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떨어진다

꽃들도 잠이 든다

단풍 나무 넘어로 해가 떨어지고

하얀 철쭉은 그 빛이 분홍으로 변했다

하루의 끝을 향해 가는 지금

매발톱은 석양을 받아

보라와 흰빛을

내뿜는다

해떨어진다

꽃들도 잠이 든다

5월 또 하루가 지나는 지금

정원의 저녁이 하루의 순간 순간을

담고 있다

5월 또 하루가 시작되는 날

정원은 다시 숨을 쉬고

하루 하루의 순간을

추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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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바위틈에 핀 봄꽃

지난 봄에도 

이 봄에도 늘 거기 서 있다

거친 바람 피하고

세찬 비 가랑비로 적시며

바위에 감사한 마음 가진다

혼자인 바위 외롭다

거친 얼굴

투박한 시선

지나가는 사람들 눈길 벗어나기 일쑤다

혼자핀 봄꽃 차갑다

만들어진 얼굴

곱기만 한 얼굴

지나가는 사람들 눈길 오래 머물지 못한다

바위틈에 핀 봄꽃이라야

꽃이 있는 곳에 바위가 있어야

바위 있는 곳에 살며시 피어 있어야

제 맛이고 제 멋이다

지나가는 사람들 눈길 머물고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오래 들리고

거친 바람도 조용이 머물다 지나간다

바위 곁에

바위 속에

핀 봄꽃이라야

이 봄을 알리는 참다운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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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매발톱을 보면 그때가 기억난다  

매발톱 꽃을 볼 때마다 그곳이 생각난다. 서울 생활을 접고 청주의 한 폐교로 떠난 이들. 그들은 아이가 둘 있는 부부였다. 부부는 그곳에서 폐교를 1년 임대해 체험학습장으로 만들었다. 부부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이들. 그러나 현실은 녹녹치 않았다.

 

산골 깊숙이 자리 잡은 그곳에 아이들은 자주 찾아오지 않았고 부부는 힘겨운 날들을 보냈다. 부부와 인연이 있던 아내와 함께 몇 년 전에 그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때는 5월 중순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들어서는 입구-예전에는 아이들이 뛰놀았을 운동장이었던-에 온갖 야생화가 피어있었다. 그 중 매발톱 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던 곳. 눈길을 잡아끌었다.

 

그때 부부는 현실에 지쳐 있었다.

 

“매발톱의 꽃말이 ‘우둔’ ‘근심’이랍니다. ‘승리’를 뜻하기도 하죠. 매발톱을 볼 때마다 아직 우리는 너무 우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을 벗하며 사는 것이 현실에서는 우둔하고, 초라해 보이니까요. 하지만 실망하지는 않을 작정입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시작한 일도 아니니까. 이 매발톱을 볼 때마다 자연과 함께 있다는 행복이 밀려드니까요.”

 

부부는 그렇게 말했다. 몇 년 동안 그곳을 찾아보지 못했다. 부부는 아마도 올해도 매발톱꽃을 보면서 ‘다짐’하고 있을 것이다. ‘근심’이 아닌 ‘승리의 다짐’을…. 나에게 매발톱은 부부의 그때 말처럼 ‘봄이 되면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힘찬 기상을 느끼게 해 주는’ 존재이다.

 

 

꽃잔디의 고향은 초등학교였다

  지금은 꽃잔디가 우리 집 곳곳에 안착해 아름답게 피어있지만 사실, 이 꽃잔디의 역사를 말하면 조금은 민망하다. 몇 해 전, 봄볕이 따뜻하게 내리쬐던 날, 아마도 일요일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를 갔다. 처음에는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같이 뛰어놀 생각이었다. 그때 갑자기 나와 아내의 눈길에 빠르게 고정되는 물체가 있었다. 학교 담장 밑, 바위틈에 너무나 밝은 분홍빛을 내고 있던 존재. 꽃잔디였다.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주기라도 하듯, 꽃잔디는 단단히 한곳으로 뭉쳐 힘센 응집력을 보여 주었다. 아내와 나는 순간, 주위를 살폈고 그중 가장 응집력이 강한 꽃잔디 중에서 한 움큼을 캐냈다.―여기서 솔직히 말하지만 정말 한 움큼이었다.

 

자신의 친구들이 떠나가는 것이 아쉬운 듯, 뿌리 째 연결돼 있던 꽃잔디는 쉽게 움큼을 내주지 않았다. 어렵게 손아귀에 쥐어질 만큼 꽃잔디를 옮겨와 심은 것이 5년 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꽃잔디가 지금은 우리 집 곳곳에, 강한 응집력을 보이면서 자라고 있다.

 

“너희들의 고향은 바로 우리 아이들이 다녔던 초등학교란다.”

 

가끔씩 그들에게 가만히 속삭여 준다. 꽃잔디의 아름다움은 역시나 바위틈에 있다. 그곳에서 바위와 어우러질 때 아름다운 자태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금낭화의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금낭화는 무척 키가 큰 식물이다. 수많은 소리를 달고 태어난다. 그것도 분홍빛 소리이다. 혼자서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친구와 더불어 내는 습성이 있다. 어느 순간에는 벌새가 다녀가고, 또 어느 때는 나비가 같이 노래하고, 심지어 작은 새도 금낭화와 같이 봄날의 온갖 소리를 합창한다.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저녁노을이 질 때 고즈넉한 소리를 내면서 살랑살랑 고개를 흔든다. 그들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의 흐름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우리 집 금낭화는 작은 연못 근처에서 자라고 있다. 금낭화가 말을 한다면 이렇게 속삭이지 않을까.

 

“아침엔 이슬과 함께 노래합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빗줄기가 가만히 내 깃을 흘러가면서 맑은 소리가 나죠. 벌새라도 오는 날이면 긴장됩니다. 그가 내 몸을 빨아들이는 바람에 흥분까지 한답니다. 흥분되는 소리죠. 나비가 찾아오는 날은 간지러운 소리가 납니다. 친구들과 내는 소리도 좋지만 조용히 아침 햇살 받고, 저녁노을 질 때 스스로 내는 소리가 가장 좋답니다.”

 

 

기다림의 미덕을 가르쳐 준 튤립

 

튤립은 올해 처음 꽃을 피웠다. 지난해 꽃시장에서 사 왔다. 곧바로 심었지만 꽃대가 올라오다 갑자기 멈춰버렸다. 꽃은 피지 못했고, 사라짐을 선택해 버렸다. 올해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렇게 애타게 기다렸던, 기다림의 미덕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물론 빨강, 노랑, 보라의 색색의 튤립을 사왔지만 올해는 빨강과 보라만 피었다. 내년에는 노랑도 필 것이다. 기다림은 그래서 무엇보다 소중한 삶의 자세이다. 기다리지 않고, 무엇인가를 느낀다는 것은 자연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기다림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준 튤립의 존재가 미덥다.

 

‘봄의 나무’는 계속 자란다

 이 배꽃은 특별하다.

 

‘봄의 나무’이다. 여기서 말하는 ‘봄’은 계절의 봄이 아니라 우리 큰 딸의 이름이다. 4살이 되던 해 이 배나무를 심었다. 이제 중학교 2학년이니 10년이 더 돼 버린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기하게도 ‘봄의 나무’는 열매를 맺는데, 이제까지 10개 이상의 열매를 준 적이 한 번도 없다.

 

대여섯 개의 열매만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었다. 하지만 그 열매들은 정말, 튼실한 열매였다. 이제까지 먹어본 적 없는 정말 달콤하고 다디단 배였다. 주변에는 다른 배나무도 있는데, 이 배나무는 수많은 열매를 우리에게 준다. 하지만 ‘봄의 나무’만큼 크지도 않고, 달콤하지도 않았다. 물론 품종이 다르다. ‘봄의 나무’는 신고 배이고, 곁에 있는 배나무는 돌배 종이었다.

 

이를 보고 우리는 스스로 해석한다.

 

10년 동안 ‘봄의 나무’는 딸과 함께 자라면서 딸이 건강하게 자란 만큼 그 자신도 많은 열매를 맺기 보다는 튼실하고 기쁨을 주는 열매를 우리에게 주고 싶은 것이라고. ‘봄의 나무’는 올해도 꽃을 피웠다. 꽃이 지고 나면 열매를 맺을 것이다. 우리 딸이 점점 자라는 만큼 ‘봄의 나무’도 계속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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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카메라를 들고 마당에 나선다
여물지 않았지만 곳곳에서
외치는 소리 들린다
그 외침은

때론 분홍빛으로
혹은 하얀 빛으로
아니면 보라색 웃음으로 찾아온다

봄 기차가 우리 집 마당을 찾았다
소리 지르는 온갖 색색깔의
존재들을 가득 실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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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낭화
하트 모양의 소리를 낸다
손으로 만지면
'Love!'
라고 소리가 울린다


튤립
노랑, 분홍, 보라, 빨강을 샀는데
분홍이 제일 먼저
고개를 내민다


앵두꽃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카메라가 화들짝 놀란다
아름답다고


매발톱
보라색 자태 깊다
아직 꽃망울을 터트리지 않았지만
아침 햇살 머금은 모습이 싱그럽다


조팝나무
팝콘이 나무 가지 가지마다 매달렸다
톡톡 돈대면 터질 듯
봄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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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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