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면 어떤 내용을 말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는 소설이 있다. <태백산맥> <한강> <지리산> 등 대하소설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가 하면 소설 내용을 읽어야지만 그제야 소설 제목이 이해되는 경우도 많다.

 

김연수의 <인구가 나다>는 후자에 속한다. 제목만 봐서는 도대체 무슨 내용을 말하고자 하는지 가늠할 수 없다. ‘인구(人口, Population)가 나다(生,태어나다)’는 뜻인지, 또 다른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바이올린 제작자인 은수, 은수의 옛 연인이었던 혜진, 가칭 중학생 천재 바이올린니스트 정구.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은 ‘우연의 집합체’라고 요약된다. 김연수의 <인구가 나다>는 이런 소설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소설의 내용은 간단하다. 바이올린 제작자, 은수가 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바이올린 제작공부를 했다. 그리고 귀국한 뒤 지금은 국내에서 바이올린 제작을 한다. 어느 날, 중학생 인구가 은수의 작업실로 찾아온다. 정인구는 “낙원상가에 바이올린을 팔려고 왔는데, 바이올린을 보여줬더니 이곳으로 가라고 했다”며 바이올린을 내놓는다.

 

중학생이 내놓는 바이올린은 은수가 오래 전 직접 만든 바이올린이었다. 못 알아볼 일이 전혀 없다. 그것도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바이올린을 우연히 이탈리아를 방문한 혜진에게 현장에서 직접 낭만적으로 선물했던 것. 그 바이올린이 지금 얼굴도 모르는 중학생의 손에 쥐어져 있다. 어떻게 된 일?

 

인구의 아버지는 택시운전사였다. 택시운전사인 아버지는 아들의 바이올린 실력을 최면 걸리듯 일찍 감지하고 그를 교육시키다. 없는 살림에. 심지어 아버지는 이를 위해 세종문화회관 후원회에 가입하기 까지. 애틋한 부정이다. 중학생 아들도 재능을 발휘한다. 그런데, 인구가 대성하기 전에, 대학도 들어가지 전에 아버지는 폐암에 걸린다. 그것도 말기. 치료 불가능.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다.

 

중학생 아들은 참담하다. 이제 바이올린을 계속 공부할 방법이 없다. 값비싼 수제 바이올린은 말할 것 없는 것은 물론 먹고 살 일이 걱정이다.

 

윤회하는 바이올린의 정체

 

그런데 인구가 값비싼 수제 바이올린을 들고 지금 은수 앞에 서 있다. 이런 우연이. 은수는 “네가 이 바이올린을 가지게 된 사연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값을 충분히 치르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구는 묵묵부답. 계속 다그치는 은수에게 침을 뱉고 도망가 버린다.

 

은수는 인구가 자신을 ‘천재 바이올린니스트 정인구’라고 소개했던 기억을 되살려 근처 친구에게 물어본다. 그렇게 시작된 정인구에 대한 검색은 마침내 한 다큐멘터리에 소개된 동영상을 찾기에 이른다. 정인구가 자신의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서 아버지를 위한 마지막 바이올린 연주회를 했고, 이것이 화제가 돼 방송에 출연하면서 전국 병원을 돌며 ‘희망 연주회’를 했다는 것.

 

방송을 통해 연주하는 정인구의 바이올린 실력은 은수가 보기에 영, “아니올시다”. 기계적으로 연주방법만 알 뿐 바이올린의 깊은 울림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그렇게 해당 동영상을 봤지만 가장 궁금한 것, “혜진이 가지고 있어야 할 이 바이올린이 어떻게 정인구에게?”라는 점.

 

은수는 답답하지만 정인구가 다시 찾아오지 않는 이상, 잊어버리기로. 그때 갑자기 해당 동영상이 머리에 다시 섬광처럼 떠오른 것은 왜? 은수는 동영상을 다시 플레이. 그러다 한 장면에서 모든 것이 멈추는 듯 한 충격에 휩싸인다. 인구의 바이올린 연주도, 인구의 바이올린 연주를 보면서 마지막 눈물을 머금는 인구 아버지의 애잔한 모습도 아닌, 바로 그 많은 환자들 중에 푸른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에 앉아 있던 혜진을 보았던 것.

 

이탈리아에서의-공포영화를 보러갔다 영화보다는 곁에 있는 혜진을 어떻게 할 까 봐 손잡이를 스스로 꼭 잡을 수밖에 없었던-짧은 만남 이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던 그녀의 모습을 보았던 것.

 

결론적으로 바이올린의 행방은 ‘은수→혜진→인구 아버지→인구→은수’로 윤회됐다는 것. 인구가 연주했던 그 병동은 이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한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공간. 혜진이 그곳에 있었다는 것.

 

김연수는 인구(Population)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 같다. 최근 펴낸 장편소설 <원더보이>에서도 인구((Population)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어느 날 초능력을 가지게 된 김정훈은 정보부에 의해 같이 일할 것을 강요당한다. 하지만 김정훈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협박하는 정보부 권 대령에게 “여기서 일하는 것보다는 인구(Population)를 늘리는 것으로 국가에 보답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인구가 나다>와 다른 의미인 ‘인구가 나다(Population is born)’이지만...요즈음 김연수는 출산 기피 현상에 일종의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인구를 늘리는 방법으로 국가에 보답하겠습니다’는 말을 이토록 많이 사용하지는 않았을 듯하다~~. 또 <원더보이>에서는 수많은 별들의 개수, 무한반복하는 원주율의 소수점 이하 자리, 지구의 인구가 얼마나 많이 태어났는지 등 숫자들의 향연이 끝없이 펼쳐진다.

 

다음에는 <원더보이> 내용을 살펴봐야 겠다. 난 그래도 두 명의 아이를 낳았으니 충분히 원더보이>를 읽을 만한 자격이 되지 않을까. 이 시대 아이들은 정말 모두들 ‘원더보이’지 않은가. 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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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

K가 있다. 그는 금요일 저녁 친구와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왔다. 이른 아침 자명종 소리에 잠이 깬, 출근하기 위해서 울리는, K는 뭔가 낯설다. 그가 누워있는 침대, 바깥에서 아침을 준비하는 아내, 무엇보다 토요일은 출근하지 않은, 유일하게 늦잠을 잘 수 있는 날인데도 자명종이 울렸다는 그 자체가 낯설다.

분명 자신의 침대와 누워 있고, 낯익은 커튼이 보이고, 낯익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 건만, 이 낯섦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아침에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가서, 소변을 보고, 면도를 하고, 에프터쉐이브 로션을 바르고, 샤워를 한다. 그런데 늘 그곳에 있었던, 평생 한 번도 바꾸지 않았던 스킨로션이 바뀌어 있다. K는 늘 V 브랜드를 썼는데 오늘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Y 브랜드의 로션이다.

무엇보다 K의 휴대폰이 분실됐다는 점이다. 어제, 금요일 K는 정신과 의사인 H와 술을 마셨다. 1차로 일식집에서, 2차로 H가 단골로 있는 바에서 술을 마셨고, 11시쯤에 집에 들어왔다. 그런데 지금 그의 주머니에도, 집안 어느 곳에도 휴대폰은 보이지 않는다.

K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그를 찾아 나선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최인호 선생의 최근작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누군가의 청탁으로 인한 소설이 아닌 스스로의 열망으로 쓴 최초의 장편소설”이라고 밝혔다. 암투병중임에도 불구하고 매일매일 원고지 20매씩 꼬박꼬박 썼다고 적었다.

거미 같은 여인에게서는 악취가 나고

토요일 K는 처제의 결혼식을 앞두고 아내와 딸을 데리고 미장원에 간다. 두 사람을 미장원에 내려준 뒤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카페의 약도를 보고 그곳을 찾는다. 그곳은 이태원 근처의 어느 바였다.

자신이 어제 있었던 일을 복기하기 위해 다시 찾아 나선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는 휴대폰의 행방을 찾는 것이 급선무. K가 도착한 바는 문이 열려 있었다. 그곳에는 여자도 아닌, 남자도 아닌 어떤 사람이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여인은 K를 몰랐다. K는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성냥갑을 보여주며 내가 어제 여기 왔었느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히 ‘전혀 모르겠다’는 답뿐이다.

분명 어제 H와 바에서 술을 마시면서 H는 바의 여주인(거미 같은 여주인)과 춤을 추었고 춤을 추면서 H가 여주인의 찢어진 옷 사이로 손을 집어넣는 것까지 본 마당에. 그런데 어디에선가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K가 아내 휴대폰으로 자신의 휴대폰에 메시지를 보낸 것을 보고 걸려온 전화였다. 전혀 모르는 낯선 남자의 전화. K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다는 것. K는 그를 만나 휴대폰을 돌려받는다. 그런데 K의 전화를 전혀 엉뚱한 영화관 구석에서 주웠다고 그는 말한다. K는 계속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하게 낯선 일들에 어리둥절하다.

이런 모든 것을 속 시원히 말해줄 수 있는 것은 H뿐이다. 금요일 저녁 H와 술을 먹고 집에 돌아온 이후 계속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H를 만나 그가 기억하고 있지 않는 금요일 저녁 9시30분에서 11시까지의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토요일 저녁에 H를 만나 이야기를 한다. 정신과 의사인 H는 "가장 존경하고 내 존재를 확인시켜 줄 수 있는 어떤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람을 만나 정체성을 확인해 보라“고 권한다. 그는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던 누나를 떠올린다.

그 사이사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던 남자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던 카페에서 ‘거미 같은 여인’을 본다. 또 커피를 마시고 있던 중간 중간에도 ‘거미 같은 여인’이 나타난다. 심지어 TV 화면의 뉴스를 전달해 주는 아나운서도 ‘거미 같은 여인’이다. 서로 같은 사람인지, 전혀 다른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들에게서 심한 악취가 풍긴다.

요즈음 길거리를 나서 보라. 모두 늘씬하고, 온갖 향수를 가득 바른 여인들이 줄기차게 지나가고 있다. 뚱뚱하고, 초라한 여인들은 거의 없다. 누구누구인지 분간할 수 없다. 도시는 이제 ‘늘씬하고 향기롭고 탱탱한 피부를 가지고 있자 않으면’ 살기 힘든 곳이 돼 버렸다. 과연 그 겉모습은 화려하고 아름다울지 모르나, 가끔씩은 지나친 향수 냄새로 기절할 뻔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에 선 K

오래전 헤어졌던 누나를 어렵게 만난다. 누나와 결혼했던, 매형이었던 P교수를 만나 연락처를 건네받는다. P교수는 K에게 일요일 신촌의 어느 카페로 올 것을 원한다. 그 카페에 들어서자 묘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 카페는 여장남자의 전용 카페. P 교수도 일요일 마다 회원들만 출입할 수 있는 그곳에서 여장을 한다. 그리고 P교수란 정체성을 버리고 ‘올렝카’라는 여자로 통용된다.

누나를 만났지만 누나는 엄청난 거구가 돼 있다. 누나는 K를 반긴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 간의 오붓한 정을 느낀다. 국수를 삶아 먹고, 누나가 가지고 있던 옛날 앨범을 같이 보고, 마침내 K는 자신이 K임을 확인한다.

그러나, 토요일 아침에 집에서 딸의 강아지에게 물린 다리의 상처가 욱신거린다. 누나가 그것을 발견하고 상처가 덧날 것 같다며 입으로 상처를 빨아준다. 순간, K는 누나에게서 참을 수 없는 욕정을 느낀다. 혼란스러워 진 K는 누나의 집을 박차고 나온다.

자신의 정체성을 누나와 누나가 가지고 있던 가족 앨범을 통해 확인했지만 친누나에게 욕정을 느끼는 이 부조화! K는 다시 혼란해 빠진다. 만약 K가 진짜 누나의 동생이라면 욕정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K는 자신이 K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시 빠져 든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란 말인가. K는 K가 아니란 말인가. K의 혼란은 더 깊어진다.

또 하나. 누나는 몇 년 전 K가 보낸 편지를 보내준다. 그러나 K는 누나에게 편지를 보낸 기억이 없다. 그 편지를 누나로부터 건네받고 호주머니에 넣어 둔다. 누나에게 강한 욕정을 느낀 K가 누나의 집을 뛰쳐나와 그 편지를 본다.

그 편지는 분명 K의 필체였고, 돈을 좀 융통해 달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K는 전혀 기억에 없는 편지! 그 편지 밑에 계좌번호와 전화번호가 있다. 전화번호도 낯선 번호였다. K는 그 번호를 전화를 건다.

K가 건 전화를 K가 받다

K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이럴 수가! 전화를 받는 목소리는 분명 K의 목소리였다. K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다른 K가 자신의 전화를 받고 있는 현실! K는 또 다른 K와 만난다. '또 다른 K', K와 구별하기 위해 레인저라고 부른다,를 만난 K는 그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목소리, 얼굴 표정, 모두 하나같이 똑같았다. K는 결론을 내린다. 자신은 레인저와 같은 인물이고 어떤 한 공간에서 서로 바뀌었거나 혹은 누군가가 대리 인생을 살고 있고, 이 모든 것은 ‘빅 브라더’가 연출해 낸 공간이라고.

최인호 선생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K의 토요일 아침부터 월요일 아침까지의 3일 동안 행적을 다루고 있다. 소설 속의 모든 인물들은 이니셜로 나온다. 이니셜은 불특정 다수의 대표성을 띈다. K는 K일 수도 있지만 나일 수도 있다.

도시는 낯선 이들의 공간이다. 또한 낯익은 공간이기도 하다. 이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또한 우리의 로망이다. 그 끝없는 갈등이 도시를 변화시키는 동력일 것이다.

링반데룽!

정미경의 <아프리카의 별>에서도 링반데룽이 나왔고, 이승하의 시집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에서도 이 ‘링반데룽’이란 말이 언급된다. 현대인의 삶, 현대인의 모습을 한 마디로 표현해 주는 단어일 수 있다.

늘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삶, 어딘가 낯익었음에도 낯설고, 뭔가 신비하면서도 잔혹하고, 아름다운 면서도 추한 현실. 그곳을 벗어나는 이별을 우리는 준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잔혹함과 아름다움, 추함과 신비를 모두 경험하면서 끝내는 대지진과 같은 지각이 흔들리고, 지구가 다시 깨끗해지는 그곳을 향해 가고 있는 길인지도 모른다.

최인호 선생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술술 읽힌다. 속도감이 있다. 이미지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매일매일 20매씩 꼬박 두 달에 걸쳐 적은 소설인 만큼 최인호 선생의 현대적 이미지가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서평을 적은 김연수 소설가는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최인호 선생의 <타인의 방>을 꼭 읽어 보기”를 권했다.

최인호 선생에게 있어 이 도시는 벗어날 수 없는, 그러나 끝내 벗어날 수밖에 없는 공간으로 다가오는 듯 하다. 그것은 비단 최인호 선생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낯익은 타인의 도시’는 지금도 여전히 이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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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종오 정종오