에 없다. 왜 작가가 우주에서 어느 순간 뿅!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 작가도 ‘응애응애’ 울음을 울고, 젖을 먹거나 분유를 먹었으며,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등 교육을 받았고, 작가도 술을 마시고, 뉴스를 보며 분노하고, 변비에 걸리지 않았다면 ‘응가’를 하기 때문이다.

현실에 살고 있는 작가의 상상력이란 게 그래서 터무니없는 상상일 수는 없다.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조금씩 발을 옮긴 박민규는 이제 자신의 현실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2011년 봄호 <창작과 비평>에서 박민규는 이른바 ‘386세대’에게 이런 말을 전한다.

“이른바 ‘386 세대’는 각오만 있었지 각성은 없었다.”

1968년생인 자신 스스로 ‘386세대’이기 때문에 이 말은 자신에게 던진 비판적 목소리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각오만 있었지 각성이 없었던 386’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으로 인해 현실은 또 어떻게 됐을까. 앞으로 나올 박민규 소설이 중심적으로 다룰 주제가 아닌가 싶다. 박민규의 각성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각오(覺悟)

-품사 : 명사

-앞으로 해야 할 일이나 겪을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

-(예문)비장한 각오

*각성[覺醒]

-품사 : 명사

-깨어 정신을 차림.

-(예문)어려움을 헤쳐 나가려는 지혜와 현실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