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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08 각오만 있었지 각성은 없는 시대…<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어제 우리 어머니가 분노하셨다. 퇴근해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TV를 보고 계시던 어머니가 안방에서 갑자기 나오셨다. 그러더니 “세상에! 세상에!”를 연달아 내놓으신다. 우리 어머니는 자주 분노하신다. TV에 나오는 세상 소식에 특히 분노의 진동파이 크다.

가락시장에서 폐식자재가 고스란히 다시 유통되고 있다는 소식이 방송을 통해 보도됐다. 폐기처분해야 할 음식물 쓰레기와 유통기한이 지난 식자재가 대형 음식점과 대중식당에 팔려나가고 있다는 뉴스.

당근! 어머니는 분노하셨다. “세상에! 세상에!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바깥에서 뭐 하나 사 먹을 수나 있겠나?” 어머니의 분노는 고스란히 내 시선 안으로 들어왔다. 직장 생활하다보니 당연히 바깥에서 음식을 사 먹는 사람은 나뿐이었으니.

‘추한’ 것으로 치자면 인간만큼 더 ‘추한’ 생명체도 없을 것이다. 어둑어둑한 숲길을 혼자 걷고 있을 때 가장 무서운 존재는 호랑이도 아니며 그렇다고 사자, 곰도 아니고…저 멀리 뚜벅뚜벅 그림자만 보이며 다가오는 인간의 발자국 소리라고 하지 않았든가.

먹이사슬의 영역에서도 인간은 무척이나 이기적 생명체이다. 최후 포식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편의를 위해 다른 생명체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쯤은 대수롭지도 않게 여긴다. 여기에 더해 인간을 포악스럽고 ‘추하게’ 만드는 매개체가 있다. 다른 생명체에게는 전혀 없는 그 무엇이 인간을 추하게 만든다. ‘돈’이다.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추한 일과 악한 행동…모든 추악한 것에 그 원인을 파고들어가 보면 궁극적으로 ‘돈’에 맞닿는다. 최후 포식자인 인간을 옴짝달싹 못하게 옥죄여 오는 것이 바로 ‘돈’이다. ‘돈’으로 아름다움을 사고, ‘돈’으로 명예를 구입하고, ‘돈’으로 사랑까지 살 수 있다니…무서운 세상 아닌가.

여기 ‘못생긴’ 여자와 ‘그저 그런’ 한 남자가 있다. 세상 사람들은 ‘못생긴 여자’를 두고 ‘추녀’라고 말한다. ‘추녀’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공포이다.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생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하는 ‘추녀’.

그 ‘추녀’를 사랑하게 되는 남자가 있다. 바로 나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백화점 주차 아르바이트를 통해 만나게 되는 ‘나와 추녀’의 이야기를 장편에 담았다. 뻔 한 주제를 이렇게 많은 글자 속에 녹여낼 수 있는 박민규의 글쓰기에 감탄했다. ‘나와 추녀’ 사이에서 매개체 역할을 하는 요한의 인물 또한 입체적으로 그려놓았다.

‘못 생긴’ 추녀와 ‘그저 그런’ 나, 그리고 ‘자유롭게 삶을 사는’ 요한의 젊은 시절. 지하 주차장에서 주차하는 청춘들이지만 ‘그들만의 공간’이 있어 행복하다. 그들을 자연스럽게 묶이게 하는 것은 틀린 영어 단어가 가득한 맥주 집.

허름한 맥주 집에 자주 드나드는 그들에게 입구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Bear’와 ‘Hope’는 틀린 영어로 다가오지 않는다. ‘Bear’와 ‘Hope’는 분명 영어 단어에 있다. ‘Beer’와 ‘Hop’가 어울리지 않는 그곳에서 그들은 큰 곰을 이야기하고 희망에 대한 토론도 이어간다.

그러나 ‘추녀’의 자격지심은 어쩔 수 없었다. ‘나’의 관심 자체가 ‘추녀’에게는 동정심으로 다가오고 끝내 ‘추녀’는 ‘나’를 떠난다. ‘나’는 ‘추녀’를 찾기 위해 그녀의 주소록을 입수하고…떠난 추녀는 어디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다행히 그녀는 포장지 회사의 경리사원으로 입사해 잘 근무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추녀’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사장이 왜 날 채용했는지 알았어요. 전에 근무하던 경리사원은 얼굴이 아주 예뻤대요. 그 사원은 회사 공금을 가지고 한 남자와 도망치고 말았죠. 사장이 어느 날, 전화 통화하는 것을 들었어요. 사장은 ‘못 생긴 애들도 다 제 몫을 한다니까. 누가 건드리겠어? 누가 쳐다나 보겠어? 경리사원은 아주 못생긴 애로 뽑아야 해!’”

‘추녀’에게 이 세상의 모든 눈빛과 모든 말들은 고스란히 상처이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는 말에 그녀는 놀랄 수밖에 없고, “왜 나를 사랑하시죠? 동정인가요?”라는 말만이 그녀의 머릿속에 감돌뿐이다. 그 깊은 상처를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그녀는 철저히 자신만의 세상에 존재하고 다른 사람의 관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생존 방법이다.




그렇게 그녀는 한국을 버리고 독일로 떠난다. 뒤늦게 작가로 성공한 ‘나’는 독일에 가는 길에 그녀를 만난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눈(雪)으로 시작해 눈(雪)으로 끝난다. 그녀를 안았을 때도 눈이 왔고 독일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도 눈이 왔다.

박민규의 소설은 이제 완전히 상징계로 넘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통속 문학인가 본격 문학인가에 대한 논의는 비평가들의 몫으로 남겨두자. 이상문학상까지 수상했으니 본격 문학이라고 평해도 되지 않을까.

통속과 본격을 두고 문제가 되는 것은 이 부분이다.

“통속과 본격 문학을 두고 나는 구분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나름대로의 영역에서 나름대로의 독자를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입니다. 나도 통속소설이든, 만화든, 본격 문학이든 구분을 두지 않고 읽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통속 문학에 속하면서도 자신은 본격 문학을 하고 있다고 나대는, 잘난 체 하는 작가들입니다.”

문학 평론가 가와타니 고진의 말이다.

박민규는 분명 최근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옮아 왔다고 생각한다.

그는 <카스테라>를 통해 냉장고로 들어갔고, <대왕오징어>를 통해 바다속 깊은 심연을 휘젓고 다녔으며,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켰어요>에서는 아예 화성까지 갔다 오는 상상력을 발휘했다. 그의 상상력은 그가 쓰고 있는 큰 안경만큼이나 다양하고 컸다. 온갖 상상의 세계에서 외로움을 느꼈던 것일까.

2010년 이상문학수상작인 <아침의 문>을 통해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으로 떨어진다. 동반 자살을 결심한 나는 실패로 돌아가 눈을 뜰 수밖에 없었고, 저 건너편 옥상에서 아이를 낳고 있는 미혼모와 눈이 마주친다.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위에서 따뜻한 온기를 품은 아이가 태어났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와 <아침의 문>은 현실에 바탕을 둔 상징계의 소설적 목적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물론 소설 자체가 현실에 기반을 둘 수밖에 없다. 왜 작가가 우주에서 어느 순간 뿅!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 작가도 ‘응애응애’ 울음을 울고, 젖을 먹거나 분유를 먹었으며,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등 교육을 받았고, 작가도 술을 마시고, 뉴스를 보며 분노하고, 변비에 걸리지 않았다면 ‘응가’를 하기 때문이다.

현실에 살고 있는 작가의 상상력이란 게 그래서 터무니없는 상상일 수는 없다.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조금씩 발을 옮긴 박민규는 이제 자신의 현실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2011년 봄호 <창작과 비평>에서 박민규는 이른바 ‘386세대’에게 이런 말을 전한다.

“이른바 ‘386 세대’는 각오만 있었지 각성은 없었다.”

1968년생인 자신 스스로 ‘386세대’이기 때문에 이 말은 자신에게 던진 비판적 목소리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각오만 있었지 각성이 없었던 386’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으로 인해 현실은 또 어떻게 됐을까. 앞으로 나올 박민규 소설이 중심적으로 다룰 주제가 아닌가 싶다. 박민규의 각성이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다.

*각오(覺悟)

-품사 : 명사

-앞으로 해야 할 일이나 겪을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

-(예문)비장한 각오

*각성[覺醒]

-품사 : 명사

-깨어 정신을 차림.

-(예문)어려움을 헤쳐 나가려는 지혜와 현실에 대한 각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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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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