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5.16 구멍으로 바라본 세상∣설흔의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종종 걸음을 치는 여자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흐느적흐느적 걷는 남자
책가방을 둘러메고 신호등을 건너는 남자 아이
붐비는 지하철 속으로 사람을 쑤셔 넣는 역무원
내 앞에서 ‘하아 하아’ 가쁜 숨을 몰아쉬는 20대 젊은 여자
빈 틈 없는 사이를 꿰뚫고 선반에 있는 무가지를 집어 드는 할아버지
앞 사람 무릎을 툭툭 치며 DMB를 보며 혼자 실실 웃는, 앉아 있는 30대 남자
무가지란 무가지는 모두 챙겨 지하로 빠져드는 50대 남자
초록불이 들어오면 쏜살같이 튀어 나가는 10대 아이
도시에는 온갖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이런 글을 썼다고 하자. 도시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하자. 이 글에 대해 조선의 현명한 군주 중의 한 명이었던 정조는 어떤 평가를 할까. 정조에게 위와 같은 글을 ‘패관소품(稗官小品)’에 불과한 글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도시에 사람이 많다라고 한 줄만 쓰면 되는 것을”이라고 평했을 것이다.

패관소품이란 말 그대로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를 말한다. 패관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①옛날 임금이 민간(民間)의 풍속(風俗)이나 정사(政事)를 살피기 위(爲)해 가설항담을 모아 기록(記錄)시키던 벼슬아치 ②이야기를 짓는 사람을 말한다. ‘稗’는 벼에서 자라는 ‘피’를 말한다. 일종의 기생충이다.

소품은 말 그대로 ‘소설’이다.

구멍을 통해 바라본 관찰자의 시선, 이옥

설흔의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라는 책은 조선후기 문인이었던 이옥과 김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여기서 우선 검색의 도움을 받아보자.

이옥(李鈺)

1760(영조 36)~1812(순조 12).

조선 후기의 문인.

문체반정(文體反正)에 걸려 억압받고 불우하게 지냈다. 그러나 이단적인 문학을 적극적으로 밀고 나가 한문단편에서는 박지원과 맞먹는 경지에 이르고, 민요시 개척에서는 정약용과 함께 가장 앞선 성과를 보여주어 한문학 혁신의 2가지 방향을 주도했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기상(其相), 호는 문무자(文無子)·매사(梅史)·매암(梅庵)·경금자(絅錦子)·화석자.

김려(金鑢)

1766(영조 42)~1822(순조 22).

조선 후기의 문인.

악부시의 대가였으며, 전이라고 빙자한 단편소설을 지어 불우한 인물의 행적을 서술하기도 하였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사정(士精), 호는 담정(潭庭). 노론계 명문인 재칠(載七)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강이천(姜彝天)의 비어사건(飛語事件)에 연좌되어 부령으로 유배당했고, 1801년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진해로 유배가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만년에 아들의 노력으로 유배에서 풀려나 함양군수로 있다가 56세에 세상을 떠났다. 젊은 시절에 이옥(李鈺)·이안중(李安中) 등 진보적인 학자들과 사귀었으며, 소품체(小品體) 문장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혔다. 10여 년 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이를 시로 표현했다

검색에 나타난 이옥과 김려를 보면 ‘패관소품’이란 글을 사랑한 나머지, 정조의 눈에 가시처럼 밟혀 제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한 이들이다. 설흔의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에는 이러한 정황에 그대로 나타난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라는 책은 이옥과 김려의 우정과 그들의 문학에 대한 집착, 사랑을 담고 있다. 철저한 관찰자의 입장과 세밀한 묘사가 이들 둘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이다. ‘구멍을 통해 바라본 세상’에 대한 이옥의 관찰자 입장을 강조한다.

모름지기 소설은 ‘묘사의 맛’이라고 한다. 눈에 보이는 듯,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묘사하는 것이 소설의 기본이다. 이런 ‘묘사’는 내가 직접 경험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사물에 대한 세밀한 관찰에서 나온다.

1799년 이옥이 지은 <시기(市記)>라는 글을 인용해 본다.

소와 강아지를 몰고 오는 자, 두 마리 소를 끌고 오는 자, 닭을 안고 오는 자, 문어를 끌고 오는 자, 돼지의 네 다리를 묶어서 메고 오는 자, 청어를 묶어서 오는 자, 청어를 엮어서 늘어뜨려 가져오는 자, 북어를 안고 오는 자, 대구를 가져오는 자, 북어를 안고 대구나 혹 문어를 가지고 오는 자, 담배풀을 끼고 오는 자, 땔나무와 섶을 메고 오는 자, 누룩을 짊어지거나 혹 이고 오는 자, 쌀 주머니를 메고 오는 자, 곶감을 끼고 오는 자, 한 권의 종이를 끼고 오는 자, 접은 종이를 손에 들고 오는 자, 짚신을 늘어뜨려 들고 오는 자, 대광주리에 순무를 담아 오는 자, 새끼로 꼰 신발을 들고 오는 자, 큰 베를 끌고 오는 자, 목면포를 묶어서 휘두르며 오는 자, 자기를 끌어안고 오는 자, 분과 시루를 짊어지고 오는 자, 자리를 겨드랑이에 끼고 오는 자, 나무로 돼지고기를 꿰어 가지고 오는 자, 오른손으로 엿과 떡을 움켜쥐고 먹는 아이를 업고 오는 자....

자신의 집 문간방에서 구멍으로 바라본 시장 사람들에 대한 이옥의 묘사가 담겨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똑같은 인물은 하나도 없다. 지독한 관찰력과 세밀하면서도 세심한 묘사가 드러난다. 이 글을 만약 정조가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옥의 절친한 친구인 김려는 정조가 이옥의 <시기>를 읽었다면 다음과 같이 반응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임금이 읽었으면 분기탱천했을 발칙한 글이었다. 임금이 그토록 싫어했던 소설 문체가 제대로 발휘된 글이었다. 임금은 벌컥 화를 내며 종이를 집어 던지고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시장에 사람이 많다고 한 줄만 쓰면 그만인 것을. 쓸데없는 묘사에 그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다니, 글도 형편없지만 종이와 먹과 붓이 참으로 아깝구나.”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서두에 적은 ‘남자, 아이, 여자’ 등등에서도 “도시에 사람이 참 많다”라고 적으면 될 것을, 종이와 붓이 아깝다라는 정조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다. 이처럼 정조는 이옥에게 ‘패관소품’체의 문체를 고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이옥은 따르지 않았고 정조는 끝내 이옥을 내팽개쳐 버린다.

정조에게 ‘구멍을 통해 바라보는 시선’은 소인배나 하는 짓거리로 치부됐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예전부터 사람들에게 가장 감명 깊고 피부 깊숙이 파고들었던 문학의 제일은 ‘패관소품’이었던 것을. 중세시대 민중들의 글 읽기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먹고 살기 빠듯했고, 자유가 아닌 누군가에게 속박돼 있는 삶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속에도 문학과 이야기는 있었다. 저녁에 두른 두른 둘러앉아 소설 같은 이야기를 들으며 이 시대를 살고 위안을 받고, 눈물을 흘렸다.

권력자의 신임보다는 시대의 아픔과 고통을 나누었던 두 남자

이옥은 자신의 ‘패관소품’에 대한 집착 때문에 벗인 김려가 고초를 당했다고 자책한다. 김려는 위의 약력에서 보듯 ‘패관소품’의 빌미로 부령과 진해로 유배생활을 한다. 벗이 고통에 처하자 이옥은 김려 몰래 유배지인 부령과 진해로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김려의 글을 모은다.

후에 이옥이 죽고 그의 아들 우태에 의해 이런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이옥과 김려의 글은 조선후기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글들로 가득 차 있다. 이옥은 김려의 글 중에서 <방주의 노래>를 가장 좋아했던 것으로 보인다.

파총은 귀 기울려 이 말을 듣고
고개 들고 껄껄껄 웃어 보였네.
귀한 자는 조상 덕을 물려받고
천한 사람 복을 못 타 가난하지만
공평하고 변함없는 세상 이치야
모든 사람 한결같이 살아가는 것
하건만 공연히 등급을 갈라
이 세상은 지옥처럼 되었소그려.
불행히도 주인님은 백정이 되어
저자에서 짐승 고기 각을 뜨지만
착한 분은 제 위치에 만족해하고
소인들은 요행수로 빠져나가지요.
어찌 알리까 지금의 푸줏간 일이
벼슬 사는 우리보다 저 좋을는지.
이 늙은이 천성이 고지식하여
시속에 휩쓸릴까 저어한다오.
저 싫으면 이웃 간 원수로 되고
마음 맞으면 딴 나라 사이도 혼사하오니
우리들 사이좋은 사돈 맺자면
말 몇 마디 약속하면 그만이지요.
가난한가 부유한가 물을 것 없고
양반이다 상민이다 따질 것 없소.
잘되는가 못되는가 앞날의 일은
저희들의 팔자에 매인 것이지
백 가지 중 사람 하나 똑똑하다면
그 나머지 탁할 일 무엇 있겠소.

김려가 진해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에 겪었던 일을 적은 글이다. 내용인즉슨 백정의 딸이 군관의 아들과 결혼을 한다는 이야기이다. 양반과 상민의 구분이 엄격했던 조선시대에 하물며 백정의 딸과 군관의 아들이 결혼한다는 내용 자체가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이옥이나 김려는 정조의 신임을 버리는 대신, 사람이 사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조선의 백성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담았다. 이들이 있어 조선시대의 정확한 실상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자신들의 글을 통해 시대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그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이다.

그들에게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라는 말은 그래서 한낱 빈말처럼 들리지 않는다. 멋진 곳에 그들이 있었고, 멋지기 때문에 글을 쓰고, 멋진 곳에 놀러가고, 멋진 글을 통해 서로 교우했던 ‘멋진 친구’들이었다.

성석제 작가는 이 책의 서평을 통해 “김려가 있어서 이옥 또한 자신의 문학 세계를 더 그윽하고 높은 경지로 만들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아름다운 친교 또한 이옥의 작품처럼 우리 문학에 내려진 축복이다.”라고 썼다.

김려가 없었다면 이옥의 글을 담은 <담정총서>는 물론, 이옥의 글이 후대로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김려가 없었다면 그의 ‘멋진 글’이 사라졌을 것이다. 친구가 있어 아름답고, 친구가 있어 그의 글이 그윽한 향기로 감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