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12.28 금융자본에 무너지고 있는 대한민국
  2. 2009.01.10 헬로! 오바마(3)-작은 공동체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 교수의 지적입니다.
아래 글은 돌베개에서 나온 <자본주의와 그 적들>에 있는 내용입니다.
데이비드 하비 교수는 뉴욕 시립대학교 대학원의 인류학교 교수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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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OPEC가 원유 가격을 대폭 인상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만 인근의 여러 나라는 막대한 오일달러를 쌓아놓게 되었습니다. 당시 오일달러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가 세계적인 관심사였습니다. 미국 정부는 오일달러를 뉴욕으로 끌어오려고 노심초사하며 온갖 노력을 했지요.

뉴욕의 투자은행을 매개로 전 세계로 순환시켜야 달러화의 지배권이 유지될 거라는 계산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었을 겁니다. 중동 지역의 대국 사우디라아비아를 우선 설득했지요. 이 나라가 어떤 과정을 거쳐 미국에 설득되었는지는 아직 수수께끼입니다. 영국 정보기관의 정보보고에 따르면, 미국은 1973년 사우디아라비아를 침공할 준비까지 했답니다.

아마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으로부터 원유를 팔아서 벌어들인 오일달러를 뉴욕을 통해 전 세계에 유통시킬래, 아니면 한 번 호되게 당할래, 뭐 이런 식으로 협박을 받았을 겁니다. 어디까지나 제 짐작이지 정확한 것은 아니에요.

아무튼 뉴욕의 투자은행은 막대한 규모의 오일머니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어디에 투자하려고 했을까요? 1974~1975년에는 글로벌 경제의 상황이 썩 좋지 못했습니다.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지요. 시티은행의 CEO 월터 리스턴(Walter Wriston) 같은 이는 국가가 사라질 리는 없으므로, 가장 안전한 투자처라는 신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멕시코에서 폴란드 등의 정부에 오일달러를 투자했어요.

시티은행을 비롯한 뉴욕의 여러 투자은행은 특히 라틴아메리카 지역을 집중 공략했답니다. 아무래도 다루기가 만만했을 테니까요. 몇 년 동안 짭짤한 재미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1982년 볼커가 기준 금리를 큰 폭으로 인상하는 바람에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외채위기가 번지게 되었습니다. 예컨대 연리 5퍼센트로 오일달러를 빌렸던 멕시코의 경우 연리 16페센트나 17퍼센트로 상환해야 할 정도였어요. 외채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던 멕시코는 급기야 파산 일보 직전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이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지요.

IMF와 미국 재무성은 이렇게 권고했습니다. “우리가 너희 나라를 곤경에서 벗어나게 도와주겠다. 단, 민영화를 적극 추진하고 해외 투자자에게 시장을 개방하며 신자유주의 노선을 받아들여야 한다.”

멕시코는 처음에는 이 권고를 따르려고 하지 않았지만 1988년에 이르러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수용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하나 있습니다. 미국이 멕시코에 일방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요했다는 게 흔히 떠도는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단 사실입니다. 미국이 멕시코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라고 압력을 가하자 멕시코의 엘리트층은 오히려 쌍수를 들고 환영했습니다.

“그거 잘됐다. 우리가 원하던 바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멕시코의 엘리트층과 미국 재무성, IMF 사이에는 동맹이 형성되었고 1980년대 말부터 신자유주의 정책이 멕시코에서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습니다. IMF나 미국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일방적이고 노골적으로 강요한 사례는 찾기 힘듭니다.

칠레의 예가 여실히 보여주듯이 개도국의 엘리트층은 거의 언제나 미국과 동맹을 맺고 앞장서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나갔습니다. 이런 점에서 개도국의 엘리트층은 국제 금융기관 못지않게 자기 나라를 신자유주의의 길로 이끌어 망가뜨린 책임을 져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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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와 미국이 전 세계 나라에 압력을 행사한 것은 맞지만 궁극적으로 한 나라의 경제를 망가뜨린 책임은 그 나라의 ‘엘리트층’이라는 것이죠? 
대한민국의 엘리트층은 어디일까요? 물어 뭐하겠습니까? 이미 그 답은 나와 있지 않습니까. 억울한 것은 그 ‘엘리트층’이란 집단은 1%도 안되는데, 그 1%를 위해 99%의 민중들이 고통 받아야 한다는 거...30년 뒤로 후퇴해 버린 대한민국의 처참한 현실 앞에서 데이비드 하비 교수의 지적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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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Small Community! Obama

제 44대 미국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버락 오바마에 대해 적극 지지를 보낸 이들 중에는 유색인종들이 많았다고 해. 라틴계 어메리칸, 아시안 어메리칸, 흑인, 히피족 등등등…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그동안 억눌려 왔던, 혹은 차별받았던 그들의 역사가 흑인인 오바마로 향했던

것은 아닐까.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여러 가지 문화가 공존하는 다인종 다문화 사회지만 높은 곳에 있는 분들은 대부분 백인들이었지.
샌프란시스코 15번가에 위치한 유명한 커피숍, 이름은 잊어버렸구나. 카페모카를 시켰는데 은근한 맛이 일품이었어. 그곳에서 조이스 김을 만날 수 있었어. 30대 초반의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아시아 연예문화와 관련된 콘텐츠를 미국 아시안 어메리칸들에게 서비스하는 숨피닷컴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이었지. 얼마전까지만 해도 변호사였는데, 변호사를 일을 접고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이야기하더군. 그녀는 한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했어. 그녀의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기로 하자.
“LA(로스엔젤레스)의 한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리얼 프로그램이 하나 있어요. 몇 명의 남성들이 후보자로 나와서 가장 훌륭한 남편감에 도전하는 리얼(실제) 프로그램인데, 최근 한국계 남자가 최종 후보자로 뽑혔어요. 대단한 일이죠?”
그녀는 나에게 반문했어.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지. 그녀가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이른바 ‘왕따’가 아주 심했다고 하더군. 그녀의 다른 피부색과 어정쩡한 말투 모두 백인들에게는 훌륭한 놀림감이 됐다는 거야. 하지만 2008년 연말, 미국 방송국에서까지 한국계 미국인이 최종 선택을 받을 만큼 미국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고 그녀는 강조했어. 그녀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볼까.
“미국 전체 인구에서 아시안 어메리칸은 약 3%도 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 비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미국에서는 아시안 어메리칸들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고, 비중있는 일을 많이들 하고 있죠. 이것 또한 미국 변화의 한 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조이스 김은 아주 명랑한 여성이었어. 이야기하는 순간순간에도 웃음이 떠나지 않더군.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고, 혼자서 숨피닷컴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시안 어메리칸들이 미국 중심무대로의 진출이 곳곳에서 가시화되고 있어 상쾌하다는 반응이었어.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 수정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등 그동안 전세계를 휩쓸었던 하나의 이즘(~ism)이지. 나는 이러한 ‘~ism’속에서 최근 몇 년동안 우리사회의 가장 주 관심사는 금융이었다고 봐. 돈이라는 것이지. 찬찬히 최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고 충격을 줬던 사건들을 떠 올려보자. 모두가 그 배경과 계층들은 달랐지만 하나로 귀결되는데 그 원인은 ‘돈’이었어. 돈이 최고의 선(善)이 돼 버린 것이지. 땀흘리는 노동을 읽어버렸다고나 할까. 돈이 돈을 벌고, 돈이 돈을 부르고, 1개의 돈이 2개의 돈이 되고...금융 자본주의에서 땀 흘리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 시작된 거야.
누군가 그랬다고 하지. 아마 솔 알린스키라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알린스키는 그의 책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에서 자본주의에 존재하는 계층을 세부류로 나눴지. 하나는 가진자(haves), 가지지 못한자(have-nots), 조금 가졌지만 더 가지고 싶어하는 자(little have-more wants)가 있다는 거야.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 계층은 ‘조금 가졌지만 더 가지고 싶어하는 자’의 의식에 달렸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대단히 조심스럽게 변화에 반응한다는 것이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변화에 적응한다는 것이야. 나에게 이익이 되면 그것은 변화에 있어 선(善)이요,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그것은 변화에 있어 악(惡)이라는 것이지. 이런 사람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뜨뜻미지근한 소시민의 모습만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사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알린스키는 소통에 대해서도 한마디했어.
“다른 사람들과 소통은 당신이 그들에게 애써서 전달하려는 것을 그들이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일어난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만 사물을 이해한다. 이는 당신이 그들의 경험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통은 참 중요한 단어인 것 같아.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소통이 없으면 갈등과 배척만 있을 뿐이지. 알린스키의 말은 쉽지만 이 또한 얼마나 힘든 작업일까. ‘당신이 그들의 경험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소통이라면 정말 어려운 일일꺼야. 그러나 이러한 소통을 이룰 때 정말 우리는 살만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버락 오바마를 두고 노무현 전대통령과 비교하는 기사가 많이 나왔지. 물론 나도 관련 기사를 쓴 적이 있어. 시민들의 참여를 적극 이끌었고 참여의 정치철학을 통해 권력자가 됐다는 사실, 인권변호사 등 자라온 과정이 비슷하다는 것, 인터넷을 참여의 수단으로 적극 이용했다는 점 등 많은 부분이 비슷했어.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영국의 가디언지는 ‘인터넷 대통령, 로그온하다’는 기사를 내놓았고, 버락 오바마가 당선되자 미국의 주요언론들은 ‘인터넷 대통령, 오바마’라는 기사를 쏟아냈어. 루스벨트가 라디오대통령이었고 캐네디가 TV대통령이었다면 버락 오바마는 인터넷 대통령이라고들 불렀지.
인터넷 대통령, 노무현과 오바마...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어. 난 이렇게 평가하고 싶어. ‘변화를 위한 혼돈기’였다고. 혼돈이란 뒤섞여 뒤죽박죽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 그러나 혼란속에는  정돈을 향해 끝없이 나아가는 기운도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노무현 정부를 나는 그런 혼돈의 시기였다고 평가하고 싶어.
금융이 사회를 지배하고 뜨뜻미지근한 변화만이 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변화에 적응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전체 사회를 뒤집어 엎을 만큼 우리에게 동력이란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혁명이라는 말은 점점 수정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앞에서 퇴색돼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소공동체에 대한 꿈을 그리고 싶어.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형용준 사장, 아! 이 사람은 미니홈피로 지금은 많이 알려져 있는 싸이월드의 창업자였어.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더군. 그와 인터뷰 도중에 한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더군.
“샌프란시스코에는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많이 살아요. 재팬타운, 차이나타운 등이 있지요. 이들은 매년 정기적으로 축제를 벌여요. 그들의 독특한 문화를 미국인들에게 알리고 참여를 권유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문화를 미국인들에게 전달하는 거죠. 그런데 샌프란시스코에는 코리안타운이 없어요. 한국문화를 알릴 수 있는 축제도 없고...”
그들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그들만의 공간이라고 해서 폐쇄적이거나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문화와 공간으로 다른 이들을 끌어들이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문화의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 그들의 공간을 존중하고 우리의 공간을 공유하는 것, 이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봐. 이념과 사상이 다르더라도 소공동체는 존재할 수 있다고 봐.
오바마에 기대를 걸고 있는 미국인들도 이런 소공동체를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히피족의 문화, 인디언의 문화, 아시안의 문화, 흑인들의 문화, 백인들의 문화…너무나 다양하고 천차만별인 그런 문화를 인정하고 그들만의 문화가 공유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지. 백인의 문화와 흑인의 문화가 공유되고 흑인의 문화가 아시안 문화와 공유되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게 자극제가 될 수 있는 변화 말이야. 그것을 두고 혁명을 위한 진화라고 표현하면 좀 서투른 말일까.
아직 미국은 그런 소공동체 문화가 뿌리 내리지는 못한 듯 했어. 미국을 취재하면서 취재원들은 거의 모두 백인들이었는데, 취재와 관계없이 나와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은 유색인종들이었어. 샌프란시스코의 주요 도시를 관통하는 칼트레인(CalTrain)의 차표를 검사하는 사람들은 거의 흑인이었고 택시 운전사는 대부분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출신들이었지. 호텔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하우스키퍼 역시 인도사람이었고 슈퍼마켓의 점원은 대부분 흑인들이 차지하고 있었지.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왜 그런 직업군에는 백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까...소공동체가 서로 공유되면서 서로 존중되는 모습은 아니었어.
며칠간의 미국 취재를 마치고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다시 싱가폴항공에 올라 한국으로 돌아왔어. 비행기가 미국 땅을 이륙하는 순간, 처음 도착해 몽고메리역에서 만난 홈리스들의 외침이 들리더군.
“Hey! Give me a money!"
그들은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를 꺼야. 어쩌면 지금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어. 한국으로 솟아오르는 비행기안에서 이런 말을 하고 싶더군.
“Hello! Obama, You focus on grassroots. You are looking around your grassroots continuosly. Pay attention to grassroost' yell…"
풀뿌리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어. 비행기는 샌프란시스코 땅을 뒤로 하고 태평양을 향해 날아올랐지.
-끝(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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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