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상당히 두껍다. 읽다보면 계속 반복되는 내용에 때론 질리고 눈에 들어오지 않는 부분도 많다. 목차를 보면 더 곤혹스럽다. '한국의 진보와 시민사회' '보수의 시대, 진보의 시대' '보수와 진보의 쟁점' '현실 정책의 쟁점' '진보의 미래와 전략' 등 총 5부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은퇴 후 봉하마을에서 은둔아닌 은둔을 하면서 적고 싶었던 내용들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5년의 임기 동안 끊임없이 '진보와 보수'에 대한 고민을 했고 직접 체험한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그를 '책 쓰는 대통령'으로 남겨놓지 못했다. 정치적 격랑에 휩쓸려, 아니 오히려 자신이 그렇게 논쟁하고 적고 싶었던 쟁점으로 인해 유명을 달리하는 비극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어느 나라가 선한 나라인가. 어느 나라에 살고 싶은가"

제1부에서 제5부까지 철저하게 진보와 보수의 역사와 쟁점, 그리고 그로 인해 달라지는 가치판단 등이 반복되면서 깊이를 더해 가지만 그 중에 '미국과 유럽은 어떻게 다른가-유러피언 드림과 사람 사는 세상' 한 챕터만 읽어보더라도 이 책의 묘미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먼저 노 전 대통령의 음성부터 들어보자.

첫 번째 목소리.

"나는 제레미 리프킨이라는 사람이 쓴 <유러피언 드림>이라는 책과 폴 크루그먼이라는 사람이 쓴 <미래를 말하다>라는 책을 읽고 '보수의 나라와 진보의 나라', '보수의 시대와 진보의 시대', 이런 관점을 발견했다. 살아 있는 현실로서 미국과 유럽을 비교해 보고, 살아있는 역사로서 진보의 시대와 보수의 시대를 비교해 보는 것이다."

두 번째 목소리.

"어느 나라가 선한 나라인가. 어느 나라에 살고 싶은가? 아이를 어느 나라에 살게 하고 싶은가? 어느 나라가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죠."

노 전 대통령의 목소리는 그의 저서 <진보의 미래>에 담겨져 있는 내용이다.

'유러피언 드림과 사람 사는 세상'

노 전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가 서로 어떻게 다른 지를 선명하게 비교해 누구나 알기 쉽게 보여 주고 싶은 욕망이 많았다. 몇십 년, 아니 몇백 년 동안 내려오고 있는 서로 다른 관점을 어떻게 하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의 고민이었다. 평범한 보통사람이라도 '깨어 있는 보통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러피언 드림과 사람 사는 세상' 챕터에서 노 전 대통령이 선명하게 구분해 내려고 했던 미국과 유럽의 입장을 이렇게 나열한다.

첫째 미국적 가치는 경제 성장, 개인의 부, 독립을 중시하는 반면, 유럽적 가치는 지속 가능한 개발, 삶의 질, 상호 의존에서 더 초점을 맞춘다.

둘째 미국적 가치는 지칠 줄 모르는 근로 윤리를 중시여기는 반면, 유럽적 가치는 여가와 심오한 놀이를 선호한다.

셋째 미국적 가치는 동화주의를 지향하는 반면, 유럽적 가치는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하고 다문화주의를 지향한다.

넷째 미국적 가치는 자기 나라와 애국주의에 집착하는 반면, 유럽적 가치는 보다 세계주의적이다. 전자는 철저히 개인주의적이고 인류의 복리에 거의 관심이 없는 반면, 후자는 포용적이고 총체적이어서 인류 전체의 복리를 중시한다.

이 교수는 이런 점을 강조하면서 노 전 대통령이 '유러피언 드림'에 몰입한 배경을 꼽았다.

노 전 대통령이 '꿈꾼 나라'는 이런 측면에서 보다면 그렇게 거창하고 고매한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어떻게 보면 '상식에 가까운 삶'을 공동체가 함께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일반 서민이 생각하는 고민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또 '유러피언 드림'을 추천하고 있지만 미국적 가치를 지양하고 유럽적 가치만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유럽적 가치를 통해 '한국적 민주주의'와 '한국적 삶과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 것인지 상승 발전하는 길을 모색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 '유창하지도 않았던 꿈'은 끝내 빛을 보지 못하고 말았다. 이제 그 꿈은 살아있는 자들의 몫으로 남겨졌다.

"미국인들은 일하기 위해 살고, 유럽인들은 살기 위해 일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노무현이 꿈꾼 나라>에는 생전에 그가 말한 내용이 각 챕터마다 언급돼 있어 고인의 음성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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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참여정부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이 출간을 앞두고 있다. 그는 그 누구보다 노무현의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봐 온 인물이다. 참여정부의 시작에서부터 노무현 서거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노무현의 곁에 있었다.

<문재인의 운명>은 아직 출간 전이다. 오늘 책에 담길 ‘서문’이 공개됐다. 우선 그의 ‘서문’부터 읽어보자.

강물이 되어 다시 만나기를

세월이 화살 같다. 우리가 노무현 대통령과 이별한 지 어느덧 두 해가 됐다. 그 느낌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이들에게 ‘그를 떠나보낸 날’은 여전히 충격과 비통함이며, 어떤 이들에게 ‘노무현’은 아직도 서러움이며 아픔이다.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 ‘그와 함께 했던 시절’은 그리움이고 추억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 있다. 이제 우리는 살아남은 자들의 책무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그가 남기고 간 숙제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노무현 시대를 넘어선 다음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과거에 머무를 순 없다. 충격 비통 분노 서러움 연민 추억 같은 감정을 가슴 한 구석에 소중히 묻어두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냉정하게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그를 ‘시대의 짐’으로부터 놓아주는 방법이다. 그가 졌던 짐을 우리가 기꺼이 떠안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다.

2주기를 앞두고 사람들이 내게 책을 쓰라고 권했다. 이유가 있는 권고였다. 노 대통령은 생전에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남기지 않았다. 기록으로서 솔직하고 정직해야 하는데, 아직은 솔직하게 쓸 자신이 없다고 했다. 혼자 하기에 벅차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같이 일했던 사람들에게 공동 작업을 청했다. ‘함께 쓰는 회고록’으로 가자고 했다. 저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대를 기록해 보라고 부탁했다. 그 다음에 당신이 하겠다고 했다.

그 부탁을 했던 분도, 그 부탁을 받았던 우리도 미처 뭔가 해 보기 전에 갑작스럽게 작별해야만 했다. 그러니 무엇보다 중요한 숙제는, 그와 함께 했던 시대를 기록하는 일임이 분명하다. 노 대통령과 오랜 세월을 같이 했고, 지금은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내가 그 일을 맨 먼저 해야 한다고들 했다.

하지만 엄두가 안 났다. 그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기록을 충실히 하며 살아오지 않았다. 하도 엄청나고 많은 일을 겪어, 자료를 보지 않으면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도 했다. 주저되는 부분도 많았다. 대통령이 고민했던 것처럼, 나 역시 100% 솔직할 수 있을지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동시대를 함께 살았던 많은 분들이 있는데, 자칫하면 이런 저런 부담을 드리거나 누가 될 소지도 있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쓰기로 생각을 한 것은, 한 가지 이유에서다. 또 한 정권이 끝나간다. 국민들은 희망을 갈구하고 있다. 더 이상 절망의 시기가 반복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 정부가 역사에 반면교사(反面敎師)라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역사에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증언을 남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한 시대를 같이 살았던 사람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를 함께 했던 사람들이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책무는 자기가 보고 겪었고 일했던 내용을 증언하는 것이다. 다음 시대에 교훈이 되고 참고가 될 내용을 역사 앞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을 극복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참여정부를 넘어서야 한다. 성공은 성공대로, 좌절은 좌절대로 뛰어넘어야 한다. 그런 바람으로 펜을 들었다.

책을 정리하면서 보니, 참 오랜 세월을 그와 동행했다. 그 분은 내가 살면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따뜻하고 가장 치열한 사람이었다. 그 분도, 나도 어렵게 컸다.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려 했고, 이웃들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함께 세상을 바꿔보고 싶었고, 함께 희망을 만들어보고자 애썼다.

그 열망을 안고 참여정부가 출범했다. 이룬 것도 많고 이루지 못한 것도 많다.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아쉬움이 많다. 후회되는 것도 있다. 견해의 차이로 마음이 멀어진 분들도 있다. 개혁-진보진영의 ‘과거 벗’들과도 다소 마음이 멀어진 듯하다. 우리뿐이 아니다. 개혁-진보진영 안에서도 상처와 섭섭함이 남아 있다. 하지만 노 대통령 서거는 우리에게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 줬다. 다음 시대를 함께 준비하기 위해 우리는 마음을 모아야 한다. 마음을 모아야 힘을 모을 수 있다.

더 이상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애증(愛憎)의 대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분은 떠났고, 참여정부는 과거다. 그 분도 참여정부도 이제 하나의 역사다. 그냥 ‘있는 그대로’ 성공과 좌절의 타산지석이 되면 좋겠다. 잘 한 것은 잘한 대로, 못한 것은 못한 대로 평가 받고 극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분도 그걸 원하실 것이다.

노 대통령과 나는 아주 작은 지천에서 만나, 험하고 먼 물길을 흘러왔다. 여울목도 많았다. 그러나 늘 함께 했다. 이제 육신은 이별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나와 그는, 정신과 가치로 한 물줄기에서 만나 함께 흘러갈 것이다. 바다로 갈수록 물과 물은 만나는 법이다. 혹은, 물과 물이 만나 바다를 이루는 법이다. 어느 것이든 좋다.

이 같은 나의 절절한 마음을, 내가 좋아하는 도종환 시인이 한편의 시에서 어쩌면 그리 잘 표현했는지 모르겠다.

<멀리 가는 물>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 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 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미 더럽혀진 물이나
썩을 대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추어 버리는 물은 얼마나 많은가
제 몸도 버리고 마음도 삭은 채
길을 잃은 물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물을 보라
흐린 것들까지 흐리지 않게 만들어 데리고 가는
물을 보라 결국 다시 맑아지며
먼 길을 가지 않는가
때 묻은 많은 것들과 함께 섞여 흐르지만
본래의 제 심성을 다 이지러뜨리지 않으며
제 얼굴 제 마음을 잃지 않으며
멀리 가는 물이 있지 않는가.

이 땅의 사람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결국은 강물이 되어 다시 만나고, 역사의 큰 물줄기를 이뤄 함께 흘렀으면 좋겠다. 강물은 좌로 부딪히기도 하고 우로 굽이치기도 하지만, 결국 바다로 간다. 장강후랑최전랑(長江後浪催前浪)이라고 했던가. 그러면서 장강의 뒷물결이 노무현과 참여정부라는 앞물결을 도도히 밀어내야 한다. 역사의 유장한 물줄기, 그것은 순리다. 부족한 기록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처음에 마뜩찮아 하던 나를 설득해 책을 내도록 권고한 분들이 꽤 많다.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받아들인다. 방대한 양의 내 녹취와 증언을 꼼꼼히 정리하여 자료로 만들어 주느라 고생한 사람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그 작업이 없었으면 나는 책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 원고를 자신의 것인 양 정성껏 봐주고, 의견을 주신 분들의 노고도 고맙기만 하다. 책을 완성해 준 <가교출판> 식구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그 모든 분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노 대통령 2주기에 맞춰 발간해, 그 분 영전에 헌정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열심히 정리했지만 부족하거나 정확하지 않은 부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쪼록 이 책이 그 분이 바랐던 ‘함께 쓰는 회고록’의 출발점이기를 바란다. 그 분과 함께 했던 다른 분들의 알찬 기록이 속속 나오기를 기대한다.

2011년 5월 문재인


문재인 이사장이 <문재인의 운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그가 서문에서 밝혔듯 “이명박 대통령과 이명박 정부가 역사에 반면교사(反面敎師)라면,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역사에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증언을 남기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도 내년이면 막을 내린다. 내년에는 총선과 대통령 선거가 있다. 정치적 격랑 속으로 다시 한번 대한민국이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의 운명>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현재 ‘문재인 대망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니 그의 책에서 어떤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언급될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문재인 이사장은 서문을 통해 “이제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을 극복해야 한다”라고 썼다. 이 부분이 바로 ‘문재인 대망론’과 연결될 지도 모르겠다. 나는 문재인 이사장이 대통령 후보로, 혹은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없다. 다만 그는 늘 곧은 정신과 맑은 자세로 참여정부의 숨은 역할을 했다는 것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대권 후보들 중에 문재인 이사장 만큼 온화하고, 다정다감하게 다가오는 인물은 없는 것 같다.

‘노무현’은 이제 역사가 됐다. 그의 역사는 잘된 것도 있고, 잘못된 것도 있다. 무엇보다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잘못된 것은 고치는 자세”를 준다는 데 있다.

따라서 문재인 이사장이 노무현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부분을 강조했으며, 그 강조점이 앞으로 우리 시대가 발전하고 변화하는데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문재인 대망론’을 두고 여러 가지 말들이 많은 상황에서 <문재인의 운명>에서 과연 어떤 고민과 해답이 나올지 벌써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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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대통령은 누구나 국민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

역대 어느 대통령이든 국민과 함께 사진기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나는 국민의 대통령이요!”라는 메시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다. 이승만에서부터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모두, 하나같이 모를 심고, 서민 식당을 가고, 재래시장에서 손을 잡고⋯그런 사진이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똑같은 사진들인데 유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과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재래시장에 선 사진에서 진정성을 보는 것은 왜일까. 대통령이기 이전에, 정말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다른 전직 대통령은 ‘국민과 친구’라기 보다는 정말 ‘권력자’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노무현’ 이었는데 오히려 국민들이 그를 친구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는지 우리 스스로 생각해 볼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2주년이 돌아왔다. 그를 떠나보낸 지 벌써 2년이 흘러 버렸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있을 때 춘추관 출입기자로 있었다. 우리 매체(아이뉴스24)가 당시 종합 미디어가 아닌 IT전문지였던 배경으로 취재하는데 한계는 있었지만 가끔 기자회견, 출입기자 영빈관 초청 등의 행사를 통해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가 많았다.

당시 적었던 기사들을 돌이켜 본다.

2003년 5월6일 “노 대통령, 첫 노트북 국무회의”

6일 청와대에서는 종이 없는 '노트북 국무회의'가 열렸다. 참여정부 들어 처음 있는 일이다. 20명의 국무위원과 배석자인 청와대 비서실장, 정책실장 앞에 종이 서류 대신 노트북이 놓여졌다.

국무회의에서 논의될 보고 자료와 토론 안건이 국무위원의 노트북에 미리 저장됐다. 노트북 화면을 통해 회의가 시작됐다. 참여정부의 전자정부 비전과 추진원칙에 대한 발제가 이어졌다.

김병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은 파워포인트로 제작된 내용을 발제했다. 국무위원들은 노트북 화면에 나타나는 발제 내용을 보면서 진지하게 들었다. 김 위원장은 "(전자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부처 간 정보공유가 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국무회의는 노트북으로 회의를 진행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노트북은 단지 툴(Tool)에 불과하다. 부처 간 정보공유와 전자정부 조기구축이라는 상징성이 담겨 있는 것이다.

장관들 가운데 30% 정도는 각자 자신이 사용하던 노트북을 들고 와 컴퓨터 사용에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회의가 시작되기에 앞서 컴퓨터 전문가를 자청하는 장관들은 상대적으로 익숙지 않은 장관들에게 '훈수'를 두는 모습도 얼핏 보였다. 반면 컴퓨터 앞에 앉아 불안한 모습으로 이것저것 자판기를 두드려 보는 국무위원도 있었다.

청와대 대변인실의 한 관계자는 "노트북 국무회의는 참여정부의 전자정부 조기구축에 대한 열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처의 관점과 네트워크 관점을 아우르는 회의에 그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각 부처는 부처의 특성에 맞게 정책을 결정해야 된다. 부(部)의 관점이다. 이를 다른 부처와 네트워크로 연결시켜 종합적 정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자세가 절실하다. 네트워크의 관점이다.

노 대통령은 노트북 국무회의와 관련해 "오늘은 장관들이 초보적 자료만 담아 와서 진행했는데 온라인을 통해 같은 DB에서 자료를 보는 것 말고도 필요한 (각 부처 등의) DB에 바로 접근해 토론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부의 관점을 견지하되 다른 부처와 네트워크로 연결해 다양한 의견에 대한 토론과 의견청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종합적 정책을 이끌어 내는 노력을 기울여 달라는 주문이다.

노 대통령은 “그렇게 점차 통합의 기반을 넓혀가야 하며 이를 염두에 두고 (장관들이) 노트북과 친해져 달라”고 당부했다.

첫 노트북 국무회의를 대한 국무위원들의 생각은 모두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부처 간 원활한 업무조정과 전자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처 간 정보공유의 부재'를 풀어나가야 하는 숙제를 국무위원들은 떠안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2007년2월27일 “노무현과 친구 같은 대통령”

2007년 2월27일 여기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최고 권력자의 권위를 거부했다. 가능한 권력을 분산시켰다. 시민과 함께 오붓하게 포장마차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자리를 만들고자 했다. 국민과 소통하고 싶었다. 2003년 2월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5년 임기 중 4년을 보냈다.

2007년 2월 현재.

이제 이런 생각을 그는 해 본다. 한국에서 국민은 대통령을 '친구 같은 대통령'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생각이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국민과 소통하기 어려워 '갑갑하다' '답답하다'는 말을 그는 이어간다.

노무현 대통령은 27일 한국인터넷신문협회와 합동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날 회견은 한 시간 30분 동안 예정됐지만 그보다 한 시간 이상을 훌쩍 넘겼다. 노 대통령은 정치와 경제, 사회 등 전 분야에 걸쳐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질문자로 참석한 기자의 눈은 그의 곁을 맴돌고 있는 쓸쓸한 분위기를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사회자로 나선 김미화씨가 "자신감 없는 대통령의 모습"이라며 "대통령으로서 힘 있고 정열적인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을 정도니, 기자의 느낌만은 아닌 듯하다.

2002년 12월로 되돌아 가보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적잖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승리이고 국민의 축제로 뽑은 대통령"이라며 환호성을 질렀다.

이제 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국민의 지지율은 겨울 수은주처럼 뚝 떨어졌다. 자신과 함께 대통령 당선에 힘을 모았던 여당 정치인들은 그의 곁을 떠나고 있다. 보수언론은 그의 말투 하나하나를 트집 잡는다. 한국 사회 전체가 그를 향해 돌을 던지고 있는 상황이다. 온 나라가 그를 중심에 놓고 압박하고 있다.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고 싶었던 그는 4년을 보내고 난 뒤 이렇게 되뇌인다. "대통령을 4년하고 나니까 한국에서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대통령은 국민과 친구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데 현실은 이를 허락지 않는다는 괴리감을 반영한 말이다.

원포인트 개헌론을 두고는 정말 답답했는지 "좋다. 그럼 우리 이 자리에서 왜 개헌이 지금 이뤄지면 안 되는지 토론을 해 보자"며 즉석 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국민과 소통이 되지 않아 너무나 답답하다는 모습이었다.

그는 이제 대통령 임기를 1년 남겨놓고 있다. 회견하는 내내 기자는 대통령의 모습에 짙게 밴 허전함과 쓸쓸함을 느껴야만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대통령을 원하고 있었던 것일까. 스스로에게 던져볼 만한 질문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지금 국민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그렇다면 혹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옛날의 제왕적 대통령을 원하는 것일까. 장관도 맘대로 갈아 치워버리고 맘에 들지 않으면 모든 정치권력을 장악, 독단적 리더십을 가진 대통령을 원하는 것인가. 그런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배만 부르면 그것으로 족하단 것인가.

대통령뿐만 아니라 자리를 함께 한 기자도 답답하고 갑갑함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2009년 5월29일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29일 경복궁 앞뜰에서 진행된 영결식을 보기 위해 안국동 사거리부터 경복궁 동문까지, 광화문 사거리에서 경복궁 서문까지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속속 도착한 시민들은 '영결식에는 초청장이 있는 분만 입장이 가능하다'는 설명에 "도대체 언제 국민들에게 초청장 신청을 받는다고 알린 적이 있느냐"며 실랑이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9시 5분쯤 경복궁 동문에서는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흰 상복을 입고 태극기를 몸에 두른 한 할머니는 "공무원들이 이러면 안 된다"며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는 경찰을 나무랬다.

할머니는 "이게 뭐하는 거냐" "대통령님을 마지막으로 보려 왔는데 왜 가로막는 거냐"며 큰 소리로 경찰을 향해 호통을 쳤다.

○…분당에서 출발해 아침 7시에 도착했다는 이두희씨(44, 자영업)는 부인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을 기다렸다. 이씨는 "야탑 광장에 있는 분향소에서 분향했지만 고인을 다시 보기 위해 아내와 함께 왔다"며 "경찰들의 통제가 너무 심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9시47분 마침내 봉하마을에서 올라온 조문객이 먼저 도착했다. 앞면에 '노 전 대통령 영결식(봉하마을)'이라고 붙인 17대의 버스가 경복궁 동문을 차례로 통과해 영결식장으로 곧바로 들어갔다.

순간 길거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은 버스를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의 손짓을 보냈고 버스안의 봉하마을 조문객들도 슬픈 손짓으로 이들에게 화답했다.

○…경찰은 경복궁 동문과 서문을 비롯해 주위를 205개 중대 약 2천여 명으로 철통같은 경비를 섰다. 그런데 이들 중에는 '근조'라는 리본을 탄 경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찰도 있어 눈길을 끌었다.

'근조' 리본을 달지 않은 한 경찰은 "조금 전에 지방에서 올라와서 근조 리본을 달지 못했다"며 차출된 병력임을 설명했다.

○…10시38분 드디어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이 도착하고 있음을 경찰 병력의 신속한 이동으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노 전 대통령 운구행렬이 동문으로 올지, 서문으로 갈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경찰은 우선 시민과 도로를 분리하기 위해 서로 손을 잡고 인간 바리케이드를 쳤다. 또 안국동사거리에서 부터 경복궁 동문까지 야광복을 입은 경찰이 중앙선에 도열하기 시작해 도착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10시47분 마침내 노 전 대통령을 태운 운구행렬이 경복궁 동문 앞에 도착했다. 사이드카가 먼저 앞서고 뒤이어 환하게 웃는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이 지나갔다.

이어 운구차에 영면을 기다리는 고(故) 노 전 대통령이 수많은 시민들 앞으로 스쳐 지나갔다. 시민들은 울먹이기 시작했고 "우리도 영결식을 보게 해 달라" "경찰들이 이러면 안된다!"며 울부짖었다.

운구행렬 중 조문객을 태운 듯한 한 버스에는 '사랑합니다. 미안합니다. 편히 쉬소서'라는 문구를 달고 통과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2009년 5월31일 “슬픈 로그아웃”

오늘 슬픈 로그아웃(Log Out)을 한 사람이 있다. 그는 인터넷을 좋아했다. 직접 인터넷관련 서비스를 개발하기도 했고 자신에 대한 기사나 의견에 직접 댓글 다는 것을 즐겼다.

주저함이 없었다. 참여였고 소통이었다. 인터넷의 기술적 진화와 발전을 좋아했던 것만은 아니다. 인터넷 속엔 언제나 변화가 꿈틀거리고 새로움과 참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여론(용산참사)의 물꼬를 돌리기 위해 또 다른 사건(강모씨 살인사건)을 중점 부각하라는 어떤 정부의 소통과는 다른 방식이었다.

2003년 2월24일 영국의 가디언지는 'World's first internet president logs on(세계 최초의 인터넷 대통령 로그온하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을 두고 한 평가였다. 그는 '인터넷 대통령'으로 불렸다.

또 다시 이 말을 반복해야 하는 일은 슬프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온라인 민주주의를 통한 국민의 참여와 소통을 즐겼다. 그런데 즐김과 여유가 아니라 그에게는 '답답함'과 '갑갑함'이 짙게 드리웠다.

참여를 즐기고 인터넷을 통해 직접 대화하기를 원했던 노 전 대통령에게 '답답함'과 '갑갑함'이 밀려들게 만든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퇴임을 1년 앞둔 지난 2007년 2월27일, 청와대에서 한국인터넷신문협회 주최로 '취임 4주년 합동인터뷰'가 있었다.

정면 단상에 앉아 있는 노 전 대통령에게 기자는 "대통령께서는 이제 1년 뒤면 대통령직에서 로그아웃 하게 된다"며 "그 동안 온라인 민주주의를 직접 체험하고 실천하면서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이 질문에 노 전 대통령은 긴 한숨을 먼저 내쉬었던 것 같다. 이어지는 말은 "온라인 매체(인터넷 매체)조차 없었다면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소통'이 이렇게 힘든 것인 줄 몰랐다며 힘겨운 모습을 보였다.

특정 신문을 언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수구보수언론'으로 대표되는 국내 언론권력으로 힘겨워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을 4년하고 나니까 한국에서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대통령은 국민에게 친구 같은 존재가 되고 싶은데 현실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친구 같은 대통령'은 국민과 직접 의견을 나누고 이야기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고 그랬으면 하는 바람인데 이러한 소망이 제대로 국민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자괴감이었다.

자신의 뜻과 의지는 '수구언론'을 통해 희석되고 변질돼 국민에게 전달되고… 국민들은 '수구언론'을 통해 변질된 내용을 보고 듣고 다시 변형된 여론으로 들끓고…'대통령과 국민은 친구'라는 등식이 대한민국에서는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답답하다' '갑갑하다'라는 말만 되뇌었다.

노 전 대통령 재임 5년 동안의 총체적인 국정운영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비판할 능력이 기자에게는 솔직히 없다. 다만 재임기간 내내 느꼈을 그의 외로움과 고독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그가 한 달 전 '박연차 리스트'로 거론되면서 '인터넷에서 로그아웃 하겠다'고 선언했다. 대통령직에서 '로그아웃'하더니 이제 소통마저 그만두겠다는 '로그아웃'이었다.

검찰은 수사사항을 고의적으로 은근히 언론에 흘리면서 노 전 대통령의 도덕성을 건드렸다.

대검찰청에 소환되기 전 노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노 전 대통령 공식홈페이지)을 통해 "이제 인터넷에 글을 쓰지 않겠다"고 절필을 선언했다.

그리고 한 달 여가 지난 오늘 그는 '영원히 삶과 로그아웃'해 버렸다. 주변의 따뜻한 시선, 천천히 늙음의 여유,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존경을 받으며 자연스럽게 로그아웃 한 것이 아닌 스스로 단절해 버린 로그아웃이었다.

대한민국은 그래서 슬프다. 세 번의 '로그아웃'을 하는 동안 누구도 그의 곁에 '친구'는 없었던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뛰어내리기'까지 그의 외로움과 고독을 그 누구도 함께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 서글프고 고달프다. '친구가 되고 싶었던 대통령'은 외로움과 슬픔만을 간직한 채 홀로 이 세상과 로그아웃 해 버린 것이다.

여보(문재인), 나 좀 도와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여보, 나 좀 도와줘>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성장 배경과 아내를 만나게 되는 사연, 고시를 준비하던 모습, 정치권에 들어와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는 상황 등을 묘사하고 있다. 김해의 촌구석에서 태어나 판사가 되기까지,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인생의 성공이랄 수 있는 판사가 되고 난 뒤 인권 변호사로 다시 인생의 경로를 바꾸게 되는 배경, 또한 파란만장하다. 노무현, 그에게는 “사람 사는 세상”이 가장 이상적인 인생 목표였고, 그 목표를 위해 자신의 현재를 수정하는 여유와 배포를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다.

특히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는 조선일보와 싸움을 벌이고, 조선일보와 적극 맞서는 모습이 담겨 있다. 정치인이 특정 언론사와 갈등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노무현 그에게는 “언론이 언론다워야 사람 사는 세상”이 온다는 믿음과 신념이 있었기에 조선일보와 ‘맞짱 뜨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2012년 또 다시 우리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인물이 부상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변호사가 차기 대통령 후보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문재인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한 인물이다.

참여정부시절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과 대통령비서실 실장을 거쳤다.

일각에서는 이런 문재인 변호사를 두고 “정치 경력도 모자라고, 큰일을 해 보지 못한 분을 어떻게 대통령 후보로 내세울 수 있느냐”는 의문을 표하는 분들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리에게 대통령이란 어떤 사람인가라는 것부터 따져 봐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 당시 압도적 표 차이로 당선됐는데, 여기에는 특이한 현상이 숨어 있다. 그것을 ‘부적 효과’라고 한다.

‘부적 효과’는 말 그대로 ‘부적’을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부자가 되고, 행복해 지고, 잘 살 것 같다는 최면을 심어주는 효과를 말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좋아서가 아니라 마치 ‘이명박을 뽑으면’ 나도 잘 살 것 같은 ‘부적효과’가 당시 선거에 작용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자신의 노력과 자신의 의지가 없이 단지 부적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잘 살고 행복해지려는 것은 ‘도둑놈 심보’나 다름없다. 이미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을 통해 큰 교훈을 얻었다. 이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과연 우리에게 대통령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를 지배할 ‘권력자’를 원하는가, 우리를 제압하는 ‘제왕적 대통령’을 원하는가, 아니면 우리와 함께 걸어갈 ‘조력자’를 원하는가, 그것도 아니면......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 변호사는 충분히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다. 특히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과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믿음과 의지가 큰 사람 중 한명이다.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 살아 있다면 ‘문재인, 나 좀 도와줘’라고 말하고 싶지 않을까.

‘친구 같은 대통령’을 꿈꾸었던 그의 이상, 그리고 사람 사는 세상을 그렸던 그의 철학, 이 이상과 철학을 이젠 남겨진 우리가, 살아남은 우리가 이뤄나가야 할 숙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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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우리에게 ‘왕’은 필요한가. 이 물음에 답하는 것이 우선 성석제의 <왕을 찾아서>를 읽는 준비가 될 것 같다. ‘왕’이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 ‘왕’은 권력의 상징이다. 어느 시대든 간에 왕은 존재해 왔다. 다만 그 이름만 바뀌었을 뿐.

‘왕’은 여러 종류가 있다. 권력을 쥐기 전까지는 모두 국민들을 위한다는 말을 한다. 국민들이 최고이며, 국민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돼 있으며, 국민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소리 높여 말한다. 그러나, ‘왕’이 된 이후에는 변한다.

얼마 전 미국의 폭로 전문사이트인 위키리크스(wikileaks)가 한국 대통령에 대한 평가 자료를 내놓았다는 뉴스가 있었다. 주한 미국 대사의 평가 자료를 바탕으로 내놓은 결과인데 그 멘트가 눈길을 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성격이 다혈질이고 보수적인 정치 이념을 갖고 있는데, 대다수 정책 현안에 대해서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

“국제무대에서 널리 알려진 인물로 외교 정책 모든 부문에서 능숙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고졸 출신의 대통령으로서 국제무대에서는 신인이지만 주관이 뚜렷하고 신념이 확고하다.”

민주주의에서 ‘왕’은 대통령이다. 아직까지 왕이 있는 나라들이 많다. 영국과 일본이 그렇고 아랍의 여러 나라에서도 왕의 혈통이 보존되고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의 선거를 통해 ‘왕’이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왕’을 모시고(?)사는 꼴이다.

가정에서, 회사에서, 동호회에서, 친목모임에서, 그 이름만 다를 뿐 ‘가장’ ‘사장’ ‘회장’ 등 수많은 ‘왕’을 모시고 살아간다. 그런데 과연 ‘왕같은 왕’을 만나 본 적이 있는가???

어떤 왕을 찾고 있는가

성석제 작가를 직접 만났던 적이 있다. 1996년이었던 것 같다. 서울신문사에 있으면서 그를 인터뷰 한 적이 있다. 당시 촉망받는 30대 작가군이라는 타이틀로 인터뷰를 진행했었는데, 은희경, 차현숙, 박상우, 성석제 이렇게 네 명의 30대 작가들을 만났던 기억이 난다.

그의 소설 <왕을 찾아서>도 성석제 소설가로부터 직접 받았다. 책의 첫 장에 성석제 작가가 직접 사인한 글자도 보인다. 오랫동안 책장에 보관돼 있다 다시 읽게 된 셈이다.

어떤 계기가 <왕을 찾아서>라는 책을 다시 읽게 됐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성석제 작가는 개인적으로 아주 존경해 하는 작가 중 한명이다. 그의 소설은 철저하게 ‘농부형’이다. 누구나, 어떤 이든 한번쯤은 겪어 봤을 만한 평범한 이야기들을 그는 적는다. 그렇지만 그 이야기는 그의 글을 통과하고 나면 진부하지 않고 재치 발랄한 언어로 탈바꿈되면서 재밌는,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탈바꿈된다.

<왕을 찾아서>는 한 조그마한 지역 조직의 ‘왕’ 마사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사오는 일본 이름으로 한글로 고치자면 ‘정부(正夫)’이다. 마사오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때 경찰이었는데 아들을 낳자마자 일본 이름을 지었다. 곧이어 해방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한글 이름을 찾았지만 마사오는 그냥 ‘마사오’를 썼다. 그 이유를 두고 많은 궁금증이 일었지만 작가는 다른 엉뚱한 곳에서 이유를 찾는다.

“마사오의 한자어인 ‘정부(正夫)’는 해방이 되면서 대한민국 ‘정부(政府)’의 그것과 발음이 같았고, 남편과 아내가 있으면서도 다른 남자와 여자를 사랑한다는 의미의 ‘정부(情夫, 情婦)’와도 소리가 같아서 마사오는 그냥 마사오를 쓰기로 했다.”

그래서 <왕을 찾아서>에서 ‘왕’인 마사오는 “마사오는 그냥 마사오이다”라는 말로 통칭된다.

<왕을 찾아서>는 작은 지역의 1인자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사오를 정점으로 2인자, 그리고 마사오가 병들어 조직에서 퇴출됐을 때 그 후임을 두고 벌어지는 모략과 폭력, 2인자의 끝없는 갈등과 싸움.

폭력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왕을 찾아서>는 전혀 무겁지도 않고 잔인하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폭력적이지 않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작가의 ‘입담’과 ‘재담’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잔뜩 호기심만 불어 넣는다.

성석제 작가 특유의 이야기꾼 자질과 술술 넘어가는 평이하면서도 입체적인 소설 쓰기는 <왕을 찾아서>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가령 이런 대목이 나온다. 마사오가 병원에 입원했는데 마사오는 병원비를 그동안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더 이상 치료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병원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인다.

그동안 마사오의 은덕(?)을 어떤 방식으로든 입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다. 지역민들이 병원에서 시위를 하지만 병원은 끄덕도 하지 않는다. 그러자 지역민들을 입을 모아 이렇게 외친다.

“우리는 앞으로 이 병원을 절대 이용하지 말 것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절대 아프지 말아서 병원에 오는 일이 없어야 한다. 우리가 병에 걸리지 않으면 이 병원은 마침내 망하고 말 것이다. 앞으로 절대 아프지 말자.”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병원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병원을 망하게 하기 위해” 찾는 방법이 “우리 스스로 건강을 챙기고 절대 병원에 오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한참이나 웃었다. 한참이나 생각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병원은 돈에 환장한 조직인데, 그 조직과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건강 챙기기’라는 결말에 이르는 모습은 읽기도 신나고, 괜히 허허! 허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성석제 소설을 읽는 재미

<왕을 찾아서>에는 성석제 작가의 특유의 재치와 문장 들이 가득하다. 그런 재치와 문장이 띄엄띄엄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거의 매 장마다 나오니, 이 소설은 한번 손에 잡으면 계속 읽지 않을 수 없다.

1996년 내가 성석제 작가를 만나러 갔을 때, 아마 그때 장소가 평촌-산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의 집으로 찾아갔는데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한 쪽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아 모습으로 나를 맞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는 한 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나: “아니, 어쩌다 이렇게 됐습니까?”

성석제 작가: “좀 다쳤습니다.”

나: “많이 다치셨습니까?”

성석제 작가: “아닙니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데 의사가 깁스를 하라고 하더군요.”

나: “불편하시겠습니다.”

성석제 작가: “조금은 불편하네요.”

뭐, 이런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무의식중에 떠 오른다.

나: “아니, 어쩌다 이렇게 됐습니까?”

성석제 작가: “좀 쉬고 싶어서 몽둥이로 다리를 기절시켰습니다. 하도 찾는 놈들이 많아 깁스를 하고 두문부출하고 있습니다.”

나: “많이 다치셨습니까?”

성석제 작가: “다리 한쪽이 숨을 못 쉬겠다고 시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연필을 집어넣어 가끔 긁어주기도 하는데, 이놈의 다리가 분초를 다퉈 짜증난다고, 숨이 막힌다고 하는군요.”

나: “불편하시겠습니다.”

성석제 작가: “불편은요? 찾는 놈 있으면 이런 꼴이라고 말하면 변명하기 좋지, 어디 가지 않으니 드러누워 잠자기 좋지,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으면 책 읽으면 되지, 다리 한쪽이 계속 시위를 하는 것만 빼고는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천국이 이보다 더 좋을까요?”

성석제 작가의 이야기 ‘꾼 기질’은 그 어느 소설가와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그의 소설이 빛이 나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고, 식상하지 않고, 신선하다는 것에 있다.

<왕을 찾아서>는 1인자를 둘러싼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곳엔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인생이 들어 있다. 삶을 통해 한번쯤은 접할 수 있는 슬픔과 기쁨, 사랑과 배신, 분노와 절망 등 오감각이 모두 녹아들어 있다.

우리에게 ‘왕’은 어떤 의미인지.....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내가 정말로 인정하고 스스로 따르고 싶은 ‘왕’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성석제의 <왕을 찾아서>를 읽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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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Small Community! Obama

제 44대 미국 대통령 선거과정에서 버락 오바마에 대해 적극 지지를 보낸 이들 중에는 유색인종들이 많았다고 해. 라틴계 어메리칸, 아시안 어메리칸, 흑인, 히피족 등등등…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마도 그동안 억눌려 왔던, 혹은 차별받았던 그들의 역사가 흑인인 오바마로 향했던

것은 아닐까.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여러 가지 문화가 공존하는 다인종 다문화 사회지만 높은 곳에 있는 분들은 대부분 백인들이었지.
샌프란시스코 15번가에 위치한 유명한 커피숍, 이름은 잊어버렸구나. 카페모카를 시켰는데 은근한 맛이 일품이었어. 그곳에서 조이스 김을 만날 수 있었어. 30대 초반의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아시아 연예문화와 관련된 콘텐츠를 미국 아시안 어메리칸들에게 서비스하는 숨피닷컴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이었지. 얼마전까지만 해도 변호사였는데, 변호사를 일을 접고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이야기하더군. 그녀는 한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했어. 그녀의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기로 하자.
“LA(로스엔젤레스)의 한 방송국에서 진행하는 리얼 프로그램이 하나 있어요. 몇 명의 남성들이 후보자로 나와서 가장 훌륭한 남편감에 도전하는 리얼(실제) 프로그램인데, 최근 한국계 남자가 최종 후보자로 뽑혔어요. 대단한 일이죠?”
그녀는 나에게 반문했어.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지. 그녀가 중학교 다닐 때만 해도 이른바 ‘왕따’가 아주 심했다고 하더군. 그녀의 다른 피부색과 어정쩡한 말투 모두 백인들에게는 훌륭한 놀림감이 됐다는 거야. 하지만 2008년 연말, 미국 방송국에서까지 한국계 미국인이 최종 선택을 받을 만큼 미국 사회는 변화하고 있다고 그녀는 강조했어. 그녀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볼까.
“미국 전체 인구에서 아시안 어메리칸은 약 3%도 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그 비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 미국에서는 아시안 어메리칸들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고, 비중있는 일을 많이들 하고 있죠. 이것 또한 미국 변화의 한 가지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조이스 김은 아주 명랑한 여성이었어. 이야기하는 순간순간에도 웃음이 떠나지 않더군.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고, 혼자서 숨피닷컴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시안 어메리칸들이 미국 중심무대로의 진출이 곳곳에서 가시화되고 있어 상쾌하다는 반응이었어.
이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 수정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등 그동안 전세계를 휩쓸었던 하나의 이즘(~ism)이지. 나는 이러한 ‘~ism’속에서 최근 몇 년동안 우리사회의 가장 주 관심사는 금융이었다고 봐. 돈이라는 것이지. 찬찬히 최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고 충격을 줬던 사건들을 떠 올려보자. 모두가 그 배경과 계층들은 달랐지만 하나로 귀결되는데 그 원인은 ‘돈’이었어. 돈이 최고의 선(善)이 돼 버린 것이지. 땀흘리는 노동을 읽어버렸다고나 할까. 돈이 돈을 벌고, 돈이 돈을 부르고, 1개의 돈이 2개의 돈이 되고...금융 자본주의에서 땀 흘리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이 시작된 거야.
누군가 그랬다고 하지. 아마 솔 알린스키라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알린스키는 그의 책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에서 자본주의에 존재하는 계층을 세부류로 나눴지. 하나는 가진자(haves), 가지지 못한자(have-nots), 조금 가졌지만 더 가지고 싶어하는 자(little have-more wants)가 있다는 거야. 사회를 변화시키는 주 계층은 ‘조금 가졌지만 더 가지고 싶어하는 자’의 의식에 달렸다고 하는데, 이 사람들은 대단히 조심스럽게 변화에 반응한다는 것이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변화에 적응한다는 것이야. 나에게 이익이 되면 그것은 변화에 있어 선(善)이요,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그것은 변화에 있어 악(惡)이라는 것이지. 이런 사람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뜨뜻미지근한 소시민의 모습만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사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 알린스키는 소통에 대해서도 한마디했어.
“다른 사람들과 소통은 당신이 그들에게 애써서 전달하려는 것을 그들이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일어난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만 사물을 이해한다. 이는 당신이 그들의 경험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통은 참 중요한 단어인 것 같아.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소통이 없으면 갈등과 배척만 있을 뿐이지. 알린스키의 말은 쉽지만 이 또한 얼마나 힘든 작업일까. ‘당신이 그들의 경험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소통이라면 정말 어려운 일일꺼야. 그러나 이러한 소통을 이룰 때 정말 우리는 살만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버락 오바마를 두고 노무현 전대통령과 비교하는 기사가 많이 나왔지. 물론 나도 관련 기사를 쓴 적이 있어. 시민들의 참여를 적극 이끌었고 참여의 정치철학을 통해 권력자가 됐다는 사실, 인권변호사 등 자라온 과정이 비슷하다는 것, 인터넷을 참여의 수단으로 적극 이용했다는 점 등 많은 부분이 비슷했어.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영국의 가디언지는 ‘인터넷 대통령, 로그온하다’는 기사를 내놓았고, 버락 오바마가 당선되자 미국의 주요언론들은 ‘인터넷 대통령, 오바마’라는 기사를 쏟아냈어. 루스벨트가 라디오대통령이었고 캐네디가 TV대통령이었다면 버락 오바마는 인터넷 대통령이라고들 불렀지.
인터넷 대통령, 노무현과 오바마...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어. 난 이렇게 평가하고 싶어. ‘변화를 위한 혼돈기’였다고. 혼돈이란 뒤섞여 뒤죽박죽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 그러나 혼란속에는  정돈을 향해 끝없이 나아가는 기운도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노무현 정부를 나는 그런 혼돈의 시기였다고 평가하고 싶어.
금융이 사회를 지배하고 뜨뜻미지근한 변화만이 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변화에 적응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전체 사회를 뒤집어 엎을 만큼 우리에게 동력이란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혁명이라는 말은 점점 수정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앞에서 퇴색돼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소공동체에 대한 꿈을 그리고 싶어.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형용준 사장, 아! 이 사람은 미니홈피로 지금은 많이 알려져 있는 싸이월드의 창업자였어.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더군. 그와 인터뷰 도중에 한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더군.
“샌프란시스코에는 일본인과 중국인들이 많이 살아요. 재팬타운, 차이나타운 등이 있지요. 이들은 매년 정기적으로 축제를 벌여요. 그들의 독특한 문화를 미국인들에게 알리고 참여를 권유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문화를 미국인들에게 전달하는 거죠. 그런데 샌프란시스코에는 코리안타운이 없어요. 한국문화를 알릴 수 있는 축제도 없고...”
그들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그들만의 공간이라고 해서 폐쇄적이거나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만의 문화와 공간으로 다른 이들을 끌어들이고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문화의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 그들의 공간을 존중하고 우리의 공간을 공유하는 것, 이런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봐. 이념과 사상이 다르더라도 소공동체는 존재할 수 있다고 봐.
오바마에 기대를 걸고 있는 미국인들도 이런 소공동체를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히피족의 문화, 인디언의 문화, 아시안의 문화, 흑인들의 문화, 백인들의 문화…너무나 다양하고 천차만별인 그런 문화를 인정하고 그들만의 문화가 공유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지. 백인의 문화와 흑인의 문화가 공유되고 흑인의 문화가 아시안 문화와 공유되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게 자극제가 될 수 있는 변화 말이야. 그것을 두고 혁명을 위한 진화라고 표현하면 좀 서투른 말일까.
아직 미국은 그런 소공동체 문화가 뿌리 내리지는 못한 듯 했어. 미국을 취재하면서 취재원들은 거의 모두 백인들이었는데, 취재와 관계없이 나와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은 유색인종들이었어. 샌프란시스코의 주요 도시를 관통하는 칼트레인(CalTrain)의 차표를 검사하는 사람들은 거의 흑인이었고 택시 운전사는 대부분 인도, 파키스탄, 필리핀 출신들이었지. 호텔에서 일을 하고 있는 하우스키퍼 역시 인도사람이었고 슈퍼마켓의 점원은 대부분 흑인들이 차지하고 있었지. 직업에 귀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왜 그런 직업군에는 백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까...소공동체가 서로 공유되면서 서로 존중되는 모습은 아니었어.
며칠간의 미국 취재를 마치고 샌프란시스코공항에서 다시 싱가폴항공에 올라 한국으로 돌아왔어. 비행기가 미국 땅을 이륙하는 순간, 처음 도착해 몽고메리역에서 만난 홈리스들의 외침이 들리더군.
“Hey! Give me a money!"
그들은 오바마가 대통령에 취임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그렇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지를 꺼야. 어쩌면 지금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어. 한국으로 솟아오르는 비행기안에서 이런 말을 하고 싶더군.
“Hello! Obama, You focus on grassroots. You are looking around your grassroots continuosly. Pay attention to grassroost' yell…"
풀뿌리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어. 비행기는 샌프란시스코 땅을 뒤로 하고 태평양을 향해 날아올랐지.
-끝(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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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