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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02 어른을 위한 동화가 필요한 이유∣정호승의 <모닥불>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앉아서/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젊은 시절, 누구나 한번 쯤 불렀을 노래 <모닥불>이다. 모닥불을 피워놓고 서로 마주 앉아 어떤 이야기를 하든 고요하고 편안하지 않을까. 그렇게 따뜻한 온기가 있어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펼쳐지고, 마침내 불이 꺼지고 재만 남아있는 모습을 본다. 모닥불이 꺼지는 순간까지 무에 그리 할 말들이 많은 지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있다.

지금, 우리는 ‘어른들에게 동화가 필요한 시기’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이 우리가 맘먹은 대로 가고 있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세상이 험악해지고 피곤해지고, 어딘지 모르게 날선 칼날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정호승의 <모닥불>은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동화라면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읽는 장르이지 않을까. 그런데 어른들에게 이런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하니 작가도 스스로 어른들이 너무 메말라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뗏목에서 모닥불로, 온 몸으로 희생한 나무

정호승의 <모닥불>은 작은 강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나’는 나무로 태어났지만 한 사람에 의해 뗏목으로 만들어졌다. 얕은 강에 큰 배는 필요 없고 자그마한 뗏목이면 충분했다. 뗏목으로 만들어진 ‘나’는 많은 사람들을 이쪽 강가에서 건너편으로 실어 나른다.

어느 날은,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설레는 마음을 가득 담은 총각을 실어 나르고, 또 어떤 날은 나이가 지긋한 촌로를 싣고 강물을 건넌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한 ‘소녀’이다. 이 소녀는 자신을 뗏목으로 만든 남자의 딸이다.

소녀는 늘 뗏목을 타고 학교로 가고, 간혹 학교에 가지 못하는 날이면 ‘나’는 소녀가 어디 아픈지 걱정이 태산이다. 그렇게 소녀는 자랐고, 먼 곳으로 시집을 갔다. 시집을 간 소녀는 이제 뗏목을 거의 타지 못하고 ‘나’는 소녀를 기다리기만 한다.

겨울이 오고 첫 눈이 내리고, 한 사람이 ‘나’를 짊어지고 언덕 위로 올려 버린다. 겨울에 뗏목을 탈 사람이 없어진 것이다. ‘나’는 강에서 벗어나 언덕에 처박혀 있는 신세로 전락한다. 날씨가 추워지고 꽁꽁 언 강물 위에서 사람들은 얼음을 깨고 낚시를 한다. 너무 추운 나머지 언덕에 있는 ‘나’를 하나씩 하나씩 해체해 모닥불을 피운다.

‘나’는 이제 뗏목의 역할을 마치고 언 손을 녹여지는 모닥불이 돼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선물한다.

<모닥불>은 나무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람에 의해 잘려져 뗏목이 됐다가 쓸모가 없어지자 모닥불로 피워지고 서서히 사라져 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모닥불>에는 이 외에도 작은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다.

못 박힌 예수에 또 못질 하는 어른

그 중 <작은 예수>도 눈길을 끈다.

한 소녀가 있었다. 이 소녀는 성당을 다닌다. 그러나 소녀의 엄마는 소녀가 성당에 다니는 것을 극도로 반대한다. 소녀는 이런 고민을 신부에게 털어놓고 신부는 작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작은 예수’를 선물한다.

책상 위에 놓아두었지만 소녀의 엄마에 의해 ‘작은 예수’는 내팽개쳐 지고 그때의 충격으로 세 개의 못 중 두 개가 떨어져 나가 버린다. 소녀는 ‘작은 예수’를 잘 포장해 책상 서랍 깊은 곳에 보관한다.

세월은 지나고 소녀는 결혼을 한다. 남편과 함께 성당에 다니는 행복을 만끽한다. 소녀는 ‘작은 예수’를 기억해 내고 다시 포장을 뜯고 책상 서랍 위에 놓는다. 그때서야 결혼한 그녀는 예수를 못 박고 있던 작은 못 두 개가 떨어져 나가 있는 것을 발견 한다. 너덜너덜해진 그 모습을 보고 철물점으로 달려가 작은 못 두 개를 가지고 다시 못 박으려 한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온 그녀의 아이가 그 모습을 보고 그녀에게 말한다.

“엄마, 예수님 또 아프게 못은 왜 박아요? 그냥 두지....”

아이의 말에 그녀는 할 말을 잃는다. 그녀의 눈에서 작은 눈물방울이 맺힌다. 어른들에게는 ‘작은 예수’가 형상, 혹은 눈에 보이는 조각품에 불과했지만 아이의 눈엔 못 박힌 예수에 다시 못질을 하는 어른이 이해되지 않는 모습을 담았다.

아이의 마음, 아이의 눈길, 아이의 눈망울...어른들에게 동화가 필요한 이유가 될 듯싶다.

지구와 달이 사랑하는 시간, 월식

월식은 과학적으로 해석하자면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지구의 그림자는 태양방향의 반대방향으로 생기므로 월식은 보름(즉 달이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정반대쪽에 있을 때)일 때만 일어날 수 있다.

정호승 작가는 이 현상을 문학적으로 풀어 놓았다. 월식의 의미와 그리고 달이 가장 크게 뜨는 보름에 생긴다는 과학적 사실을 ‘사랑’이란 의미로 해석했다.

인류가 지구에 살기 전, 우주는 대혼란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지구와 달도 아직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시간. 지구와 달은 서로를 사랑했다. 쪼르르 순서대로 하느님을 찾아가 “우리는 서로 사랑해요. 하나가 되게 해 주세요? 네!”라고 조른다.

하느님은 매일매일 귀찮게 시리 찾아오는 지구와 달이 성가셨다. 하느님은 마지막으로 지구와 달에게 물었다.

“싸우지 않고 평생 서로를 아끼며 사랑할 수 있겠느뇨?”

지구와 달은 주저 없이 머리를 조아렸다. 그렇게 우주가 대혼란 기였을 때 지구와 달은 하나가 됐다. 그러나 지구와 달은 이내 서로를 아끼겠다는 다짐을 잊어버리고 “우리가 아름다운 것은 다 내 때문”이라고 우긴다. 지구는 “내가 아름답기 때문에 우리가 아름다운 거야”라고, 달은 “나 때문에 우리가 아름다운 거야.”라고 서로 다툰다.

지구와 달의 싸움질에 다른 별들이 귀를 닫아야 했고 이 시끄러운 소리는 하느님에게 까지 들렸다. 하느님은 더 이상 지구와 달의 싸움 소리가 듣기 싫어 이들을 둘로 나누고 영원히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한 것은 물론, 일정 정도 거리를 두고 서로를 쳐다보게만 해 버렸다.

지구와 달은 그렇게 서로를 빙빙 돌며 그리워 하지만 만나지 못하고, 기다리지만 안지 못하는 비극적 운명을 맞이했다. 지구와 달은 그때서야 자신들의 잘못을 깨달았지만 하느님의 용서를 구하지는 못했다. 둘이 너무나 그리워하고, 반성하는 것을 본 하느님은 이들이 일정 주기마다 한 번씩 하나가 되는 것을 허락했다.

그것은 태양이 지구에 빛을 강하게 비추고, 그 그림자로 반대편의 달이 가려졌을 때, 아무도 보지 못하는 그 순간에 하나가 되게 해 준 것이다. 달이 지구의 그림자로 들어갈 때 달은 살며시 지구로 와 하나가 된다. 월식에 이들은 아무도 모르게 하나가 돼 서로의 사랑을 나눈다.

고통 없이는 사랑은 없다, 사랑 뒤엔 고통이 있다

<종메>는 종과 종을 치는 나무에 대한 이야기이다. 매년 12월31일 자정이 되면 서울 보신각에서는 종이 울린다. 그 종소리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른 한 해를 맞이한다. 미어터질 듯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시간이다.

정호승 작가는 이 시선을 종과 종을 치는 나무(종메)로 옮겼다. 종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연말연시의 들뜬 분위기를 더욱 고취시키겠지만 정작 종과 종메는 너무 아프다는 것이다.

종메는 종을 칠 때 그 아픔이 나무 뼛속까지 스며드는 떨림과 고통이라고 말했다. 종도 종메가 자신을 들이 박을 때 그 아픔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노라고 종메에게 말한다. 종과 종메는 서로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 고통을 두고 종과 종메가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종메야, 너만 아픈 게 아니야. 나도 아파. 넌 왜 너의 아픔만 생각하니?”

“너도 아프다고?”

“그래, 나도 아파. 네 몸이 내게 부딪힐 때마다 나도 온몸이 부서지는 고통을 느껴. 아파도 참는 거야. 우리가 참지 않으면 아름다운 종소리를 낼 수가 없어. 우린 서로 함께 아픔으로써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는 거야. 어떻게 고통 없이 아름다워질 수 있겠니.”

“미안하다. 나의 아픔이 곧 너의 아픔이구나. 우리가 서로 한 몸인 줄 잘 몰랐구나.”

“괜찮아. 실은 나도 너 때문에 내가 아프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 서로 한 몸인 줄을 모르고 널 원망한 거지. 그런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다들 종이 되려고만 해. 다들 종이 된다면 이 세상에 종소리는 존재할 수 없는데도 말이야.”

종과 종메의 이야기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어른들에게 고통과 사랑의 의미가 아직 남아 있을까. “네가 고통스러운 만큼 나도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어른들이 있을까. 아니지 않을까. “네 고통은 나의 즐거움” “내가 즐겁기 위해 너는 고통스러워야 해”라고 생각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즐겁고, 내가 잘되기 위해 ‘너’는 어떤 고통을 당하든 어떤 어려움을 당하든 관심 없는 시대, 어른들에게 동화가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어른들이 다시 동화를 읽고 그곳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대, 그런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상이 빛의 속도로 빠르게 흘러가는 만큼 우리 가슴에 동화 같은 잔잔한 이야기와 경험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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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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