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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19 우연과 선입견이 존재하는 소설|황시운의 <컴백홈>

“통속과 본격 문학을 두고 나는 구분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나름대로의 영역에서 나름대로의 독자를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들입니다. 나도 통속소설이든, 만화든, 본격 문학이든 구분을 두지 않고 읽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통속 문학에 속하면서도 자신은 본격 문학을 하고 있다고 나대는, 잘난 체 하는 작가들입니다.”

문학 평론가 가와타니 고진의 말이다. 황시운의 <컴백홈>을 말하기 이전에 이 말을 인용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황시운의 <컴백홈>은 창작과비평사의 제4회 장편소설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런데 지나친 우연과 선입견이 위험해 보인다.

먼저 소설 내용을 보자.

소설은 ‘슈퍼울트라 개량돼지(0.1t의 몸무게)’ 박유미와 이른바 일진회의 ‘짱’으로 이름을 남긴 이지은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유미와 지은은 초등학교에서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닌다. 초등학교 때는 둘 다 이른바 ‘왕따’를 당한다. 그래서 둘은 늘 같이 붙어 다녔고 둘은 친구로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상황은 달라진다. 박유미는 여전히 0.1t의 거구로 그야말로 ‘따’의 전형이다. 뚱뚱한 것 자체가 ‘따’의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적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러나 지은은 달랐다. 초등학교의 ‘따’를 벗어나, 그녀는 일진회의 짱이 되고 모든 학생들을 통제한다. 소설 속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삥’ 뜯고 ‘좆나’ 까대고, 다른 아이들을 깔아뭉개는 존재.

지은은 일진회 멤버들은 데리고 자신의 친구인 박유미를 괴롭히기도 한다. 초등학교에서는 서로 친구로 남아있었지만 중학교와 고등학생이 되면서 유미와 지은은 ‘친구’관계이면서도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와 괴롭히는 아이의 주종관계가 추가된다. 다음 말에서 이들의 관계가 분명해 진다. 박유미가 달라진 지은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말이다.

“어차피 맞을 거라면 다른 아이가 아니라, 지은에게 맞는 것이 더 낫고, 지은이도 이왕 때릴 거라면 자신이 때리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맞을 바에야 ‘친구’인 지은에게 맞는 것이 낫고, 때릴 바에야 다른 사람이 아닌 지은이 자신을 때리는 것이 낫다는 관계. 이를 두고 다른 친구들은 둘의 관계가 ‘맞고 때리는’ 그러면서 오르가슴을 느끼는 ‘변태’ 아니냐는 해석도 곁들인다. 이것도 진정한 친구 관계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들의 관계는 이렇게 변한다.

‘우연’이 지나치게 많이 등장하는 소설

소설은 우연과 필연이 복합적으로 작용될 수밖에 없는 장르이다. 그런데 <컴백홈>에서는 지나치게 많은 우연이 개입되면서 소설의 깊이를 차단하고 만다. 그중에 이 소설의 주요 테마를 이루는 ‘우연’이 서태지의 등장이다.

서태지는 최근 다시 이슈의 한 가운데로 부상했다. 그가 한 여자와 결혼했고 이혼 소송중이라는 사살이 보도되면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세상에! 서태지가 결혼을 했어?”라는 말에서부터 “정말?” “아닐 꺼야. 그럴 리가 없어.”라는 아쉬움과 실망, 좌절과 놀라움이 뒤섞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박유미는 서태지를 좋아한다. 그 이유를 굳이 찾는 다면 서태지가 데뷔할 때 자신이 태어났고 서태지가 대한민국의 매체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을 때, 유미는 ‘따’를 당했으며, 서태지가 은퇴하고 난 뒤 복귀할 때도 자신의 상황과 맞닿아 떨어지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박유미는 그러면서 하나의 다짐을 한다. 살을 빼서 서태지와 함께 ‘달의 뒷면’을 가고 싶다는 것. ‘달의 뒷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언급하도록 하자.

여기서 서태지와 박유미의 관계가 상당히 도식적이라는 것이다. 서태지를 좋아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알고 있는 40대 후반의 한 사람도 요즈음에도 노래방에 가면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 ‘난 알아요’를 즐겨 부른다. 당시 서태지는 시대의 반항아, 시대의 혁명아로 통했다.

황시운의 <컴백홈>에서도 서태지의 등장과 비난, 은퇴와 복귀, 새로운 앨범 출시 등에 대한 이야기가 시기적으로 등장한다. 문제는 이 서태지에 대해서 간단한 언급만 있을 뿐 박유미가 왜 서태지에 대해 집착하는지, 그리고 서태지와 박유미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묘사와 서술이 부족하다. 서태지가 갖고 있었던 아이콘이, 그것이 좋든 싫든, 시대적 배경에서 어떤 의미로 작용했는지 등. 서태지의 등장과 은퇴, 복귀에 대한 단순한 언급만 있다. <컴백홈>이란 소설 제목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등장시켰을까.

달의 뒷면은 어떤 의미일까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지은은 일진회 멤버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동네 공고생인 ‘깔(행동대장)’인 한 남자 고등학생을 만난다. 급기야 임신한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지은은 유미에게 자신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한 뒤 사라져 버린다.

지은이 사라진 뒤 학교에는 온갖 소문들이 나돌았지만 어느 것 하나 사실로 확인된 것은 없다. 다만 유미만이 유일하게 지은과 연락이 닿는 존재로 남아 있다. 물론 그때까지도 유미는 ‘따’의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이후 학교에 혼자 남게 된 박유미는 갖은 고초를 당한다. ‘짱’인 지은이 떠난 뒤 학교는 2인자였던 ‘영화년(영화라는 이름뒤에는 항상 ‘년’이라는 호칭이 붙는다. 아마도 작가 스스로 ‘영화’에 대한 안좋은 기억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이 ‘짱’으로 나선다. ‘영화년’은 유미를 괴롭힌다. 마침내 ‘영화년’은 지은의 ‘깔’이었던 공고생까지 불러 들이고 지은의 행방을 묻는다. 끝내 입을 열지 않은 박유미는 지은의 ‘깔’인 공고생으로부터 강간을 당하고 그 모습은 ‘영화년’의 휴대폰을 통해 촬영된다. 협박의 무기로 작용된다.

0.1t의 거구인 박유미는 ‘뚱뚱한’ 이유 하나만으로 ‘따’를 당하고, 집안에서는 어머니의 구박을 받고, 친구 지은과 관계로 인해 강간당하고, 온갖 핍박을 받는다. 반지를 훔쳐 일진회 멤버에 상납하게 된 것을 알게 된 어머니로부터 ‘호스 매타작’을 당할 때,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신의 어머니에 대들고 심지어 어머니를 짓밟아 버린다.

거실 한 귀퉁이에서 딸에게 처참한 ‘하극상’을 당한 유미의 어머니는 충격에 쓰러져 버린다. 그 상황에서 유미는 어머니의 지갑과 비상금을 털어 가출해 버린다. 그녀가 갈 곳은 뻔하다. 바로 지은이 있는 곳이다.

그렇게 유미는 지은이 있는 쉼터인 ‘둥지’에 도착한다. ‘둥지’에는 미혼모들이 거처하는 안식처이다. 여기서 이미영이라는 30대 중반의 한 여자도 임신을 한 채 같이 살고 있는데, 나중에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이미영은 지은의 아버지의 내연녀였다. 이것 또한 우연치고는 아주 지나친 우연이다.

방송에서 흔히 보는 ‘막장 드라마’의 가장 큰 기법 중의 하나가 우연이다. 우연히 사장이었던 사람이 내 아버지가 되고, 우연히 호텔 종업원이 내 아들이 되고, 그야말로 앞뒤 가리지 않고 충격과 충격적 우연으로 시선을 끌면서 극을 이끄는 것이 ‘막장 드라마’의 전형이다.

황시운의 <컴백홈>은 이런 면에서 우연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는 소설 중의 하나이다. 우연이 많은 소설은 ‘통속적’일 수밖에 없다. 2007년 서울신문을 통해 등단한 황시운은 “등단작에 대한 주변의 평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까지 청탁이 없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 한동안은 당황스러웠고, 그 다음에는 화가 났고, 나중에는 이런저런 콤플렉스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2007년에서 2011년의 4년 동안 황시운 소설가가 겪었을 마음 고생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 마음 고생이 지나친 것일까. <컴백홈>에서 작가의 절박함이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도 한 몫하고 있는 것 같다.

황시운은 <컴백홈>에서 ‘달의 뒷면’을 강조한다. 작가가 생각하는 ‘달의 뒷면’을 무엇인지 직접 들어보자.

“아폴로11호의 사령선 조종사였던 마이클 콜린스는 아폴로계획에 참여한 우주비행사 중 달 표면을 밟지 못한 유일한 사람이다. 그는 닐 암스트롱과 에드윈 올드린이 달에 착륙해 달 표면을 탐사하는 동안 사령선인 컬럼비아호를 타고 달 궤도를 비행했다. 아폴로계획의 99퍼쎈트를 함께하고도 달 표면을 밟지 못했다는 이유로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그 대신 그는 달의 뒤편으로 간 최초의 인류가 되었다.”

박유미의 말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황시운의 ‘달의 뒷면’에 대한 인식이다. 아무도 가보지 못했던 그곳, 그곳은 바로 박유미의 이상향이자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꿈의 궁전이다. 과연 ‘달의 뒷면’은 황시운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상향으로 남아 있을까. 아무 고통도 없고, 고요하게 흘러가는 오아시스를 볼 수 있는 곳일까.

여기서 우리는 또 한명의 작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가 한강이다. 한강의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도 ‘달의 뒷면’이 중요한 주제로 나온다. <바람이 분다, 가라>도 상처투성이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한강의 ‘달의 뒷면’은 그러나 황시운의 그것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한강은 <바람이 분다, 가라>에서 ‘달의 뒷면’을 순수한 상처로 표현한다. 그곳은 이상향이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보여지지 않은 순수한 상처의 그곳이다.

달은 언제나 지구를 돌고 있기 때문에 인간들은 달의 뒷면을 영원히 볼 수 없다. 어떻게 생겼는지,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한강에게 있어 ‘달의 뒷면’은 우주의 온갖 돌들이 떨어져 상처가 나고, 우주의 모든 아픔들이 떨어져 고스란히 머물고 있는 ‘순수한 상처’의 공간이다. 근원적 상처가 있는 그곳, 그곳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황시운의 ‘달의 뒷면’은 이상향이다. 누구도 보지 못했던 그곳을 보기 위한 소망일 뿐이다. 그곳에 더 깊은 근원적 상처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아니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황시운의 <컴백홈>은 선입견이 짙게 깔린 위험한 소설일 수도 있다. ‘뚱뚱한 여자’에 대한 지나친 선입견이 숨어 있다. ‘뚱뚱녀’는 온갖 고통과 더러운 꼴을 당해야 한다는 편견을 심어준다.

나는 요즈음 지하철이나 길거리를 걸어갈 때 지나가는 여성들을 보면서 놀란다. 하나같이 몸매가 날씬한 여성이, 하나같이 잘 차려입은 여성들이 도처에 걸어 다닌다. 모두 모델 뺨치는 모습이다. 화사한 모습으로 걸어 다닌다.

언뜻 보면 누가 누구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 녀가 저 녀 같고, 저 녀가 이 녀 같은...걸어가는 여성은 모두 다를 것인데 한 사람이 걸어가고 있는 착각에 빠진다. 개성과 생김새에 구분이 없다. 태어날 때부터 그녀들은 그랬을까.

절대 아니다. 자본주의는 철저하게 그녀들에게 태어날 때부터 주입시켰다.

“뚱뚱한 것은 죄악이다.”

“날씬해야 한다.”

“철저하게 성형을 하라.”

“생김새가 경쟁력이다.”

“여자는 잘 생기고 예쁘고 날씬해야 한다.”

교육을 강제 받았다. 자본주의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 자본주의 교육 덕분에, 돈을 투자한 것 덕분에, 지금 이 길거리에는 ‘예쁘고 날씬하고 잘 차려 입은’ 여자들만 넘쳐난다. 그러는 사이 개성은 사라졌다. 개성이 없는 사회? 그것은 죽음의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황시운의 <컴백홈>을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병폐 중 하나를 자신의 소설에 그대로 녹여버렸다는 것⋯‘따’ 당하고, 스스로 ‘포기하고’, 강간당하고⋯모질게 개성을 짓밟아 버렸다는 데 있다.

황시운의 <컴백홈>은 우연과 선입견이 짙게 깔려있는 통속 소설이다. 이야기에 속도감은 있다. 그러나 그 속도감이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니다. 황시운 작가는 인터뷰에서 “소설은 우선 재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재밌는 것에만 매몰된다면 그것은 문학이 아니다. 문학은 읽고 난 뒤 깊은 사색을 하게 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상식에 대해 다시 한번 자신을 되새기게 하는 매력을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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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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