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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23 인생을 콩쾅콩쾅 설레게 하는 것은…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1)

소설 속 ‘아름’이를 만난 것은 1년 전이다. 태어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줄곧 방 안에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십대의 아름이. 십대를 살고 있지만 ‘아름’이는 옆집 60대의 ‘장씨 할아버지’와 잘 어울리는 얼굴을 가졌다. 그렇다. 조로증에 걸린 아이였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생각이 맑고 똘망똘망 때 묻지 않은 눈빛을 지녔다.

<창비>에 연재된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이 2011년 <창비> 봄호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그동안 ‘아름’이를 통해 아름이의 세계와 아름이의 감정, 아름이의 단어를 읽는 마음이 때론 아팠고, 혹은 어린애 장난기처럼 스멀스멀 내 등을 기어오르기도 했다.

아름이의 아빠와 엄마는 애 시절(고등학생)에 만나 시급한(?) 결혼을 하고 아름이를 낳는다. 몇 년이 지나 아름이의 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된, 준비가 되지 않은 그들은 아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떻게 키워야 할지 답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애’ 아빠와 엄마는 아름이와 친구가 된다. 같이 겪으면서 ‘애’였던 그들도 ‘어른’이 된다. 자신이 낳은 ‘아름이’를 통해 또 다른 삶의 공간으로 걸어 들어간다. 선택이 아니라 받아들임이었다.

연재 마지막회인 이번 호에는 ‘아름’이에게 모든 글쓰기가 집중됐다. 2010년 여름, 가을, 겨울호에서 ‘아름’이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사람들-아빠와 엄마, 장씨 할아버지, TV방송국 사람들-에 초점이 맞춰져 이야기가 전개됐다면 마지막회는 전적으로 ‘아름’이의 생각·감정·단어에 모두를 집중시킨다. ‘아름’이가 하고 싶은 말을 작가는 맘껏 그려 놓았다.

온전히 ‘아름’이의 공간이 된 마지막회는 그래서 읽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혹은 우리가 어떤 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현실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지’를 묻게 만든다. ‘아름’이를 읽는 ‘나’로 대치해 놓아보면 소설 속 단어 하나하나가 ‘과연 나는?’이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고 스스로 ‘답을 찾아 보게’ 한다.

아름이가 사랑에 빠졌다. 아름이가 TV방송국에 나온 뒤 ‘서하’라는 한 여자애가 아름이에게 편지를 보내온다. 자신도 많이 아픈 아이라며. 그렇게 ‘서하’와 ‘아름’이의 편지 주고받기는 시작된다. 아름이는 처음 느껴보는 ‘여자 아이’와 관계에 온통 설레는 마음뿐이다.

자신만의 비밀로 유지하기에는 감정이 너무나 벅찬 것일까.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을까. 장씨 할아버지에게 넌지시 묻는다.



“사실 저 여자애한테 편지 받았어요.”

“예쁘냐?”

“그게 중요해요?”

“야, 인마. 당연하지. 남자는 좋아하는 여자 스타일이 평생 딱 두 가지뿐이야. 10대 예쁜 여자, 20대 예쁜 여자, 30대 예쁜 여자, 40, 50대도 예쁜 여자.”

“그럼 60대는요?”

“고운 여자.”

예쁜 여자와 고운 여자를 두고 장씨 할아버지는 이제 고운 여자가 지금 자신의 나이에는 맞는다고 말한다. 장씨 할아버지의 그런 넋두리쯤이야 어떻든 아름이는 ‘서하’로 인해 사랑에 눈뜨고, 여자에 가슴 콩콩 거리고...알 수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직접 만나보고도 싶고, 입술과 입술을 포개는 느낌도 갖고 싶다. 그러나 조심스럽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둘은 서로 아픈 아이들이고, 그 아픔을 서로 공유하지만 직접 만나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이는 관계.

아픈 사람에게 어떤 위로가 가장 효과적일까. “많이 아프니?” “그 정도야, 누구나 다 아파.” “걱정하지 마. 금방 나을 꺼야.” 이런 정도의 말이면 위로가 될까. 정말 아프지 않는 사람은 아픈 사람을 위로나 할 수 있을까. 아픈 사람은 다른 누군가로부터 듣는 그 어떤 말도 사실 위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두근두근 내 인생>의 주제를 보여주는 부분이 드디어 나온다.

서하가 아주 짤막하게 아름이에게 묻는다. “너는 언제 살고 싶니?”라고.

아름이는 자신이 언제 살고 싶은지, 그리고 두근두근 내 인생이 언제 콩쾅콩쾅 뛰는지를 말해 준다.

“우리 집 황토쌀독에서 엄마가 쌀을 꺼낸 뒤 뚜껑 닫는 소리…여러 가지 색깔이 뒤섞인 저녁 구름…처음 보는 예쁜 단어…학교 운동장에 남은 축구화 자국…내 머리맡에서 아버지가 발톱 깎는 소리…버스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여자애들…그런 것을 봤을 때 난 살고 싶어져......"

아름이가 살고 싶어지는 상황은 너무나 일상적인 것들이다. 엄마가 쌀을 꺼내고 닫는 그 뚜껑 소리를 들으면서 평온한 안식을 찾고, 학교 운동장에 누구나 볼 수 있는 축구화 자국을 보면서 삶의 소중함을 느낀다. 아버지의 발톱 깎는 소리는 아름이에게 그 어떤 달콤한 음악보다, 그 어떤 관현악의 웅장함 보다 더 큰 소리로 다가오고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만든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름이 주변에 펼쳐지고 있는 모든 것, 모든 소리, 모든 표정, 모든 단어, 모든 행동들이 아름이에게는 바꿀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지금 아름이는 ‘살고 싶은’ 그 모든 것에 노출돼 있다.

아름이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병원으로 찾아온 장씨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만일 평생 아픈 자식을 두는 것과 건강한데 일찍 죽는 자식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할아버지는 무얼 고르시겠어요?”

‘애’들이었던 엄마와 아빠에게 고통만 안겨주고 있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궁금해서 일까. 아름이의 이 질문은 무척이나 간단하면서도, 이중 선택형이니, <두근두근 내 인생>의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우리 주변에, 혹은 우리 가족 중에 아프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던가.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한번 씩은 아프기 마련이고, 죽음에 이르는 심각한 병에 걸리는 사람들도 많다. 아름이의 이 질문에 ‘60대’ 장씨 할아버지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그런 걸 선택할 수 있는 부모는 없어.”

그렇다. 부모는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부모이다. 아름이의 질문은 부모에게 묻고 싶은 것도, 장씨 할아버지에게 묻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또 어느 것도 정답인지 듣고 싶었던 것도 아닐 것이다. 다만 자신의 현 상황에서 자신이 건강했으면, 그래서 ‘애’들인 엄마와 아빠가 더 이상 자신으로 인해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라는 자기 고백일 뿐이다.


아름이는 그렇게 자신이 이제껏 봐 왔던 모든 것을 고스란히 기억하면서 마지막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운명의 그날. 자신의 엄마가 동생을 배속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어머니에게 부탁한다. 한 번만 엄마 배를 만질 수 있겠느냐고. 엄마 배를 따뜻하게 쓰다듬으면서 아름이는 마지막으로 말한다.

“언젠가 이 아이가 태어나면 제 머리에 형 손바닥이 한번 올라온 적이 있었다고 말해주세요.”

그렇게 아름이는 떠나갔다. 보이는 모든 것, 듣는 모든 소리, 맡아지는 모든 냄새가 아름이에게는 ‘살게끔’하는 존재들이자 욕구였지만 아름이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회를 보는 동안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떠올랐다. 늙은이로 태어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아이로 변하는, 거꾸로 성장하는 ‘버튼(브래드 피트 분)’. 사랑하는 이를 만나 딱 중간쯤 같은 나이가 되었다가 여자는 할머니로, 버튼은 아이로 점점 멀어지는 모습…마침내 ‘80대’ 꼬마가 된 버튼은 여자 친구의 품에 안겨 이 세상의 많은 것을 느끼고 사라진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조만간 단행본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1년 동안 <창비>를 통해 읽어 온 기쁨이 적지 않다. 단행본이 나올 때쯤이면 수은주 17도를 오르내렸던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와 있을까. 콩쾅콩쾅 내 인생을 두근두근 거리게 하는 많은 것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애란 작가

1980년 인천 출생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brokenname@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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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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