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속이지 않는다.


농사꾼들은 이 말을 신념처럼 받들고 산다. 우리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논과 밭에 대한 애정이 넘쳐났다. 아버지는 새벽 4시면 일어나 소죽을 끓이시고, 새벽일을 나가 저녁이면 돌아오셨다. 하루의 대부분을 땅과 시름하며 지냈다.


당신에게 있어 땅은 삶의 전부였으며, 땅이 있기에 당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찾았다. 그 땅에서 먹거리가 나오고, 그곳에서 4남1녀를 키우는 원천을 발견하셨던 것이다. 땅이 있으니 살아가고, 그 땅으로 자신의 울타리에 있는 자식들이 하나, 둘씩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본 본 것이다.


아버지는 그렇게 땅과 한 세월 보내시고, 아주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 당신이 떠나시기 전에 이미 유산을 모두 정리해 두셨다. 간단했다.


“저 건너에 있는 논과 저 너머에 있는 밭은 장남. 저 건너 논 옆에 있는 논과 재 너머에 있는 조그마한 밭은 둘째... 그리고 모내기 논은 막내...”



그렇게 우리 형제들에게는 논 한마지기와 밭 등이 유산으로 남겨졌다. 형제들은 아버지의 유산 상속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재산은 땅이 전부였으며, 그 이외의 재산은 있을 리가 없었다. 차명으로 만든 통장도 없었고, 다른 사람 이름으로 된 땅도 없었다.


아주 명확하게 드러난 재산이었고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자신의 몫을 물려받았으니. 너무나 깨끗한 유산 상속이었다.


아직 어머니가 고향에 생존에 계셔 물려받은 땅은 그대로 있다. 혹여 물려받은 땅을 자식들이 팔아버리면 어머니가 겪게 될 심리적 박탈감 때문이다. 여전히 어머니는 땅을 밟고 계시고, 그 땅을 보면서 아버지와 추억, 그리고 당신이 겪어온 삶을 살아가는 동력으로 삼고 계시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유일한 낙은 동네 마을회관에 출입하면서 아직 시골에 계신 당신의 벗들과 소일하고, 날씨라도 따뜻한 날이면 저 너머 장남과 재 너머 둘째에게 남겨진 땅을 밝으면서 예전의 풍성했던 추억을 더듬는 일이다.


남은 생애, 어머니에게 밟을 땅을 다른 사람에게 판다는 것은 당신에게 깊은 슬픔을 던져주는 일일 것이다.

“다복한 집안의 재산, 투명하지 못했던 유산”


대부호들의 경우, 자신의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세금과 각종 규제를 피하기 위해 차명으로, 제3자 명의로 재산을 위장해 관리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이런 편법이 동원되고 있지만.


삼성가(家)의 재산 소송이 연일 뉴스 면을 장식하고 있다. 고(故)이병철 회장이 남긴 재산을 두고 벌어지는 자녀들의 소송이다.


이병철 회장은 첫 번째 부인 박두을 여사 슬하에 1928년 이인희(장녀), 1931년 이맹희(장남), 1933년 이창희(차남, 작고), 1935년 이숙희(차녀), 193X년 이순희(삼녀), 1940년 이덕희(사녀), 1942년 이건희(삼남), 1943년 이명희(오녀) 씨 등을 두었다. 또 일본인인 두 번째 부인 구라다 씨 슬하에 1947년 이태희(사남), 1962년 이혜자(육녀) 등 두 명의 자녀가 더 있다.


다복한 가정이었던 셈이다. 다복도 다복이지만 이들 자녀들이 물려받은, 혹은 지금 현재 가지고 있는 재산을 합치면 대한민국의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이병철 회장의 자녀에서부터 손자에 이르면 대한민국의 굵직굵직한 대기업들의 면면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한솔그룹, CJ그룹,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등등.


1987년 이병철 회장은 폐암으로 유명을 달리했고, 박두을 여사도 2000년에 운명했다. 부모가 모두 돌아가신 상황에서 벌어지는 자식들의 소송이라 부모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삼성의 재산 상속 문제의 시작은 삼성그룹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이 차명과 제3자 명의로 비자금은 물론 재산을 관리한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자신도 그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그 실체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내부 직원이었다. 이 폭로로 시작된 삼성문제는 급기야 특검까지 진행돼 수사가 벌어졌으며 그 결과 차명 재산이 있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장남인 이맹희와 차녀인 이숙희 씨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유산 상속은 아직까지는 서열대로 이뤄지는 것이 관례이다. 이건희 회장의 형과 누나는 그동안 숨겨졌던 재산(자신들이 알지 못했던 재산)이 들춰진 만큼 부당한 유산 상속이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되돌려 받아야 한다는 것이 요점이다.


올해는 故 이병철 회장이 유명한 달리는 25주년이자, 삼남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삼성이라면 뭔가 다를까. 정치권력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도 권력을 나눠가질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그의 아들 태종 이방원을 보면 ‘정치권력’이란 ‘아비와 아들’에서도 극한 대립을 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대기업도 이와 다르지 않을까. 아니 오히려 더할 것 같다. 지금은 철저한 자본주의 시대이고, 이 시대를 움직이는 것은 ‘재력’이다. 삼성이 ‘정치권력’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 그러니 ‘정치권력’위에 ‘재력’이 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 삼성을 둘러싼 재산 소송은 형제의 다툼이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자식 간의 관계를 벗어나 뭔가 다른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대기업의 형제들은 형제의 돈독한 관계를 벗어난 뭔가 특별한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번 삼성 家의 재산 소송을 보면서 일반 시민들은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은 부모(父母), 부자(父子), 형제(兄弟)의 관계를 떠나 재산을 둘러싼 그들만의 생존 방식과 계산 방식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는 현실은 씁쓸하다.


오늘은 시골 마을회관에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자식들에게 물려준 땅을 밟고 계실 어머니에게 전화 한통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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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새벽 3시에 눈이 떠졌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정말 저절로 눈이 스스로, 능동적으로 열렸다.

달콤한 잠 속에서 뭔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일어났다. 이후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리맡에 있는 아이패드로 트위터에 접속해 본다. 4월1일 만우절이라 그런지 여러 가지 재밌는 ‘거짓말’들이 타임라인을 물들이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는 어떤 거짓말로 오늘 하루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이내 ‘행복한 거짓말’ ‘재밌는 거짓말’로 세상을 가볍게 웃고 지나가기에는 현실이 너무 버겁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때 타임라인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기사를 접했다.

"내 자식 살려내, 삼성 입사 얼마나 좋아했는데"

기사를 읽는 내내 잠이 오지 않는 새벽만큼 답답하고 가슴이 먹먹했다. 여전히 삼성이라는 공간에서, 삼성이라는 터전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나를 발견한다.

새벽잠을 아침까지 설치고 이른 아침 출근길에 올랐다. 출근길에도 피곤함 보다는 우울함이 먼저 몰려 왔다. 삼성을 둘러싼 유쾌하지 못한 일들과 비극적 경험 들이 하나 둘씩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염무웅 선생의 <문학과 시대현실>이란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책을 펼쳐 들었다. 읽을 차례를 보니 신경림 시인 편이다. 신경림 시인의 시부터 읽어보자.

장에 간 큰아버지는 좀체로 돌아오지 않고

감도 다 떨어진 감나무에는

어둡도록 가마귀가 날아와 운다(<시골 큰집> 부분)


그리하여 산 일번지에 밤이 오면

대밋벌을 거쳐 온 강바람은

뒷산에 와 부딪혀

모든 사람들의 울음이 되어 쏟아진다(<산1번지> 부분)


그리하여 증언하는 자 아무도 없는가.

이 더러운 역사를, 모두 흙 속에서

영원히 원통한 귀신이 되어 우는가.(<1950년의 총살) 부분)


바람은 복대기를 몰아다가 문을 때리고

낙반으로 깔려죽은 내 친구들의 아버지

그 목소리를 흉내내며 울었다,(<폐광> 부분)


저 밤새는 슬프게 운다

상여 뒤에 애처롭게 매달려

그 소년도 슬프게 운다(<밤새> 부분)


메밀꽃이 피어 눈부시던 들길

숨죽인 욕지거리로 술렁대던 강변

절망과 분노에 함께 울던 산바람(<해후> 부분)

위에 언급된 시 모두 우리 현대사의 질곡과 아픔, 학대받는 자들의 울음과 분노, 절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경림 시인의 시를 엿보면서 삼성을 떠올리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 삼성과 관련돼 많은 증언을 했던 사람들은 조금씩 잊혀가고 이젠 ‘증언하는 자 아무도 없는가’라고 신경림 시인의 시가 다르게 읽힌다. 그래서 ‘이 더러운 역사를, 모두 흙 속에서 영원히 원통한 귀신이 되어 우는가’라고 분노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게 ‘더러운 역사’와 ‘흙 속에서 영원히 원통한 귀신이 되어 울 때’ 밤새도 슬프게 울었고 ‘상여 뒤에 애처롭게 매달려 그 소년도 슬프게 운다’고 해석하는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몇 해 전 ‘삼성공화국’과 관련된 책들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권력에 예의 바르고 ‘외롭고 힘없는 자’에게 무뢰(無賴)한 삼성

삼성을 공화국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 권력을 한 손에 움켜쥐고 있는 삼성이 미치는 영향력은 가히 폭발적이면서도 공포스럽다. 정치, 문화, 사회, 학계 등 삼성이 내미는 권력에 주저 없이 손을 잡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삼성과 손을 잡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들이 늘려 있다.

삼성(Samsung)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 물음은 단순하지 않다. 하나의 기업집단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삼성은 대한민국에서 정치, 사회, 문화 영역에서 모든 것을 아우르고 있다. 삼성을 기업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왕국’으로 판단하게 된다.

무엇보다 ‘삼성왕국’이 우리 사회에 미치고 있는 가장 큰 테제는 ‘선(善)과 악(惡)조차 바꿀 수 있는’ 강력한 헤게모니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선과 악은 보편적인 개념이다. 누구나 ‘저것은 선’ ‘이것은 악’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개념이 있다.

그렇지만 이 개념이 삼성으로 넘어오면 완전히 뒤틀리고 만다. 삼성에게 있어 선(善)의 개념은 “삼성에 유리하면 모든 것이 선”이며 악은 “삼성에게 해를 끼치면 악(惡)”이 된다. 무소불위의 헤게모니를 지니게 된다는 의미이다.

보편적 상식 개념인 ‘선과 악’의 개념과 정의조차 바꿀 수 있는 집단이 삼성이라는 존재이

다. 과연 그 속에는 어떤 시스템이 흐르고 있을까. 그런 삼성에 끌려가는(?) 사람들-판검사, 변호사, 기자, 회계사 등등-은 왜 자처해서 ‘삼성 왕국’으로 걸어 들어가고 그것을 영광으로 삼을까.


삼성반도체 젊은 청춘들의 비극은 아직 진행 중 <삼성반도체와 백혈병>

반올림에서 발간한 <삼성반도체와 백혈병>은 삼성반도체 공장에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했거나 혹은 투병을 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성반도체 공장에 근무한 몇 년 뒤 백혈병에 걸려 죽어간 이들⋯그들은 모두 젊은 청춘들이었다.

황유미, 박지연 씨 등의 죽음⋯꽃다운 나이에 그들은 위대한(?) 삼성에 입사해 처절하게 죽어갔다. <삼성반도체와 백혈병>은 황유미 씨의 죽음이 남긴 것을 시작으로 반도체 공장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짚어본다.

백혈병이 삼성 직원들에게 발병하면서 대책위를 꾸리게 되고 산재 신청에 얽힌 잘못된 점과 역학조사를 둘러싼 공방 등을 탐사 보도 형식으로 담았다. 산재 승인이 되지 않은 현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규명하고 또 다른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다뤘다.

<삼성반도체와 백혈병>은 “아직 끝나지 않은 싸움”이라고 그들의 운동을 규정하고 계속 ‘싸워나갈 것’을 천명하고 있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변호사에 대해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워낙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당사자이며 삼성과 관련돼 가장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 검사 출신으로 삼성 법무팀에 근무하다 양심선언을 하게 되고 몇 년 동안 한국 사회를 이슈와 논쟁으로 이끈 장본인이다. 자신이 직접 겪은 이야기를 통해 ‘삼성의 참 모습’에 접근하고 이다.

차명계좌를 이용한 비자금 조성과 검찰과 법원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삼성의 인맥구조와 조직체계 등을 체험적으로 기록했다. 삼성 구조본의 역할과 그들의 보이지 않는 음지에서의 활동, 그리고 삼성을 둘러싼 모든 문제점을 해결하는 그들만의 노하우 등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삼성에 맞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함께 맞서 싸워 나갔던 과정을 그렸고 자신이 직접 경험한 내용을 통해 “삼성이 변하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프레시안 편집부의 <삼성왕국의 게릴라들>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편집부에서 엮은 <삼성왕국의 게릴라들>은 거대한 ‘삼성 공화국’에 맞서 싸우는 이들의 모습을 직접 취재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다.

삼성을 향해 칼을 뽑은 변호사-김용철

삼성에 시선 맞춘 민주화 운동의 산 증인-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경제 민주화 꿈꾸는 금산 분리 파수꾼-김상조 교수

'떡값 검사' 공개한 촌철살인의 비평가-노회찬 국회의원

삼성왕국과 전쟁 선포한 '심삼성' - 심상정 전국회의원

비정한 사회와 자본을 고발한 저널리스트-이상호 기자

무노조 신화에 맞선 다윗의 투쟁 - 김성환 삼성일반노동조합 위원장

이들 7인의 ‘게릴라’들이 삼성 공화국에 맞서 어떤 투쟁과 싸움을 전개했고 그동안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 등을 살폈다.

끝나지 않은 외침과 울음⋯어찌 해야 하는가

신경림 시인의 시들 속에 삼성으로 인해 죽고, 삼성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이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새벽잠에서 일어나 기사를 접하고, 출근길에 읽는 시가 무척이나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5.18 광주민중항쟁의 희생자들에게 바친 <씻김굿> 또한 시대만 달라졌을 뿐 삼성에 대입하면 그대로 읽혀진다.

염무웅 선생은 신경림 시인의 시를 해석하면서 “삶과 문학의 길을 오로지 꼿꼿하게 걸으면서 자신과 같이 외롭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빌려주고 그들의 꿈과 희망을 우리 문학세계의 한복판에 깃발처럼 우뚝 심어놓은”이라고 신경림 시인을 평가했다.

‘외롭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빌려주는 존재⋯그러나 삼성은 위에서 언급된 책을 통해 살펴보고 분석해 보면 ‘외롭고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무뢰하고 권력에 예의바른’ 존재로 다가온다.

삼성반도체 공장에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죽어간 꽃다운 그들과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는 故 김주현 씨의 명복을 빈다.

편히 가라네 날더러 편히 가라네

꺽인 목 잘린 팔다리 끌고 안고

밤도 낮도 없는 저승길 천리 만리

편히 가라네 날더러 편히 가라네

잠들라네 날더러 고이 잠들라네

보리밭 풀밭 모래밭에 엎드려

피멍든 두 눈 억겁년 뜨지 말고

잠들라네 날더러 고이 감들라네

잡으라네 갈가리 찢긴 이 손으로

피묻은 저 손 따뜻이 잡으라네

햇빛 밝게 빛나고 새들 지저귀는

바람 다스운 새 날 찾아왔으니

잡으라네 찢긴 이 손으로 잡으라네

꺽인 목 잘린 팔다리로는 나는 못가,

피멍든 두 눈 고이는 못 감아,

못 잡아, 이 찢긴 손으로는 못 잡아,

피묻는 저 손을 나는 못 잡아

되돌아왔네, 피멍든 눈 부릅뜨고 되돌아왔네

꺽인 목 잘린 팔다리 끌고 안고

하늘에 된서리 내리라 부드득 이빨 갈면서

이 갈가리 찢긴 손으로는 못 잡아,

피묻은 저 손 나는 못 잡아,

골목길 장바닥 공장마당 도선장에

줄기찬 먹구름 되어 되돌아왔네

사나운 아우성 되어 되돌아왔네(<씻김굿>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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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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