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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29 서울 종로여! 세상의 모든 ‘순이’에게⋯임화의 <다시 네거리에서> (4)

1953년 8월3일 평양⋯임화는 재판정에 무표정하게 서 있다. 자포자기의 심정과 극도의 공포감을 그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었다. 검사의 질문이 시작되기 전, 임화의 머릿속으로 서울 종로의 네거리가 떠오르지 않았을까.

검사: 일본 제국주의시대에 피고가 해왔던 문학운동은 계급적 문학운동이었던가?

임화: 아닙니다. 그것은 일제의 어용문학이었습니다.

검사: 미군을 환영하는 사업을 조직한 일이 있는가?

임화: 약 300 명의 문화인을 동원시켜 미군환영 시위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임화는 민족반역자⋅종파주의자라는 죄명을 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젊은 시절, 서울 종로의 ‘순이’를 보살피고 ‘순이’의 가난을 자신의 가난으로 생각했던 마음 따뜻했던 그가 분단된 조국에서 자신이 사랑했던 사상의 공간에서 오히려 짧은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었다.

대학생 시절,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 대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박영희가 카프의 활동을 두고 “얻은 것은 이념이고, 잃은 것은 예술”이라고 말했지만 카프의 성격을 단순히 이 한마디로 매듭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임화는 카프의 핵심 활동 인물로 그의 시에는 따뜻한 정감과 자신보다 민중을 먼저 생각했던 희생정신이 깃들어 있다.

임화의 ‘순이’는 지금 이 시대에도 존재한다

임화는 시인이자 평론가였다. 그의 대표작인 <네거리 순이>를 읽어본다.

눈바람 찬 불상한 도시 종로 복판에 순이야!

너와 나는 지나간 꽃 피는 봄에 사랑하는 한 어머니를

눈물나는 가난 속에서 여의었지!

그리하여 너는 이 믿지 못할 얼굴 하얀 오빠를 염려하고,

오빠는 가냘핀 너를 근심하는,

서글프고 가난한 그날 속에서도,

순이야, 너는 마음을 맡길 믿음성 있는 청년을 가졌었고,

내 사랑하는 동무는

청년의 연인 근로하는 여자 너를 가졌었다.(<네거리 순이> 중 부분)

<네거리 순이> 중 부분이다. 시인은 추운 겨울, 종로 복판에서 순이를 만난다. 순이는 임화의 친 동생일 수도, 당시에 노동하는 모든 여성일 수도 있다. ‘순이’는 일제시대 ‘눈바람’ ‘가난’ ‘근로하는’ 모든 여성의 대명사로 해석된다.

그런 순이를 ‘근심하는’ 나는 다행스럽게 ‘내 사랑하는 동무’를 소개시켜 주고 ‘순이’의 가난하면서도 가냘픈 마음에 한가닥 위로를 던져준다. 임화는 자신의 사상만을 고집하고 이념만을 강조했던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이념을 지탱해 주는 다정다감함과 희생정신, 배려하는 정신이 그를 알게 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임화가 말했던 ‘순이’는 그 당시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순이’는 존재한다. 한 맺힌 농성으로 최근 관심의 대상이었던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아무도 관심가지지 않을 때 그들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서 찬 점심을 먹고 화장실 바닥에 지친 몸을 뉘어야 했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꽃다운 나이에 백혈병으로 죽어간 그녀들⋯스물도 채 안된 꽃다운 나이의 젊은이들이 백혈병으로 죽어갔다. 내 노동으로 가족들을 부양하겠노라고 외쳤던 다짐은 어디로 가고, 젊고 잘 생긴 청년을 만나기도 전에 그들은 세상을 달리했다.

아직도 자신의 노동으로 밖에 살 수 없는 이 시대의 여성 노동자들⋯종로 네거리 ‘순이’는 현재에도 존재하고 미래에도 존재할 수밖에 없다.

임화가 그렸던, 만들고자 했던 세상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 텐데. 임화가 살아있다는 어떤 느낌을 가지고 지금의 상황을 시(詩)로 이야기할까.

임화의 <다시 네거리에서>에서는 ‘순이’가 잘 살기를 바랬건만 현실은 그렇지 않고, 모든 것이 더욱 참담해지고 암울해지고, 낯선 모습의 종로 네거리를 그린다.

번화하는 거리여! 내 고향의 종로여!

웬일인가? 너는 죽었는가, 모르는 사람에게 팔렸는가?

그렇지 않으면 다 잊었는가?

나를! 일찍이 뛰는 가슴으로 너를 노래하던 사내를,

그리고 네 가슴이 메어지도록 이 길을 흘러간 청년들의 거센 물결을,

그때 내 불쌍한 순이는 이곳에 엎더져 울었었다.

그리운 거리여! 그 뒤로는 누구 하나 네 위에서

청년을 빼앗긴 원한에 울지도 않고,

낯익은 행인은 하나도 지내지 않던가?(<다시 네거리에서> 부분)

‘다시 종로 네거리’에 섰지만 시인은 우울하고 암울하다. 잘 생긴 청년을 만났던 ‘순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옛날 ‘엎더져 울었던’ 모습만 떠오르고 잘 생긴 청년을 빼앗겨 버린 ‘순이’만 그려진다. ‘순이’는 그 옛날 ‘네거리 순이’보다 더 참혹해진 모습으로 다가온다.

‘순이’는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안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조차 알 길이 없다. 그런 비극에도 불구하고 종로 네거리는 갈수록 번화하고 사람들로 넘쳐난다. 물질적 변화가 급격하게 이뤄지지만 종로 네거리에 선 시인은 참담함을 느낄 뿐이다.

1980년대, 내가 태어났던 고향은 깊은 산골이었다. 설과 추석이 되면 타지로 나갔던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들 중에도 ‘순이’가 많았다. 그들은 초등학교, 중학교를 갓 졸업하고 모두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노동을 팔기 위해’ 도시로 나갔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한 손에는 큰 댓병 ‘정종’을, 한 손에는 다양한 과자가 포장돼 있는 종합선물세트를 들고 고향을 찾아 들었다. 일 년에 두 번, 헤어졌던 가족들이 만나는 날이었다. 나는 그때 조무래기였는데 버스를 타고 선물을 들고 나타나는 그녀들이 부러웠다. 그녀들은 명절 전날 왔다가 명절 당일 저녁에 모두 버스를 타고 먼지를 날리며 도시로 돌아갔다. 짧은 고향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모두 약속이나 한 듯이.

그녀들이 모두 ‘순이’였다. ‘정종’과 ‘과자종합선물세트’만 바라봤던 나는 그녀들이 어떤 극한 상황에서, 어떤 고통 속에서 일을 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녀들에게도 젊은 청년이 나타났을까.

종로 네거리에는 지금도 ‘순이’가 있다. 임화에게는 이 현실이 더욱 그를 아프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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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