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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13 친구가 되고 싶었던 대통령|노무현 <여보, 나 좀 도와줘>

대통령은 누구나 국민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역대 어느 대통령이든 국민과 함께 사진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나는 국민의 대통령이요!”라는 메시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다. 이승만에서부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모두, 하나같이 모를 심고, 서민 식당을 가고, 재래시장에서 손을 잡고⋯그런 사진이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똑같은 사진들인데 유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과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재래시장에 선 사진에서 진정성을 보는 것은 왜일까. 대통령이기 이전에, 정말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다른 전직 대통령은 ‘국민과 친구’라기 보다는 정말 ‘권력자’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노무현’ 이었는데 오히려 국민들이 그를 친구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는지 우리 스스로 생각해 볼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2주년이 돌아왔다. 그를 떠나보낸 지 벌써 2년이 흘러 버렸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을 때 춘추관 출입기자로 있었다. 우리 매체(아이뉴스24)가 당시 종합 미디어가 아닌 IT전문지였던 배경으로 취재하는데 한계는 있었지만 가끔 기자회견, 출입기자 영빈관 초청 등의 행사를 통해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가 많았다.

당시 적었던 기사들을 돌이켜 본다.

2003년 5월6일 “노 대통령, 첫 노트북 국무회의”

6일 청와대에서는 종이 없는 '노트북 국무회의'가 열렸다. 참여정부 들어 처음 있는 일이다. 20명의 국무위원과 배석자인 청와대 비서실장, 정책실장 앞에 종이 서류 대신 노트북이 놓여졌다.

국무회의에서 논의될 보고 자료와 토론 안건이 국무위원의 노트북에 미리 저장됐다. 노트북 화면을 통해 회의가 시작됐다. 참여정부의 전자정부 비전과 추진원칙에 대한 발제가 이어졌다.

김병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은 파워포인트로 제작된 내용을 발제했다. 국무위원들은 노트북 화면에 나타나는 발제 내용을 보면서 진지하게 들었다. 김 위원장은 "(전자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부처 간 정보공유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국무회의는 노트북으로 회의를 진행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노트북은 단지 툴(Tool)에 불과하다. 부처 간 정보공유와 전자정부 조기구축이라는 상징성이 담겨 있는 것이다.

장관들 가운데 30% 정도는 각자 자신이 사용하던 노트북을 들고 와 컴퓨터 사용에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회의가 시작되기에 앞서 컴퓨터 전문가를 자청하는 장관들은 상대적으로 익숙지 않은 장관들에게 '훈수'를 두는 모습도 얼핏 보였다. 반면 컴퓨터 앞에 앉아 불안한 모습으로 이것저것 자판기를 두드려 보는 국무위원도 있었다.

청와대 대변인실의 한 관계자는 "노트북 국무회의는 참여정부의 전자정부 조기구축에 대한 열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처의 관점과 네트워크 관점을 아우르는 회의에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각 부처는 부처의 특성에 맞게 정책을 결정해야 된다. 부(部)의 관점이다. 이를 다른 부처와 네트워크로 연결시켜 종합적 정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자세가 절실하다. 네트워크의 관점이다.

노 대통령은 노트북 국무회의와 관련해 "오늘은 장관들이 초보적 자료만 담아 와서 진행했는데 온라인을 통해 같은 DB에서 자료를 보는 것 말고도 필요한 (각 부처 등의) DB에 바로 접근해 토론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부의 관점을 견지하되 다른 부처와 네트워크로 연결해 다양한 의견에 대한 토론과 의견청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종합적 정책을 이끌어 내는 노력을 기울여 달라는 주문이다.

노 대통령은 “그렇게 점차 통합의 기반을 넓혀가야 하며 이를 염두에 두고 (장관들이) 노트북과 친해져 달라”고 당부했다.

첫 노트북 국무회의를 대한 국무위원들의 생각은 모두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부처 간 원활한 업무조정과 전자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처 간 정보공유의 부재'를 풀어나가야 하는 숙제를 국무위원들은 떠안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2007년2월27일 “노무현과 친구 같은 대통령”

2007년 2월27일 여기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최고 권력자의 권위를 거부했다. 가능한 권력을 분산시켰다. 시민과 함께 오붓하게 포장마차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자리를 만들고자 했다. 국민과 소통하고 싶었다. 2003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5년 임기 중 4년을 보냈다.

2007년 2월 현재.

이제 이런 생각을 그는 해 본다. 한국에서 국민은 대통령을 '친구 같은 대통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생각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민과 소통하기 어려워 '갑갑하다' '답답하다'는 말을 그는 이어간다.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한국인터넷신문협회와 합동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회견은 한 시간 30분 동안 예정됐지만 그보다 한 시간 이상을 훌쩍 넘겼다. 노 대통령은 정치와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질문자로 참석한 기자의 눈은 그의 곁을 맴돌고 있는 쓸쓸한 분위기를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사회자로 나선 김미화씨가 "자신감 없는 대통령의 모습"이라며 "대통령으로서 힘 있고 정열적인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을 정도니, 기자의 느낌만은 아닌 듯하다.

2002년 12월로 되돌아 가보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적잖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승리이고 국민의 축제로 뽑은 대통령"이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국민의 지지율은 겨울 수은주처럼 뚝 떨어졌다. 자신과 함께 대통령 당선에 힘을 모았던 여당 정치인들은 그의 곁을 떠나고 있다. 보수언론은 그의 말투 하나하나를 트집 잡는다. 한국 사회 전체가 그를 향해 돌을 던지고 있는 상황이다. 온 나라가 그를 중심에 놓고 압박하고 있다.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그는 4년을 보내고 난 뒤 이렇게 되뇌인다. "대통령을 4년하고 나니까 한국에서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대통령은 국민과 친구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데 현실은 이를 허락지 않는다는 괴리감을 반영한 말이다.

원포인트 개헌론을 두고는 정말 답답했는지 "좋다. 그럼 우리 이 자리에서 왜 개헌이 지금 이뤄지면 안 되는지 토론을 해 보자"며 즉석 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국민과 소통이 되지 않아 너무나 답답하다는 모습이었다.

그는 이제 대통령 임기를 1년 남겨놓고 있다. 회견하는 내내 기자는 대통령의 모습에 짙게 밴 허전함과 쓸쓸함을 느껴야만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대통령을 원하고 있었던 것일까. 스스로에게 던져볼 만한 질문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지금 국민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렇다면 혹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옛날의 제왕적 대통령을 원하는 것일까. 장관도 맘대로 갈아 치워버리고 맘에 들지 않으면 모든 정치권력을 장악, 독단적 리더십을 가진 대통령을 원하는 것인가. 그런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배만 부르면 그것으로 족하단 것인가.

대통령뿐만 아니라 자리를 함께 한 기자도 답답하고 갑갑함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2009년 5월29일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29일 경복궁 앞뜰에서 진행된 영결식을 보기 위해 안국동 사거리부터 경복궁 동문까지, 광화문 사거리에서 경복궁 서문까지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속속 도착한 시민들은 '영결식에는 초청장이 있는 분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설명에 "도대체 언제 국민들에게 초청장 신청을 받는다고 알린 적이 있느냐"며 실랑이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9시 5분쯤 경복궁 동문에서는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흰 상복을 입고 태극기를 몸에 두른 한 할머니는 "공무원들이 이러면 안 된다"며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는 경찰을 나무랬다.

할머니는 "이게 뭐하는 거냐" "대통령님을 마지막으로 보려 왔는데 왜 가로막는 거냐"며 큰 소리로 경찰을 향해 호통을 쳤다.

○…분당에서 출발해 아침 7시에 도착했다는 이두희씨(44, 자영업)는 부인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을 기다렸다. 이씨는 "야탑 광장에 있는 분향소에서 분향했지만 고인을 다시 보기 위해 아내와 함께 왔다"며 "경찰들의 통제가 너무 심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9시47분 마침내 봉하마을에서 올라온 조문객이 먼저 도착했다. 앞면에 '노 전 대통령 영결식(봉하마을)'이라고 붙인 17대의 버스가 경복궁 동문을 차례로 통과해 영결식장으로 곧바로 들어갔다.

순간 길거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은 버스를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손짓을 보냈고 버스안의 봉하마을 조문객들도 슬픈 손짓으로 이들에게 화답했다.

○…경찰은 경복궁 동문과 서문을 비롯해 주위를 205개 중대 약 2천여 명으로 철통같은 경비를 섰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근조'라는 리본을 탄 경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찰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근조' 리본을 달지 않은 한 경찰은 "조금 전에 지방에서 올라와서 근조 리본을 달지 못했다"며 차출된 병력임을 설명했다.

○…10시38분 드디어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도착하고 있음을 경찰 병력의 신속한 이동으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노 전 대통령 운구행렬이 동문으로 올지, 서문으로 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경찰은 우선 시민과 도로를 분리하기 위해 서로 손을 잡고 인간 바리케이드를 쳤다. 또 안국동사거리에서 부터 경복궁 동문까지 야광복을 입은 경찰이 중앙선에 도열하기 시작해 도착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10시47분 마침내 노 전 대통령을 태운 운구행렬이 경복궁 동문 앞에 도착했다. 사이드카가 먼저 앞서고 뒤이어 환하게 웃는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지나갔다.

이어 운구차에 영면을 기다리는 고(故) 노 전 대통령이 수많은 시민들 앞으로 스쳐 지나갔다. 시민들은 울먹이기 시작했고 "우리도 영결식을 보게 해 달라" "경찰들이 이러면 안된다!"며 울부짖었다.

운구행렬 중 조문객을 태운 듯한 한 버스에는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편히 쉬소서'라는 문구를 달고 통과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2009년 5월31일 “슬픈 로그아웃”

오늘 슬픈 로그아웃(Log Out)을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인터넷을 좋아했다. 직접 인터넷관련 서비스를 개발하기도 했고 자신에 대한 기사나 의견에 직접 댓글 다는 것을 즐겼다.

주저함이 없었다. 참여였고 소통이었다. 인터넷의 기술적 진화와 발전을 좋아했던 것만은 아니다. 인터넷 속엔 언제나 변화가 꿈틀거리고 새로움과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여론(용산참사)의 물꼬를 돌리기 위해 또 다른 사건(강모씨 살인사건)을 중점 부각하라는 어떤 정부의 소통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2003년 2월24일 영국의 가디언지는 'World's first internet president logs on(세계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 로그온하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을 두고 한 평가였다. 그는 '인터넷 대통령'으로 불렸다.

또 다시 이 말을 반복해야 하는 일은 슬프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온라인 민주주의를 통한 국민의 참여와 소통을 즐겼다. 그런데 즐김과 여유가 아니라 그에게는 '답답함'과 '갑갑함'이 짙게 드리웠다.

참여를 즐기고 인터넷을 통해 직접 대화하기를 원했던 노 전 대통령에게 '답답함'과 '갑갑함'이 밀려들게 만든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퇴임을 1년 앞둔 지난 2007년 2월27일, 청와대에서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주최로 '취임 4주년 합동인터뷰'가 있었다.

정면 단상에 앉아 있는 노 전 대통령에게 기자는 "대통령께서는 이제 1년 뒤면 대통령직에서 로그아웃 하게 된다"며 "그 동안 온라인 민주주의를 직접 체험하고 실천하면서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이 질문에 노 전 대통령은 긴 한숨을 먼저 내쉬었던 것 같다. 이어지는 말은 "온라인 매체(인터넷 매체)조차 없었다면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소통'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 몰랐다며 힘겨운 모습을 보였다.

특정 신문을 언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수구보수언론'으로 대표되는 국내 언론권력으로 힘겨워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을 4년하고 나니까 한국에서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친구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데 현실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친구 같은 대통령'은 국민과 직접 의견을 나누고 이야기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고 그랬으면 하는 바람인데 이러한 소망이 제대로 국민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자괴감이었다.

자신의 뜻과 의지는 '수구언론'을 통해 희석되고 변질돼 국민에게 전달되고… 국민들은 '수구언론'을 통해 변질된 내용을 보고 듣고 다시 변형된 여론으로 들끓고…'대통령과 국민은 친구'라는 등식이 대한민국에서는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답답하다' '갑갑하다'라는 말만 되뇌었다.

노 전 대통령 재임 5년 동안의 총체적인 국정운영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비판할 능력이 기자에게는 솔직히 없다. 다만 재임기간 내내 느꼈을 그의 외로움과 고독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그가 한 달 전 '박연차 리스트'로 거론되면서 '인터넷에서 로그아웃 하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직에서 '로그아웃'하더니 이제 소통마저 그만두겠다는 '로그아웃'이었다.

검찰은 수사사항을 고의적으로 은근히 언론에 흘리면서 노 전 대통령의 도덕성을 건드렸다.

대검찰청에 소환되기 전 노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노 전 대통령 공식홈페이지)을 통해 "이제 인터넷에 글을 쓰지 않겠다"고 절필을 선언했다.

그리고 한 달 여가 지난 오늘 그는 '영원히 삶과 로그아웃'해 버렸다. 주변의 따뜻한 시선, 천천히 늙음의 여유,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존경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로그아웃 한 것이 아닌 스스로 단절해 버린 로그아웃이었다.

대한민국은 그래서 슬프다. 세 번의 '로그아웃'을 하는 동안 누구도 그의 곁에 '친구'는 없었던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뛰어내리기'까지 그의 외로움과 고독을 그 누구도 함께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서글프고 고달프다. '친구가 되고 싶었던 대통령'은 외로움과 슬픔만을 간직한 채 홀로 이 세상과 로그아웃 해 버린 것이다.

여보(문재인), 나 좀 도와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보, 나 좀 도와줘>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성장 배경과 아내를 만나게 되는 사연, 고시를 준비하던 모습, 정치권에 들어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는 상황 등을 묘사하고 있다. 김해의 촌구석에서 태어나 판사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인생의 성공이랄 수 있는 판사가 되고 난 뒤 인권 변호사로 다시 인생의 경로를 바꾸게 되는 배경, 또한 파란만장하다. 노무현, 그에게는 “사람 사는 세상”이 가장 이상적인 인생 목표였고, 그 목표를 위해 자신의 현재를 수정하는 여유와 배포를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다.

특히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는 조선일보와 싸움을 벌이고, 조선일보와 적극 맞서는 모습이 담겨 있다. 정치인이 특정 언론사와 갈등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노무현 그에게는 “언론이 언론다워야 사람 사는 세상”이 온다는 믿음과 신념이 있었기에 조선일보와 ‘맞짱 뜨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2012년 또 다시 우리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인물이 부상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변호사가 차기 대통령 후보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문재인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한 인물이다.

참여정부시절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과 대통령비서실 실장을 거쳤다.

일각에서는 이런 문재인 변호사를 두고 “정치 경력도 모자라고, 큰일을 해 보지 못한 분을 어떻게 대통령 후보로 내세울 수 있느냐”는 의문을 표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리에게 대통령이란 어떤 사람인가라는 것부터 따져 봐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당시 압도적 표 차이로 당선됐는데, 여기에는 특이한 현상이 숨어 있다. 그것을 ‘부적 효과’라고 한다.

‘부적 효과’는 말 그대로 ‘부적’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부자가 되고, 행복해 지고, 잘 살 것 같다는 최면을 심어주는 효과를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좋아서가 아니라 마치 ‘이명박을 뽑으면’ 나도 잘 살 것 같은 ‘부적효과’가 당시 선거에 작용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자신의 노력과 자신의 의지가 없이 단지 부적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잘 살고 행복해지려는 것은 ‘도둑놈 심보’나 다름없다. 이미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을 통해 큰 교훈을 얻었다. 이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과연 우리에게 대통령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를 지배할 ‘권력자’를 원하는가, 우리를 제압하는 ‘제왕적 대통령’을 원하는가, 아니면 우리와 함께 걸어갈 ‘조력자’를 원하는가, 그것도 아니면......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 변호사는 충분히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다. 특히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과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믿음과 의지가 큰 사람 중 한명이다.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 살아 있다면 ‘문재인, 나 좀 도와줘’라고 말하고 싶지 않을까.

‘친구 같은 대통령’을 꿈꾸었던 그의 이상, 그리고 사람 사는 세상을 그렸던 그의 철학, 이 이상과 철학을 이젠 남겨진 우리가, 살아남은 우리가 이뤄나가야 할 숙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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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