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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28 죽음의 시간을 안다면, 당신의 선택은?∣기욤 뮈소 <그 후에> (2)

여기 한 사람이 있다. 과연 그가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어느 날, 굿리치라는 의사가 변호사 네이션을 찾아온다. 그는 네이션을 데리고 어느 빌딩 전망대를 찾아간다. 굿리치는 한 젊은이를 가리키며 “곧 저 젊은이가 죽을 것”이라고 네이션에게 말한다. 굿리치가 지목한 젊은이는 전망대에서 권총 자살을 한다. 굿리치는 이번에는 한 카페에서 일하는 여성을 지목한다. 이 여성도 은행 강도 사건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굿리치는 죽음을 예언하는 ‘메신저’였다.

네이션은 굿리치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면서 ‘이제 내 차례구나’라고 생각한다. 곧 죽을 것임을 안 네이션은 이혼한 아내 말로리와 다시 합치고자 한다. 딸 보니를 데리고 장인 댁인 제프리를 찾는다.

장인 댁에 며칠 머무는 동안, 장인은 네이션의 차를 몰고 나갔다 음주사고를 저지른다. 아이를 친 것이다. 아이는 의식불명이다. 네이션은 장인 대신 자신이 죄를 덮어 쓰기로 마음먹는다. 이제 죽을 몸인 자신이 죄를 덮어쓰는 게 좋겠다는 판단. 자신이 죽고 나서도 아내 말로리와 딸 보니에게 더 없는 선물일 것이라고 판단한다.

아버지인 제프리로부터 네이션의 모든 일을 전해들은 말로리는 네이션과 뜨거운 포옹을 하고 다시 사랑하게 된다. 재결합하고 달콤한 사랑을 나눈 다음 날 아침, 팬케이크가 익어가는 냄새와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평온한 아침, 네이션은 잠옷을 입고 침실에서 부엌으로 내려간다. 네이션은 아직 자신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그런데 팬케이크를 만든 뒤 뒤를 돌아보는 말로리의 해맑은 표정과 머리 위에 하얀 빛이 서려 있다. 사라지지 않고. 네이션은 놀란다. 굿리치로부터 “죽을 사람은 머리 위에 하얀 빛이 서린다”고 전해 들었기 때문. 네이션은 자신이 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또 다른 메신저가 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죽는 사람은 사랑하는 아내, 다시 찾은 아내 말로리였던 것.

기용 뮈소의 <그 후에>의 소설 줄거리는 간단하다. 죽음을 예고하는 ‘메신저’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이 세상이 있고, 그 메신저로부터 죽음을 전달받은 한 남자의 자시 독백과 고백, 그리고 죽음을 앞둔 한 남자가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담았다.

말로리는 전형적으로 있는 집안의 딸이었다. 말로리 아버지는 하버드 출신의 변호사, 어머니는 보스턴의 전형적인 중산층 집안. 반면 네이션은 그런 말로리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를 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죽음에 이르는 길, 누구나 갈 수밖에 없다

네이션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주인집 딸 말로리와 결혼도 하고 변호사로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둘째 아들 션의 죽음으로 말로리와 멀어지게 된다. 급기야 이혼에 이르고 만다.

그런 와중에 ‘메신저’라고 자신을 밝힌 굿리치가 네이션을 찾아온 것이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길이다. 생명체로 태어난 이상. 다만 그 시간이 상대적으로 빨리 오느냐, 아니면 늦게 오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누구나 갈 수밖에 없는 죽음의 길이라면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명확해 보인다. 어떻게 죽음의 길에 이를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네이션은 죽음의 길에 다다랐다는 스스로의 인식으로 헤어진 말로리와 다시 결합하고, 그동안 자신이 관심가지지 못했던 소소한 일상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인다. 자신이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버렸던 모든 것이 사실은 너무나 소중했던 것이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소설은 반전이 있다. 네이션은 굿리치의 등장으로 자신이 죽는다는 것에 무게를 둔 나머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죽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예언하는 또 다른 메신저일 뿐이고 죽는 사람은 헤어졌다 다시 사랑으로 뭉친 자신의 연인, 말로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까.

여기서 한 영화가 겹쳐 떠오른다. 2004년, 닉 카사베츠 감독의 <노트북(The Notebook)>이다. 노아(라이언 고슬링)와 엘리(레이첼 맥아덤즈)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영화의 시작은 아름다운 석양이 지는 사이로 긴 날갯짓을 슬로 모션으로 이동하는 철새를 창문으로 바라보는 늙은 엘리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엘리는 치매로 병원에 요양중이다.

노아는 엘리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자신들이 그동안 겪어온 사랑 이야기를 담은 내용을 끝없이 반복해 읽어준다. 며칠 동안 이야기를 읽어 주다보면 엘리가 짧게는 5분 정도 기억이 되돌아온다. 그때만 자신이 평생 사랑했던 노아를 알아본다. 그러나 5분이 지나면 다시 기억을 잃어버리고 전혀 낯선 사람으로 돌아가 버린다.

<노트북>은 기용 뮈소의 <그 후에>와 상당히 많은 부분 비슷한 부분을 담고 있다.

부잣집 여자 집안과 가난한 남자 집안. 부잣집 여자집안은 당연히 가난한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딸을 반대하고, 그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이르는 험난한 과정, 이런 측면에서 꼭 닮았다.

또 하나, 서로에 대한 사랑을 끝까지 잃지 않고 영혼히 간직한다는 것. 이런 점에서 영화 <노트북>과 소설 <그 후에>는 많이 겹쳐진다.

<노트북>의 마지막 장면은 조그마한 침대였다. 심장발작으로 잠시 병원 신세를 지고 돌아온 노아가 밤늦게, 병원 규칙도 어기면서, 엘리의 병실로 간다. 이때 엘리는 노아를 알아본다. 그리고 좁은 1인용 침대에 ‘잘자, 내일 봐.’라고 서로 인사를 나눈 뒤 두 손을 마주잡고 잠에 든다. 그러나 다음 날, 해가 뜨고 간호사가 엘리의 병실에 들어 왔을 때 두 사람은 너무나 평온한 표정으로 두 손을 꼭 잡고 죽어 있다. <노트북>은 곳곳에 아름답고 화려한 영상미로 눈길을 끌었다.

<그 후에>는 술술 읽힌다. 어려운 단어도, 깊게 생각할 문장도 없다. 해석에 어려움이 없이 마치 만화를 읽듯 넘어간다. 무척 통속적이고 대중적인 소설이다. <그 후에>는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영상이 떠오른다. 시나리오를 읽는 느낌, 영화관에 앉아 영상을 보고 있는 듯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기욤 뮈소의 문체는 평이하며, 문체의 독특한 기법보다는 물이 흐르듯이 감정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강조한다. 또 복잡하고 거친 형식보다는 편안하고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해 보고 생각해 봤을 만한 내용을 그리고 있다.

죽음을 예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메신저’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그런 현실에서 나의 죽음, 혹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알았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이 소설은 묻고 있다.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의 길!

<그 후에>는 죽음과 이를 둘러싼 우리들의 고민을 한 번 더 성숙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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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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